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수미단에 나타난 부부사랑
- 연재
- 입력 2008.04.05 12:05
- 호수 152
환성사 수미단 봉황
환성사 수미단 오리
환성사 수미단 물고기.
전각과 수미단에 ‘부부애 염원’ 새겨 넣다
전각 안 곳곳 다산.다복 염원 담긴 조형 똬리
공주 갑사 안 서수, 음낭 눈에 띄게 제작 ‘파격’
우리 조상들은 어떤 방법으로 가족이 화합하고 부부지간의 사랑과 금슬이 좋아지며 자손들이 많이 생산되고 창성하도록 기원했을까. 다산(多産)과 부부지간의 백년해로, 수명장수 등 중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사찰에서 칠성님께 빌거나, 산신.신중님께 치성을 드리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직접적인 방법을 선택한 듯하다. 사찰의 주존(主尊)인 부처님께 원하는 내용을 직접 스님을 통하여 알리는 축원의 방법과 전각의 조형을 통하여 기원하는 바를 나타내었다.
그중 조형을 통하여 나타낸 방법은 우리 조상들의 직접적이고 간절한 소망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중생이 원하는 바를 직접 보시고 잊지 않으시도록 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수미단이나 포벽, 판벽 등 전각의 곳곳에 기원하는 바를 조형으로 나타내어 그 원이 이루어지길 바랐던 것이다. 그중 재미나고 해학적인 것이 부부 사랑을 기원하는 조형들이다.
무슨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불경스럽다고 반문하겠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삶의 모습이 부처님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 진행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한 어디에 있겠는가. 사찰의 수미단이나 전각내부를 잘 살펴보면 조상들이 우회적으로 표현한 종족번식을 위한 성(性)적인 표현이 인간적이고 사실적이며 해학적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가 눈여겨 살펴보지 않았을 뿐이지 조상들의 다산과 다복에 대한 강한 염원을 부처님께 바라고 있다.
<선생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선남자여 만일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고 어여삐 생각하면 반드시 이익이 불어날 것이요, 흉하거나 쇠하지 않으리라. 남편은 다섯 가지 일로 처자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물품을 공급하여 주어야 한다. 첫째 처자를 어여삐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몸에 걸치는 장신구를 사주는 일이고, 넷째는 집안에서 편안함을 얻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아내의 친족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셨다.
또한 <무량수경>에 보면 “부자간에, 형제간에, 부부간에, 친족간에 항상 서로 사랑하여 시기하거나 증오하지 말라, 얼굴색은 항상 화평하게 하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걱정하는 마음을 가져라.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도 부부의 사랑을 중요하게 여겨 강조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부부지간의 사랑이 사찰의 전각수미단, 포벽, 판벽 등에 그림이나 조각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 가족의 화목과 자손의 번창을 부처님전에 기원하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 솜씨와 채색, 조상의 염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경산 환성사 대웅전의 수미단에 나타난 다산을 기원하는 조형들을 살펴보자.
환성사 수미단에는 여러가지 조형들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불단을 장엄하고 있다. 일반 사찰 수미단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다양한 문양들이 눈에 띄나 그중에 특이하게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한 쌍의 오리가 연꽃사이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화쌍압유희(蓮花雙鴨遊戱)조각’이다.
오리는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의미의 새로 인식되어 왔다. 농경사회에서의 새는 4계절의 순조로운 변화와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고, 자손을 보호하고 번창하게 하며 솟대를 세워 이승과 저승과의 교통(交通)을 담당한다고 믿어왔다.
또한 가야의 오리모양 토기라든가 조선시대 연꽃 속에 노닐고 있는 한 쌍의 오리 무늬 항아리라든가 이 모든 것이 오리의 특별한 능력 즉 물과 땅, 하늘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조상들은 오리를 신의 새라 믿어 형상화하여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오리는 짝을 이룬 뒤 하나가 죽으면 따라 죽는다고 하여 오랜 옛날부터 행복과 생산의 상징으로 존중되어 왔다. 물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 연꽃과 함께 오리 한 쌍을 배치해 그린 ‘연화쌍압문양(蓮花雙鴨紋樣)’은 그 모양이 아름다워 여성들의 공예품 장식에 널리 애용되기도 했다.
환성사 수미단 앞면 중앙부에는 암수 두 마리의 오리가 활짝 핀 연꽃 속에서 춘정(春情)이 발동하여 서로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있다. 암컷 위에 수컷이 날개짓을 하여 교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다산(多産)과 풍요를 기원하고 있다. 또한 연꽃가지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물총새도 춘정이 발동하여 짝을 부르니 반대편에서 암컷 물총새가 짝을 찾아 날아드는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해학을 지니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수미단 좌측 옆면에는 쌍을 이룬 물고기가 혼인색(婚姻色)을 띠고, 연잎 사이로 헤엄치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쌍을 이룬 물고기는 부부의 화합과 다산(多産)을 나타내고 있으며, 두 송이의 연꽃은 화목과 사랑을 뜻하고 씨앗이 여러 개 보이는 연꽃은 다자다복(多子多福)을 상징하고 있다. 아울러 수미단 앞면 좌측에는 암수 봉황이 아름답게 핀 꽃 속에서 꼬리를 서로 교차하여 교미형태를 취하고 있다. 좌측 수컷 봉(鳳)이 우측 암컷 황(凰)을 누르고 있는 성적 장면이 대담하게 묘사되었다.
갑사 금고좌대서수
금고좌대서수 뒤면.
또한 공주 갑사 대웅전 안에는 참으로 재미난 조형을 볼 수 있다. 조상들이 자식을 갖기 위한 염원은 특이한 형태의 조각으로 나타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대웅전 안 금고(金鼓)를 지탱하는 좌대로 나무로 제작된 서수(瑞獸)는 거북이 모양에 짧은 다리와 말발굽 형태의 발을 지닌 동물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뒤쪽 엉덩이 사이에 보이는 커다랗고 검으며 팽팽하여 윤기 있는 서수의 음낭을 크게 보이도록 조각하였다.
앞머리는 고개를 돌려 기원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흰 이빨을 드러내고 부끄러운 듯 웃고 있다. 서수의 음낭을 통해 튼튼하고 여러 자손을 두고자 하였던 조상들의 간절한 바람이 익살스런 조형의 모습으로 나타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는 대담한 성적(性的) 표현을 오리와 봉황, 서수를 통해 풍부한 상상력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조상들이 후손에 대해 성적 당당함을 나타내고 있어 더욱 해학적이기도 하다.
인간의 종족보존을 위한 생각을 타 동물에 대비시켜 인간의 성적 표현이 금기시된 조선시대에 부부지간의 화합과 다산을 갈망한 조상들의 생각이 아름다운 채색과 특이한 조형을 통해 잘 표현되었다.
해학은 아무 관계가 없으면서도 근거 있는 관계가 있는 것처럼 나타내는 것이다. 계획적으로 ‘관련’을 만들어 관계를 이중적 의미로 사용하여 해학을 창조하는 조상들의 높은 정신적 향유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서구보다 더 빠르게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다. 가정해체가 유독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는 이 시점에서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의 오리와 물고기, 또한 봉황의 모습과 갑사의 서수의 조형은 부부지간의 사랑과 화합을 부처님 전에 기원하고자 하였던 조상들의 염원을 잘 나타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봄날 여유롭게 사찰을 찾아 부처님 전에 기원한 조상들의 ‘파격적인 부부사랑’을 느껴봄도 좋을 것이다.
권중서 / 조계종 전문포교사
[불교신문 2416호/ 4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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