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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한국이 모르는 일본"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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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이 모르는 일본] 
    경향신문이 기획, 연재하고 있는 [한국이 모르는 일본] 기사 모음을 소개합니다. 해당되는 제목을 클릭하면 상세한 원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이 모르는 일본](1) 총칼 놓으니, 책을 들더라

    글·사진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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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8년 아사노 리헤이라는 사람이 사와라에 개업한 지방 서점 쇼분도(正文堂). 쇼분도는 교토·오사카·나고야 등 대도시에서 책을 떼와 지바 지역에 판매하는 일종의 총판 역할을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을 최근에 복원했다.

    1828년 아사노 리헤이라는 사람이 사와라에 개업한 지방 서점 쇼분도(正文堂). 쇼분도는 교토·오사카·나고야 등 대도시에서 책을 떼와 지바 지역에 판매하는 일종의 총판 역할을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을 최근에 복원했다.

    한때 일본의 어떤 지방에서 영업하던 서점에 대한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도쿄 동쪽 지바(千葉)현 가토리(香取)시 사와라(佐原)의 쇼분도(正文堂)라는 곳이다.

    구글어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와라는 도쿄와 그 일대를 가리키는 간토(關東) 지역에서 가장 큰 강 가운데 하나인 도네가와(利根川) 강의 중류에 자리한 지역이다. 도네가와 강 일대는 크고 작은 강과 호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사와라 주변은 특히 수계(水系)가 복잡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에도(江戶)시대에 대규모로 수계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사와라는 간토 동남부를 커버하는 수운(水運) 중심지가 된다. 이로부터 사와라의 경제는 풍요로워졌다. 삶이 나아지면, 사람들은 단순히 생존하기 위한 행위를 넘어선 무엇인가를 추구하게 된다.

    어느 일본 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굶어죽는 것이 일상인 시대와, 굶어죽는 것이 예외인 시대로 역사를 나눌 수도 있다고. 일본 역사에 이를 대입하면, 임진왜란을 전후한 16세기 무렵까지가 앞에 해당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일족이 지배한 에도시대가 뒤에 해당한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조선, 일본, 명(明)의 세 나라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조선이었다. 다만, 임진왜란 앞뒤의 100년 동안 전국(戰國)시대라는 이름의 분열이 계속된 일본열도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그랬기에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 측의 초기 기록을 살피면, 간신히 평화가 찾아왔는데 또다시 낯선 외국에 나가서 싸우라는 명령을 내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분노가 지배층이나 민중 모두에게서 확인된다. 

    사와라 수변공원에 핀 붓꽃.

    사와라 수변공원에 핀 붓꽃.

    ■죽음의 공포 사라지자 삶을 즐겨 

    도요토미가 죽고 나서 일본열도를 장악한 도쿠가와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정을 잘 읽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조선과의 국교를 정상화하고, 청나라·네덜란드 등과는 교역 관계를 맺는 등 외교 관계를 정비했다. 국내적으로는 “겐나엔부(元和偃武)”라고 해서, 전쟁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음을 선포했다. 살해되거나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음식점·극장·유흥가 등은 일찍부터 생겨났고, 서점은 뒤늦게 생겨나 서서히 퍼져나갔다. 

    17세기에는 당시까지 일본의 중심이었던 교토와 오사카에 서점 거리가 생겨나고, 3000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탄생했다. 18세기가 되자 도쿠가와 막부(幕府)가 자리한 에도 즉 오늘날의 도쿄, 그리고 제4의 도시였던 나고야에 독자적인 서점들이 탄생했다. 또 오노야 소하치(大野屋八)의 대본소처럼, 직접 가게를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장사꾼들이 책을 등에 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기적으로 책을 빌려주는 영업 형태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때까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주로 대도시 주민들의 오락이었다. 

    19세기가 되자 드디어 이들 대도시 바깥의 지방 도시들에서 서점이 생겨나고 대본소 영업이 본격화되었다. 이때가 되면 중부 일본의 산골에 사는 사람도, 등짐 진 책 장사꾼이 오는 것을 기다릴 인내심만 있다면 읽고 싶은 책을 입수해서 읽을 수 있는 시스템이 일본 전국에 구축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책을 읽고 싶어하는 수요가 확인되자, 이 수요를 노리고 일본 전국에서 소규모 서점들이 생겨난다.

    이 글의 주인공인 아사노 리헤이(朝野利兵衛)라는 사람이 사와라에 쇼분도라는 가게를 연 것은 1828년. 도쿠가와 막부 치하에서 일본열도 사람들이 200년 이상 평화를 누린 시기였다. 물론, 완전히 평화롭지는 않았다. 1806~1807년에는 오호츠크해 연안에서 러시아 해군과 싸워 일본군이 패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패배에 충격을 받은 일본의 엘리트 계급은 서구 열강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을 품고 서양의 군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이는 먼 이야기였다.

    간토 지역 수운 중심지인 사와라의 에도시대 운하 위로 JR 나리타선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간토 지역 수운 중심지인 사와라의 에도시대 운하 위로 JR 나리타선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1828년에 개업한 쇼분도는 1868년의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나서도 한동안 영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사와라에 현존하는 쇼분도 가게 건물은 1880년에 지은 것이고, 가게 간판은 정치가이자 서예가였던 이와야 이치로쿠(巖谷一六)가 썼다고 한다. 정치인이 간판을 써 줄 정도로, 쇼분도가 지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쇼분도 건물은 2011년 3월11일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무너졌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에도시대에 쇼분도가 영업한 흔적을 살펴보면, 교토·오사카·에도·나고야 등의 대도시에서 출판되는 책에 공동 출자를 한 뒤, 그 책을 받아와서 지바 지역에서 판매하던 일종의 지역 총판에 가까웠다. 19세기가 되면 일본의 경제력이 향상되고 업종별로 전국적 네트워크가 성립하는데, 출판업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집집마다 ‘경전여사’ 시리즈 소장 

    쇼분도가 공동 출자한 책을 조금 살펴보자. 당대의 유명 소설가 다메나가 슌스이(爲永春水)의 수필 <한창쇄담(閑窓 談)>, 사와라의 이웃 지역이자 에도시대의 중요한 문화 거점이었던 미토(水戶)에서 간행된 <아코 47사전(赤 四十七士傳)> 등의 출판에 간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에도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무사 계급에 속하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호세이도 기산지(朋誠堂喜三二)의 시집 <오카모치 가슈 와레 오모시로(岡持家集我おもしろ)>에는, 에도의 출판사는 물론이고 쇼분도를 비롯해서 동일본 각지의 서점 10여곳이 공동 출자하고 있다. 유명 작가의 기대되는 신작이어서, 지방 서점들까지도 판매 호조를 예상하고 제작에 참여했던 것이다. 이 세 권 말고도 쇼분도는 20여점의 책에 공동 출자하는 적극적인 활동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쇼분도가 주력으로 한 영업은, 대도시에서 출판된 책을 떼어 와서 지역에서 재판매하는 것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교과서였다. 조선과는 달리 과거제도가 없는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공부를 잘한다고 사회적으로 크게 출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특출하게 공부를 잘해서 눈에 띄면 하급 사무라이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꿈을 꾸지 않더라도, 자기 가게를 운영하거나 자기 마을에서 촌장급의 위치에 오르려면 어느 정도 읽고 쓰고 계산할 줄 알아야 했다.

    19세기 일본에서 전국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은 ‘경전여사(經典余師)’ 시리즈였다. ‘내가 스승이 되어 스스로 경전을 배운다’는 뜻의 제목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경전여사’ 시리즈는 사서오경을 비롯해서 중국과 일본의 중요한 책의 내용을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의 일본 사람들은 다들 열심히 이 시리즈를 구입해서 공부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웬만큼 오래된 집 안의 창고에서는 한두 권씩 반드시 발견될 정도다. 이처럼 널리 읽힌 흔한 책이다보니, 지금도 일본의 옥션 사이트에서는 한국돈으로 5000원에서 1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 요즘에도 그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되는 걸 보면, ‘경전여사’ 시리즈가 에도시대에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이 모르는 일본](1) 총칼 놓으니, 책을 들더라

    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사람들이 읽은 교과서. 그 교과서라는 스테디셀러를 가지고 쇼분도가 지바 지역에 확립한 판매 네트워크는 메이지시대에도 살아남았다. 쇼분도는 메이지 정부가 간행한 교과서를 비롯해서, 근대의 각종 교과서 및 참고서의 지바 지역 총판 영업을 담당했다. 예를 들어, 1882년에 판권면허를 받은 <고등소학 한문기사 논설문례(高等小學漢文記事論說文例)>와 같은 책의 출판·판매에도 쇼분도가 관여하고 있다. 

    근세와 근대에 걸쳐 쇼분도가 판매한 책은 주로 교과서와 실용서였다. 에도시대에 이곳 사람들은 상업적인 성공과 사회적인 출세를 위해 쇼분도에서 책을 샀다. 메이지시대가 된 뒤에도, 학생들은 메이지 국가의 관료 사회에서 출세하겠다는 꿈을 품고 쇼분도에서 교과서를 사서 읽었을 것이다. 쇼분도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저 멀리 너른 태평양이 보이는 동쪽 끝, 강과 호수가 복잡하게 얽힌 사와라의 해 질 녘에 서점의 불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떠올린다. 

    ■필자 

    [한국이 모르는 일본](1) 총칼 놓으니, 책을 들더라
     
    김시덕은 국가와 개인이 전쟁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기억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17~20세기 유라시아 동부의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 초기에는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이 시기 일본이 국제 전쟁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외국인 최초로 제4회 일본 고전문학 학술상을 수상한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 <그들이 본 임진왜란> <교감 해설 징비록>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등 10여권의 저서, 50여편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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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082053005&code=970203&s_code=af189#csidx7fae9c8aab7bfd2ad326eb9235caba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