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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유엔기념공원 6가지 비밀

2016년 10월 249호에 부산남구신문에 보도된 유엔기념공원의 6가지 비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71주년 유엔의 날 특집 유엔기념공원 6가지 비밀]

Discovery 남구의 재발견 가슴 절절한 2300개 스토리 잠든 `이야기 창고'


1. 숫자 11과 유엔기념공원

 

11월 11일 11시 `턴투워드부산' 개최


유엔기념공원에 있어 숫자 `11'은 많은 것을 내포한다. 우선 11개국 참전용사가 잠들어 있다. 유엔군 위령탑 남쪽에 위치한 `무명용사의 길'에 있는 수로에는 모두 11개의 물 계단과 11개의 분수대가 있다. 수로 주변으로 소나무 11그루가 심어져 있다. 또 매년 전 세계가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가 11월 11일 11시에 열린다.


2. 공원에 미군 유해가 드문 까닭


3만6492명 유해 전원 미 본토 안장

 

 한국전 유엔군 사망자는 4만896명으로 집계된다. 그 중 미군은 3만6492명이 숨졌다. 90%에 달하는 수치다. 유엔기념공원은 사실상 미군 전사자를 매장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공원에 안장된 미군 유해는 고작 36명에 불과하다. 이마저 36명은 모두 휴전협정 이후 유엔군사령부 등에서 근무하다 숨졌고 본인이나 유족의 희망으로 공원에 안치됐다. 미국은 전시 때 숨진 전사자의 유해는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선박을 통해 자국으로 옮겨갔다. 미국의 장례풍습과 오랜 보훈정책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유엔기념공원에는 엄밀히 말해 `전쟁 중에 적과 싸우다 숨진' 사전적 의미의 전사자는 없는 셈이다.

 

 

3. 일본도 6·25때 한국 도와


기뢰 제거위해 소해부대 극비 투입

 



 국방부 직속 최고 군사(軍史) 연구기관인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지난 6월말 대단히 흥미로운 보고서 하나를 발간했다. `일제 조선주둔군과 6·25전쟁 일본 소해대'라는 제목의 이 책자는 한국전쟁 때 맥아더의 지시로 일본의 최정예 소해부대가 파병돼 한반도 해상에서 비밀리 기뢰 제거 작전을 펼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북한은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소련제 기뢰를 주요 연안에 설치해 소해(掃海·바다의 기뢰 제거) 작업은 매우 중요한 군사작전이었다.
 일본 극비문서를 수집, 번역해 발간했다는 이 보고서에는 `25척의 일본 특별소해대가 1950년 10월 중순부터 12월 초순까지 원산, 인천, 해주, 진남포 등에서 비밀리 기뢰 제거 작업을 펼쳐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도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본 소해부대는 2개월 동안 27개의 기뢰를 제거해 300㎞가 넘는 수로를 개통했다. 소해 작업 도중 소해선 1척이 기뢰에 접촉, 침몰해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일본의 `불편한 참전'은 당시 미묘했던 국제정세로 극비리에 이루어졌고 줄곧 기밀에 부쳐졌다가 외교문서가 해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6·25때 기뢰 제거에 투입된 일본 야마우에 부대원들.

 

 

4. 칠레군인이 프랑스묘역 참배 이유는


`이중국적' 전사자, 한국·칠레 가교

 



 지난 9월 9월 하얀 정복을 차려 입은 칠레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유엔기념공원 프랑스 묘역에서 엄숙한 추모식을 가졌다. 칠레 생도들의 이런 단체 참배는 십여 년 째 이어지고 있다. 칠레 군인들이 프랑스묘역에 참배하는 이유는 뭘까. 더구나 칠레는 참전국도 아니다.
 칠레 해군생도들이 참배한 이는 프랑스 군인 아벨 중사이다. 그는 칠레-프랑스 이중국적 소유자다. 아벨은 1928년 3월 28일 칠레 중부의 무역항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19세기말 칠레에 철도를 놓기 위해 건너간 프랑스 출신의 엔지니어였다. 그는 1950년 외조부의 나라 프랑스로 건너가 입대했다. 포병부대에 배속된 후 다시 낙하산부대로 옮겨 알제리, 튀니지 등에서 근무하다 1952년 한국전에 참전했다. 1952년 9월 말 부산항에 도착, 한달 채 되지 않은 10월 8일 강원도 철원의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화살머리고지전투는 당시 프랑스 대대와 중공군간 치열한 백병전으로 악명 높은 전투다. 아벨 중사는 상관을 돕기 위해 이동하다 매복한 중공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와 칠레 두 개의 조국을 가진 덕택에 칠레 관광객들과 군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유엔기념공원을 심심찮게 찾고 있다. 2012년에는 그의 기일에 맞춰 칠레에 사는 형제 두 명이 칠레 대사와 함께 참배하기도 했다.

 

 

5. 유엔기념공원과 유엔은 별개 기관


유엔 1974년 이후 관리 손 떼

 



 주의 깊게 보면 유엔 마크(위)와 유엔기념공원의 마크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식 유엔 마크는 올리브 가지가 양쪽으로 세계 지도를 감싸고 있다. 반면 유엔기념공원 마크에는 세계지도 대신 군인의 철모가 그려져 있다. 닮긴 했어도 전혀 다른 마크다.
 유엔기념공원은 당연히 유엔이 관리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유엔기념공원과 유엔은 사실상 별개의 조직이다. 물론 공원 13만3701㎡ 부지는 유엔 소유다. 1955년 11월 우리 국회가 이 토지를 유엔에 영구 기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엔기념공원 관리를 위해 유엔이 만든 국제기구 언커크(UNCURK)가 1974년 해체되면서 공원이 모든 책임과 권한은 안장자 11개국으로 구성된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위원회(CUNMCK)로 위임돼 유엔의 의무는 사실상 끝이 났다. 관리위원회는 유엔기념공원에 안장자가 있는 한국, 미국, 영국 등 11개 참전국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공원 운영에 필요한 분담금부터 공원의 관리, 예산, 인력 등을 관할하고 있다.

 

 

6. 유엔기념공원은 터키의 성지


외국 참배객 중 가장 많아

 



 유엔기념공원의 한 해 방문객은 30만 명 안팎, 이 중 외국인 참배객은 2∼3만 명 정도다. 외국인 참배객 가운데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유엔기념공원 측은 터키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외국어 팸플릿 가운데 터키어 팸플릿의 소진이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터키 관광객들에게 유엔기념공원은 반드시 와야 할 성지로 여겨지는 분위기"라는 게 유엔기념공원 측의 설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는 한국전에서 1005명이 전사했고 그 중 절반에 해당되는 462명이 이곳 공원에 묻혔다. 영국 다음으로 안장자가 많다.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공원 측은 터키 참배객들을 배려해 터키어 팸플릿과 홈페이지를 따로 제작·운영하고 있다.

 

기사 작성 도움: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젊은 영혼들과 함께 한 천일간의 백서(이석조 지음), 통계로 본 6·25, 일제 조선주둔군과 6·25전쟁 일본 소해대(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발간)'

 

 

□유엔기념공원 연혁

1951.1.18. 유엔군 전사자 매장 위해 유엔군사령부 조직
1955.11.7. 한국정부 토지 유엔에 영구 기증 결의
1959.11.6. 유엔기념묘지 설치·관리 한국정부와 유엔 협정 체결(일반에 공개 시작)
1974. 2.16. 11개국 관리위원회에 유엔묘지 관리권 위임
2001. 3.30. 유엔기념공원으로 명칭 개칭
2006.10.24. 부산 APEC 계기 전사자 추모명비 건립 제막(시설 대대적 개보수)
2007.10.24. 근대문화재(등록문화재 제359호) 등록
2007.11.11. 제1회 턴투워드부산 행사

 

출처 : 부산남구신문/https://www.bsnamgu.go.kr/board/view.namgu?boardId=BBS_0000088&menuCd=DOM_000000114024000000&startPage=7&dataSid=70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