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의 이야기

독보적 강소기업 (주) 대한엔드레스휄트

(주) 대한엔드레스휄트는 1974년 사상구 덕포동에서 휄트를 제작,하는 국내 제지업체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독보적 강소기업이다.  전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인 동 기업에 대하여 경제전문지에서 보도한 기업의 내용을 소개하고자한다. 

(주)대한엔드레스휄트, 반세기 동안 우수한 기술력 무기로 국내 휄트·캔바스 시장 장악

  • 기자명 김형준 기자
  •  승인 2019.02.12 19:56

1960년부터 제지공정에 쓰이는 휄트 생산…선구자 역할
작년 신제품 ‘코러게이터휄트’ 개발…골판지로 영역 확대
‘저가 공세’ 해외업체 상대로 품질로 국내시장 파수꾼 역할 

 
 
▲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주)대한엔드레스휄트 본사 내 공장에서 휄트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엔드레스 직기 장비 모습. (사진 = 김형준 기자)

사무용지, 신문지, 박스 등 종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쓰여지고 있다. 종이는 펄프를 물에 희석시켜 만들어 지는데 이러한 제지공정에서 종이죽의 운반(컨베이어 벨트 역할)과 더불어 수분을 흡수하는 기능을 동시에 하는 것이 휄트다. 휄트는 나일론과 솜을 원료로 섞어 제조한 시트 형태의 원단으로 제지 종류에 따라 직조 방식과 밀도, 재료 등이 달라 종류가 다양하다. 제지업체들은 이 휄트를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4개월 마다 교체해줘야 한다.

◇ 국내 대다수의 제지업체에 휄트·캔바스 제품 공급…독보적 입지 다져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본사(대지 7272m², 공장 3동·사무동 1동)를 둔 (주)대한엔드레스휄트는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지산업에 쓰이는 휄트제품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업체로 국내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기업이다.
 
1960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이름 그대로 나일론과 솜을 소재로 한 ‘엔드레스휄트’(Endless Felt)를 주력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휄트는 조직 과정에서 끝이 생기기 마련인데 끝과 끝을 이어주면 끝이없는 ‘엔드레스휄트’가 완성된다. 장수기업이 드문 부산지역에서 회사명대로 미래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고 있는 기업이 바로 대한엔드레스휄트이다. 
 
이 회사의 제지산업용 휄트제품은 한솔제지, 무림제지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을 비롯해 소규모 한지공장에 이르기까지 국내 대부분의 제지업체(90%)에 납품되고 있으며 한국조폐공사의 특수지 제작에도 쓰여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신제품인 ‘코러게이터 휄트’를 개발해 박스 제조회사에 납품하며 골판지 분야로 역역을 넓히기도 했다. 이 제품은 종이와 종이 사이에 골판지를 넣어 풀을 바르고 압축해 종이박스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한다. 면과 폴리에스테르를 섞어 제조한 코러게이터 휄트를 벨트에 부착해 설치하면 오물이나 기름덩어리 등을 흡수해 박스 제품에 붙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주력제품은 아니지만 택배, 홈쇼핑 등 산업용 박스 관련 시장의 성장으로 인해 향후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다. 이 회사가 1980년대 김해에 지은 제2공장(대지 1만3223m². 규모 6,611m²)에서 생산하고 있는 또다른 주력제품인 캔바스(산업용 드라이어 스크린)도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캔바스 역시 산업용 제지공정의 후반부에 사용되는 부직포로 수분을 뺀 종이를 운반하는 기능과 더불어 열풍으로 종이를 말릴 때 바람을 빠져나가게 하는 건조기능을 동시에 하는 제품이다. 캔바스는 제지용뿐만 아니라 폐수처리장, 분뇨처리장, 정수장 등 환경분야의 오염처리시설에서 발생되는 슬러지의 수분을 짜주는 기계인 벨트프레스에 적용돼 물을 걸러내고 찌거기만 남기는 기능에도 활용되고 있다.  또 전기로 물을 분해해 물만 빠져나가게 하는 전기 탈수기에 활용되는 맞춤형 캔바스도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실을 엮어주는 장비인 연사기를 비롯해 여러가닥의 실타래를 만드는 기계인 정경기, 엔드레스직기, 편칭기, 가공기 등 첨단 장비를 통해 주력제품인 휄트와 캔바스를 생산하고 있다.

 
 
▲ 공장 내부 모습. (사진 = 김형준 기자)

◇ 중국·러시아 등 전 세계 30개국 수출…3대째 명맥 이어가
연 매출 100억 원을 올리고 있는 이 회사의 휄트와 캔바스 제품은 해외시장 공급 비중이 60%, 내수시장이 4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해외 글로벌 휄트업체가 임금이 싼 중국에 공장을 짓고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오늘날 오랜 역사에 기반한 품질을 무기로 혈혈단신 해외업체에 맞서 국내 휄트 시장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이 대한엔드레스휄트이다.
 
해외시장에는 중국, 러시아 등 전 세계 30개국에 휄트와 캔바스를 수출하고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이기도 하다. 수출의 시초는 1986년 대만을 중심으로 일본, 동남아 등을 공략하면서 부터다. 지난 2009년 ‘100만불 수출탑’에 이어 이듬해에는 ‘3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지난 반세기 넘게 휄트 생산을 통해 국내 제지산업에 초석을 다지고 업계를 견인해온 이 회사는 휄트 생산에 나선 1960년을 창립 첫해로 잡고 있다.
 
하지만 시초를 더듬어가면 1945년 해방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광복 때 일본 자본가에게 공장을 인수해 1949년 서울로 이전한 창업주는 전쟁이 나자 1950년 부산 전포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군용모포를 주로 생산하던 이 회사는 1960년 ‘한국모포공업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휄트 생산에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군용 모포를 생산하고 남은 짜투리 모포를 연결해 휄트를 제작했다.
 
이후 일본에서 신기술을 도입하고 1980년대에는 엔드레스 직기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나서면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휄트업계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창업주의 아들인 김상열 (前)회장이 회사가 현재의 덕포동에 자리잡으면서 물려받아 일본에서 기술 고문을 영입하고 인재 양성에 힘쓰며 다양한 펠트 제품을 개발하는 등 국내 최고의 휄트업체로 성장하는데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1994년 불의의 사고로 김 (前)회장이 유고하자 부인인 조정교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아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내실에 힘쓰며 회사를 업계 최고봉에 올려놓으며 명맥을 이어왔다.
 
지난해 4월부터는 3대인 김 (前)회장의 아들 김재욱 총괄본부장이 공동 대표이사에 올라 대한엔드레스휄트의 미래를 짊어질 준비에 나서고 있다.   
 
김재욱 (주)대한엔드레스휄트 대표이사는 “조부님과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이 피땀흘려 지켜온 회사의 역사를 이어받아 어깨가 무겁다”며 “100년 장수기업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samic8315@busaneconomy.com

 김형준 기자 samic8315@busaneconomy.com
  저작권자 © 부산제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부산 기업 100년 프로젝트] 7. 대한엔드레스휄트

입력 : 2017-04-18 19:11:54  수정 : 2017-04-23 09:10:08

제지용 펠트(두툼한 부직포) 제작 국내 독보적 강소기업

국내 제지업체 점유율 70%를 자랑하는 부산 사상구 덕포동 대한엔드레스휄트의 조정교 대표가 회사 조직도를 보며 직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직원 41년, 전무 40년, 이사 36년." 한 회사에 근무하는 임직원의 근속 연수다.

110여 명 전체 직원의 평균 나이가 50대 초반이고, 평균 근속 연수가 25년 정도다. 임직원이 마치 한 가족처럼 지낸다. 이름도 어려운, 대한엔드레스휄트 이야기다.


1945년 창업주 공장 인수
15년 뒤 펠트 국내시장 장악 
자율경영 직원들 똘똘 뭉쳐
2대 회장 사고 때 위기 극복
수직계열화와 특화된 기술
30개국 수출 글로벌화 '우뚝'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대한엔드레스휄트. 제지 공정에 사용되는 엔드레스펠트를 주로 생산한다. 국내 제지업체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국내 1위 업체다. 전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기도 하다. 펠트(felt)는 두툼한 부직포를 말하는데, 최근에 주로 폴리에스테르로 만든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 종이 죽을 압착할 때 수분을 짜내는 역할을 한다. 엔드레스는 양끝이 붙었다는 뜻이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직장인이 한 기업에서 특히, 부침이 심한 중소기업에서 30~40년을 근무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조정교 대표는 "아버지와 아들, 누나와 동생, 엄마와 딸 등 실제 가족이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회사를 내 가정처럼 여겨서 가능한 일로, 고마운 일이다"고 말했다.

이런 가족 같은 사풍은 회사 최대 위기에서 빛났다. 1994년 김상열 선대 회장이 사고를 당하자 금융권이 개인 회사라는 이유로 부도 처리했다. 전 사원이 금융권을 찾아가 설득 작업을 펼쳤고, 주말 내내 일을 하면서 납품 기일을 맞추었다. 결국 1994년 회사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이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선대 김 회장의 직원 사랑도 유별났다. 한 번도 직원 월급을 늦게 준 적이 없다. 거래처에 돈을 줄 때도 먼저 전화를 해서 받아가라고 할 정도였다.선대 회장의 부인인 조 대표는 "선대 회장은 직원과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월급날이 휴일이면 하루 전에 월급을 줬다"고 전했다.

1994년 회사 경영에 나선 조 대표는 자율 경영을 제시했고, 이 전략은 주효했다. 또 조 대표는 휴게실 설치, 식당 리모델링 등 직원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다. 조 대표는 "부서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구조가 회사 경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더 낫다. 또 자율 경영 때문에 노조 파업을 물론이고 마찰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1990년대 후반 해외 기업들이 중국 진출을 위해 합작을 제안했을 때와 최근 인건비 상승으로 동종 업계 공장이 해외로 이전했을 때도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대신 최신 기계를 들여와 숙련된 인력을 활용해 제품의 질을 높였다. 대한엔드레스휄트는 2008년 캔바스 직조 기계와 2009년 엔드레스펠트 짜깁기 기계를 전격 도입했다.

"회사를 키워서 대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회사가 생명력을 갖고 100년 이상 이어지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직원이 회사를 최고로 쳐야 하고, 시장에서 팔리는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

3대 경영자인 김재욱 총괄본부장도 복지와 제품의 수직 계열화를 미래 비전으로 제시했다.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지 않을 겁니다. 펠트 분야에서 이미 상당히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펠트는 공기청정기, 정수기, 폐수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제품입니다. 제품의 질을 높이고 사용처를 다양화해서 비행기와 우주선에도 우리 회사 제품을 납품할 겁니다."

한편, 대한엔드레스휄트는 공식적으로 올해 창립 57년을 맞는다. 대한엔드레스휄트가 펠트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국내 시장을 장악한 1960년을 창립 첫해로 잡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창업주가 1945년 광복 때 일본 자본가에게 공장을 인수해 1949년 서울로 공장을 이전했다. 창업주는 전쟁이 나자 1950년 부산 전포동으로 공장을 옮겼다. 당시엔 모포를 만들어 내수용으로 판매했다. 조 대표는 "시아버지인 창업주가 공장을 인수한 때부터 치면 창립 72년쯤 된다"고 말했다.

1974년 공장이 현재 덕포동으로 이전하면서 선대 김 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일본에서 기술 고문을 영입하고 인재 양성에 힘써 다양한 펠트 제품을 개발했다. 1986년부터 대만을 중심으로 일본 동남아 등에 수출을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회사 매출을 지탱한 것은 폐수에서 슬러지를 거르는 여과지인데 이때 개발된 제품이었다.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