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낙동강 이야기

김상화의 낙동강 江心

박창희 대기자의 말하는 두레박 <18> 김상화의 낙동강 江心

하굿둑 왜 열어야 하냐고? 대자연 순리대로 되돌려 놓자는 것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5-12-20 18:45:
   

하늘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굿둑 전경. 국제신문 DB

 

- 수문 개방해 물길 터야 하는 이유 
- 낙동강 40년 지킨 전문가가 답한다 

- "江의 꽁무니 틀어막아 본질 억압 
- 갇혀있는 물이 당연시 되는 세상" 

- 낙동강 지류 32곳  
- 발원지 밝히는 작업도 

#두 가지 무거운 질문 

   
지난달 14일 사하구 을숙도에서 열린 하굿둑 개방을 위한 부산시민한마당 행사. 국제신문 DB
낙동강 하굿둑은 왜 열려야 하는가. 그리고 왜 열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 앞에 두 가지 큰 질문이 던져져 있다. 닫혀 있으니 열려야 하고, 열리지 않으니 열어야 한다고? 말인즉 맞지만,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강과 바다의 소통, 기수(汽水) 생태계 복원이라 설명해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하굿둑을 여는 문제는 중차대한 과제임에도 당위만 난무하고 '왜'에 대한 설명이 약하다. 시민들은 답답하다. 물길이 열리면 좋다는 건 알겠는데, 그 속내와 의미에 대해선 누구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격으로, 낙동강공동체 김상화(63) 대표에게 두레박을 드리웠다. 환경운동가인 김 대표는 자타가 인정하는 낙동강 최고의 '현장' 전문가다. 그는 어떤 이론도 현장을 넘어설 수 없다는 지론을 갖고 무려 40여년 간 현장에서 발품을 팔며 강 살리기에 투신했다. 낙동강 도보 답사만 1300여 회를 기록했고, 책도 10여 권 냈다.

위의 큰 질문에 대해 김 대표는 '순리'와 '본질 찾기'라는 키워드로 설명을 시작했다.

"강의 흐름을 되찾는 일입니다. 흐름은 강의 순리이자 본질이죠. 흐르지 않는 강은 이미 강이 아닙니다. 낙동강은 무수한 개발 사업들로 인해 흐름이 뒤틀리고 본질이 헝클어져 있어요. 하굿둑을 연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와 본질을 찾아내는 일이죠. 대자연의 어머니를 부둥켜 안는 것입니다. 감격스러운 일이죠." 


#서병수 시장의 통큰 정치력 

   
낙동강 하굿둑이 들어선 것은 1987년 11월. 공사 시작 4년 7개월만이었다. 이로써 수수만년 유구하게 흐르던 낙동강은 꽁무니가 막혔다. 막힌 것은 비단 물길만이 아니었다. 강물과 함께 떠내려오던 모래가 갇혔고, 강에 깃들어 사는 동식물과 물고기, 새들이 본연의 길을 잃었다. 생태적 상상력도 알게 모르게 차단당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낙동강 하구는 하굿둑이 수문장처럼 지키는 콘크리트 이미지뿐이다. 아이들은 하굿둑 이전의 을숙도를 상상조차 못한다. 강 끝이 막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따져보면 실로 무서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개발 세기는 '순리'와 '본질'을 억압하고 거스른 시기였어요. 이것을 부수고 열기 위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제가 얘기를 했죠. 서병수 시장이 통 크게 정치를 하려면 큰 것을 건드려야 한다, 부산에 큰 시장(市場)이 있다, 막힌 하굿둑을 열어 미래 블루오션을 개척해라, 국가적 세계적 이슈가 될 거다…. 그것이 실행되고 있어요. 역사적인 일이죠." 

김 대표의 목소리 톤이 높아져갔다. 감격에 겨운 듯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랜 세월 얼마나 애타게 부르짖었던가. 강은 흘러야 한다고! 그러나 강은 거꾸로 흘러갔다. 이명박 정권 들어 4대강 사업이 강행되면서 낙동강은 8개로 동강이 났다. 하둣둑을 열어도 시원찮을 판에 중·상류에 8개의 대형 보를 건설했다. 그래도 지키고 살려야 한다고 외친 아우성이 함성으로 번져 '하굿둑 개방'이란 빅 뉴스를 엮어냈으니 감격에 겨울 수밖에. 

김 대표는 "하굿둑 개방 프로젝트는 부산이 주도하는 낙동강 신시대의 서막이 될 것"이라며 서 시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불가능에의 도전  

   
40여 년간 낙동강 살리기 운동을 펼쳐온 낙동강공동체 김상화 대표는 "하굿둑을 여는 것은 자연의 순리와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강덕철 선임기자 kangdc@kookje.co.kr
부산시의 낙동강 하굿둑 개방 프로젝트는 사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적 의미가 있다. 보수색 강한 시장이 진보적 환경 이슈를 선점하고, 강한 추진력으로 우호세력을 규합해 일을 치고나간 것이 그렇다. 지난 9월 말 부산시는 2017년부터 낙동강 하굿둑을 부분 개방하고 2025년까지 완전 개방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말이 쉬워 부분개방이고 완전개방이지, 여기엔 아주 복잡한 지역적·구조적·경제적 함수가 깔려 있다. 취수원 안전이 우선돼야 하고, 농공업 용수 확보, 어민 보호, 서낙동강 수질 개선, 그리고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인근 지자체의 동의 등이 전제돼야 문제가 풀린다. 게다가 하굿둑 개방은 하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낙동강 중·상류의 지류들과 8개의 대형 보, 기존 댐 운영까지 연계돼 있다. 부산시의 의지만으로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중요한 것은 이런 저런 데이터가 아니라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며, 이 모든 것이 그물코처럼 연계·연동돼 있어 거시적 틀과 세부 과제를 구분해 전문가들과 이해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시를 비판, 감시해온 시민단체들도 각기 목적과 이해를 넘어 대승적 거버넌스 차원에서 힘을 모아주길 당부했다.


#하굿둑을 연다는 것은 

김 대표와의 대담 자리엔 부산발전연구원 신성교 선임연구위원이 동석했다. 신 위원 역시 오랫동안 낙동강 정책연구 및 대안 제시에 주력해온 연구자다. 몇 년 전 그는 을숙도에 '인공 기수역'을 만들어 연구 및 학습자료로 활용하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하굿둑 개방 소식을 듣고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는 신 위원은 그 의미와 상징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낙동강 하굿둑은 개발의 거대한 물막이 둑이죠. 국내 처음으로 환경영향평가가 적용된 곳이고, 개발·보존 논란이 첨예하게 제기되면서 국내 최초의 환경단체랄 수 있는 '낙동강보존회'가 탄생했죠. 또 하나 중요한 의미는 하굿둑 준공 후 국내의 여타 개발사업들이 정부 주도 또는 공공성을 앞세워 여론수렴을 소홀히 한 채 대부분 일방통행식으로 갔다는 겁니다. 30여년 만에 이걸 타파하는 의미가 있으니 실로 개발 사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고개를 끄떡인 김 대표가 말을 잇는다. 

"의미를 따지자면 하굿둑 개방은 더 이상 중앙정부 논리에 끌려 '정부 바라기'만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지역의 힘과 의지로 국토 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시도라고 볼 수 있어요.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인간 중심, 물질 중심으로 흘러 왔잖아요. 이 부분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따라야 합니다." 


#다시 부르는 낙동강의 노래 

낙동강 하구에는 오래전부터 섬 아닌 섬들이 있었고, 그곳에 일웅(日雄)과 을숙(乙淑)이라는 선남선녀가 살았다. 하굿둑이 놓이면서 두 섬은 원치않게 붙어버렸고, 이때부터 일웅은 강만, 을숙은 바다만 바라기하는 운명에 처했다. 그후 을숙도에는 가공할 쓰레기매립장과 분뇨처리장이 들어섰고, 첨예한 논란 끝에 을숙도대교까지 놓였다. 새들의 낙원 을숙도는 천연의 빛을 잃고 서서히 실낙원으로 변해갔다. 김 대표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산증인이다. 참 아름다운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 초였던가. 그는 을숙도 주변의 '강촌' '강마을'을 들락거리며 자연에 심취해 낙동강 노래를 쓰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황홀한 노을속에 긴긴 날개 펴는 님/ 오늘은 어디로 춤을 추려 가려나/ 두둥실 날으는 그 모습은 천사/ 통통배 사공아 노래를 불러라~'(김상화 작사·작곡 '낙동강에 흐르는 노래'(1978) 부분)

그후 하굿둑이 건설되는 모습을 보면서 김 대표는 기타를 부숴버렸다. 낙동강의 가인이 투사가 되는 과정은 토건세력이 개발이란 미명 하에 을숙도를 야금야금 잠식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낙동강을 붙잡고 씨름하던 그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김 대표는 요즘 발원지를 좇고 있다. 낙동강 32개 지류의 발원지를 밝히고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출판 작업이다. 모두 발품을 팔아야 해결되는 일이다. 컴퓨터 없이 육필로 원고를 쓰자니 힘이 곱절로 든다. 

"작년에 8곳을 끝마쳤고 올해 16곳, 내년에 8곳을 정리할 계획입니다. 발원지가 갖는 모성의 에너지를 찾는 작업이죠. 이 에너지로 청년포럼을 만들고, '낙동강 하구 학교'도 열고 싶어요. 건강이 허락할지 모르지만." 

   
낙동강의 물길이 본성을 찾고 자연성을 회복하면 우리의 팍팍한 삶도 좀 펴이려나. 그럴 것이다. 하굿둑 개방 논의와 함께 갇혀 있던 상상력이 날개를 펴고 있다. 그만으로도 하굿둑은 이미 반이 열린 것이다. 김 대표의 눈망울 속으로 낙동강 물이 우렁우렁 흐르고 있었다.  

- 끝 -

출처: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51221.22013184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