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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용호농장의 마지막 봄을 기록하며 03.05.03 17:33ㅣ최종 업데이트 03.05.08 17:20용호농장의 마지막 봄을 기록하며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로 한센인들이 자립을 위해 운영한 농장이 위치한 곳이라 하여 용호 농장(龍湖農場) 마을이라 불렀다. 1946년 상애원[1911년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감만동의 한센 병원]의 한센인이 소록도로 강제 이주되면서 당시 소록도 이주를 거부한 전염성이 없는 음성 한센인이 용호동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이 지역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 주둔지로, 부서진 대포와 병영 시설만이 있어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다. 1948년 경상남도 도립 나요양소로 틀을 갖춘 뒤, 1961년 국립용호병원으로, 1968년에는 국립 소록도 나병원 용호분원이 되었다. 마을의 규모가 가장 컸을 때는 7,000여.. 더보기
구포왜성 (龜浦倭城) 구포왜성 (龜浦倭城)목차메뉴 접기정의건립 경위변천형태와 특징발굴 경위 및 결과의의 및 평가참고문헌관련 정보관련 항목관련 미디어 글자 크기 URL 복사페이스북 공유트위터 공유건축 유적 국가유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코바야가와 타카카케 등이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에 쌓은 왜성.이칭이칭구포의성, 감동포성유적건립 시기조선시대관련 국가일본관련 인물코바야가와 타카카케, 코바야가케 히데아키, 다치바나 무네시게, 타카하시 니오츠쿠, 치쿠시 히로가도높이7m둘레미상면적29,548㎡ 더보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접기/펼치기내용 요약음성 재생구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코바야가와 타카카케 등이 부산광역.. 더보기
부산지역의 효열비 부산지역에 남아 있는 효자, 열녀비는 몇 기가 남아 있을까?향토문화대전에 기록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향토문화전자대전효열비[ 孝烈碑 ]분야유형지역시대출처종교/유교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부산광역시조선/조선디지털부산문화대전-효열비목차정의개설내용정의조선 시대 부산 지역에서 효행과 열행을 기리어 세운 비.개설효열비는 부산 지역에 살았던 효자(孝子)·열녀(烈女)·열부(烈婦)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글을 새기어 세워 놓은 비석이다. 이를 ‘정려비’라고도 한다. 효자는 부모를 극진하게 섬기는 아들을 말한다. 효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정성을 다하고, 돌아가신 뒤에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태만히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효는 유교의 핵심적 도덕규범인데, 효에 대한 본질적인 개념은 공자(孔子)에서 형성되었다.이러.. 더보기
항공사진으로 보는 부산 [부산광역시 시리즈 - (12) 부산 주요 장소들의 변천사2] 항공사진으로 보는 부산 [부산광역시 시리즈 - (12) 부산 주요 장소들의 변천사2]비갈맥끼룩조회 수 45180 추천 수 107 댓글 127 https://www.fmkorea.com/3593833108 복사 -전편 : https://www.fmkorea.com/3588596937*약간의 각색과 시점 차이가 존재합니다*  항공사진으로 보는 부산 [부산광역시 시리즈 - (11) 부산 주요 장소들의 변천사 2]  부산 풀코스의 진실을 알아가는 시간.부산의 모든 것을 알아가는 시간. 이번 편에서는 부산 주요 장소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항공사진과 옛사진으로 알아보자. ??? : 야, 저번편이랑 같잖아? 저번 편은 버렸냐??장소가 다르다. ??? : 골때리네... 인트로는 첫글인거처럼 코스프레하더니그러니 많이들 읽.. 더보기
내 고향 역사알기란? 내 고향 역사알기란?일제가 한국을 병합한 이후부터 일제는 지방사회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부심했습니다. 강점 초기부터 일제가 군면 폐합과 부제 실시, 조선 면제 실시 등을 서두른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조선의 지방사회가 총독부 권력과 식민지 민중이 격돌하던 주요한 ‘정치투쟁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시행된 조선총독부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식민지시기 전반에 걸쳐 수차례 시행됨으로써 일제는 그들의 지배통치체제를 더욱 확고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지방체제 개편은 비단 식민지시기 당시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지역과 우리가 나고 자랐던 고향의 명칭이 이 같은 정책으로 인해.. 더보기
부산~대마도 항로 [도청도설] 부산~대마도 항로  장호정 기자 lighthouse@kookje.co.kr | 2025.01.23 18:44 부산과 일본 대마도를 연결하는 항로는 단순한 해상 교통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항로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화와 역사의 교차로이자 한일 관계의 중요한 연결 고리이다. 대마도는 조선통신사 1000㎞ 뱃길의 시작점이었다. 부산항을 출발한 선단이 영도다리와 오륙도를 뒤로 하고 대한해협을 건너 2시간가량 항해하면 대마도 이즈하라항에 도착한다. 항을 빠져나오면 도로에 400여 년 전 조선통신사의 첫 기착지를 나타내는 표지판이 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 일본 에도 막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집권 초기에 시작돼 1811년까지 200여 년에 걸쳐 12차례나 이뤄진 한일 문화교류 행사였다... 더보기
1989년 사상공단 수해 피해 1989년 사상공단 수해 피해1. kbs 9시 뉴스집중호우로 부산 사상공단 완전 침수입력 1989.07.29 (21:00)https://news.kbs.co.kr/news/pc/view/embedVideo.do?vodUrl=/newsmp4/news9_history/1989/19890729/1500K_new/30.mp4&imgUrl=https://news.kbs.co.kr/data/fckeditor/vod/multi/kbs9/1989/19890729/1500K_new/30.jpg&captionYn=N" title="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w.. 더보기
부산지역의 일본군 포진지 부산지역의 일본군 포진지 1930년 완공된 용호동의 장자등 포진지는 높이 3m, 내부 길이 45m, 연면적 1천652㎡ 규모의 거대한 지하 요새다. 1924년부터 약 600여 명의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하 공간은 1개 대대가 주둔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즉, 용호동의 장자등 일본군 포진지는 부산·경남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포대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강서구 가덕도 외양포 마을 언덕에 있는 일본군 요새 사령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포진지와 대항 새바지 일본군 인공 동굴이 있다. 이와 관련된 국제신문과 부산일보 기사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이야기 공작소 오륙도·이기대 스토리텔링- 응답하라, 장자등 포진지 "적군 오면 해안포로 박살 내버릴테다" 일제, 대한해협 길목 요새화 박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