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와 각 구·군의 역사·문화·지리·산업 등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鄕土誌)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향토지는 처음 향토사 개념으로 출발하였다. 자기 지역을 알리기 위해 지리와 역사적인 사실을 기술하고 그 지역 출신의 인물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사의 일부 또는 하위 개념이라는 차원을 넘어 지방사를 하나의 독립된 역사로 보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향토사 또는 향토지는 한국사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한국사와 대등한 역사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현재 이러한 향토지를 분명히 정의하고 그 위상을 명확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향토지는 이제 단순한 향토사에 머물지 않고 지리·풍속·문학·예술·행정 등 향토에 관한 모든 사상(事象)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 의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향토지는 역사적으로 조선 시대 이래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서 간행되어 오고 있는데, 향토지 간행은 크게 전근대 시기와 근대 이후의 시기로 나누어 분류할 수 있다. 전근대 향토지는 기본적으로 각 군현 단위의 읍지와 지리지를 말한다. 그 종류는 작성 주체에 따라 관에 의하여 편찬된 관찬 향토지와 민간 주도로 만들어지는 민간 향토지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향토지 [鄕土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향토지[ 鄕土誌 ]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출처 디지털부산문화대전-향토지 정의
개설
근래 지역민들의 향토 의식과 사회의식이 발달함에 따라 향토지나 향토사 연구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고 있다.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향토사 연구소를 설립하여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는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물이 시·도지(市·道誌), 시·군지(市·郡誌), 읍·면지(邑·面誌) 간행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종류
관찬 향토지는 많은 예산과 인원으로 편찬되기 때문에, 내용이 풍부하고 분량이 많은 장점이 있다. 내용도 주어진 체제에 따라 지리와 역사, 문화재, 인물, 민속, 정치·경제, 행정, 교육, 문화와 종교, 산업과 관광 등으로 전 분야에 걸쳐 나누어지며, 각계의 전문가들이 집필함으로써 보다 전문적일 수 있다. 그러나 민간 향토지는 향토의 역사와 지리, 문화와 민속 등에 관심이 많은 문화 연구 단체나 개인이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 체득된 지식과 답사를 바탕으로 향토지를 만들기 때문에 현장과 현실을 정확히 반영·재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 관찬 향토지
부산 지역의 향토지 역사는 조선 시대에 간행된 읍지로부터 살필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과 같은 지리지 속의 읍지, 조선 후기에 대규모로 간행된 관찬 읍지 속의 동래부(東萊府)와 기장현(機張縣)이 전근대 시기 부산의 관찬 향토지라 할 수 있겠다.
부산의 관찬 향토지 간행 과정을 보면, 1740년 동래 부사에 의하여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 1759년 전국의 각 관읍에서 올린 읍지를 수집하여 『여지도서(輿地圖書)』로 성책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와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 1832년 경상도 전체 지리지 편찬 과정에서 이루어진 『동래부 읍지』와 『기장현 읍지』, 1871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 과정에서 이루어진 『동래부 읍지[사례대개]』와 『기장현 읍지』, 1894년에 동래부 관할 지역이던 다대진과 부산진에서 펴낸 『다대진지(多大鎭誌)』와 『부산진지(釜山鎭誌)』, 1894년 갑오경장 직후 지방 제도 개편을 앞두고 펴낸 『동래[부사례]』, 1899년 마지막으로 전국 단위에서 집성된 읍지 속의 『동래부 읍지』와 『기장현 읍지』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읍지의 한 형태인 1850년 경상 좌수영에서 편찬한 『내영지(萊營誌)』도 관찬 향토지라 할 수 있겠다.
일제 강점기 부산부에서도 관찬 향토지 편찬을 시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당시 부산부립도서관 내에 부사편찬실을 마련하여 한일 교섭사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 일본인 중심의 부산부사를 편찬하려 하였으나 결국 출간에는 이르지 못하였고, 해방 이후 『부산부사 원고(釜山府史原稿)』[1986]라는 이름으로 영인·발행되었다.
해방 이후 부산의 관찬 향토지 간행은 1965년 『부산 약사(釜山略史)』가 발간되고 1974년 『부산시지(釜山市誌)』[상] 출간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1962년부터 1969년까지 『항도 부산』이라는 자료집을 7집까지 펴내기도 하지만 계속 이어지지는 못하고 만다. 본격적인 향토지 편찬은 1989년 『부산시사(釜山市史)』 제1권을 출간하기 시작하면서 1991년 제4권까지 방대한 분량의 부산 향토사 완간으로 이루어졌다.
『부산시사』는 통사를 포함하여 총 10개 분야 39항목에 걸쳐 전근대 역사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산에 관한 전 분야를 총정리 하였다. 『부산시사』의 1권은 자연환경을 포함한 통사이며, 제2권부터 제4권까지는 각 분야별 분류사로 편찬되었다. 『부산시사』 편찬 완료와 함께 중단되었던 향토사 연구지인 『항도 부산』[1991~]도 속간되었고, 부산 관계의 중요한 문헌과 금석문 등을 조사, 발굴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시사 자료집과 일련의 부산 사료 총서가 계속 간행되었다.
그 외 『우리 고장 부산』[1992], 『부산 지명 총람』[전 8권], 『부산을 빛낸 인물』, 『부산의 문화재』, 『매장 문화재 분포 자료』, 『부산 10가지 자랑』, 『부산의 자연 마을』, 『부산 금석문』, 『부산의 당제』, 『광복 60년사』 등이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를 중심으로 간행되었다.
다음으로 부산광역시 산하 각 구와 군청 단위의 향토지는 199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편찬되었다. 예를 들면 동래구청에서 1995년 증보하여 펴낸 『동래구지(東來區誌)』를 들 수 있다. 『동래구지』는 『부산시사』와 마찬가지로 역사와 지리, 사회, 경제,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내용이 수록되었다. 1993년에는 『동래 향토지(東萊鄕土誌)』가 간행되었다. 구청 단위의 향토지는 대체로 해당 구에 거주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출간위원회를 구성하여 펴내고 있다.
동래구와 비슷한 방식으로 간행된 부산광역시 산하 각 구청의 관찬 향토지를 대략 정리하자면, ˂표 1˃과 같이 『중구지(中區誌)』[중구, 1991년 편찬], 『서구 향토지(西區鄕土誌)』·『서구 민속지(西區民俗誌)』[서구, 1991·1994], 『동구 50년사(東區 五十年史)』[동구, 2006], 『영도 향토지(影島鄕土誌)』[영도구, 2003], 『부산진 향토지(釜山鎭鄕土誌)』[부산진구, 1989], 『동래의 역사(東萊의 歷史)』[동래구, 1990], 『남구 향토지(南區鄕土誌)』·『남구지(南區誌)』[남구, 1994·1995], 『부산 북구 향토지(釜山北區鄕土誌)』[북구, 1998], 『해운대구지(海雲臺區誌)』[해운대구, 1994], 『금정구지(金井區誌)』[금정구, 1991], 『강서구지(江西區誌)』[강서구, 1993], 『연제구지(蓮堤區誌)』[연제구, 2005], 『사상구지(砂上區誌)』[사상구, 2005] 『기장군지(機張郡誌)』[상·하][기장군, 2001] 등이다.
2. 민간 향토지
조선 시대 민간인에 의하여 편찬된 향토지는 현재 보이지 않는다. 민간인에 의한 부산의 향토지는 일제 강점기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37년 동래 향교에서 문기주(文錡周)가 펴낸 4권의 『동래군지(東萊郡誌)』, 같은 해 정원호(鄭源鎬)가 편하여 낸 『교남지(嶠南誌)』 속의 『동래군[지]』와 『부산부[지]』 및 『기장군[지]』 등이 그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 중심의 향토지가 다수 발행되었는데, 부산상업회의소에서 편찬한 『부산 요람(釜山要覽)』[1912], 부산갑인회의 『일선 통교사(日鮮通交史)』[1916], 조선시보사장 천도희휘(川島喜彙)가 발행한 『부산대관(釜山大觀)』[1926], 『신부산대관(新釜山大觀)』[1935]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당시 부산부에 재주하였던 일본인들의 관점으로 부산부의 역사와 현황을 정리한 향토지이다.
해방 이후의 민간 향토지는 ˂표 2˃에서처럼 해당 구의 거주자들로 구성된 다양한 형태의 발간위원회 혹은 추진위원회 등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198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발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동구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펴낸 『부산 동구 향토지(釜山東區鄕土誌)』[1987], 남구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펴낸 『남구 향토지』[1985], 연제구문화원에서 펴낸 『연제구의 유래(蓮堤區의 由來)』[1999] 등의 향토지이다. 1995년 부산광역시로 편입된 기장군의 경우 『정관지(鼎冠誌)』[2000], 『장안읍지(長安邑誌)』[2008], 『일광면지(日光面誌)』[2006] 등과 같이 읍면 단위의 향토지가 민간단체에 의해 간행되었다.
한편 개인이 주체가 되어 펴낸 향토지로서는 최해군(崔海君)의 『부산 7000년, 그 영욕의 발자취』[1996], 『부산의 맥』[1990], 『부산사 탐구』[2000], 김경준의 『부산 지명 연혁고』[1979], 정경주의 『해운대』[1998] 등과 같은 간행물을 예로 들 수 있다. 연구소 단위의 경우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의 『부산의 역사와 문화』[1988], 부경역사연구소의 『시민을 위한 부산의 역사』[1999] 등과 같은 간행물이 있다. 그 외 경성대학교 향토문화연구소,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신라대학교 부산학센터 등에서 부산 지역 관련 각종 자료들을 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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