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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사[金星社]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었던 전자 제품 제조 기업으로서 LG전자의 전신. ”
“금성사” 관련 부산일보 기사
설립 목적
금성사는 라디오 제작 판매를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58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 공업 회사로 금성사가 부산시 부산진구 연지동에 설립되었다. 1959년 2월 17일 금성사로 설립 등기를 하였다. 1959년 6월부터 최초의 라디오 모델 설계가 이뤄졌다. 최초의 국산 라디오 설계를 맡은 김해수 주임은 6·25 전쟁 때 부산 지역에서 라디오상을 경영하며 터득한 라디오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기능공 2명과 함께 일제 라디오인 산요를 참고로 최초의 국산 라디오 개발에 착수했다.
진공관을 비롯해 스피커, 레지스터 등은 수입했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국산화에 성공하였다. 최초의 라디오 모델은 AC, 즉 ‘전기용 5구 라디오 제1호’라는 뜻에서 ‘A-501’로 명명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A-501’은 1959년 8월경 시작품이 완성되어 상공부 제4133호로 상품 등록을 마쳤고, 11월에 80대가 정식 출하되었다.
1963년 9월 금성사 본사와 연지동 공장을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의 새 공장으로 이전하였다. 1964년 3월 온천동 종합 전자 기기 공장이 완공되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1966년 8월 국내 최초로 흑백 TV를 생산하였다. 1971년 안양 공장에 일부의 생산 설비가 이전된 것을 시작으로 금성사의 부산 지역 기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1973년 3월 기업 공개를 하였다. 1976년 창원 공장이 준공되면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온천동 공장 내 기계 공장의 창원 이전이 가속화됐다. 기계 공장이 완공된 것을 계기로 부산 기계 공장의 이전 작업이 1982년 2월 마무리됐다. 1982년 4월 25일부터 온천동 공장 철거 공사가 시작되었다. 1995년 1월 사명을 LG전자로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시 부산진구 연지동 341번지에 위치했던 공장은 대지 6,492㎡에 건물 면적 2,535㎡로 금성합성수지공업사가 1957년 6월 26일 락희화학 공장 맞은편에 신축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전자 공업’이란 용어도 생소했던 당시 연지동 공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라디오를 생산하며 우리나라 전자 산업의 메카이자 금성사의 요람으로서, 그리고 초기 전자 산업의 발원지로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진공관 4구 라디오, 트랜지스터라디오, 선풍기, 자동 전화기, 전화 교환기 등이 생산된 곳이 연지동 공장이었다. 국내 최초의 전산 전력계, EMD식 자동 전화 교환기, 우리나라 냉장고 1호인 ‘GR-120’ 등이 생산된 곳이 온천장 공장이었다. 국내 최초의 흑백 TV, FM/AM 라디오, 에어컨, 펌프, 믹서, 세탁기, 전산기, 카세트 녹음기, 금전 등록기 등이 개발된 곳이 온천동 종합 전기 기기 공장이었다.
부산 지역에 주요 시설이 있었던 1982년까지의 주요 지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59년 1000만 원의 총자본금으로 시작하였고, 종사자 수 313명에 매출액은 5000만 원이었다. 온천장 공장이 완공된 이후 자본금과 자산, 매출액이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종사자 수도 1964년에 2,500명, 1969년에는 5,000명을 넘어섰다. 1960년대 불황을 거치고 나서는 다시 회복되었고, 2차 석유 파동 때까지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부산 지역에서 마지막이었던 1982년에는 총자본은 750억 원이 넘고, 매출액은 4500억 원을 넘고 있다. 종사자 수는 9,610명이었고, 수출액은 2억 달러 정도였다.
의의와 평가
금성사는 부산 지역이 우리나라 산업의 요람이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업이었다. 부산 지역의 부산진구 연지동과 동래구 온천동에서 만들었던 전자 제품은 거의 우리나라 최초의 제품이었다. 우리나라 전자 산업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에서 태어나 동래구 온천장에서 성장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는 LG 사이언스 홀이 연지동에 남아 있을 뿐이다.
금성사 온천장공장1
금성사 온천장공장2
선풍기 조립
라디오 조립1
라디오 조립2
TV조립-검사라인
출처: http://epaper.busan.com/03_story/story.php?midCode=A0209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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