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옥의 생태이야기]세상의 지배자는 인간 아닌 풀과 나무
나무는 옛 신화의 단골손님이다. 고대 유럽 스칸디나비아의〈시(詩) 에다·Poetic Edda>에는 거대한 물푸레나무 위그드라실이 등장한다. 북유럽인들은 이 나무의 가지와 뿌리가 세상을 하늘과 지하 세계로 연결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세계수(世界樹)’다.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도 나무는 샤먼과 초월적 세계의 대화를 돕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고 있다. 신라의 금관을 장식하고 있는 자작나무 형상은 북방 유목민들의 샤머니즘이 투영된 흔적으로 읽힌다.
알타이족에게 자작나무는 성스러운 나무였다. 개마고원 사람들은 시신을 자작나무 껍질로 싸서 땅속에 파묻었다. 북미의 인디언 부족 믹맥(Mi’kmaq)은 지금도 이와 비슷한 풍속을 갖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불이 잘 붙는다. 그래서 양초가 없던 옛날에는 결혼식을 올릴 때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에 화촉을 밝혔다. 자작나무 껍질은 좀이 슬거나 곰팡이가 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대에는 잘 썩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 후세에 남겼다. 신라고분에서 발견된 천마도 장니(障泥)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다. 자작나무는 약재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선조들은 곡우(穀雨) 때 채취한 자작나무 수액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
추운 지방의 자작나무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유명한 아열대 나무로는 유칼립투스와 모링가가 있다. 호주가 원산지인 유칼립투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다. 잎은 항균작용이 강해 호흡기질환과 열병은 물론 결핵 치료에도 사용된다. 호주 원주민들은 심한 상처 주위를 이 나무의 잎으로 동여맸다. 유칼립투스는 말라리아 퇴치 목적으로 저지대나 늪에 심기도 한다. 워낙 많은 물을 빨아들여 모기 유충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주변 땅이 금세 마르기 때문이다.
1년에 3m 이상 자라는 유칼립투스는 특히 가난한 나라 주민들이 선호하는 경제수목이다. 하지만 자생종들을 몰아내는 침입종으로도 악명이 높다. 이런 우려 때문에 복사용지를 생산하는 태국의 한 기업은 묘목을 논두렁에 심는 조건으로 농민들과 계약을 맺는다. 논 주변은 물도 넉넉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 파괴 염려도 적어서다. 농민들은 어린 묘목을 우리 돈으로 그루당 600원에 사들여 심은 후 3년이 지나면 6000원에 되판다. 태국 기후와 토질에 맞게 개량한 품종이어서 농약을 치거나 비료를 줄 필요가 없다. 자연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농민들은 연간 세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유칼립투스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의 ‘효자 나무’인 셈이다.
모링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생명의 나무 또는 기적의 나무로 불린다. 잎사귀를 날로 먹거나 나물처럼 볶아 먹을 수 있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나무로 유명하다. 잎 100g에는 비타민A가 당근의 3.5배, 비타민C는 오렌지의 7.3배, 칼슘이 우유의 3.6배, 단백질은 콩의 2배가량 함유돼 있다. 모링가는 아프리카 전통의학에서 써왔던 만병통치약이기도 하다. 모링가 열매는 아프리카의 몇몇 도시들에서 수질정화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흡착해 바닥으로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모링가 열매를 갈아 만든 분말 0.2g은 오염된 물 약 1ℓ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안도현 시인은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라는 시에서 “저 도시를 활보하는 인간들을 뽑아내고 거기에다 자작나무를 걸어가게 한다면 자작나무의 눈을 닮고, 자작나무의 귀를 닮은 아이를 낳으리”라고 썼다. 나무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시구가 나왔을까 싶다. 시인은 “자작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다가 인간을 한 그루씩 옮겨 심는다면 지구가, 푸른 지구가 온통 공동묘지 되고 말겠지”라고 노래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착각은 식물들이 동물보다 열등하다는 믿음이다. 바다보다 거친 육지의 삶에 뿌리를 먼저 내린 것은 식물들이었다. 식물들은 동물들이 잠시도 살 수 없는 극한생태계에서도 번성할 수 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정한 지배자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풀과 나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향신문 & 경향닷컴
알타이족에게 자작나무는 성스러운 나무였다. 개마고원 사람들은 시신을 자작나무 껍질로 싸서 땅속에 파묻었다. 북미의 인디언 부족 믹맥(Mi’kmaq)은 지금도 이와 비슷한 풍속을 갖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불이 잘 붙는다. 그래서 양초가 없던 옛날에는 결혼식을 올릴 때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에 화촉을 밝혔다. 자작나무 껍질은 좀이 슬거나 곰팡이가 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대에는 잘 썩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 후세에 남겼다. 신라고분에서 발견된 천마도 장니(障泥)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다. 자작나무는 약재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선조들은 곡우(穀雨) 때 채취한 자작나무 수액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
1년에 3m 이상 자라는 유칼립투스는 특히 가난한 나라 주민들이 선호하는 경제수목이다. 하지만 자생종들을 몰아내는 침입종으로도 악명이 높다. 이런 우려 때문에 복사용지를 생산하는 태국의 한 기업은 묘목을 논두렁에 심는 조건으로 농민들과 계약을 맺는다. 논 주변은 물도 넉넉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 파괴 염려도 적어서다. 농민들은 어린 묘목을 우리 돈으로 그루당 600원에 사들여 심은 후 3년이 지나면 6000원에 되판다. 태국 기후와 토질에 맞게 개량한 품종이어서 농약을 치거나 비료를 줄 필요가 없다. 자연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농민들은 연간 세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유칼립투스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의 ‘효자 나무’인 셈이다.
모링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생명의 나무 또는 기적의 나무로 불린다. 잎사귀를 날로 먹거나 나물처럼 볶아 먹을 수 있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나무로 유명하다. 잎 100g에는 비타민A가 당근의 3.5배, 비타민C는 오렌지의 7.3배, 칼슘이 우유의 3.6배, 단백질은 콩의 2배가량 함유돼 있다. 모링가는 아프리카 전통의학에서 써왔던 만병통치약이기도 하다. 모링가 열매는 아프리카의 몇몇 도시들에서 수질정화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흡착해 바닥으로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모링가 열매를 갈아 만든 분말 0.2g은 오염된 물 약 1ℓ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안도현 시인은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라는 시에서 “저 도시를 활보하는 인간들을 뽑아내고 거기에다 자작나무를 걸어가게 한다면 자작나무의 눈을 닮고, 자작나무의 귀를 닮은 아이를 낳으리”라고 썼다. 나무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시구가 나왔을까 싶다. 시인은 “자작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다가 인간을 한 그루씩 옮겨 심는다면 지구가, 푸른 지구가 온통 공동묘지 되고 말겠지”라고 노래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착각은 식물들이 동물보다 열등하다는 믿음이다. 바다보다 거친 육지의 삶에 뿌리를 먼저 내린 것은 식물들이었다. 식물들은 동물들이 잠시도 살 수 없는 극한생태계에서도 번성할 수 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정한 지배자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풀과 나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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