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겨울에 생각나는 매콤한 맛, 이렇게 추울 때면 따끈한 어묵국물이나 얼큰한 것들 생각이 절로 나는 게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뀐다고 하는데 저도 예전에는 매운 것을 상당히 잘 먹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는 덜매운 것을 찾게 됩니다. 그래도 때때로 매운 것이 입맛이 당길 때면 문득 생각난 것이 '조방낙지'입니다.
가슴저린 사연이 깃든 매콤한 맛 조방낙지! 조방낙지 하면 조선방직 공장의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으로 조방낙지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조방'이라함은 부산시 동구 범일동 자유시장 일대에 있던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약자인데 당시 조선방직에 다니던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교활한 학대와 일본인들 보다 더 악질적으로 같은 민족을 학대한 동족들의 만행이 심했다고 합니다.
식민지 노동자의 값싼 임금에 기초를 둔 이 방직공장은 가혹한 노동환경과 폭압적인 노조관리와 함께 14시간의 노동과 죽음을 부르는 협주곡과도 같은 방직기의 소음속에서 힘겨웠던 하루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공장 문을 쉽게 나서지 못합니다. 몸수색을 받아야 합니다. 자투리 광목 원단을 몰래 훔쳐 나갈까봐 몸수색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본인 아래서 일하는 조선인 간부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키면 무자비한 몽둥이 세례를 받아야 했답니다.
이렇게 고단한 삶속에 이들을 위로한 것이 있었으니 정문 앞에 있는 낙지볶음집 이었습니다. 퇴근 후 들러 낙지볶음과 함께 술 한 잔하며 스트레스를 풀던 곳이었는데 이것이 후일 '조방낙지'의 원조가 되었답니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낙지가 아닌가 합니다. 본격적으로 조방낙지가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50년 전후가 안닌가 한다. 지금은 부산진구 범천동 평화시장과 자유시장 주변에 조방낙지 거리가 형성돼 있습니다.
정약전의『자산어보』에도 맛이 달콤해 회나 국, 포를 만들기 좋다고 했다. 갈낙(갈비살과 낙지), 낙새(낙지와 새우), 낙곱(낙지와 곱창) 등 낙지는 다른 재료들과도 두루 어우러져 맛갈스런 궁합을 연출해낸다. 또 조방낙지, 무교동낙지, 목포 세발낙지 따위처럼 지역별로 별미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한다.
그러면 낙지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자산어보』에는 낙지를 한자어로 낙제어(絡蹄魚)로 쓰고 있다. 얽힌(絡) 발(蹄)을 지닌 물고기(魚)라는 뜻이다. 8개나 되는 발이 어지럽게 얽힌 낙지의 특성을 적절하게 포착한 작명이다. 낙지는 강장 작용에 좋은 타우린과 히스티딘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농가에서 농사일로 탈진한 소의 원기 회복을 위해 먹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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