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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백양산과 운수산

운수산

-백양산 이름의 뿌리는 운수산
-주지산·삼각산·선암산 등 다양하게 불려

북구와 사상구, 그리고 부산진구에 걸쳐 한줄기로 길게 벋어내린 산이 바로 백양산(白楊山)이다. 그런데 백양산으로 통칭되고 있는 산줄기에는 지역마다 내력이 있는 산 이름들이 건재하고 있다. 먼저 백양산은 초읍 성지곡 쪽의 옛 사찰 백양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와 있으며 거미가 웅크린 모양의 주지산(蛛蜘山) 614m 봉우리가 구포의 주산으로 솟아 있고, 거북의 상징인 범방산도 있다. 그리고 모라의 운수산(雲水山), 사상의 주산 삼각산(三角山), 당감동 쪽의 선암산(仙岩山)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면 이들 산 이름 중에 백양산의 원조는 어디일까.
먼저 운수산을 살펴보자. 모라동의 절골 뒷산이 바로 운수산이다. 운수산이란 이름은 이곳에 운수사라는 사찰이 있으므로 붙여진 것이다. 조선시대 기록인 좌수영지(左水營誌) 병고조(兵庫條)에 보면 운수산이 병고로 나와 있다. 수군(水軍)의 배를 만드는 데 사용할 재목을 얻기 위하여 민간인이 나무를 베어 쓰지 못하게 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었던 산이다. 현재의 백양산 줄기에서 가장 높은 642m 봉우리는 바로 조선시대 운수산으로 불렀던 산인 것이니 백양산의 원조는 운수산인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지도에 보면 운수산은 없고 훨씬 남쪽에 선암산이 표기되어 있어 백양산의 원조는 선암산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선암산이란 이름도 산 아래 선암사가 있으므로 붙여진 것이다. 운수사와 선암사의 창건 연대를 따져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선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했다고 하며 처음 지었을 때는 견강사(見江寺)로서 절 뒤의 산 위에 오르면 바로 아래 낙동강이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경내에 절벽으로 된 바위가 있어 신라의 화랑들이 수도를 하던 곳이라 신선암이라 불렀는데 여기에서 선암사가 유래한다고 한다.


그리고 운수사는 가락국시대 창건 설화가 있으나 동래부지(1740년 간행)에 초명이 선수암으로 나와있고 부도탑과 출토된 기와와 도자기들이 모두 조선시대의 유물로 판정되어 역사적으로 선암사보다 뒤지는 것이다.


연대별로 따지면 선암사, 운수사, 백양사로 이어지고 있으며 지역별로 초읍의 백양산, 구포의 주지산, 모라의 운수산, 사상의 삼각산, 당감동의 선암산으로 벋어 내리고 있으며, 거기다 부산진구에서는 진구(鎭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진봉(愛鎭峰)이란 이름을 지어 봉우리에 향토 사랑비를 세우기까지 하고 있으니, 지역별로 각각 전래된 산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애향(愛鄕)의 상징이 될 것이라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