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의 뷰] 소는 찾았습니까, 심우십도와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2021-01-03 14:48
곽암의 십우도송
곽암(廓庵, 송나라 승려 곽암사원 廓庵師遠)의 十牛圖頌(십우도송, 십우도를 노래함). '열 장의 소 그림(혹은 심우십도(尋牛十圖)라고도 한다)'을 보며 쓴 10편의 칠언절구다.
잃어버린 소를 찾는다는 것은 도(道)를 찾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찾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 그 잃어버린 것을 얼른 채워야 한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그 찾는 대상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두고 가치를 매겨 오히려 마음의 평안함을 해치기 쉽다.
소는 중요한 것이고, 소는 목표이며 문제의 끝인 것 같지만, 그것은 그냥 '내'가 아닌 소일뿐이며 그것이 내게로 들어온다 해도 내 손에 없었을 때와 달라진 건 없다. 찾아야 할 것은 소가 아니라, 소를 찾아야 한다는 그 마음을 놓는 일이다. 잃어버린 것을 찾고 나면 그것을 긴요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곁에 둔 채 다시 잊어버린다.
이것이 소유의 정체이며 이것이 득물(得物)의 진상이다. 진리는 소유나 득물에 있지 않고, 소유와 득물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의 양상에 있다. 필요한 모든 것은, 그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필요하다는 마음의 진상을 보고 그 동요를 진정시켜 평화를 얻는 것에 있다.
소도 사람도 새끼줄도 다 잊어버려라
소도 사람도 새끼줄도 다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득물(得物)이며 인간사의 진리가 머무는 곳이라는 통찰을 담고 있는, 흥미로운 수행시다. 흰소의 해 아침에, 올해 마음이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가만히 일러주는 시다. 이참에 시를 한번 곰곰이 읽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제1편 심우(尋牛, 소를 찾아서)
忙忙撥草去追尋(망망발초거추심)
水濶山遙路更深(수활산요로경심)
力盡神疲無處覓(역진신피무처멱)
但聞楓樹晩蟬吟(단문풍수만선음)
부랴부랴 풀을 헤치며 찾아 나섰다
강은 넓고 산은 아득하고 가는 길은 깊구나
힘은 빠지고 정신은 지치고 찾을 곳이 없구나
다만 단풍나무 늦저녁 매미 우는 소리뿐
제2편 견적(見跡, 발자국을 보다)
水邊林下跡偏多(수변임하적편다)
芳草離披見也麽(방초리피견야마)
縱是深山更深處(종시심산경심처)
遼天鼻孔怎藏他(요천비공즘장타)
물가 나무 밑에 발자국이 유난히 많은데
풀꽃이 떨어져나갔으니 보았도다 작은 자취
쭉 이어진 이 깊은 산 더 깊은 곳이라 한들
먼하늘 콧구멍을 어찌 따로 숨기겠는가
제3편 견우(見牛, 소를 발견하다)
黃鸝枝上一聲聲(황례지상일성성)
日暖風和岸柳靑(일난풍화안류청)
只此更無回避處(지차경무회피처)
森森頭角畵難成(삼삼두각화난성)
노란 꾀꼬리 가지에 앉아 한 울음 우나니
햇살 따스하고 바람 좋은데 물가버들 푸르다
오롯이 이곳이 더없이 돌아숨을 자리인데
깊은 숲숲 드러낸 뿔 그려내기 어렵구나
제4편 득우(得牛, 소를 얻다)
竭盡神通獲得渠(갈진신통획득거)
心强力壯卒難除(심강역장졸난제)
有時纔到高原上(유시재도고원상)
又入烟雲深處居(우입연운심처거)
온힘을 다해 신통하게 개울에서 붙잡아 얻었으나
마음은 굳세고 힘은 억세어 끝내 다루기 어렵구나
때가 되어 겨우 높은 언덕 위에 오르니
다시 안개구름 속 깊은 곳에 들다
제5편 목우(牧牛, 소를 키우다)
鞭索時時不離身(편삭시시불리신)
恐伊縱步入埃塵(공이종보입애진)
相將牧得純和也(상장목득순화야)
羈鎖無抑自逐人(기쇄무억자축인)
새끼줄을 언제나 몸에서 못 벗기는 건
걸음을 곧장 딛어 티끌 속으로 들까 두려워서네
서로 잘하여 장차 길이 들고 부드러워지면
굴레로 가두지 않고 스스로 사람을 따르리
[밀양 만어사의 심우도 제6 '기우귀가']
제6편 기우귀가(騎牛歸家, 소 타고 집에 오다)
騎牛迤邐欲還家(기우이리욕환가)
羌笛聲聲送晩霞(강적성성송만하)
一拍一歌無限意(일박일가무한의)
知音何必鼓脣牙(지음하필고순아)
소 타고 흔들흔들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니
피리소리가 울려퍼지며 저녁노을에 흐르네
한 박자 한 구절 끝없는 뜻이 담겨있으니
노래를 아는데 북의 가죽과 채가 필요하리오
제7편 망우재인(忘牛在人, 소를 잊고 사람만 있구나)
騎牛已得到家山(기우이득도가산)
牛也空兮人也閑(우야공혜인야한)
紅日三竿猶作夢(홍일삼간유작몽)
鞭繩空頓草堂間(편승공돈초당간)
소를 타고 이윽고 산골 집에 이르니
소는 벌써 마음에 없어 사람은 한가롭다
붉은 해는 세 줄기 긴 빛인데 오히려 꿈을 꾸고 있구나
채찍은 쓸 일 없어 초가집 안에 가만히 놔뒀나니
제8편 인우구망(人牛俱忘, 사람도 소도 다 잊었다)
鞭索人牛盡屬空(편삭인우진속공)
碧天寥廓信難通(벽천료곽신난통)
紅爐焰上爭容雪(홍로염상쟁용설)
到此方能合祖宗(도차방능합조종)
새끼줄도 사람도 소도 모두 텅빈 곳에 들었으니
푸른 하늘 허공 너른 곳 소통하기가 어렵구나
붉은 화로 불꽃 위에 다투며 눈발이 녹아내리듯
이쯤 이르면 옛사람 뜻과 맞아질 수 있다네
제9편 반본환원(返本還源, 근본을 돌이켜 뿌리로 돌아감)
返本還源已費功(반본환원이비공)
爭如直下若盲聾(쟁여직하약맹롱)
庵中不見庵前物(암중불견암전물)
水自茫茫花自紅(수자망망화자홍)
근본 돌이켜 뿌리로 돌아가려니 이미 애쓴 바가 있어
바로 내려가려는듯 다투니 눈먼 자 귀먼 자와 같구나
암자에 앉아 암자 앞의 것도 못 보니
물은 스스로 아득아득하고 꽃은 저절로 붉었구나
제10편 입전수수(入廛垂手, 손을 놓고 세상에 들다)
露胸跣足入廛來(노흉선족입전래)
抹土塗灰笑滿腮(말토도회소만시)
不用神仙眞秘訣(불용신선진비결)
直敎枯木放花開(직교고목방화개)
맨가슴과 맨발로 집에 들어와서
흙과 회로 벽을 바르니 웃음이 뺨에 가득하다
신선도 진리의 비결도 쓸 곳 없구나
죽은 나무를 직접 가르치니 바로 꽃이 피도다
[필자 번역]
만해 한용운의 시 '심우장'
스님이었단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심우장(尋牛莊)'이라는 시를 남겼다. '소를 찾는 집' 이란 뜻이다.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시 분명타 하면
찾은 들 지닐 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尋牛莊).1'
심우장은, 서울 성북동에 있는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옛집에 붙은 당호(堂號)다. 1933년 집을 지을 무렵, 남향으로 지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는지라 그것을 피하여 등돌려 산비탈 쪽인 북향으로 지었다는 그 집이다.
그 때문에 응달이 되어 겨울엔 한없이 춥고 여름엔 습기로 후덥지근해 살기엔 더없이 불편한 거처였으나, 그는 이 불편당(不便堂)을 심신의 자리로 삼는다. 1944년 중풍으로 숨을 거둘 때에도 이 방에 있었다. 심우장은 선불교의 '깨달음 열 과정' 을 은유로 표현한 심우십도에서 땄다. 현판은 서예가 독립운동가 오세창(1864~1953)이 썼다.
만해는 이 집을 '심우장'이라 이름하였으나, 도(道, 진리)라는 것이 어디 특별한 곳에 있어서 그것의 고삐를 잡아 끌고 온다는 다소 기계적인 은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심우의 뜻을 곱씹는 시를 남겼다. 마음에 한 도가 있었는데 그걸 잃어버렸다는 상황이 우스꽝스럽고, 잃어버린 도를 굳이 찾아 나선다는 것 또한 얄궂다고 생각했다.
찾음 속에 잃음의 강박이 있다
아마도 곽암스님의 10편 시보다 만해의 한 줄 핀잔이 훨씬 수(手)가 높지 않나 싶을 만큼 진리에 직핍한다.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건, 잃음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찾음 속에 잃음의 강박이 들어있는 것이기에 찾았다 하더라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통찰이다. 잃고 찾음의 경계를 놓아버리고,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다시 잃어버릴 일이 없으니 찾은 것보다 더 제대로 찾은 것이 아니냐는 일갈이다. 이래서 고수는 고수다.
그리고 실우(失牛)와 심우(尋牛)로 도식화한 철학보다 '불실불심(不失不尋)'의 평정이 훨씬 부처의 뜻에 걸맞기도 하다. 만해에게는, 저 심우(尋牛)가 조국의 광복과 연결지어져 특히 간절해져 있던 상황인지라,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있던 일제 말기에 이를수록 저 심우의 강박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기분을 부른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끈을 끊어 놓아버리라는 건 곽암을 향한 불평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심리처방 같은 것이기도 했으리라. 그래도, 그는 그 심우의 방에서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그 한기를 오롯이 느끼며 살아냈다.
심우장 방안에 걸린 '마저위절(磨杵葦絶)' 만해의 네 글자는, 절망을 이기는 치열한 공부의 풍경을 드러낸다. 마저(磨杵)는 절굿공이를 바늘로 만들만큼 갈고 닦는 것이요, 위절(葦絶)은 주역의 가죽(韋, 여기서는 갈대 葦) 표지가 닳도록 공부한 공자의 집요함이 숨어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씨를 쓰고 생각을 다듬는 것이, 소를 잃고 찾는 공허한 경계보다 더 의미있고 절실한 수행처였는지 모른다. 만해에게는.
소를 찾던 사람. 소들이 사라진 빈 자리. 뒤늦게 마음이 따라 어슬렁어슬렁 거닐어 보는 흰소의 해 벽두.
이상국 논설실장
출처;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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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만어사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산(萬魚山)에 있는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제1대 수로왕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이 절은 46년(수로왕 5) 수로왕이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에서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雷雨)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오곡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하였다.
수로왕은 주술(呪術)로써 이 일을 금하려 하였으나 불가능하였으므로 예를 갖추고 인도 쪽을 향하여 부처를 청하였다. 부처가 신통으로 왕의 뜻을 알고 6비구와 1만의 천인(天人)들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의 항복을 받고 설법수계(說法授戒)하여 모든 재앙을 물리쳤다. 이를 기리기 위해서 수로왕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로는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터라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머물러 쉰 곳이 이 절이었다. 그 뒤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하였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화석으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현재 절의 미륵전(彌勒殿) 안에는 높이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라고 하며, 이 미륵바위에 기원하면 아기를 낳지 못한 여인이 득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미륵전 아래에는 무수한 돌무덤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고기들이 변해서 된 만어석(萬魚石)이라 하며, 두들기면 맑은 쇳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창건 이후 신라시대에는 왕들이 불공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었고, 1180년(명종 10) 중창하였으며, 1506년(중종 1) 화일(化日)이 중건하였다. 이어서 1879년(고종 16)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이 절의 당우로는 대웅전 · 미륵전 · 삼성각(三聖閣) · 요사채 · 객사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1968년 보물로 지정된 만어사 삼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1181년의 중창 때 건립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히고 견고하게 정제된 탑이다. 또, 산 위에 있는 수곽(水廓)의 물줄기는 매우 풍부한데, 이곳은 부처가 가사를 씻던 곳이라고 전해온다.
출처; 만어사(萬魚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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