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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왜관…조선 속의 일본 <16> 왜관에는 어떤 건물 있었나 왜관…조선 속의 일본 왜관에는 어떤 건물 있었나 서관은 日 사절단 전용 숙소… 동관엔 신사와 매 기르는 응방도 둬 국제신문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9-12-25 19:13:19 | 본지 19면 - 용두산 중심으로 동·서관 나눠 - 조선이 돌담 위 쌓은 가시덤불 - 왜인들이 불태웠다는 기록도 - 서관보다 동관에 건물들 몰려 - 일본 재판관 집무소·불교 사찰 - 통역관·비서·하인 숙소도 있어 - 왜관 안 각종 생활용품점 즐비 - 두붓집·다다미 가게·술집 많아 - 음식 다양해 조선인에게 인기 ■1876년 왜관의 문을 허물다 1876년 2월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되었다. 흔히 말하는 강화도조약이다. 이 조약문의 네 번째 조항을 보면 “조선국 부산의 초량항(초량목)에는 .. 더보기
서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서구, 어디까지 알고 있니? 2021-03-26 13:15:57 문화관광과 첨부파일 1Q7A5106-Pano.jpg(4625 kb) 첨부파일 임시수도정부청사(동아대석당박물관).jpg(1842 kb) 첨부파일 옛한전중부산지사와부산전차.JPG(617 kb) Previous 서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서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서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역사가 남긴 흔적, 길 위에서 만난 서구 근대역사 풍경 서구 근대역사 흔적길 서구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그리고 역동적인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문화 콘텐츠를 간직하고 있는 곳도 흔치 않다. 일제강점기에는 경남도청 소재지였고, 한국전쟁기에는 1,023일 간 대한민국 임시수도 부산의 심장부로서 정치·행정·경제·교육·문화의 중심이었다. 서구는 최근 구청에서 한국.. 더보기
6.25 피란민들의 생생한 삶과 기억을 담은 구술생애사 6.25 피란민들의 생생한 삶과 기억을 담은 구술생애사 -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6.25 피란생활사』발간- 부산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기억의 역사 차례1. 들면서2. 피란민에서 정착민으로 Ⅰ. 황해도 “깽깽이”, 아미농악을 탄생시키다. Ⅱ. 부산 토박이, 한적했던 포구 마을의 피란민 수용소를 기억하다. Ⅲ. 충청도 괴산에서와 태극도인 아버지 대신 가족을 책임지다. Ⅳ. 강원도 농부 아들 깡통시장에서 대박의 꿈을 이루다. Ⅴ. 함경남도 피란민 부자(夫子), 농산물판매 외길로 성공하다. Ⅵ. 평안도에서 피란 와서 주경야독으로 야간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다. Ⅶ. 일본 귀환동포 새댁, 매축지 마을 부녀회를 이끌다. Ⅷ. 함경남도 반공애국청년단원, 월남해 교육자의 길을 걷다. Ⅸ. 김일성대학 공대생, 월.. 더보기
그들이 사는 세상, 완월동 부산 공존 프로젝트 그들이 사는 세상, 완월동 쇠락한 동네 고립된 여성 … 자활의 등 켜줘야 홍등 꺼진다 국제신문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 | 입력 : 2018-01-07 19:54:56 | 본지 3면 - 일제때 조성된 성매매 집결지 - 지금도 여성착취 여전하지만 - 관계망 단절된 채 철저히 소외 - 부산시·서구 내놨던 재생정책 - 국비확보만 바라보다 흐지부지 - 생계 고려한 폐쇄가 공존의 길 - 시 차원 예산·정책 마련 절실 ‘당신은 얼마입니까’. 부산 서구 완월동에 아직 성매매업소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서정빈 기자 성매매 피해자 여성 A 씨는 이 질문과 함께 끝없이 흥정되는 거래 대상으로 20여 년을 살았다. 매일 오후 8시면 성매매업소 입구에는 나까이(알선자)가 나서 성매수남을.. 더보기
김형기 김형기 연합아카이브에서 제작한 동산 김형기선생을 소개하는 영상으로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더보기
천년의 신비 간직한 동래온천 이야기 천년의 신비 간직한 동래온천 이야기 동래온천을 언제부터 사람이 이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1500여 년 전 다리를 저는 학이 땅속에서 솟은 따뜻한 샘터에서 멀쩡해지는 것을 본 한 노파가 아픈 다리를 고쳤다는 백학 전설과, 눈 내리던 겨울 사슴이 밤마다 잠자고 가는 것이 신기하여 가보니 사방은 눈으로 덮였는데 그 곳엔 새싹이 자라고 웅덩이에 뜨거운 물이 솟았다는 백록의 전설은 동래온천이 발견된 이야기로 전해 오고 있다. 역사 속에 담긴 동래온천 신라시대 온천 역사에서 지명이 최초로 밝혀진 곳이 동래온천이다. 682년 신라 신문왕 때 재상 충원공이 동래온천에서 목욕하였다고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서 전한다. 1481년 조선 성종 12년 강희맹이 지은 동국여지승람에는 동래온천에서 병자가 목욕하면 병이 나아 신.. 더보기
동래담뱃대 동래담뱃대 1929년 동래군에서 발행한 "동래군군세요람"을 보면, 당시 동래면에는 담뱃대를 생산하여 전국에 공급하였으며, 담뱃대를 생산 수량은 년간 61,700개이며 생산액은 18,810엔으로 기록되어있다. 대표적인 공장으로는 한윤규연관제조소에는 자본금 1,000엔, 종원업 9인, 생산액은 3,700엔이다. 1929년 동래군군세요람 동래의 고로(古老)들은 이 지방의 명산물로서 서슴지 않고 담뱃대를 든다. 그만큼 동래지방에는 일찍부터 담뱃대를 만드는 수공업(手工業)이 성행하여 부산지방 수공업의 대종을 이루었다. 옛날에는 연관(煙管)이란 이름으로 불린 담뱃대가 언제부터 생산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조선시대에 울산(蔚山)의 병영(兵營)에 무기 제작창(武器製作廠)이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연관이 많이 생산되었는.. 더보기
부산의 세 아지매 아시나요…자갈치,깡깡이아지매, 그 부산의 세 아지매 아시나요…자갈치,깡깡이아지매, 그 [미주헤럴드경제] 기사입력 : 2020/08/25 19:08 in 컬쳐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자갈치 아지매’는 부산 지역방송의 장수 프로그램 제목일 정도로 유명하다. 수산물 시장에서 바지런하게 움직이며 한국전쟁의 혼란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국제도시 부산의 기틀을 닦은 억척 여성들이다. ‘깡깡이 아지매’는 자갈치 시장 건너 영도 조선소 주변, 조선업 허드렛일을 하던 여성들이다. 남편이 어로나 지겟꾼으로 나가면, 부인은 배 만들면서 용접할때 남은 찌꺼기 ‘슬래그’를 망치로 ‘깡깡’ 쳐서 떼어내는 노동자들이다. 철근을 용접한뒤 다듬어 만든 T자형 망치를 들고 다녔다. 깡깡이 아지매 벽화 재첩 채집은 아저씨가, 국요리와 판매는 아지매가 맡았다. 그리고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