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의 이야기

구포 장타령(場打令)

구포 장타령(場打令)

 

       <낙동민술예술제엔서 재현한 구포장터놀이>

 

낙동강 하류 지역에 위치한 구포(龜浦)에는 조선시대 정부에서 받아들인 조세(租稅), 곡물(穀物)등을 쌓아두는 남창(南倉)이 설치되어 공물선(貢物船), 상선(商船), 어선(漁船)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남창 근처의 강변일대에서 3일, 8일 닷새만에 섰던 구포장(場)은 낙동강 유역의 생활물자를 집산(集散)하는 교역지(交易地)로서 크게 번창 할 수 있었다. 장터가 서게 된 것은 17세기 무렵으로서 농어민들이 그들의 생산물인 곡물이나 가축, 생선, 소금, 수공업 제품등을 가지고 와서 물물교환이나 또는 미포(米布), 전화(錢貨)를 매개(媒介)로 하여 필요한 물자를 살수 있었다. 장터는 지방민이 하루 일을 쉬면서 물자조달을 위해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적인 기능과 함께 장날이 되면 서로 만나 교유(交遊)하고 정보를 입수 하는 등 백성들의 생활 원천으로서 축제적 분위기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구포의 장터는 현재 장이 있는 곳이 아니라 남창이 있던 강변 쪽에서 철도 건널목이 있는 구포파출소 앞의 넓직한 마당에서 장이 섰고, 부근의 골목마다 시장이 벌어 졌다고 한다.강변쪽의 나루터에서부터 생선전, 젖갈전이 섰고 안쪽에서 짚신전, 포목전, 잡화점등이 진열하여 매매 하였으며 중국상인 골목도 있었고 쇠전(牛廛), 나무전 등이 있었다.장날이 되면 상품을 가지고 장터를 돌면서 행상을 했던 등짐, 봇짐 장수들이 찾아왔고 또 하나 밥을 빌어 먹으면서 장바닥을 누비던 각설이들이 찾아와서 장타령을 부르면서 문전걸식(門前乞食)을 하였다.각설이들은 시장의 점포를 돌면서 노래를 불러서 문안을 드리면 주인은 무엇이든 조금씩 베풀어 주었고 그러면 각설이들은 다음 집으로 찾아 나선다.각설이타령은 서두에 ‘얼씨구 씨구 들어 간다’는 가사를 반복하면서 갖가지 타령을 부르는데 전국에 찾아 다닌 장(場)이름을 붙여 재미있는 사설(辭說)들을 늘어 놓는 장타령을 부르게 된다.장타령은 서북(西北)지방, 강원도, 충청도 등지의 장타령이 있는데 구포장이 나오는 장타령은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재미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 구포 장타령 내용  

● 문안인사와 신세타령     

어허허리고 들어간다 품바 좋다 각설아    

아래장에는 눈이 오고 

어제장에는 비 오고    오늘 장에는 내가 왔소     

먼저번의 고령(高靈)장 고뿔 풀어 못 보고    

다음날의 현풍(玄風)장 바람 불어 못 보고    

아렛날 야로(冶爐)장 야단 맞아 못 보고    

어제날 성주(星州)장 성이 나서 못 보고    

이핑게 저핑게 못 보고 오늘 구포장을 찾아 왔소 

 

이렇게 장터를 돌아 다니면서 어디 어디를 들렀다가 오늘 여기 찾아 왔노라고 이렇게 문안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어서 각설이가 된 신세타령을 늘어 놓는다.   

우리야 부모님이 날 낳어(아)서 어이 고이나 길렀네  

독서감내 앉햐(혀)서 공자맹자 다 늘쳐  

물려 줄 것이 없어서  튀전 한 벌을 물렸네  

품바나 얼시구 좋훗네 거들거리게도 생겼다.

 

●각설이 숫자 풀이 

1자, 2자, 3자, ····9자, 10자까지 들먹이며 숫자에 맞는 사설을 늘어 놓는다.  

일자나 한자 들고보니 일월이송송 해송송 밤중에 샛별이 완연하네.      

하늘 빠딱(번쩍) 쳐다보니 북두칠성이 돌아갔네 

(후렴) 어절시구 잘한다  품바나 품바나 자리한다 

 

이자 한장 들고보니 진주기생 의암이는 우리나라를 섬길라꼬 

왜장청청 목을 안고 진주 남강에 떨어졌네 

(후렴) 

 

삼자 한장 들고보니 삼동가리 늘어졌는데 

팔도어사 오신다고  등촉 밝히기가 바빴네  

(후렴) 

 

사자 한장 들고보니 사시청풍 가는 길에 

외나무 다리 친구만나 인사하기 바빴네 

(후렴) 

 

오자 한장 들고보니 오관참장 관운장은 

적토마를 집어 타고 제갈선생을 찾아간다 

(후렴) 

 

육자 한장 들고보니 육지장지는 대장지 대국서 나왔다

집사장 대국사신 드나들때 편지 전하기 바빴네         

(후렴) 

 

칠자 한자 들고보니 칠년대한 가뭄날에 앞뒤뜰에 비가 묻어 

방울방울 빗방울 줄기줄기 빗줄기 만인간이 춤을 춘다 

(후렴) 

 

팔자 한자 들고보니 아들형제 팔형제 한서당에 글을 읽고 

경주 서울 첫서울 과거하기를 힘쓰다 

(후렴) 

 

구자 한자 들고보니 구실구실 늙은중 백팔염주 목에 걸고 

마을동냥 하느라고 밥술 놓기가 바빴네 

(후렴) 

 

장자 한자 들고보니 서울이라 장안에 범이 한마리 있는데

그 범한마리 잡으려고 일등포수가 다모여  

그 범한마리 못잡고 제물에 살큼넘겼네 

(후렴) 

 

● 신세타령과 고리타령   

우리 부모가 날 길러 영화도 보렸더니  

전생의 팔자가 기 막혀  몹실(쓸)년의 병이 들어  

요러나(이러한) 종사를 하고 있네  

품바나 얼시구 좋훗네 거들거리게도 생겼다  

생겼다가 병 나면 곁에 약국은 판 나고  

먼데 약국은 씨(쓰)러 진다.  

오르릉 부르릉 물레질 청사도복에 바느질  뒷집 큰 애기 노루개라.  

이어 품바 좋 -- 다   품바품바 각설이        

자나 한장 들고 보니  골골에서 모인 장꾼   

나의 행색 거동 바라본다  입는 고리는 저고리    

나는고리는 꾀꼬리  뛰는 고리는 개고리    

여는 고리는 문고리  거는 고리는 귀고리    

골골마다 다녀도   우리 구포장이 제일일세 

 

이렇게 슬쩍 찾아간 고장을 인심이 좋다고 찬사를 늘어놓는다. 

 

● 전국장타령  

 뚤울뚤울 돌아 왔소       

각설이라 멱서리라  동서리를 짊어지고        

뚤뚤몰아 장타령  서서본다 서울장  다리가 아파 못보고  

앉아본다 안성장 궁댕이 아파 못보고  

설설긴다 기계장 무릎 아파 못보고  

황금빛에 구리장은 눈이 비취어 못보고  

해 넘어간다 서산장  어둠침침 못보고  

술 취한다 청주장 어지럽어 못보고  

예산없는 예산장 너무 비싸서 못보고  

껑충뛴다 제천장 신발없어 못보고  

바람분다 청풍장 선선해서 못본다  

얼었다 녹았다 논산장  나막신이 없어 못보고  

마음순한 순천장  너무 히퍼서 못보고  

거래 찔긴 여수장  인정이 없어 못보고  

동서남북 사방장  왔다 갔다 못본다   

화강장을 보잣드니      영감많아 못보고  

온양장을 보잣드니      건달많아 못보고  

아산에는 둔포장         큰 애기술장사 제일이라  

보은청산 대추장은     처녀장꾼 제일이요  

엄병주천 충주장은     황색연초 제일이요  

천안이라 옛장터는     능수버들 척늘어졌다 

 

● 강원도 장타령  

춘천이라 샘발장      신발이젖어 못보고 

흥천이라 구만리장   길이멀어 못보고 

이귀저귀 양귀장      당귀많아 못보고 

한자두자 삼척장      배가 많아 못보고 

명주바꿔 원주장      값이비싸 못보고 

횡설횡설 횡성장      에누리많아 못보고 

값많은 강릉장         값이비싸 못보고 

이통저통 통천장      알것많아 못보고 

엉성듬옷 고성장      심심해서 못보고 

이천저천 이천장      개천많아 못보고 

철턱철턱 철원장      길이질어 못보고 

영넘어라 영월장      담배많아 못보고 

어화저화 금화장      놀기좋아 못보고 

희희층층 희양장      길이험해 못보고  

이강저강 평강장      강물없어 못보고 

정들었다 정선장      갈보많아 못보고 

화목많은 화천장      길이막혀 못보고 

양식팔아라 양양장   쌀이많아 못보고 

즉금왔다 인제장      일이바빠 못보고 

울퉁불퉁 울진장      울화나서 못보고 

안창곱창 평창장      술국좋아 못보고 

태산같은 태백장      너무 높아서 못보고 

 

 

● 각설이 서리타령 - 먹자타령  

어절시구시구 들어간다 저절시구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7, 8월에는 홍서리  타작 마당은 콩서리 

빌어먹을 서리는 각설이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비록 거지 행세를 하지만 나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말이 많다고 늘어 놓는다  

이놈의 각설이 이래도 정승판서 자제로서 팔도 감사 마다하고 노랑이 돈에 팔려서 각설이로 나섰네  

지리구 지리구 잘한다 품바하고 잘 한다 찬물동이나 먹었는지      

시원시원 잘 한다 기름동이나 먹었는지      

미끈미끈 잘 한다 뜨물동이나 먹었는지      

걸직걸직 잘 한다 새끼사리나 먹었는지      

설 - 설이 잘 한다 논어맹자를 읽었는지      

유식하게도 잘 한다 사서삼경을 읽었는지      

대문대문 잘 한다 네 선생이 누구인지        

날보다도 잘 한다 

 

이처럼 각설이들은 걸식을 하면서도 애교가 있는 말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 바지 각설이  

내리(려)가면 이바지        올라가면 막바지 

여름바지는 홑바지          겨울바지는 합바지 

얼시구나 들어간다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여름바지는 흩지고          겨울바지는 툭지고 

이바지 저바지 막바지      진짜바지는

아바(버)지 얼시구나 들어간다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 낙동강하류지역 장타령

장터를 따라 돌며 구걸을 하였던 가설이들의 장타령은 낙동강 하류지역에 와서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낙동강 최남단 부산의 낙동강변에서 1985년 개최한 낙동민속예술제에 참가했던 <구포 장타령>은 좋은 자료로 보존되면서 노래를 불렀던 박복명 할머니는 예능보유자와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라디오, TV 등에 자주 출연해 왔다.  

 

샛바람 반지 하단(下端)장              엉덩이가 시러버(워)서 못 보고 

골목골목 부산(釜山)장                  질(길) 못 찾아 못 보고 

나리(루) 건너 맹호(鳴湖-명지)장   선개(船價)-뱃삯) 없어 못 보고 

벌판같은 김해(金海)장                  여빗돈이 없어 못 보고 

강건너 떡돌(德斗)장                     나릿(룻)배가 없어 못 보고 

꾸벅꾸벅 구포(龜浦)장                 허리가 아파 못 보고 

고개 너머 동래(東萊)장                다리가 아파 못 보고 

미지기 짠다 밀양(密陽)장            싸게를 묵(먹)어서 못 보고 

아가라 크다 대구(大邱)장            너무 넓어서 못 보고 

이산 저산 양산(梁山)장               산이 가리어서 못 보고 

울루루 갔다 울산(蔚山)장           하도 바빠 못 보고 

언제 볼까 언양(彦陽)장              어정어정 못 보고 

남실남실 남창(南昌)장               물이 짚(깊)어서 못 보고  

들락날락 입실(入室)장              문이 닫혀 못보고 

코 풀었다 흥해(興海)장             미끄럽어서(러워서) 못 보고 

똥 샀다 구례(求禮)장                구린내가 나서 못 보고 

깎아 말린 감포(甘浦)장             딱딱해서 못 보고 

이리저리 못 보고 장꾼              신세가 말 아니네 

이장 저장 못 보고 장타령만 하는구나 

품 - 품 - 각설아 이장 저장 다 다녀도 우리 구포장이 제일일세  

가시나 머슴아 합천(陜川)장 노인들의 잔치 고령(高靈)장 바람이 세어 풍기(豊基)장          

먼지가 날려 못 보고 초상났다 상주(尙州)장              

눈물이 가리워 못 보고  눈 빠져졌다 명태(明太)장          

어두워서 못 본다 희떡퍼떡 갈치장                       

눈이 부셔 못 본다 서가 봐도 좌천상                      

아이고 추워서 못 보겠다

 

● 각설이 <길타령>  

길로 길로 가다가                     동전한닢주웠네 

주운 동전 남을 줄까                남을 주느니 내가 하지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혼자가면 심심길                      둘이가면 담뱃길

셋이가면 가레길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넷이가면 투전길                      투전 끝에는 웃통길 

돈잃은 놈은 짜증길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옆에 놈은 개평길 주먹              큰 놈은 무법길 

돈 딴 놈은 도망길                    어절시구나 잘도한다 

저절시구나 잘도한다               품바나 품바나 잘도간다 

 

● 잡각설이 타령  

잡놈 한번 섬겨보자                물밑에 잡놈은 뱀장어 땅밑에 잡놈은 뒤지기             

어절시구 들어간다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지상 잡놈은 개자식                하늘의 잡놈은 조물성 인간의 잡놈은 각설이            

어절시구 들어간다 품바나 품바나 들어간다 

 

이처럼 각설이들은 온갖 타령을 늘어 놓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동냥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 내차지 타령

국전으로 찾어(아)가면         국물 차지는 내 차지

떡전으로 찾어 가면              고물 차지는 내 차지 

담배전에 찾어 가면              뿌스레기 담배는 내 차지 

고기전에 찾어 가면              비늘 차지는 내 차지 

옷전으로 찾어 가면              헌두디기 차지는 내 차지 

쇠전(牛廛)으로 찾어 가면     소똥 차지는 내 차지 

이장 저장 다 다녀도             우리 구포장(龜浦場)이 제일일세. ● 구걸 그리고는 한푼달라고 본격적인 구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머니 보기는 반갑고  술단지 보기 즐겁고 소꼿밑을 보니 정 떨어진다 (후렴) 왔소 왔소 내가 왔소  내가 왔어도 싫어하고 술달라 해도 싫어하고  만장판에 장꾼들요 이내 말을 들어보소 어허 품바 각설이 온 장꾼이 몰려온다 아지매 한푼 주이소 아제도 한푼 주이소 오라는데는 없어도 볼 곳도 많으니 날 좀 보내 주이소 나는 이 짓이 농사이니 이 타령을 놓으면 기집자슥(계집자식) 다 굶기고 하리(루)장만 빠지면 할애비 손자 다 죽으니 다음 장에 또 오겠소
원본출처: 낙동문화원http://library.bsbukgu.go.kr/html/06story/story/060301.php

구한말 동래읍내장터 모습
 
박복명 할머니와 장타령


장타령(場打令)으로 알려 진 박복명(朴福命) 할머니. 박복명 할머니는 삼락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사람으로 지난날 가포(삼락동의 옛지명)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정많고 부지런한 이웃으
로 기억하고 있다. 박 할머니는 젊은 시절 삼락동에서 3남2녀를 키우며 살았지만 노년에 1980년
초 건축업을 하는 장남(장인만63)따라 구포1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할머니는 1918년생으로 일제시대 3.1독립운동이 일어나기 한해전에 남천동 바닷가에서 태어나 21
세 때 연산동으로 시집가서 농사를 짓다가 27세 때 사상 삼락동의 논 몇마지기를 사고 강변 갈대밭
을개간하여 정구지(표준어로부추)를 비롯하여 채소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런데 35세 되던 해
남편이 별세하자 혼자 힘으로 농사를 지으며 3남2녀를 자녀를 키웠다. 할머니는 몸이 건강하고 힘
이 좋아 남의 도움없이 혼자서 농삿일을 감당해 내었다.
그 당시 삼락 정미소에서 쌀을 찧어 한다라이에 고두로 쌀 6말을 머리에 번쩍이고 집에까지 날랐
다고 하니 여장부다운 데가 있었다.


3남2녀를 키우며 혼자 힘으로 봄여름엔 정구지를 베고 가을 달밤엔 나락을 베고 갈밭을 개간하는
등 힘들게 살아 왔던 박 할머니가 장타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젊은 시절 동서들
과 함께 구포장날에 장보러 왔다가 각설이패들의 노래를 듣고 금방 외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원래 흥이있고 목소리도 좋았지만 뛰어난 암기력으로 무슨 노래를 한번 들으면 반드시 외워버맇
정도였다고 한다.이 말을 입증하는 것은 박 할머니의 어린 시절 완고한 부친 밑에서 신학문을
배울 수 가 없어 한글을 읽지 못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대외적으로 더욱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1985년 낙동청년회의소가 구포 낙동강변에서 개
최한 낙동민속예술제에 각설이 패들과 함께 나와 장타령을 불러 우승을 하였고 그뒤 MBC-TV 특집
프로에 소개되어 매스컴을 타기 시작했다. 1990년 KBS특집 '낙동강'등 3회에 걸쳐 TV출연을 하여
잊혀져 가는 옛 가락을 후세들에게 들려 주었다. (예능보유자와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라디오,TV
등에 자주 출연해 왔다) 구포1동에서 노년을 보내시던 박할머니는 2007년 1월9일(음력) 돌아가셨
기때문에 더 이상 구수한 장타령을 들을 수 없다.

 

 

<<박복명 관련 글>>

이원우 수필

  오후 늦게 백이성 문화원장을 만났다. 그가 이끄는 대로 문화원에 들러서 지역 문화 돌아가는 얘길 나누었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소식, 그와 내가 너무나 아끼고 존경하던 박복명 할머니가 세상을 떠셨다는 것이다. 전하는 그나 듣는 나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탄식이다, 오호 애재라!

  할머니와의 인연은 백 원장이나 나 자신 경중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내 노인 학교에서 서른 곡 정도의 민요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학생, 백 원장의 입장으로 보면 낙동 민속 예술제에서 구포 장타령을 간단없이 ‘퍼부을’ 수 있었던 기능 보유자. 백 원장이 그와 나를 장타령으로 한데 묶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전직 교장이자 현직 노인 학교장인 나와 그 노인 학교 수제자 아니 애제자인 박복명 할머니의 동반 출연이 이루어졌다면? 체통 어쩌고저쩌고 하여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늘썽늘썽한 짜임새는 아니었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다시 한번 아쉬움을 느낀다.

  박복명 할머니에 대한 보충(?) 설명? 그래 하자. 할머니는 일자 무식꾼이다. ‘여기 들어오면 죽는다’라고 상인방(上引枋)에 써 붙여도 거침없이 문을 열 노인이다. 아니 더 극단적으로 설명하자. 할머니는 자기 이름 석 자도 아니 성(姓) 한 자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런 노인이 민요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잘 부른다는 사실, 그걸 무슨 재주로 설명한단 말인가? 방송에 출연한 국악인이 ‘새타령’을 부르면서, 쌩긋쌩긋 날아든다 어쩌고저쩌고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할머니는 쌍거쌍래(雙去雙來)라 한다. 내 입에서 불가사의란 말이 어찌 아니 튀어 나올 수 있겠는가? 가설극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그 의문이 풀리지만 이제 그 고백을 들을 수 없으니, 그리울수록 오히려 찜부럭이 나는 걸 어쩌랴. 불가사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