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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이야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 선암사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 선암사

 

사찰소개

    •                                                                                  선암사 전경
    • 선암사(仙巖寺)는 전라남도 순천시에 위치한 호남 명산중의 하나인 조계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산은 원래 중국에 있는 지명인데, 『송광사지(松廣寺誌)』에 의하면 “1209년 고려 희종(熙宗)이 어릴 적부터 존경하던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옛 길상사 터에 수선사(修禪社)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펼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기뻐하여 ‘조계산 수선사’라는 편액을 내리고 널리 찬양하였으므로 이때부터 조계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선암사라는 절 이름은 절 서쪽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선암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529년(신라 진흥왕 3)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개산하여 청량산 해천사라고 했다는 설과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비보사찰로 창건하여 선암사(仙巖寺)라 하였다는 설이다.
  •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에 의해 크게 중창된 선암사는 대찰로 자리 잡았고, 이후 여러 번의 전쟁과 화재로 피폐해지기도 하였는데, 특히 화재 피해가 많았었다. 이 때문에 1759년(영조 35) 화재 예방을 위해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 절 이름을 해천사(海泉寺)로 바꾸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이름은 현재 일주문 뒤편 편액에서 아직까지 찾아볼 수 있으며, 전각 곳곳에 水자나 海자를 새겨놓고 있다. 절이 소실될 때마다 많은 승려들의 대대적인 중창불사로 현재와 같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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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선암사 승탑군
    • 고요한 수행처인 선암사에는 세 가지가 없다. 첫째로는 사천왕문이 없는데,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줄 것이라 따로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대웅전에 협시보살상이 없다는 것이다. 대웅전 석가모니불상의 수인은 항마촉지인인데, 마군에게 항복을 받던 그 순간을 나타냈기 때문에 협시보살상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대웅전 어간문이 없다. 어간문은 깨달은 분만이 통과할 수 있는 중앙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지날 수 없는 문이라 하여 선암사에는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                                                                              선암사 승선교
  • 선암사는 봄이면 피어나는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와 절 입구 진입로의 승선교(보물 제400호) 등 아름다운 문화재로도 유명한 절이다. 선암사는 현재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어있으며,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이 명승 제65호로 지정되어있다. 산내암자로는 대각암, 운수암, 대승암, 비로암 등 4개 암자가 있다.
 

 

조계산의 자연환경

    • 조계산(曹溪山)은 전라남도 순천시의 서쪽 승주읍과 송광면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887m의 산이다. 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선암사(仙巖寺)가 있고, 서쪽에는 송광사(松廣寺)가 자리하고 있다. 소백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군봉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ㄷ’자형을 이루고 그 사이로 장발골이 흘러 보성강으로 유입된다. 광주의 무등산,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삼각형을 이루어 호남의 3대 명산으로 꼽히며, 계절에 따라 바뀌는 승경이 남달라 옛 승주의 팔승(八勝) 가운데서도 제 1승으로 꼽히기도 한다.
      조계산은 송광사의 개산 당시에는 송광산(松廣山)이라 하였는데, 그 후의 개창(開創)과 더불어 조계종(曹溪宗)의 중흥도량으로 삼으면서 조계산으로 개칭되었다. 원래는 청량산(淸凉山)이라 불리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선암사에 화재가 잦자 풍수하는 이들이 산강수약(山强水弱)한 지세 때문이라 하여 이름에 물(水)자가 둘씩이나 들어가는 청량산으로 다시 고쳐 부르기도 했었다고도 전한다.
    •                                                                                선암사 숲길
    •                                                                                   승선교 계류
    • 동쪽 사면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순천을 경유하여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이사천(伊沙川)과 합류되고, 서쪽 사면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송광천(松光川)으로 흐른다. 고온다습한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며, 피아골, 홍골 등의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폭포·약수 등이 아름다워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산 전체가 활엽수림으로 울창하고 수종이 다양하여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선암사, 송광사와 같은 명찰과 더불어 조계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찾아 많은 이들이 전국에서 모여들며, 2009년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 조계산의 자연환경은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따뜻하고, 유량도 풍부하여 다양한 종류의 수림 및 식생이 분포하고 있다. 1991년 연구에 따르면, 49목, 122과, 434속, 627종 등 750 종류로 나타났다. 선암사의 주변 산림은 전반적으로 40~50년생 참나무류가 둘러싸고 있는데, 동백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등이 울창하게 있어 사계절 훌륭한 경관을 연출해 낸다. 선암사에서 대각암을 향하는 길과 선암사중수비 일대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로 이루어진 침엽수림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사찰 서측에 분포하는 은행나무림은 다른 사찰들에서 보기 드문 식생경관으로서 가을철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그밖에도 삼인당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진입로 변과 사찰 북측 경작지 등 곳곳에 야생차밭도 조성해 놓았다.
  •                                                                                     선암사 편백숲
  • 선암사의 주요수목으로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된 선암매(仙巖梅)를 비롯하여 수령이 600년이라 전해 선암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삼성각 앞 와송(臥松) 및 은행나무, 올벚나무, 배롱나무, 전나무 등 다양한 노거수(老巨樹)가 경내 곳곳에 즐비해 있어 오래된 건축물 및 문화재뿐만 아니라, 전통 조경경관도 잘 이어져 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                                                                           삼성각 앞 와송(臥松)
    •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사의 역사

    • 선암사의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가 설이 있다. 하나는 『순천부조계산선암사제육창건기(順天府曹溪山仙岩寺第六創建記)』와 「조계산선암사사적비(曹溪山仙巖寺事蹟碑)曹溪山의 내용을 따라 529년(진흥왕 3)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개산하여 청량산(淸凉山) 해천사(海川寺)라고 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와 「선암사중수비(仙巖寺重修碑)」의 내용을 따라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비보사찰로 창건하여 선암사(仙巖寺)라 하였다는 설이다.

      기록 등을 종합해볼 때, 아도화상이 비로암에서 작은 암자격인 해천사를 개산하고 현재 자리에 사찰의 격식을 갖춘 것은 도선국사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타당할 것이다.
    •                                                                        선암사 일제강점기 때 전경
    • 선암사의 초창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각국사중창건도기(大覺國師重創建圖)」를 통해 고려 중기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 의해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고, 그 규모로 보아 2차 대각국사의 중창으로 선암사의 대체적인 윤곽이 잡혔던 것으로 보인다. 선암사에는 현재 3개의 부도가 있는데 10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는 선조암지부도(禪助庵址浮屠)와 10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이는 무우전부도(無憂殿浮屠), 대각암부도(大覺庵浮屠)가 그것이다. 이중에서도 대각암부도는 의천의 부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응향각에는 대각국사의 형인 고려 선종(宣宗)이 의천에게 하사한 가사가 있어 선암사와 의천과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한다.
    •                                                                                선암사 중수비
    • 조선시대 선암사는 1597년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되고 일부만이 남은 것을 현종(顯宗) 때 승려 경잠(敬岑), 경준(敬俊), 문정(文正) 등의 주관으로 8년간 중창불사를 하여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4차 중창불사는 약휴대사(若休大師)에 의하여 진행되었는데 1698년에 원통전을 건립하고 1703년에 대법당을 수리하였으며 오십전을 중건하였다. 1707년에는 승선교를 중건하고, 「선암사중수비」를 세웠다.

      1759년에 있었던 대화재로 선암사의 많은 건물이 소실되자 다시 5차 중창이 일어나 1761년에 승려 상월(霜月)과 서악(西岳)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때의 불사는 551명의 역군이 참여한 큰 중창공사였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팔상전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상월대사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비보로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이라 하고, 절 이름은 해천사(海川寺)로 고쳤다고 한다.
    • 6차 중창불사는 1823년(순조 23)에 발생한 화재로 대웅전, 명부전, 정문로 향로전, 설선당, 심검당 등이 소실되자 이들을 복원하기 위해 1824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때의 중창기록은 『순천부조계산선암사제육창건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러 사찰의 승장들과 선암사의 승려 300여명이 동원되어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 냈다고 한다. 6차 중창불사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승려 해붕(海鵬), 눌암(訥庵), 익종(益宗)등이었다. 먼저 대웅전, 명부전, 정문루, 향로전을 중수하였고 1825년에 심검당과 설선당을 중건하였다. 또한 이 때 다시 조계산 선암사로 이름을 복칭하였다. 1933년에 작성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실린 선암사의 사진을 보면 1824년 이후에 있었던 6차 중창불사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선암사는 1948년에 있었던 여수사건과 한국전쟁으로 또 한 번 피해를 겪었으며, 1952년에는 토지 개혁으로 사찰의 많은 재산이 팔려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주요 전각들은 6차 중창 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대웅전 및 다른 전각들을 보수하거나 건립하고 있다.
연표

     연대                                        내     용

529년 아도화상이 이곳으로 와서 산 이름을 청량산, 절 이름을 해천사라 함
9세기 도선국사가 비보도량의 하나로 선암사를 창건함
11세기 대각국사가 칠전선원을 세우는 등 선암사올 크게 중창함
1540년 일주문을 중수함
1597년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어 1철불, 2보탑, 3부도, 문수전, 조계문, 창측 등만 남고 모두 소실됨
1655년 원각경 선암사에서 개판(開板)함
1660년 승려 경잠, 경준, 운정 등이 도반 10여명과 함께 사찰 중수를 시작함 이후 8년 동안 중창불사를 계속함
1707년 승려 호암이 승선교를 축조, 「선암사중수비」를 세움
1759년 화재를 만나 큰 피해를 봄
1760년 승려 상월과 서악이 선암사를 중건함
1761년 상월대사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산명을 청량산으로 사명을 해천사로 개칭함
1797년 승려 해봉이 칠전선원을 중건함
1823년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불우 4통과 요사 6동이 불에 탐
1824년 승려 해붕, 눌암, 익종 등이 대웅전을 비롯한 4동을 중건함
1825년 승려 심검이 설선양당을 중건하고 산명을 조계산, 사명을 선암사으로 복칭 함
1906년 선암사 승선학교를 세움
1911년 일제총독부가 30본산제도를 시행할 때 선암사는 호남지역 본사 중 하나가 됨
1914년 선암사 말사인 증심사를 중심으로 하여 광주 북쪽에 포교당을 건립함
 
 

선암사의 역사

* 주요전각 클릭 시 관련설명이 나옵니다.

조계산의 동편에 자리한 선암사는 전체적으로 지세에 따라 남동향하고 있다. 중심축 선상에 일주문, 범종루, 만세루, 대웅전을 배치한 선암사는 대웅전영역 외에도 여러 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 좌우에는 심검당과 설선당을 중심으로 하는 요사들이 배치되어 있고, 대웅전 후면에는 원통전과, 조사전, 불조전, 팔상전으로 형성된 공간이 있다. 원통전 위쪽으로는 동서로 나란히 상선원과 정업원이 별도의 영역을 이루며 구성되어 있는데, 상선원에는 달마전, 미타전, 응진당, 진영각 등의 7개 전각을 배치하였고, 정업원에는 무우전과 각황전을 배치하였다. 대웅전 서편에는 무량수전과 창파당 영역이, 설선당 앞쪽으로는 성보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는 중심축을 따라 후면으로 갈수록 건물의 기단이 높아지도록 계획하였으나, 그 단차이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선암사는 화재와 중창으로 여러 번 변화를 겪었지만 비교적 옛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현재 남은 건물들의 배치는 1824년에 이루어진 제6창 때와 비교적 흡사한 모습이라고 한다.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선암사의 주불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를 모신 불단이 있다.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그 위에 민흘림 원형기둥을 세웠다. 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외부살미는 앙서형이고, 내부살미는 연봉형으로 장식하였다. 내부 천정은 반자로 마감한 우물천장으로 상부가구가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장엄하고 화려한 건물로 주불전의 위엄과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여 준다.

대웅전의 중창 역사는 선암사에 관해 기록한 여러 사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의천에 의해 중창된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60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1823년에 다시 화재에 의해 소실된 것을 182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보물 제1311호 지정되어있다.

 

 

선암사의 국가유산

현재 선암사는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은 모두 명승 제65호로 지정되어있다. 선암사의 지정문화재로는 보물 14건, 천연기념물 1건, 중요민속문화재 1건, 시도유형문화재 7건, 시도기념물 1건, 문화재자료 3건이 전해지고 있다.
 
  연번      종목                                                                        명칭                                                                      시대
1 보물 제395호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
2 보물 제400호 순천 선암사 승선교 조선시대
3 보물 제955호 순천 선암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고려시대
4 보물 제1044호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조선시대
5 보물 제1117호 순천 선암사 대각암 승탑 고려시대
6 보물 제1184호 순천 선암사 북 승탑 고려시대
7 보물 제1185호 순천 선암사 동 승탑 고려시대
8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조선시대
9 보물 제1419호 선암사석가모니불괘불탱 및 부속유물일괄 조선시대
10 보물 제1506호 순천 선암사 선각국사 도선 진영 조선시대
11 보물 제1553호 순천 선암사 서부도암감로왕도 조선시대 (1736년)
12 보물 제1554호 순천 선암사 33조사도 조선시대 (1753년)
13 보물 제1558호 순천 선암사 동종 조선시대
14 보물 제1561호 순천 선암사 동종 조선시대
15 사적 제507호 순천 선암사 -
16 명승 제65호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 -
17 천연기념물 제488호 순천선암사선암매 -
18 중요민속문화재 제244호 선암사 소장 가사·탁의 조선시대
19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선암사금동향로 고려시대
20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60호 선암사팔상전 조선시대
21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92호 선암사중수비 조선시대 (1707년)
22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96호 선암사일주문 조선시대
23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69호 선암사원통전 조선시대
24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62호 순천선암사금동관음보살좌상 고려시대
25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95호 순천 선암사 불조전 조선시대
26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46호 선암사삼인당 통일신라시대
27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7호 선암사마애여래입상 고려시대
28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 선암사각황전 조선시대
29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 순천선암사측간 미상

                                                                                                                                                               *2015년 6월 기준

선암사 문화재 자세히 보기

 

선암사의 국가

도선국사 (道詵國師, 827∼898)
    •                                                                                  도선국사 진영
    • 통일신라 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이다. 법병은 도선이고, 김씨였다고 한다. 통일신라 말 암자격이었던 선암사를 현재 자리에 사찰의 격식을 갖춰 개창하였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月遊山) 화엄사(華嚴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 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에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운봉산(雲峯山)에 굴을 파고 수도하기도 하였으며, 태백산(太白山)에 움막을 치고 여름 한철을 보내기도 하였다. 864년, 도선국사의 나이 37세 되던 해, 그는 옥룡사에 머물면서 입적할 때까지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당시 제자의 수가 수백 명이라는 점에서 옥룡산문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도선국사는 음양풍수설의 대가로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학의 역사가 신라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도선의 생존연대가 그때였기 때문이다.

      도선이 역사적으로 유명해진 것을 고려 태조에 의해서였다. 875년(헌강왕 1)에 도선은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松岳, 개경)에서 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왕들은 그를 극진히 존경하였다.
  • 도선은 옥룡사에 머문 지 35년이 되는 때인 898년(효공왕 2)에 세수 72세로 입적하였다. 효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제자들이 옥룡사에 징성혜등탑(澄聖慧燈塔)을 세웠다. 그 후 고려 숙종은 대선사(大禪師)로 추증하고 왕사(王師)를 추가하였으며, 인종은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追封)하였다. 저술로는 『도선비기(道詵秘記)』, 『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 있다.
대각국사 의천 (大覺國師 義天, 1055∼1101)
  •                                                                                   대각국사 진영
  • 고려의 천태종(天台宗)을 개창한 승려로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의 넷째 아들인 왕자출신 승려이다.

    법명은 의천, 이름은 후(煦), 호는 우세(祐世), 시호는 대각국사(大覺國師)이다. 고려 중기 선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

    1065년 5월 14일에 경덕국사(景德國師)를 은사로 삼아 출가하여, 영통사(靈通寺)에서 공부하다가 그해 10월 불일사(佛日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때부터 학문에 더욱 힘을 기울여 대승과 소승의 경·율·론 삼장(三藏)은 물론, 유교의 전적과 역사서적 및 제자백가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섭렵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1085년(선종 2)에 송나라로 유학을 떠나 여러 승려들과 교류하였고, 천태학을 깊이 배웠다. 1년 후인 1086년 귀국한 뒤 흥왕사(興王寺)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한편, 송나라의 고승들과 서적·편지 등을 교환하면서 학문에 더욱 몰두하였다. 불교전적 정비에도 힘을 썼는데,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요나라·송나라·일본 등에서 불교서적 4,000 여권을 수집하고 국내의 고서 등을 모아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3권의 목록을 편집하였고 이 목록에 따라 간행된 경서가 『고려속장경(高麗續藏經)』이다.
  • 1097년(숙종 2) 2월에 국청사(國淸寺)가 완성되자, 같은 해 5월에 제1대 주지가 되어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의천은 원래 화엄계통의 승려였으나, 그가 천태교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천태종을 개립하게 된 까닭은 국가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선(禪)과 교(敎)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고려의 불교는 선·교 양종의 대립이 심각하였고, 의천은 이러한 고려불교의 폐단을 바로잡아 교단을 정리하고, 정도를 밝혀 올바른 국민사상을 확립시키려고 하였는데, 그러한 근본이념을 천태사상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1101년(숙종 6) 10월 5일, 문병 온 숙종에게 "원한 바는 정도를 중흥하려 함인데 병마가 그 뜻을 빼앗았나이다. 바라옵건대 지성으로 불법을 외호하시와 여래께서 국왕, 대신에게 불법을 외호하라 하시던 유훈을 봉행하시오면 죽어도 유감이 없나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나이 47세, 법랍 36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신편제종교장총록』3권, 『신집원종문류(新集圓宗文類)』22권, 『석원사림(釋苑詞林)』250권, 의천의 제자들이 그의 행적과 시 등을 모은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23권과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13권,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3권, 『천태사교의주(天台四敎儀註)』3권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저술들이 거의 없어지고 현재는 『신편제종교장총록』3권과 『대각국사문집』, 『대각국사외집』의 낙장본, 『원종문류』, 『석원사림』의 일부, 『간정성유식론단과』만이 전하여오고 있다.
※ 자료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선암사의 설화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호암대사
  • 1698년 호암대사가 선암사를 중창 불사할 때의 일이다. 호암대사가 중창 불사를 위해 대장군봉의 배바위에서 기도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낙심하여 바위 밑으로 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이 때 코끼리를 탄 여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보자기로 호암대사를 받아 다시 배바위 위에 올려놓으면서 “떨어지면 죽는 것인데, 어찌 무모한 짓을 하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이내 곧 사라졌다고 한다.

    후에 그때 자신을 구한 이가 관세음보살임을 깨달은 호암대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친견한 관세음보살의 모습대로 불상을 조성하여 丁자각 형태의 원통전을 짓고 이를 봉안하였고, 절 입구에 무지개 모양의 아치형 다리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승선교다.

  •  
                                                                                            승선교
  • 원통전에는 현재 ‘대복전(大福田)’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후사가 없던 정조(正祖)는 당시 선암사 눌암대사(訥庵大師)에게 100일 기도를 부탁했고 이후 순조를 얻었다고 한다. 순조(純祖)는 자신이 태어나게 된 데 보답한다는 뜻으로 선암사에 ‘큰 복의 밭’이라는 의미의 대복전이라는 현판을 써주었다고 하며, 후에 다시 천(天)과 인(人)자를 한 자씩 더 써주었다고 한다.

    모든 이들이 복 받기를 기원한 순조의 뜻을 따라 원통전에서 불자들은 절을 마친 후 현판을 바라본 뒤좋은 기운을 얻어 돌아갔다고 한다.
    •                                                                                선암사 원통전
    •                                                                                   대복전 현판
 

선암사 안내
오시는길

 

  • 고속도로 이용호남고속도로 → 승주IC → 선암사
  • 대중교통 이용순천역, 순천종합터미널 앞에서 1번 시내버스 이용 (40분 배차, 1시간 소요)
  • 입장료
    개인단체(30인이상)
    성인 2,000 1,700
    청소년, 군인 1,500 1,200
    어린이 1,000 800
  • 주차료 소형 2000원, 대형 3000원

 출처; http://www.koreansansa.net/ktp/sansa/sansa_020101.do

 

선암사 ㅣ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ㅣ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ㅣ 세계유산등재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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