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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불화] <21> 불화 의미 읽는 법
-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9.12.18 14:02
불화를 만나거든 오직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길…
종교적 내용 법식으로 제작된 ‘불화’
시대 국가 민족 작가따라 표현 다양
박물관 유물 아닌 법당의 예배 대상
불교역사, 불교설화, 기법 등 알아야
‘기법과 양식’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불화 제작의 모든 정보 기록한 화기
인도나 동남아시아, 실크로드, 중국, 일본 등 불교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사원을 장식한, 혹은 전각 안에 봉안된 불화를 보게 된다. 그런데 각 나라의 불화를 보면 달라도 참 다르다. 어떤 곳은 벽화로, 어떤 곳은 탱화로 주로 그려지기도 하고, 티벳이나 일본에서는 만다라와 같은 독특한 불화도 있다. 표현 내용이나 부처님의 모습도 참 다르다. 같은 불교적 내용, 같은 경전에 의해 그려지는 그림인데도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김천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탱.
사실 불화는 종교적 내용과 일정한 법식에 의해 제작되는 그림이기 때문에, 감상이 주목적인 일반 회화와 달리 독창적인 화풍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국가, 민족, 작가에 따라 주제와 기법, 양식 등이 다양하게 표현되곤 한다.
원시불교(原始佛敎)와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 교종(敎宗)과 선종(禪宗) 등 각 불교의 성격에 따라서도 불화의 내용과 주제, 표현 등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화는 너무 복잡해서 참 어려워요”.“불화를 제대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얘기를 듣곤 한다. 복잡한 내용의 불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불화를 볼 때 먼저 염두에 둘 것은 ‘불화는 종교화’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불화는 박물관에 진열하여 감상하는 유물이 아니라, 법당에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예배하는 대상이기에 대웅전에 봉안된 불화를 보면 저절로 몸이 숙여지지만 전시실에 걸려있는 불화를 보면 그냥 다른 유물들처럼 하나의 전시품을 보는 듯하다. 왜 그럴까?
불화는 전각 안에 봉안하기 위해 또는 의식 때 걸기위해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개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일반 그림과는 출발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그리고 신성한 의식의 대상이 되는 불화들은 따라서 신비함과 숭고함이 우선시되며, 신에 대한 숭경심(崇敬心)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작가들은 매일 목욕재계하고 항상 깨끗한 옷을 입으며 말도 하지 않는 등 철저한 계율을 지켰고 법식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754~755년에 조성된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발문을 보면 “불, 보살상을 그리는 사람은 보살계를 받고 대, 소변을 보거나 잠을 자고 난 뒤에나 밥을 먹은 뒤에는 반드시 향수를 사용하여 목욕을 해야만 한다. 사경할 때에는 네 사람의 기악인 등이 함께 하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가는 길에 향수를 뿌리고 또 한 사람은 꽃을 뿌리며, 한 법사는 향로를 받들고 이끌며 또 한 법사는 범패(梵唄)를 부르며 인도한다”고 했으니, 부처님을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베껴 쓰는 행위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그처럼 정성을 다해 그렸기에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 종교적 환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선정불. 16세기 중국 명나라 당시 불화이다.
그런데 박물관 전시실에 걸린 불화를 보면 별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왜일까. 전각 중앙에 봉안된 불화와 좌우 측벽에 봉안된 불화들은 일정한 법식에 의해 봉안되는 것이 원칙인데, 박물관의 불화는 그런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불교 의식이 성행함에 따라 상단〔불(佛)·보살단(菩薩壇)〕, 중단〔신중단(神衆壇)〕, 하단〔영단(靈壇)〕의 삼단 신앙이 유행하였으며, 이에 따라 불화도 상단탱화, 중단탱화, 하단탱화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중앙에는 반드시 부처님 그림, 좌우 벽에는 보살도나 신중도, 감로도 등이 봉안되곤 한다. 상단에 해당되는 후불벽에는 상단탱화인 영산회상도와 아미타불화, 비로자나불화 등을 봉안하고, 중단에는 지장보살도, 신중도 등, 하단에는 감로도와 같은 하단탱화를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다.
안타깝게도 조선 후기 이전의 불화는 전각 내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당시 어디에 봉안되었는지 알기가 어려우며, 어떠한 의식과 신앙의 대상이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예배 용도가 가장 우선시되는 불화는 법당에 봉안되어 아침저녁으로 예불의 대상이 될 때 비로소 본래의 의미를 지니므로, 박물관에 진열된 불화는 박재된 불화같은 느낌이 든다.
또 하나, 불화를 볼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불화 속 내용이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불화 속에는 때로 많은 이야기가 그려져 있고, 또 때로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불화 속 이야기와 인물이 무엇이고 누구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부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불화가 등장하기 전, 부처님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 불화를 그렸던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가 있었음을 알지 못하면, 부처님을 그려야 할 곳에 왜 보리수나 금강대좌, 법륜(法輪) 등을 그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 석가모니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를 알지 못하면, 오른손을 높이 들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으며, 아미타불의 구품(九品)신앙을 알지 못하면 관음보살이 들고 있는 연화대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수 없다.
따라서 불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교 교리와 경전, 불교 미술 관련 서적을 읽어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하며, 불교 미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불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내용을 이해했더라도 이 불화가 우리나라 것인지 중국 또는 일본 것인지, 우리나라 것이라면 고려시대 불화인지 조선시대 불화인지를 아는 것도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각 나라와 지역, 또는 각 시대의 불화, 작가에 대한 이해와 함께 불화의 기법과 양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 에르미타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3세기 서하의 아미타내영도. 보살이 연화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동아시아 각국의 불화를 보면, 같은 내용을 다뤘더라도 나라와 지역, 시대에 따라 표현이 다르다. 또한 같은 지역에서 같은 주제로 그렸어도 누가 그렸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동남아에서 마주치는 부처님은 머리가 유난히 뾰족하며, 중국에서도 명나라 때 만든 부처님을 보면 입이 아주 작다. 그런가 하면 실크로드의 부처님은 동그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여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또 부처님의 전생담 중 배고픈 호랑이를 위해 몸을 보시하신 본생도는 여러 지역에서 많이 그려졌지만 실크로드의 키질지역에서는 새끼호랑이가 2마리, 돈황 428굴에는 7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런 차이는 무엇일까. 화면이 좁아서 2마리만 그린 것일까? 그건 키질석굴에서는 <현우경(賢愚經)>, 돈황에서는 <금광명경(金光明經)>을 참고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불화의 주제와 내용 외에도 궁금한 것이 참으로 많다. ‘이 불화가 언제 그려졌고, 어디에 봉안되었으며, 누가 발원하고 시주했는가, 불화를 그린 사람은 누구인가’ 등등.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불화에 적힌 화기를 읽으면 된다. 불화에는 대부분 화기(畵記)가 있어 불화 제작에 관한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화기는 컴퓨터의 메모리 칩과 같다. 화기는 보통 불화의 하단부 중앙 또는 좌우에 있는데, 고려 불화에는 적당한 위치에 금니(金泥)로 쓰여 있지만 조선 불화에는 붉은색 바탕에 먹글씨로 적혀있다.
화기는 연화질(緣化秩)과 시주질(施主秩)로 이루어지는데, 연화질이란 증명(證明)·송주(誦呪)·지전(持殿)·공양(供養 또는 供司)·화원(畵員)·화주(化主) 등 불화를 그리는 데 참여한 사중(寺中)의 인물을 적은 부분이다. 증명은 불화 제작의 총책임을 맡은 승려로서, 불화가 경전의 법식에 맞게 제작되었는지 감독하며, 송주는 불화를 그리는 동안 다라니를 암송하고, 지전은 법당을 청소하며 등과 향을 공양하는 소임을 맡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공양은 불화를 그릴 때 필요한 여러 가지를 제공하며, 화주는 불화 제작에 필요한 비용 일체를 담당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불화를 그린 화가이다. 불화를 그리는 화가는 명칭이 참 많은데 화원(畵員)·화사(畵師)·양공(良工)·금어(金魚)·편수(片手)·화공(畵工) 등으로 다양하다.
시주질은 불화 제작비용 또는 물품을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인데, 커다란 괘불도 가은 경우는 수백 명의 시수자가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걷어 만들기도 한다. 부부가 함께 시주하는 경우는 (兩主)라고 적고, 남성신도는 건명(乾命), 여성신도는 곤명(坤命)이라고 한다.
이렇듯 불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불교의 교리에서부터 불교사, 불교설화, 양식, 제작기법 등 많은 것을 알아야 하지만, 그와 함께 중요한 것은 바로 불화를 대하는 ‘경건한 마음’이 아닐까.
진주 청곡사 괘불도의 화기 부분. 1722년 불화이다.
※ 김정희 교수의 ‘동아시아 불화’ 연재를 여기서 마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불교신문3544호/2019년12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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