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4일 오후 3시경,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영연방 추모행사가 열리고 난 뒤, 호주묘역에 취재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호주 안장자인 케네스 휴머스톤(Captain Kenneth John Hummerston)이 60여년 만에 부인 낸시 휴머스톤과 재회를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 호주군 참전용사였던 콜린 베리맨 씨가 한 줌의 재가 된 낸시 여사의 유해를 호주 국기에 조심스레 싸서 평생을 그리던 남편 옆에 묻었다.
호주 안장자인 케네스 휴머스톤(Captain Kenneth John Hummerston)이 60여년 만에 부인 낸시 휴머스톤과 재회하는 합장식에 참석한 노병들은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중국 우미인의 무덤가에 피었다는 붉은 개양귀비 꽃을 결혼사진과 함께 넣어주었다. 영연방 소속의 국가들은 11월 11일을 국가를 위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위한 추도일로 정해놓았으며 추도일을 맞이해 영국 전역은 붉은 양귀비꽃으로 뒤덮고 있다. 영연방국가에서는 개양귀비꽃이 추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11월11일(리멤버스 데이)에는 붉은 양구비꽃으로 뒤덮히며, 참전용사를 위한 모금활동, 많은 사삶들은 자랑스럽에 양구비 모형을 가슴에 꽂아둔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일본 히로시마현이었다. 휴머스톤은 로열보병군단 특수부대 장교로, 낸시는 간호장교로 일본에 파견됐다가 3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이후 케네스 휴머스톤 대위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였고, 1950년 10월 3일 대구 근처 낙동강 전선에서 순찰을 나갔다가 자신의 탄 차량이 지뢰를 건드리면서 운전병과 함께 전사했다. 휴머스톤 대위가 낸시와 결혼한 지 3주쯤 되었을 때였다.
<휴머스톤 부부 결혼식 사진>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낸시는 호주로 돌아갔지만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귀국하는 남편 전우들을 1년여 동안 보살핀 뒤 전역을 했다. 그 뒤 그녀는 재혼도 하지 않은 채 간호사로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하며 평생을 살다 2008년 10월 10일 만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재혼하지 않아 슬하에 자녀가 없는 낸시휴머스톤의 유언에 따라 조카 테리 홈스씨(Mr. Terry Holmes, 61세)가 합장을 요청하였고, 평소 왕래가 있던 참전용사가 영연방행사 당일 유해를 이곳으로 모시고 와 합장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부가 함께한 세월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었지만, 60년이 지난 지금, 이제부터 낸시 곁에 든든한 남편이 함께 할 수 있음에 합장이 진행되는 내내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눈물을 훔치곤 하였다.
이제는 어떠한 물리적인 힘으로든 이들을 갈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참혹한 전쟁이 세계 어디서든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유엔기념공원에서 휴머스톤 부부가 함께 잠든지도 10년이 흘렀다. 60년만에 만난 휴머스톤 부부는 10년의 세월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회포를 풀었으리라. 못다한 이야기들은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2,312영혼들의 축복을 받으며 영원토록 생전에 못다한 부부의 정을 나누리라.....
참고로 유엔기념공원내 합장의 사례는 2012년 4월 25일 영연방 참배행사가 열린 뒤, 오후 3시경 캐나다 안장자 HEARSEY JOSEPH WILLIAM의 동생 ARCHIBALD LLOYD HEARSEY의 합장식이 열렸다. 그리고 6·25전쟁 당시 미군 제2군수사령관이었던 리차드 위트콤 장군은 1982년 89세 나이로 영면하면서 ‘한국에 남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였으며, 2017년 1월 90세로 영면한 그의 부인 한묘숙 위트컴 희망재단 이사장이 곁에 안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