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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조내기 고구마

조내기 고구마

오늘날의 청학동 바닷가에 '조내기'라 불린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서 난 고구마가 맛이 있어 조내기 고구마란 이름으로 유명했지만 그 조내기 고구마는 조내기뿐 아니라 동삼동 뒷산의 황토밭이나 오늘날 태종로로 가는 산등성이인 일산배기에서도 많이 났는데 이 모두가 조내기 고구마였다. 이 고구마는 붉은 색깔을 띠어 비교적 작으면서 밤맛처럼 맛이 좋았다. 오늘날에는 그 조내기 고구마가 나던 곳이 모두 주택지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조내기 고구마가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 재배된 고구마였다.


이에 대해서는 동래부사 조엄과의 연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엄은 1757년 동래부사에 재임했고 1758년에는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1763년에는 통신사가 되어 일본을 다녀왔다. 그가 통신사가 되어 일본으로 가는 길에 대마도에 머물 때 대마도에서 재배되고 있는 고구마를 보고 우리 나라에서도 이것을 재배하면 식량으로 도움을 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돌아올 때 대마도에서 다시 고구마재배법을 소상히 익힌 뒤 종묘(種苗)를 가지고 와서 옛날 부사로 있었던 동래의 영도(당시의 영도는 동래부 소속)와 경상도관찰사로 있었던 때의 연고지인 거제도에 재배케 했다. 그렇게 섬에 재배케 한 것은 두 섬이 모두 대마도와 같은 섬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래에 고구마가 재배되고 조엄통신사가 종묘를 주게 된 1764년도의 동래부사는 강필리였다. 강필리는 선대(조엄은 강필리보다 6대 앞의 동래부사였다) 부사의 말씀이라 성심 성의를 다해 고구마재배에 힘썼다. 그러한 성심성의로 재배가 까다로운 고구마재배가 영도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때의 강필리 부사는 고구마에 싹을 틔워 줄기가 뻗게 한 뒤, 그 줄기를 끊어 땅에 심는 고구마 재배법을 쓴『감저보』라는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