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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백년장수로 가는 부산의 맛

백년장수로 가는 부산의 맛

뜨끈한 국물 한 그릇에 집안 자부심 한가득…문화유산 안 부럽네

  • 국제신문
  •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
  • 2012-12-31 18:48:32
  • / 본지 34면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몇 대를 이어 내려오는 음식점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100년을 훌쩍 넘긴 곳도 적지 않다.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밑바닥에는 반드시 '맛있는 곳'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깔려 있다. 

부산으로 눈을 돌려보자. 100년은 고사하고 50년 이상 된 곳도 찾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가 물을지도 모른다. 요즘 음식점도 맛있는 집이 천지에 깔려 있는데 굳이 오래된 집을 찾으려는 이유가 뭐냐고.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꼭 찾자면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있는 맛집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까라는 정도일 게다. 이 '모범답안'에 동의를 한다면 이제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월이 곰삭은 지역의 맛집을 안다는 것은 부산의 정체성과 문화를 재조명할 수 있다는 데까지 논리가 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년을 장수하는 음식점은 부산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소재이기도 하다.

- 1·4후퇴 때 자리 잡은 '내호냉면' 
- 고향 함경도의 맛 3대째 지켜내 

- 평양서 피란 와 정착한 '박달집' 
- 73세 손자가 전통의 방식 계승 

- 서민층 허기 달랜 '송정3대국밥' 
- 1946년 좌판서 출발 후 대 이어 

- 60년 입맛 돋운 한우전문 '급행장' 
- 비밀의 특제양념 '기장곰장어' 등 
- 세월의 더께 수북한 장수맛집들 
- 부산 가치 높이고 정체성 재조명 

■피란민의 애환 담은 '전래' 맛집 

   
'박달집'의 개장국
부산의 오래된 맛집 중 한 곳은 남구 우암2동 '내호냉면'이다. 6·25전쟁 이후 피란민의 애환을 대표하는 음식인 밀면으로 3대를 이어오고 있다.  

1대 사장인 고 이영순 씨는 1919년부터 함경남도 흥남시 내호리 내호시장에서 '동춘면옥'이라는 상호를 걸고 냉면을 팔았다. 1·4후퇴 때 피란을 와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지금의 남구 우암동이다. 이 씨의 딸인 고 정한효 씨 역시 냉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중 당시 미군 보급품으로 제공됐던 밀가루를 이용해 밀면을 만들었다. 맛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곧 북한식 밀면이 우암동의 대표 먹거리가 됐다. 1984년부터는 정 씨의 며느리인 이춘복(62) 씨가 가업을 지키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 씨는 대를 잇는 맛의 비결에 대해 "고향의 이름을 따 장사를 하는 만큼 고향의 방식 그대로 변형을 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런 고집 덕분에 다른 첨가물 없이 소의 양지머리와 아롱사태, 등뼈 등 부위를 넣고 24시간 끓여 우려낸 국물은 '깔끔 그 자체'다.

피란민으로부터 전해진 음식은 밀면뿐만이 아니다. 부산 금정구 구서2동의 개장국(보신탕) 전문점 '박달집'은 1920년 북한 평양에서 '성천관'으로 고 박여숙 씨가 문을 연 이래 맛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와 강원도 삼척을 거쳐 1987년 손자 임완규(73) 씨가 부산에서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임 씨는 "할머니의 맛을 기억하는 집안 어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현재의 박달집도 없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경북 상주의 청정 환경에서 미생물 사료를 먹고 자란 고기 맛과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무술주(戊戌酒)'는 부산 내 식도락가들로부터 소문이 자자하다.

■집안 비법 계승·발전 '향토' 맛집 

   
돼지국밥을 말고 있는 최병순 씨의 모습을 아들인 김기훈 씨가 지켜보고 있다. 이들 모자는 지난 10년간 송정3대국밥을 함께 운영해왔다.
부산에는 오랜 시간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온 토속 맛집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진구 서면시장의 '송정3대국밥'이다. 1946년 고 송갑순 씨가 부산 연지시장에서 국밥 좌판을 벌이면서부터다. 이후 6·25전쟁이 끝나고 당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렸던 서면으로 가게를 옮겼고, 1960년 초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았다. 

현재 식당의 운영은 며느리인 최병숙(66) 씨를 거쳐 아들인 김기훈(44) 씨가 맡고 있다. 사장은 젊어졌지만 주방을 담당하는 종업원들은 30~40년 동안 이 집의 맛을 책임져온 이들이다. 손님 중 상당수가 부모와 함께 어릴 때 느꼈던 맛을 잊지 못해 대를 이어 찾아온다. 

김 씨는 장수 맛집의 비결에 대해 "끊임없이 고객 요구에 부응하며 다양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부재료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집의 국밥은 50여 가지가 넘는다. 

국밥과 함께 1950년부터 서면에서 지역민의 입맛을 책임져온 곳이 한우고기 전문식당 '급행장'이다. 고 손남출 씨에 이어 현재는 아들인 손재권(56) 씨가 가업을 승계해 17년째 운영 중이다. 이곳 역시 식당 내 종업원들 모두 35년 경력의 베테랑들이다. 60년 맛집의 비결은 고기 주요 부위에 붙어있는 살치살, 꽃살 등 특수부위를 별도로 떼어내 판매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갈비, 등심 등 고기 주요 부위의 맛과 품질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

서면에 돼지와 소고기가 있다면 기장엔 곰장어가 있다. 기장군 시랑리의 '기장곰장어'는 1920년대부터 집안 어른들이 곰장어를 잡아 장터에 내다 팔던 것을 되살려 1976년 현 주인 김영근(70) 씨가 특색화시켜 유명해진 집이다.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해 감초 대추 등 한약재를 소주에 3~4개월 숙성시켜 만든 특제양념을 사용한다. 제조법은 아직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다른 오래된 맛집들과 마찬가지로 김 씨의 아들도 아버지의 비법을 전수 받기 위해 열심히 가업을 돕고 있다. 

김 씨는 "대를 이어 장사하면 맛과 경영의 노하우는 물론 단골손님까지 전수받을 수 있다"며 "맛을 유지하면서도 독창성을 연구하는 게 장수 맛집의 비법"이라고 강조했다.


# 피란민의 삶과 애환 '맛'으로 남아 

- 막창순대·밀면… 6·25전쟁 때 유입 
- 돼지국밥·팥죽 … 일본식 문화 접목 

- 해물파전·산성막걸리·멸치회 등 특성 살린 '부산표' 먹거리도 풍성

파전 돼지국밥 당면 곰장어 단팥죽…. 

모두 부산이 자랑하는 대표음식들이다. 하지만 정작 그 유래를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다. 부산 고유의 음식으로 알려진 음식들 중 상당수가 사실 부산이 '원조'가 아니라 타지에서 유입돼 토착화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식 전문가들은 역사적 사건을 거치는 동안 타 지역 사람들이 부산에 들어오면서 해당 지역의 먹거리 문화도 함께 유입된 결과로 설명했다. 대표적인 음식이 막창 순대다. 이 음식은 6·25전쟁 후 함경도 지방의 피란민들이 부산에 순대 제조법을 전하면서 그 유래가 시작됐다. 전래 초기엔 고기를 위주로 돼지 선지, 내장, 숙주 등을 재료로 한 순대가 일반적이었지만 당시 서민들의 주 먹거리였던 비빔당면을 먹고난 후 남은 자투리를 넣어 당면순대가 탄생됐다. 마찬가지로 밀면도 피란을 내려온 함흥과 평양 사람들이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구하기 어렵자 대신 군수물자로 배급된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것이 시초다.  

가까운 일본의 문화가 접목된 경우도 있다. 돼지국밥은 6·25전쟁 때 서울의 피란민들이 소뼈를 우려내 먹던 설렁탕에 돼지 뼈를 우려 육수를 내는 일본식 문화가 접목돼 탄생됐다. 70여 년 전 남포동 일대에서 널리 퍼졌던 단팥죽 역시 우리 고유의 팥죽과 달리 갈분(녹말의 일종)과 설탕 등을 넣는 일본의 제조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산물이다.

 

물론 부산 고유의 전래 음식도 있다. 우선 해산물과 파가 풍부한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동래해물파전을 손꼽을 수 있다. 산성막걸리 역시 습도와 온도가 높아 누룩이 숙성하기 좋은 지리적 조건을 이용한 음식으로 유명하다. 기장 멸치(멸치회)와 곰장어, 굴(굴떡국) 등과 같은 원물의 특성을 살린 음식들도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들이다.
 

'김나경 전통음식연구소' 관계자는 "지리상 타지와 교류 기회가 적었던 부산 음식은 화려한 멋이 부족하다"며 "대신 주변의 산과 바다, 들에서 나는 다양한 식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린 것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 '동래할매파전' 김정희 사장 

- 오랜 스토리와 노하우로 춤추듯 세월을 구워내다 
- 1940년부터 4대째 전문한식당 운영 
- "전통에 기반한 차별화 추구가 비법" 

   
"원조집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어요. 지역에서 나고 자라는 향토음식의 맛을 어떻게 특정한 집에 한정할 수 있겠습니까." 

4대째 부산 동래에서 파전 전문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희(49·사진) 씨의 지역 고유 음식점에 대한 해석이다. 그가 현재 운영 중인 '동래할매파전'은 지난 1940년부터 4대째 며느리들에 의해 운영돼온 파전전문 전통식당이다.

창업주인 고 강매희 씨는 72년 전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심산으로 동래 장터에서 파전을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해방 후 며느리 고 이윤선 씨 때부터 지금의 복천동 자리에서 식당의 모습을 갖추고 파전을 부쳐 팔다가 1986년 이 씨의 며느리 고 김옥자 씨가 뒤를 이어받았다. 같은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했지만, 규모와 모습은 해를 거듭할수록 변모해 지금의 김 씨가 운영하는 식당의 모습을 갖췄다. 그는 1987년 시집을 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1994년부터 동래할매파전의 안주인이 됐다.

김 씨는 "시어머니 때만해도 동래지역에 솜씨 좋은 파전집이 많았지만 다들 대가 끊겨 명맥을 잇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자랑하는 동래할매파전의 대를 이은 손맛은 '질척하다'라는 말로 표현된다. 다른 집 파전들이 바삭한 파전을 내놓는 것과 달리 이 집 파전은 씹었을 때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하고, 연한 식감을 자랑한다. 찹쌀이 많이 포함된 반죽을 부쳐낸 후 찜을 하듯 뚜껑을 덮어 증기로 마무리를 하기 때문이다. 

펼쳤다 모았다를 반복하며 동래파전을 굽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뒷모습에서 전통춤을 추는 것과 같은 역동미가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김 씨는 각 지역의 약선 요리법 등을 배워 동래의 다양한 전통음식들과 접목시키는가 하면, 여러 가지 식재료들을 메뉴화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고둥을 즐겨먹었던 동래지역의 전통을 되살려 만든 '동래고둥찜'이다.

김 씨는 "전통성을 기반으로 차별성을 추구할 때 비로소 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면서 "요즘 음식도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오랜 세월 노하우와 스토리를 축적해온 전통을 통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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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 <38> 동래할매파전

‘파전 먹는 재미로 동래장에 간다.’ 동래 인근 마을에서 이런 말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볼일이 없더라도 동래파전 맛을 보는 재미에 사람들은장날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맛이얼마나 좋았으면 동래부사가 조정에 진상하던 음식이라는 구전까지 전할까.

아마 동래의 파가 진상품이어서 그런 구전으로 발전한 것 같다. 짐작컨대장꾼을 상대로 팔던 파전은 전통 방식대로 부친 부침개는 아닐 것이다. 동래파전은 음식 중에서도 귀족의 반열에 오르는 별식이었으니까. 여유가 있는 집에서만 봄철에 별식으로 부쳐 먹었다. 우선 재료만 보아도 여염집에선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다.

은은한 불로 미리 달궈 놓은 번철에 쌀가루(찹쌀과 맵쌀) 반죽을 한 국자떠 놓고 양념한 쇠고기와 조갯살 굴 홍합 등을 골고루 얹는다(번철은 지짐질에 쓰는 주방용구로 무쇠로 만든다). 살짝 익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반죽을 한 국자 붓고 뚜껑을 덮는다. 그래야 쌀가루가 제대로 익을 뿐 아니라파의 향기가 날아가지 않고 골고루 스며들어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반죽하는데 밀가루는 다른 지짐이와 달리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밀가루는점착력을 높여주는 역할에 머문다. 쌀가루는 파전의 깊은 맛을 한껏 살려낸 재료다. 조갯살 굴 홍합 등 패류는 독성이 생기는 5월부터 여름 한 철은 피하고 대신 오징어 등 다른 해물을 넣는다. 번철에 두르는 기름은 제주의 유채씨로 짜낸 채용유를 쓴다.

부침개의 느끼한 맛을 죽여주기 때문이다. 파전을 찍어먹는 양념도 간장이아니라 초고추장을 내놓는다. 해물의 풍미를 더욱 살리기 위해서다. 파전을 부치는 시간은 보통 10분 안팎정도 인데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처음에는 센 불로 굽다가 뚜껑을 덮을 무렵에 약한 불로 낮춰 2분 정도 뜸을 들인다.

부산 동래구 복천동 ‘동래할매파전’은 그런 방식으로 파전을 굽는다. 부산의 민속음식점 1호로 지정된 이 집은 동래파전을 으뜸요리로 내놓는 유일한 음식점이다. 며느리들에 의해 4대에 걸쳐 70여년의 전통을 쌓아왔다.

“파의 향기와 해물의 시원함이 어우러진 봄날의 맛이야.” 4대 주인 김정희(金貞姬ㆍ41)씨가 동래파전의 맛을 묻자 시어머니는 생전에 그렇게 대답했다. 김씨는 이렇게 이해한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 아닙니까. 조선쪽파를 비롯해 파전에 들어가는 재료 역시 봄철에 맛이 가장 살아난다고 합니다.” 동래파전은 무엇보다 조선쪽파로 구워야 제 맛이 난다.

이젠 파전이 사계절 음식이 됐지만 원래는 봄철에 가장 맛이 있다. 조선쪽파는 삼짇날(음력 3월3일)을 전후로 한창 물이 오르기 때문인데 나이 든손님일수록 봄철에 찾아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듯 동래파전은 새봄의 향기를 선사하는 계절음식인 것이다.

동래할매파전은 김씨의 시증조할머니가 1930년께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래시장 동문입구에 있던 유명한 요릿집 진주관의 주요리로 파전이손님상에 오른 시기도 이 무렵이다. 부침개 하나를 해도 이웃끼리 나눠 먹는 것이 우리네 풍습이듯이 동래할매파전도 그런 풍습이 계기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시증조할머니의 솜씨가 좋았던지 동네사람들은 장사를 권했다. 가용에 보태기 위해 동래시장에 좌판을 차렸다. 그렇게 시작된 동래할매파전은 시할머니(이윤선ㆍ86년 타계) 시어머니(김옥자ㆍ95년 타계)를 거쳐 김정희씨에게까지 대물림됐다.초창기에는 당연히 상호도 없었다. 시할머니 시절에 ‘제일식당’이라는상호를 처음 내걸었고 70년대 들어 ‘동래할매파전’으로 바꿨다. 당시 파전을 맛 있게 부치는 집이 동래에 3곳이 있었다. 두 집이 문을 닫으면서시할머니는 향토음식의 맥을 잇겠다는 생각에서 상호를 고친 것이다.시할머니는 두 집의 폐업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이 무렵 ‘제일파적’하면, 부산에서는 알아주는 먹거리였다. 전(煎)과 적(炙)은 다른 음식이지만다소 두껍게 구운 파전을 파적이라고 부른다. 나이 든 손님 중에는 “여기가 옛날에 파적을 팔던 제일식당이 맞지요”라고 묻는다.

“식당일이 험한 거야 말해 뭣 하겠냐 만은 그래도 음식은 문화다. 네가장사를 하지 않더라도 반죽하고 굽는 법은 알아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결혼 초 시어머니는 가끔 “오늘은 네가 반죽을 해보렴” 하고 자연스럽게일을 맡겼다. 김씨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파전을 먹으러 다녔지만 며느리가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김씨는 시어머니가 세상을 뜬 95년 동래할매파전의 주인이 됐다. 공교롭게도 남편은 4대독자였다. 동래할매파전이 며느리에 의해 맥을 이어온 배경이다. 시어머니는 가업계승을 결코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러운 방법을 동원했다. 동래파전을 파는 일이 단순한 장사에 머물지 않고 전통음식문화를 지키는 의미가 있음을 깨닫도록 이끈 것이다.언젠가는 가게에 들렸더니 시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옥상에서 혼자 우는모습을 보고 ‘얼마나 힘드시면 그럴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가끔 장을 보러 함께 다니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오랜 기간에 걸쳐 차근차근며느리를 상대로 대물림 작업을 해온 것이다.

이 집 뒤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팽나무가 있다. 동네사람들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고목인데 김씨의 시어머니는 매일 새벽 팽나무 앞에 정한수를 떠 놓고 기도를 한 다음 장사준비를 했다. 김씨는 이제야 시어머니의마음을 헤아린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윗대 어른들의 넉넉한 마음과 정갈한 몸가짐이 동래할매파전에 긴 생명력을 불어넣은 원천이라는 사실을.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저작권자ⓒ 한국i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