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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산복도로 ‘이바구 길’ 그곳엔 ‘부산 이야기’ 가득

 

산복도로 ‘이바구 길’ 그곳엔 ‘부산 이야기’ 가득

부산역 맞은편 초량 산복도로 '이바구 길'·'이바구 공작소' 활짝

“땀 절은 아버지의 작업복에서 툭 떨어지는 담배꽁초, 시장 한 모퉁이에서 생선을 팔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함지박이 생각날 때, 산복도로 골목을 걸어보세요. 어머니의 냄새가, 아버지의 땀 절은 작업복이 골목골목마다 베어 있을 겁니다.”

부산 산복도로가 소위 '뜨고'있습니다. 산 중턱을 휘감아 도는 도로를 중심으로  낡은 집들이 좁은 골목을 형성하며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산복도로. 부산의 대표적 낙후지역으로 꼽히던 곳이 새삼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겁니다.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 마을.

옛 백제병원.

부산은 한때 산복도로를 내심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부산을 이야기할 때, 적어도 산복도로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산복도로 낡은 집들을 싹 밀어버리고 아파트 짓고 큰 길을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요.

 

그랬던 산복도로가 사람들이 찾아들고,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며, 골목을 거닐며 옛날이야기를 꽃피우는 명소로 변하고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사진작가들의 주요 활동무대이기도 하구요.

 

 

6·25 피란민 애환 스민 골목…따뜻한 이야기 넘치는 '힐링' 공간

그들은 산복도로에서 무엇을 찾는 것일까요. 아마 전쟁과 피난으로 얼룩진 아픔의 역사, 모진 고난 속에서 억척스러웠던 부모님의 삶, 그럼에도 어깨를 기대고 살아가던 이웃들의 따뜻한 정…그런 '잊혀진 것들' 아닐까요. 부산 산복도로를 찾는 이들은 골목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저마다 아련한 '어린 시절'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산복도로는 눈이 휭휭 돌아가는 가속의 시대, 차가운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는 '힐링'의 장소가 아닐는지요.

 

 

부산역 맞은편 초량 산복도로 '이바구 길'·'이바구 공작소' 활짝

산복도로를 걷습니다.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 같이 이미 유명해진 산복도로 마을들도 있지만, 부산역과 가까운 동구 초량의 산복도로로 길을 잡습니다. 부산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동구 초량은 일제시대엔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1950년대엔 원조물자가 들어오는 곳으로 부산의 중심이었습니다. 전쟁통에 피란민들과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일을 찾아 모여드는 것은 당연했을 터. 갈 곳도, 잘 곳도 없던 그들이 하나 둘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곳이 바로 초량 산복도로입니다.

 

1950년대 동구 판자촌.

"6·25사변 터지면서 피난민들이 밀려든 거라.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전부 부산에 다 모였지. 국제시장 저기…돗떼기시장이라 하고. 그 때 전쟁통에 어릴 때 놀던 친구들이 다 죽고 없어."

 

초량에서 태어나 자라고 6·25 참전 후 다시 초량으로 돌아와 지키고 계신 유용식 어르신은 '이제는 기억하기도 싫은 기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부산 첫 교회·병원·물류창고… 김민부·장기려·유치환 기념관

전쟁과 피난, 힘든 노동과 모진 세파를 이겨낸 삶의 이야기들이 스며있는 골목길을 따라 가볼까요.

 

초량 산복도로에서 처음 만나는 옛 흔적은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인 남선창고 터입니다. 부산역 건너편에 있던 남선창고는 부산항으로 들어온 물건들이 경부선을 타고 전국으로 흘러간 거점이었지요. 함경도에서 온 명태를 보관했다고 해서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지금은 철거돼 담장만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네요.

남선창고 터 근처에는 옛 백제병원 건물이 있습니다. 1922년 설립한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었던 이 곳은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군요. 한때 중화민국(중국) 영사관과 치안대 사무소 등으로 사용했던 시대적 흐름이 배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남선창고 터 철거 전과 현재(작은 사진) 모습.

조금 더 오르면 초량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는데요. 나훈아·이윤택·이경규·박칼린을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죠.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초량 산복도로의 옛 풍경과 변화상을 시와 함께 담은 사진들이 죽 붙어 있네요. '담장 갤러리'라고 이름 붙인 이곳의 사진을 하나하나 지나다 보면 흑백사진처럼 묵묵했던 초량 산복도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길 맞은편 초량교회는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 부산 임시수도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예배를 봤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6·25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168계단이 나오는데요. 가파르게 계단을 오르면, '김민부 전망대'가 나옵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부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작사한 고 김민부(1941~1972) 시인을 기려 최근 만든 곳인데요. 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나 언론인으로도 활동한 그의 출생일에 맞춰 오는 14일 개관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김민부 전망대.

골목길을 계속 오르면 '망양로'라 부르는 산복도로가 가로로 죽 뻗어 있습니다. 그 곳에 이르면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고 장기려(1911~1995) 박사를 기리는 '더 나눔 기념관'이 나오는데요.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동구에 세우고 가난한 환자를 진료한 그의 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도 다음달 1일 정식 개관할 예정이라네요.

 

망양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청마 유치환(1908~1967)을 기리는 '유치환 우체통'이 나옵니다. 청마는 동구에 있는 경남여고 교장을 두 번이나 지내고 동구에서 생을 마감했는데요. 우체통은 그가 즐겨 보낸 편지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상징. 청마의 예술과 문학정신을 기리고, 산복도로 풍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안내센터도 한창 공사 중이네요.

 

바로 옆에는 산복도로를 찾는 사람들이 머물며 쉴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까꼬막(산비탈의 경상도 사투리)'과 마을카페도 다음달 1일 문을 엽니다.

 

초량 산복도로 ‘이바구 공작소’.

부산시와 동구는 남선창고 터에서 까꼬막까지 이르는 1.5km 구간을 초량 산복도로 '이바구 길'로 조성, 지난 6일 개통식을 가졌습니다. '이바구'는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린데요. '이바구 길'에서는 초량 산복도로의 삶, 사람, 흔적 3가지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바구 길' 끝머리에는 '이바구 공작소'라는 시설도 새로 지어 같은 날 개관했습니다. 이곳은 연면적 265㎡, 지상 2층 규모로, '이바구 길'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영상, 사진, 기록 등으로 초량 산복도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바구 길'의 역사관 격이죠. 사진작가 김홍희 작가의 '산복도로 골목' 사진전도 볼 수 있고, 6·25전쟁 당시 흥남대탈출의 생생한 모습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일신여학교 출신 소설가 김말봉, 일제시대 부산경찰서 폭파사건을 주도한 오택, 초량 태평정미소에서 시작해 눌원문화재단을 설립한 신덕균,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의혈 독립운동가 최천택…. 동구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활동한 수많은 인물들의 생애도 엿볼 수 있네요. '이바구 공작소'는 전문 상담사가 상주하며 더 많은 산복도로 이야기를 채집해 방문객들에게 전할 계획이랍니다.

 

초량 '이바구 길'과 '이바구 공작소'는 낙후된 산복도로 일대를 삶과 문화의 향기가 흐르는 곳으로 되살리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하나로 탄생했는데요. 부산시가 추진하는 이 사업이 산복도로를 찾는 방문객들뿐만 아니라 산복도로에서 여전히 삶을 꾸려가고 있는 주민들을 우선 위하는 방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초량 산복도로 이바구 길 안내도
<자료출처: 부산광역시 인터넷신문 'BUVI News(부비뉴스)' http://news.busan.go.kr>
구동우 | 다이내믹 부산 제 1568 호 | 기사 입력 2013년 03월 08일 (금)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