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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이야기

낙동강 제방

낙동강 제방과 강서개척사

강서쪽 제방 축조 현장 모습
낙동강제방 과거낙동강제방 현재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1천 3백리 긴 여로를 마감하며 남해바다를 앞에 두고 마지막 거센 물굽이를 치는 곳에 비옥한 '강서 삼각주'가 자리하고 있다. 수로와 해로가 맞닿는 지점인 이곳에 강서 삼각주가 형성된 시기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단지,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오랜 세월동안 원만하게 흘러 내리면서 상류의 기름진 흙을 운반,하구에 이르러 퇴적작용이 일어나면서 신호도.진우도.명지도.대저도 등 크고 작은 삼각주가 생겨난 것이라고 학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강서 삼각주에 최초로 농경생활이 시작된 시기는 뚜렷한 자료가 없어 알 길이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비로소 농경에 대한 기록들이 하나씩 나타났는데,이 일대는 염전(소금),해태(김),어업,작물(벼,채소)등의 농어업과 갈대를 이용한 갈꽃빗자루.어구.자릿대 등의 수공업이 번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전벽해란 옛말처럼 강서 삼각주를 개간,비옥한 평야로 탈바꿈시킨 이러한 강서개척사는 삼각주의 중심부인 대저도(대저1.2동과 강동동)에서 최초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덕리 현장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낮은 제방이 남해고속도로 북쪽을 돌아 강동동과 경계를 이루는 평강지역까지 이어져 있어 당시 대저도의 농지와 농민을 보호하는 전답지대로 변모하게 된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또 일제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감각주 개척사를 토대로 삼아 1908년 12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고,1916년 부터 1926년까지 이르는 시기에 낙동강대치수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게다가 1931년에는 김해 대동면 월촌리로부터 명지동 진목마을간 낙동강 일천식 개수공사를 착공,1934년 4월 녹산.대저수문을 비롯한 낙동장교(옛 구포다리)등이 잇따라 완공됨을서 강서 삼각주가 낙동강 본류와 격리된 '강서평야'로서의 확고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낙동강 일천식 개수공사의 산증인인 김덕조씨(대저1동.86세)는 "중장비도 없는 그 당시로서는 김해일원 지방민들의 인력에 의존.축조용 흙은 강병의 짜투리 땅에서 수거해 철로위 트롤에 담아 운반했고,석축용 돌은 인근의 엄궁.금곡 등에서 무동력 바지선으로 실어 날랐다."며 옛 공사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 줬다. 김씨는 또 "단순 노무자일 경우 하루노임이 19전,선로 기술자는 21전을 받았고 매 5일마다 노임을 계산,그것도 하루에 1~3전씩 세금을 뗐다"고 덧붙였다.

 

강서개척사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낙동강제방 70년대까지만 해도 낙동강제방위 비포장도로로 진해~부산(조방앞)을 덜덜거리며 달리던 완행버스의 추억은 찾을 길 없고 지금은 공항로 및 국도2호선 확장공사를 위한 대형 중장비들의 움직임만이 부산할 뿐 옛 강변의 의좋은 모듬살이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http://www.bsgangseo.go.kr/06about/02_03_15.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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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와의 싸움

오늘날의 강서 지역에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건 300~400년 전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해마다 홍수와의 전쟁이었다. 그나마 삼각주로 형성된 비옥한 들판이 이들을 여기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대저 1동에 동연정, 서연정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어요. 잦은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면서 이 곳에 큰 못을 이뤄 못 주위에 정자를 지어 동연정마을, 서연정마을이라고 했죠. 그러나 계속되는 홍수에 지금은 못도, 정자도 자취를 찾을 길이 없어요." 박 명예원장은 "낙동강 제방을 쌓기 전만 해도 잦은 홍수 때문에 수시로 마을 지형이 바뀔 정도"라고 전했다.

삼랑진, 원동을 거친 낙동강은 지금의 대저수문 있는 곳에서 동낙동강과 서낙동강으로 갈린다. 서낙동강은 평강천 지류를 만들어 이 세강은 예로부터 삼차강(三叉江)으로 불렸다.

"1930년대 동낙동강에 일천식(一川式·한 일 자처럼 곧은 모양) 제방을 쌓고 서낙동강 위로는 대저수문, 아래로는 녹산수문을 세우고서야 지긋지긋한 홍수에서 벗어났죠." 박 명예원장은 수문과 제방공사 전엔 지금의 서낙동강이 낙동강 본류였다고 했다. 대저수문으로 인해 서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이 준 데다 곧은 제방이 들어선 현재의 낙동강(동낙동강)이 본류가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