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의 이모저모
1. 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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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지못 ] |
낙동강의 발원지(1차수)는 1,634곳 |
1978년 김우관(金又寬) 교수는 낙동강 유역도(축척 1:250,000 지형도) 상에서 낙동강의 수계차수(水系次數:Stream Order)를 조사한 결과, 1차수 - 1,634개, 2차수 - 397개, 3차수 - 85개, 4차수 - 21개, 5차수 - 5개, 6차수 - 1개로 주류는 6차수다. | |
1차수(발원산) / m |
기점 |
지도상 길이 / ㎝
|
실제길이 / ㎞ |
순위 |
황지못 |
합수점 |
14 |
3.50 |
5 |
태백산 (1,546.5) |
합수점 |
41 |
10.25 |
4 |
함백산 (1,572.9) |
합수점 |
48 |
12.00 |
3 |
금대산 (1,418.1) |
합수점 |
50 |
12.50 |
2 |
천의봉 (1,442.3) |
합수점 |
52 |
13.00 |
1 |
[ 표1 ] 낙동강의 최상류층의 길이 측정결과
물줄기가 시작된 1,634곳의 발원지 중 어느 곳이 최장 발원지일까?
이 의문의 정답을 찾아내는 열쇠는 강의 길이를 측정하여 길고 짧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선 문제를 좀더 쉽게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함백산, 태백산, 황지못, 기타 금대산, 천의봉 등의 산에서 흐르는 물이 합수되는 지점을 기점으로 축척 1:25,000 지형도 상에서 곡선자로 그 길이를 비교해 보면 위의 표와 같다.
위와 같이 낙동강 최상류 일대의 1차수를 계측한 결과 천의봉이 합수점에서 13㎞로 최장 발원지(1차수)였다.
이 산은 지도상 1,442.3m로 표시되어 있는 무명봉으로 정상의 삼각점 표석(1977. 7. 건설부 복구)을 국립지리원에 확인 결과, 천의봉(天衣峰)이라고 하며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간)에도 ‘추천:천의봉 밑에 있는 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길이는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인 하구에서 최장 1차수 간의 거리다.
낙동강의 법정하천(건설부 지정)상 하구(河口)는 ‘경남 김해군 녹산면 녹산배수문 우안으로부터 국도노선을 따라 부산직할시 서구 하단동을 연결한 선’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필자가 국립지리원 발행 축척 1:25,000 및 1:50,000 지형도상에서 곡선자로 도상계측(1987년)한 결과는 <표 1>과 같다.
낙동강 하구에서 최장 1차수인 천의봉 동쪽 계곡까지의 길이는 지도상 길이 2.054㎝로 실제 길이는 513.5㎞였다. 이때 활용한 지형도(1:25,000)명은 다대, 김해, 동래, 양산, 물금, 밀양, 봉림, 진영, 오방, 영산, 남지, 대합, 쌍책, 현풍, 고령, 파산, 왜관, 인동, 해평, 선산, 낙동, 다인, 상주, 용궁, 풍천, 매곡, 안동, 남선, 예안, 인계, 원순, 재산, 춘양, 당동, 현동, 철암, 도계, 함백 등 38개 지형도다.
낙동강의 525.15㎞는 1918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김해 명지와 동래 사하(하구)에서 강원 삼척 상장면까지의 길이를 계측, 발표한 자료로 그 동안 유로의 변동, 하구, 최장 1차수의 변동 등으로 길이가 변화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지형도에서 낙동강의 최장 1차수(발원지)지역을 현지답사한 결과, 너덜지역에서 한 샘이 용출하는 것을 발견(1982. 10. 1.~3.)한 필자는 4차 답사 시(1983. 6. 4.~6.) 이 샘을 ‘너덜샘’이라 명명하고 ‘낙동강의 발원지 - 너덜샘’이란 표지목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태백시 문화원에서는 황지못을 낙동강 발원지로 주장, 기념시설물을 설치하여 관심있는 분들에게 혼동을 야기시킬 수도 있으나 이곳은 최장 1차수(발원지)는 아니다.
단지, 문헌상 발원지이며 1차수일 뿐이다.
대구대 오세창 교수도 제6차 낙동강 대탐사 시(1996. 7. 30.~8. 2.) 이 샘에 ‘낙동강의 발원지 - 너덜샘’이란 철제 표시판을 세운 바 있음을 첨기한다.
2. 자연과 생횔
낙동강 상류 지역은 산지가 많고(과수, 축산업 발달), 평야가 적다. (강 유역의 좁은 농토에서 논농사, 밭농사, 누에치기 등이 발달) 산지로 둘러 쌓인 평평한 분지에 도시들이 들어서 있다. 산지로 둘러 싸인 분지 도시들이 발달하였다. 대구(섬유공업 발달), 구미(전자, 섬유 공업 발달) 여름은 내륙분지로 고온 다습하고, 겨울에는 저온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평야 지대는 논농사, 사과를 재배한다. 따뜻한 날씨와 넓은 평야 지대(김해평야)이다. 기름진 땅에서 논농사와 채소 농사가 발달했으며, 대단위의 비닐하우스에 채소와 꽃의 재배가 이루어 지고 있다.
안동댐 을 건설하여 농업, 생활 용수로 사용함.
안동에는 하회마을 도산서원 민속촌등 많은 전통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충절의 고장 안동은 유교문화의 본향,경북 북부내륙 중앙에 위치한 교육,문화,교통의 중심 도시로서 수려한 자연 경관과 문화유적이 풍부한 고장이다.
동쪽으로 영양군,청송군, 서쪽으로 예천군, 남쪽으로 의성군, 북쪽으로 영주시,봉화군과 접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명현(明賢)과 석학(碩學)들이 수없이 배출되고 많은 유물.유적이 남아있는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다.고려시대에 안동 대도호부라고 칭해진 것이 오늘날의 안동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으며, 1896.8.4 안동군으로, 1963.1.1 안동읍에서 안동시로 승격, 1995.1.1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 안동시로 발족하였다.
행정구역은 1읍 13면 18동 511통리 2,763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면적은 1,517.74평방km(임야72%, 경지16%, 댐호수5%, 기타7%)이며, 인구는 약20만명에 달하고 있다.
또한 교육도시 답게 총85개 학교(초등45,중18,고13,전문대3,대학교1, 대학원3,특수학교2)가 있다.
주요 특산품으로는 안동포,산약,사과,고추,안동소주,하회탈 등이 있고, 시화(市花)는 매화, 시조(市鳥)는 까치 그리고 시목(市木)은 은행나무이다.
안동시 동북방 4Km 지점의 낙동강본류를 가로막은 사력댐, 이 댐은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줄이고 농 공업 용수및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햐여 1971년 착공 1976년 완성 되었다.
퇴계 이황을 추모하여 1574년 안동군 도산면에 창건한 서원으로 4천여권의 장서와 유품이 남아 있다.
오리나무로 만들어진 목제 가면으로 한번사용하고 태워버리는 다른 탈놀이의 탈과는 달리 오래도록 보관하며, 별신굿을 할 때 마다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탈이다.
처음에는 얀반,선비,중,초랭이,각시,할미,부네,이매,백정,총각,별채,떡다리,주지 한쌍 등 14개의 탈이 있었으나, 언제 부터인지 별채,총각,떡다리 탈은 유실되고 현재는 9개의 탈과 주지 한쌍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1964년 부터 국보 제121호로 지정 국립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
하회탈의 특징은 사실적으로 조형된 조형미가 뛰어나며, 탈의 기능도 다른 탈에 비해 뛰어나다.
특히 탈을 쓴 광대가 얼굴을 숙이면 어둡고 서러운 그리고 화가난 표정이 되며 뒤로 젖히면 유쾌하고 즐겁게 웃는 표정이 되며, 보는 사람의 방향에 따라 인간의 감정 표현을 모두 나타낼 수 는데 양반,백정,선비,중 탈은 턱을 분리시켜 인체의 턱 구조와 같은 기능을 갖게하여 대화를 할 때 실제의 입모양을 실감있게 느낄 수 있게 만든것은 다른 탈에서는 볼수 없으며, 그밖에 각시,부네,할미탈의 콧구멍이 없거나 입이 작게 뚫리거나 뚫리지 않은 것에 따라 사회적 신분과 시대의 사회성을 엿볼 수 있는것도 하회탈의 특징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은 류성룡의 고향으로 하회탈 등의 중요 민속 자료와 전통 등이 잘 보관된 곳이다.
퇴계 이황을 추모하여 1574년 안동군 도산면에 창건한 서원으로 4천여 권의 장서와 유품이 남아 있다.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소수서원, 숭양서원과 더불어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조선 유학(儒學)의 대표적 성현인 퇴계 이황(退溪 李愰;1501~1570)선생을 모시는 도산서원(陶山書院;사적 제170호)은 그를 잇는 영남학파의 중심지이자 한국 유교의 대표적 명소중 하나이다.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 4년만인 1574년(선조7년) 제자와 유림들이 그의 학덕을 숭모하여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가 현판을 내려 줌으로서
왕실과 유림의 존중을 받는 곳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서원은 크게 12채의 건물로 구분되는데 앞쪽의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퇴계가 4년에 걸쳐서 지은 집들로서 서당은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이고, 농운정사는 학생들이 숙식을 하던 기숙사이다. 농운정사의 건물 전체 형태는 공부를 권장하는 뜻에서 "工"자로 지었다고 한다. 서원 중앙에 대강당이라 할 수 있는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이 있는데 여기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선조가 하사한 조선조 명필 한석봉(韓石峰)의 친필 글씨이다.
도산서원은 안동시내에서 봉화-태백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따라 약 20km되는 지점에 위치하며, 인근에는 청량산, 온혜온천,퇴계종택 그리고 민족시인 육사 이활(陸史 李活)의 고향인 원천리가 있으며, 생가 터에는 그의 대표작인 '청포도'의 시비(詩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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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류유역
낙동강 유역의 분지중에서는 대구 분지가 가장 크고 그 외에 안동 상주 영동 진주 분지 등 크고 작은 분지에 도시가 발달하였다.
서울,부산에 이어 국내 3위의 대도시, 영남지역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위치, 분지도시의 독특한 기후를 가지고 있음.섬유,금속,기계 공업이 발달 하였음. 주변의 사과를 비롯한 각종농산물의 집산되어 상풍의 생산지와 중개지로 발달해 왔음. 철도교통(경부,중앙,대구선) 도로교통(경부,구마, 88올림픽 고속도로)이 발달하였음.
전자공업을 육성하고 수출을 증진할 목적으로 1969년 부터 만들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내륙공업단지.제1단지(전자,섬유)제2단지(반도체,컴퓨터)를 중점 육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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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유역
낙동강 하구둑 의 건설로 각종 자연 재해를 막고 부산과 김해 간의 교통이 편리해 졌다.
옛 가야의 중심지인 김해에는 많은 가야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강물이 호수나 바다로 들어가는 하구에 운반하여 온 흙이 쌓여 만들어진 충적평야, 김해평야는 남북 18Km에 이르는 큰 충적평야이다.
김해평야의 대부분은 벼농사에 이용되고 있으나, 북부에서는 과익, 중남부에서는 채소 농사가 발달되었다. 비닐하우스는 1954년부터 채소, 꽃, 과일의 재배에 사용되었으며, 김해평야의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원예농업(채소)은 생산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밀물 때에는 바닷물이 강을 따라 육지로 올라오는 것을 막고 가뭄 때에는 주위의 농토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낙동강 하류에 건설되었다.
낙동강 하구부 서안에 위치한 김해는 가야국의 중심지, 부산에 인접해 있으면서 부산과 서부 경남지역을 잇는 교통중심지, 비가 많아 일찍 부터 농업이 발달하였음.
근교 농업과 낙농업이 성하며, 김해 국제공항이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출처: 사단법인 낙동강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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