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회화 -- 고려시대 |
고려시대에는 도화원의 직업적인 전문화가인 화원에 의한 그림과 왕, 사대부 및 승려들이 즐겨 그림을 그렸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화원인 이령(李寧)이 그린 예성강도(禮成江圖),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 등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중국 송나라에까지 그의 재능이 알려져 황제가 직접 이령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산수화뿐만 아니라 안향(安珦)과 같은 인물 초상화를 비롯하여 영모 ·화조 ·누각 ·사군자 등과 기록화적인 성격이 강한 기로회도(耆老會圖) 등이 그려졌으며, 불화 또한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현존하는 고려의 회화로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와 이제현(李齊賢)의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노영(魯英)의 지장보살도 등이 있으며, 벽화로는 거창 둔마리 고분의 주악천녀도(奏樂天女圖)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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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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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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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 문신인 회헌 안향(1243∼1306)의 초상화로 가로 29㎝, 세로 37㎝의 반신상이다.
안향은 고려 원종 1년(126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보급한 인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초상화로, 고려시대 초상화 화풍을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
익제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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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 이제현(1287∼1367)의 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는 익재·역옹으로, 『국사』, 『역옹패설』 등을 남겼다. 그림 위쪽에는 원나라 문장가인 탕병룡이 쓴 찬(贊)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 그림을 33년 만에 다시 보고 감회를 적은 익재의 글이 있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오른쪽을 바라보는데 비해 왼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비단 테를 두른 흰 베로 짠 옷을 걸치고 두 손은 소매 안으로 마주 잡고 있다. 선생의 왼편 뒤쪽에는 몇권의 책이 놓인 탁자가 있고, 오른편 앞쪽으로는 의자의 손잡이가 있어 앉은 모습이 안정되어 보이며, 화면구성도 짜임새 있다.
채색은 색을 칠한 다음 얼굴과 옷의 윤곽을 선으로 다시 그렸는데 부분적으로 표현을 달리 하여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워 보인다. 그림의 색감은 오랜 세월이 지나 변색된 듯하나 차분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은 전신을 그린 것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얼굴과 의복을 선으로 표현한 것은 고려시대 다른 초상화들과 비슷하며, 조선시대 초상화가 인물이 오른쪽을 향하고 배경이 되는 바탕에 아무런 그림을 그려 넣지 않은 것에 비해 빈틈없는 구성과 왼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에서 고려 초상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원나라 화가가 그린 것이지만 구도가 안정되고 인물 묘사가 뛰어난 우수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동일한 양식의 익재의 초상화 4점이 전해지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
염제신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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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신인 염제신(1304∼1382)의 초상화로 가로 42.1㎝, 세로 53.7㎝이다.
염제신은 어릴적부터 원나라에서 살아 원나라 황제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려에 돌아와 여러 왕들의 신임을 받으며 문하시중(門下侍中)까지 올랐다.
고려시대 초상화인 안향의 초상화와 이제현의 초상화에서와 같은 형태의 구도와 화풍이 나타나며, 특히 옷에 그려진 덩굴무늬는 처음 보이는 것으로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고려시대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천산대렵도 천산대렵도(부분) 음산대렵도 |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1330~1374)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견본채색(絹本彩色). 24.5cm×21.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렵도(狩獵圖)라고도 한다.
본래는 옆으로 길다란 두루마리 그림이었던 것이 조각난 것으로 보이는데, 비슷한 그림 여러 폭이 〈천산대렵도〉 혹은 〈음산대렵도〉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 이하곤의 문집 《두타초(頭陀草)》에 의하면, 이 〈수렵도〉는 본래 조선 선조의 열두째 아들인 낭선군 이우의 소장품이었는데, 그가 죽자 애호가들이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수렵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 이래로 많이 그려져 조선시대 민화에도 비슷한 유형의 그림이 많이 있다. 오래 되어서 떨어진 곳이 많고 그림이 조각나서 본래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힘차게 말을 달리는 기마 인물의 모습이 섬세하면서도 기운차게 묘사되어 있다.
그림이 너무 낡았고 몹시 훼손되어 필법을 자세히 파악하기는 곤란하나 호복(胡服)을 입고 말을 모는 무사의 모습과 북종화(北宗畵)적인 풀의 묘사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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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도강도 기마도강도(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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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본채색(絹本彩色). 28.8cm x 43.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익재(益齋)라는 서명과 이제현인(印)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 오래 전부터 이제현(1278~1367)의 작품으로 전해온다. 화풍으로 보아도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오는 천산대렵도의 채색 기법과 닮은 데가 있어서 그 무렵의 작품일 것으로 생각된다.
말을 탄 다섯 사람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산천은 강을 따라 지그재그 식으로 이어져 화면에 변화를 주고 있다.
눈 내린 경치가 맑고 말 탄 인물의 모습이 의젓하며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생동감이 있어 격이 높은 화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배경의 산수는 필치가 섬약하고 인물에 비해 매우 소략하다. |
지장보살도 |
1307년 노영 (魯英) 이 나무에 옻칠을 하고 그 위에 금가루로 그린 그림[목제흑칠금니 (木製黑漆金泥)]이다. 22.4 x 13cm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구불구불한 필선으로 대담하게 처리한 이 그림은 그 시대 그림의 본보기가 되는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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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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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중생 앞에 나타나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보살이다.
가로 53㎝, 세로 86㎝ 크기의 이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화려한 정토(淨土)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관음은 풍만한 얼굴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가는 눈과 작은 입 등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이 풍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높이 쓰고, 몸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과 화려한 팔찌·목걸이 등을 표현하였다.
등 뒤로는 한 쌍의 푸른 대나무가 보이고 바위 끝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그 주위를 둥근 광배(光背)가 둘러싸고 있다. 관음의 발 아래에는 붉고 흰 산호초와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이 수월관음도는 섬세하고 화려하면서 우아한 종교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
우학문화재단 소장 수월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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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관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주위에 금가루로 원형을 그려 놓았다.
입고 있는 치마는 붉은색을 칠하고 백색으로 거북등껍질 문양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덧그려 문양이 뚜렷하다.
전체적으로 안정되었고 고려 불화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수월 관음도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아미타여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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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죽은이의 영혼을 극락왕생의 길로 이끌어주는 부처인 아미타여래를 그린 그림이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 불화의 대부분이 아미타여래를 주제로 한 것으로 극락에서 설법하는 모습이나 수행자들을 맞이하는 광경이 많이 그려져 있다. 붉은색의 가사와 녹색의 장삼을 입고 있는 아미타여래는 왼손을 가슴 앞쪽에 놓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린 채 양발을 약간 벌리고 서 있다.
금가루로 아미타여래의 머리 뒤에 원을 그렸다. 붉은 가사와 녹색 장삼, 금가루로 그려진 원무늬 등은 전형적인 고려 불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로 내린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붙여 구품인을 취하고 왼손에 아무런 수인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현존하는 다른 작품들과 반대의 손모양을 보여주는 것으로 특이한 예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
고분 전경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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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屯馬里)에 있는 고려시대의 벽화고분이다. 거창읍에서 동북쪽 약 6㎞ 떨어진지점, 석장골이라 불리는 높이 450m쯤 되는 능선 위에 있다.
1971년 발견되었으며, 72년 12월 9일부터 17일까지 9일 동안에 걸쳐 발굴되었다. 고분은 사각형 둘래돌형식인데 내부에는 남북 2.4m, 동서 0.9m, 높이 0.9m의 돌덧널 2개가 경계벽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란히 있다.
경계벽에는 네모진 작은 창이 있다. 동덧널·서덧널 모두 널길에서 널방까지 크고 작은 판석으로 되어 있고 천장돌 역시 거의 같은 크기의 판석으로 덮여 있다. 동서 돌덧널의 각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에 회칠을 한 후에 묵선(墨線)과 갈색· 녹색으로 채색한 <천녀도(天女圖)> <주악상(奏樂像)> 그리고 남녀가 함께 그려져 있는 <무용도(舞踊圖)> 등의 그림인데 벽화의 퇴락으로 전체모양을 자세히는 알 수 없다.
동덧널 동벽에는 피리·장구 등을 연주하는 5명의 주악(奏樂) 천녀도가, 서벽에는 과일 담은 그릇을 왼손에 들고 피리를 부는 천녀가 구름을 타고 있는 장면이, 남벽 역시 천녀도가 있으며 북벽에는 부적에 쓰이는 주문이거나 범(梵)자로 추측되는 세로 3행의 묵서가 있다.
서덧널에는 서벽 남반부에만 남녀무용도가 있음이 적외선 사진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주악천녀(奏樂天女)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 벽화는 불교적이기보다는 도교적인 성격을 많이 풍기는 그림이다. |
출처: 부여 생활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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