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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부산의 길’, 詩心으로 이어지다

‘부산의 길’, 詩心으로 이어지다

[문학뉴스=이성봉기자]

 

(‘부산의 길’ 원천콘텐츠 자료집)

 

부산은 유용한 길들을 자원으로 가진 도시다. 역사적 연원의 뿌리는 깊지 않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부산의 여러 길은 역사적, 문화적 이정표를 찍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부산의 길은 이야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부산광역시 문화원연합회(회장 성재영)가 주최하고 주식회사 디자인 디가 기획한 ‘부산의 옛길 따라 역사 따라 부산여지도’ 전시회는 이러한 부산의 길이 지니고 있는 스토리텔링을 한데 모았다. 다양한 이야기는 150가지나 된다.

 

이 프로젝트는 박창희 스토리랩 수작 대표가 연구 책임을 맡았고, 성현무 지식·문화콘텐츠연구소 리멘 대표, 김두진 영도문화원 사무국장,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등이 참여해 진행했다. 그 결과 ‘부산의 길’ 연구작업과 더불어 소설, 희곡, 시나리오, 웹툰, 그림소설 등 30여 종의 창작물을 생산했다. 역사적 탐방로를 다룬 ‘부산여지도’에 이어 이번에는 이야기를 지닌 ‘부산의 길’들을 소개한다.

 

기장 포구 100리길 ‘오감도’는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에서 착안한 것으로 기장 해안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2014년 기장군이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와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에 연구 용역을 의뢰해 설정한 해안 테마 탐방로다. 조선 후기 기장에 유배온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를 본따 5가지 벗에 대해 읊었는데, 이 개념도 반영되어 있다. ‘오감도’는 해안길을 5개 코스로 나누어 중심 테마를 도입했다. 바로 ‘임 만나는 길’ ‘낭만노래길’ ‘윤선도유배길’ ‘봉대산 둘레길’ ‘용궁가는 길’이다. 또한 각 코스에 미각, 청각, 촉각, 시각, 후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더해서 이야기를 입힌 것이 특징이다.

 

초량 이바구길은 동구 초량동 일대 산복도로 골목길을 따라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 조성된 테마 탐방로다. 속살을 헤집어보면 이곳은 전쟁과 가난이 만든 슬픈 역사의 길이기도 하다. 백제병원에서 시작해 산꼭대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켜켜이 쌓여 있기에 그렇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부산항 개항을 시작으로 해방 후 피난민의 생활터였던 1950~60년대, 산업 부흥기였던 1970~80년대 부산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이야기의 보고이기도 하다. 산복도로는 부산의 독특함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도로에서 아득히 내려다보는 시원한 풍광도 좋지만, 부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주민들의 애환 섞인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함께 켜켜이 쌓인 삶의 추억과 풍경을 잇대어 만든 산복도로를 걸으면 부산 시민의 굴곡진 삶은 물론 도시의 성장 과정과 정체성도 만날 수 있다.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동구 초량동 일대 초량 이바구길)

 

 

부산은 평지보다 산이 많아 자연히 산지를 끼고 형성된 동네가 많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살 곳이 마땅치 않아 산쪽으로 올라갔다. 산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하나둘 생겨났다. 또 한국전쟁 때에는 피난민들이 봇짐을 지고 부산으로 모여들어 산동네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 광복 당시 28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00만 명이 넘었다. 이들의 삶이 오롯이 이바구길에 묻혀 있다. 초량 이바구길은 부산역 맞은편 초량 차이나타운의 북동쪽 끝부분에서 시작해 산복도로인 망양로까지 이어진다. 옛 백제병원터는 이제는 ‘브라운핸즈백제’라는 카페로 변모했다.

 

골목길로 접어들면 골목벽화 그림과 강영환 시인의 <산복도로> 시가 적혀 있는 스테리텔링 안내판을 만난다. 168계단은 산복도로의 높이를 말해줌과 동시에 그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한다. 오르지 않으면 집에 들어갈 수 없고, 내려가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 계단은 곧 삶이었다. 물이 없었던 윗동네에서는 우물이 있는 아래로 물지게를 지고 다녔고, 아이들은 동이들 들고 오르내리곤 했다. 2014년 5월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모노레일이 설치되었다. 이제 모노레일로 ‘168계단’을 오르면 끝자락에서 <김민부 전망대>를 만난다.

 

고 김민부 시인(1941~1972)은 ‘일출봉에 해 뜨거든’으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 등 주옥같은 시편을 남긴 동구 출신의 시인이다. 부산고 재학시절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시조)에 당선되어 ‘천재시인’으로 불렸다. 부산 MBC PD로 입사해 간판 프로그램 ‘자갈치 아지매’를 만들고 방송작가로 이름을 날렸으나 집에서 난 화재로 31세에 요절한다. 김민부문학제운영위원회는 시인을 추모하는 김민부문학제를 해마다 10월에 열고 있으며, 지난해 3회째를 맞은 김민부문학상도 운영하고 있다.

 

168계단은 산복도로 서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계단은 산복도로에서 부산항으로 내려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주민들은 이 가파른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을 것이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오르내렸을 가파른 계단, 지금은 모노레일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조금만 더 오르면 ‘망양로(望洋路)’와 만난다. 이름처럼 부산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길로 발길 멈추는 곳 모두가 전망대다. 황홀한 풍경에 걸음이 느려지다가 멈추면 ‘유치환 우체통’이 맞아준다. 우체통은 전망이 좋은 곳에 바다를 등지고 서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되는 유치환의 시 <행복>이 절로 떠오른다. 유치환 우체통은 부산 동구와 인연이 깊은 유치환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유치환의 우체통. 편지를 넣으면 1년 뒤 배달된다. 사진=한국관광공사)

 

 

낙동강 하구 생태길은 을숙도 에코센터에서 출발해 을숙도 문화회관~맥도생태공원~낙동대교~삼락강변공원~구포역~구포나루까지 이어진다. 총길이는 약 22km로 걸으면 6시간 정도 걸린다. 포장된 도심길과는 달리 흙길이 많다. (사)걷고싶은부산의 조사에 따르면 이 생태길은 수변 흙길 13km(59%), 고수부지길 5km(23%), 인도 4km(18%)로 구성되어 있으며, 낙동강 하구의 자연과 역사, 인간, 문화를 함께 맛보고 즐길 수 있다.

 

맥도생태공원에 이르면 공원 내 둔치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있다. 대저 어촌계 선착장 쪽으로 들어가면 수생식물원과 탐방데크, 연꽃습지, 생태학습원을 구경할 수 있다. 강둑길 아래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길도 운치가 있다. 습지 중간에 조성된 ‘낙동강 습지길(6.5km)’은 걷는 길로 매력만점이다. 온전한 흙길인데다 연도에 습지식물이 길손을 맞이한다. 보행용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연꽃단지 역시 볼거리다. 7~8월에 꽃이 피면 맥도생태공원 전체가 연꽃향에 빠져든다.

 

맥도생태공원 끝자락에 있는 낙동대교를 통해 강을 건너면 삼락생태공원을 만난다. 규모가 자그마치 140만 평이다. 자연습지와 잔디밭, 체육시설, 오토 캠핑장, 산책로 등이 어우러져 걷고 놀기에 그만이다.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걸르면 예술적 감흥도 뿜어져 나올 듯하다.

 

 

(낙동강 하구둑을 끼고 시비가 7기나 연이어 있다)

 

 

강서구쪽 낙동강 하구 제방에는 1980년대 초부터 하나둘씩 시비가 7개 세워졌다. 이은상 시비 2기와 금수현 노래비, 배재황 시비, 박목월과 조지훈의 시비, 이주홍 시비가 그것이다. 둑길을 따라 걷다가 시 한 수, 한 구절을 음미하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금수현의 <그네>’ 노래비는 까만 오석에 흰 글씨로 악보와 가사를 새겼다. 이 노래비는 인근 금수현 음악거리를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가곡 <그네>의 작사자는 금수현의 장모이자 소설가인 김말봉이고 아들은 지휘자 금난새다.

 

‘이은상의 <낙동강>’ 시비는  등구마을 맞은편 둑길에 있다. 거북이가 올랐다 해서 ‘등구(登龜)’라 부른다. 이곳은 고향길이라고도 하는데, 1970년대 김해공항을 통해 고향을 찾은 재일동포가 벚나무 450그루를 심고 고향길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어서 ‘배재황의 <오막살이>’, ‘이은상의 <고향길>’ 시비가 서있다. ‘갈숲에 오막살이/ 찾을 이 그 누구랴’로 시작하는 <오막살이>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그득하다. 한편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세워진 시비도 있다. ‘박목월의 <나그네>’와 ‘조지훈의 <완화삼>’이다. 두 시인은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며 평소 우정이 남달랐다. 경주에 살던 박목월이 서울 살던 지훈을 경주로 초대했고 며칠 대접을 잘 받은 조지훈이 쓴 시가 <완화삼>이다. 목월도 시로 화답하니 <나그네>다. 우정을 넘어선 시정(詩情)이 나란히 마주보고 있어 두 사람의 우정을 느끼게 하듯 정다운 시비들이다.

 

[조지훈의 <완화삼>(왼쪽) 시비와 박목월의 <나그네>(오른쪽) 시비가 마주보고 있다]

 

 

<완화삼: 부제 목월에게>(조지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나그네 >(박목월)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지훈(에게)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주홍의 시비 <엄마의 품>은 그 모양새가 특이하다. 대나무 피리 2개는 엄마와 아기의 단란함을, 대숲에 비치는 반달은 모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새들이 그렇게/ 많이 날아도/ 구름이 그렇게/ 많이 떠가도/ 그런 것은 다/ 하늘안에/ 있는 것 같이/ 이 세상에/ 어머니보다/ 큰 것은 없지/ 사랑도 미움도/ 그 안에 담기는/ 자랑도 허물도/ 그 안에 묻히는/ 높다가 높다가/ 끝 간 델 몰라/ 파랗기만 한/ 파랗기만 한/ 저 하늘같은/ 엄마의 품‘.

 

(“부산의 길’ 스토리텔링 전시장과 개막 첫날 행사 장면)

 

한편 ‘부산의 길’ 원천콘텐츠 관련 전시회는 부산역 앞 광장호텔 2층 삼진어묵 카페에서 이달 31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부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 051-554-0159

 

(사진=남궁은 기자)

sblee@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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