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과 속삭이며 떠나는 뱃길 여행
배 타고 바라본 경치 이색적 … 문화해설사 풀어내는 이야기 보따리 재미 더해
나는 지금 배에 있다. 낙동강 을숙도선착장에서 출발한 배는 강을 거슬러 상류로 나아간다. 배는 거슬러 올라가고 물결은 밀려온다. 밀려오는 사랑의 물결이 사람을 아련하게 하듯 밀려오는 강물의 물결이 사람을 아련하게 한다. 오래 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 같은 강물. 강물에 빠져들 것 같은 사람을 내다보려고 강변 갈대와 코스모스는 목이 기다랗다.
부산에 길 하나가 새로 생겼다. 부산을 대표하는 길은 갈맷길. 해변길 강변길 숲길을 아우른 갈맷길에 새로 생긴 길이 더해져서 부산의 길은 더욱 길어지고 더욱 볼만해졌다. 더욱 구불구불해지고 더욱 촉촉해졌다. 새로 생긴 길이 어떤지 보려고 부산 곳곳에서 찾아오고 타지 곳곳에서 찾아온다. 어떤지 보려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오는 길, 그런 길이 부산에 새로 생겼다.
낙동강 물길 따라 에코투어 … 주 5일 · 하루 2회 운행
새로 생긴 길은 낙동강 수로. 낙동강 강물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이다. 낙동강 물길이야 예부터 있어 왔지만 나루가 사라지고 나루를 오가는 배가 사라지면서 물길마저 사람에게서 멀어진 지 오래. 사람 실어 나르던 일을 다리가 대신하고 도로가 대신하면서 낙동강 수로는 과거의 물길, 기억의 물길이 된 지 오래. 그런 수로에 배가 다니면서 길이 살아나고 부산의 길이 더불어 살아나고 있다.
'자연과 함께 떠나는 에코 투어' 새로 생긴 길이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낙동강 수로를 오가는 배 이름은 '낙동강 에코호' 배 이름이 그렇단 거고 낙동강이 품은 자연스런 생태를 탐방하는 배라 해서 '낙동강 생태탐방선'으로 불린다. 철새 도래지 낙동강은 보석 같은 곳. 보석 같은 자연이 반짝이는 곳. 슬로건에서 보듯 생태탐방선 역시 가장 큰 가치를 자연에 둔다. 그래서 자연 속의 한 점인 양 조심조심 다니고 강물에 뜬 철새인 양 살금살금 다닌다.
새로 생긴 수로인 만큼 배가 다닌 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속이 꽉 찬 가을 꽃게처럼 속은 꽉 차 보인다. 정기 운항 이후 정원을 채운 횟수가 70% 이상이라고 사람 좋게 생긴 김주호 사무장은 알려 준다. 부산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낙동강 생태탐방선이 첫 운항한 날은 지난 8월 8일. 무료체험행사를 중순에 가졌고 지금은 일요일과 월요일을 빼고 주 5일, 하루 2회 운항 중이다.
9월 중순 토요일 오후. 출발시간에 맞춰 선착장이 있는 을숙도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든다. 대개가 네댓, 또는 일고여덟 무리를 이룬 중장년층이다. 고향친구 갑장계도 있고 같은 교회 교인들도 있다. 생태탐방선 매표소 주위 널따란 평상이 비좁게 보인다. 정원은 30명. 예약제다. 예약, 운항시간 등은 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www.bto.co.kr)참조, 또는 낙동강 생태탐방선 운영사무소(051-294-2135)로 문의하면 된다.
낙동강 생태탐방선은 을숙도선착장을 출발해 화명선착장, 물금황산공원을 거쳐 을숙도선착장으로 돌아온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철새를 배려해 화명선착장에서 물금황산공원까지만 운항한다.
문화해설사 직접 낙동강 얽힌 이야기 설명
드디어 출항. 갓 세상에 나온 배는 레이더와 위치추적장치(GPS), 조난신호발신기(DSC), 수심측정기(SONAR) 등을 갖췄다. 외항선 같은 큰 배는 아닐지라도 듬직한 맛이 있다. 선실엔 3명 앉는 의자가 좌우 5줄씩 놓여 있다. 의자가 넓어 모르는 사람이 옆자리 앉아도 신경은 덜 쓰인다. 통유리 선창 너머 바라보이는 낙동강 풍광은 시원시원하다. 부산사람 성정이 시원시원한 건 낙동강 풍광을 닮아서일 듯. 선실 위는 '탑 브리지' 옥상이다. 옥상은 선실 입구 계단을 이용해 올라간다. 승무원은 선장과 기관장, 갑판원 각 1명이다.
"저기 나는 새는 왜가립니다." 배가 큰 원을 그리며 출항하자 문화관광해설이 시작된다. 생태탐방선 해설사는 모두 9명. 오늘 동승한 권성이 해설사는 승객 전원에게 무선수신기와 이어폰을 나눠 준 뒤 곧바로 낙동강 생태와 문화, 역사 해설에 들어간다. 원래는 철새였던 왜가리가 텃새가 된 사연을 들려주고 낙동강 파수꾼 김정한 선생의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고 낙동강 3대 나루터가 어디어디였는지 들려준다. 통유리 선창은 널따란 화선지 같다. 낙동강 다섯 군데 생태공원이 차례차례 들앉았단 빠져 나가고 갈대며 코스모스가 차례차례 들앉았단 빠져 나간다.
생태탐방선의 좋은 점은 부산의 풍광을 새로운 각도에서 본다는 것. 배를 타고 가 보면 안다. 배를 타고 낙동강 물길을 가보면 안다. 강변에서 보는 강변 풍경과 배에서 보는 강변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구포대교니 화명대교니 다리 위에서 보는 다리 아래 풍경과 다리 아래서 보는 다리 위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또 있다. 멀찍이 떨어져서 강물을 보는 눈빛과 한가운데서 강물을 보는 눈빛이 어떻게 다른지. 멀찍이 떨어져서 사랑을 보는 눈빛과 한가운데서 사랑을 보는 눈빛이 어떻게 다른지.
배는 조심조심 슬금슬금 다닌다. 강 유역에서 생업을 잇는 어부들 그물을 피해서 속도를 늦추고 다리 아래 교각에서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피해서 속도를 늦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속도를 지나치게 내며 산다. 속도를 늦추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산다. 그런 책 제목도 있지만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들이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가. 속도를 늦추고 자기를 보아 달라는 간절한 눈빛들이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가. 다리 위를 차로 달릴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리 아래를 배로 지날 땐 보인다. 낙동강 생태탐방선이 새삼스러워 보이는 이유다.
① 낙동강 생태탐방선에 승선하는 시민 모습.
② 낙동강 생태탐방선은 문화해설사가 동승, 낙동강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철새 배려 11~3월까지 화명 · 물금구간만 운행
"물이 맑네." 옥상 가느라 절반 넘게 빠져 나긴 선실. 내 뒷자리 아주머니 세 분은 자리를 지킨다. 물이 맑다는 창가 아주머니 혼잣말에 뒤돌아본다. 지나가는 말로 가장해 이것저것 물어 본다. '어디 사느냐? 고향은 어디냐? 여기는 어떻게 왔느냐?' 일흔 셋 갑장들로 고향은 모두 경남 합천, 낙동강에 이런 배가 다닌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나들이 왔단다. 강물이 보내는 간절한 눈빛에 눈길을 준 그 마음이 강물보다 맑다.
그러고 보면 낙동강 생태탐방선은 입소문이 날 대로 난 모양이다. 다대포교회에서 교인끼리 왔다는 김남석(55) 씨 또한 신문, 방송을 보고 탐방선을 탄 경우. 소문에 비해 밋밋한 게 아쉽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어도 기대감은 감추지 않는다. 탐방선을 향해 손 흔드는 강변 사람들 표정엔 '나 너 안다'는 투의 친근미가 잔뜩 묻어난다. 벤치마킹해 간 곳도 적지 않다. 멀리로는 제주, 인천, 대구에서 다녀갔고 가까이로는 거제, 양산, 김해에서 다녀갔다. 물길이 있는 도시라면 나라 안은 물론이고 나라 밖에서도 생태탐방선을 들여다보러 찾아오지 싶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생태탐방선 박 선장은 베테랑. 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는 대아고속 선장이었으며 금강산을 왕래했던 현대아산 설봉호 부선장이었다. 여기저기 메이저급 선박 선장을 지낸 베테랑이 마이너랄 수도 있는 낙동강 탐방선 키를 잡은 건 세월호 사건 때문. 승객을 버리고 배를 버린 세월호 선장 행위에 분개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자괴감으로 6월부터 19.9t 탐방선에 올인하고 있다.
생태탐방선 운항은 유연하다. 철 따라 날씨 따라 운항을 조정한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안전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다. 4월부터 10월까지는 을숙도선착장에서 출항해 화명선착장(오전), 양산 물금황산공원(오후)을 거쳐 을숙도선착장으로 귀항한다. 오전 운항시간은 1시간 30분, 오후는 2시간 30분이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코스가 달라지고 운항시간이 줄어든다. 겨울 철새를 배려한 변경이다. 화명선착장에서 물금황산공원을 거쳐 화명선착장으로 1시간 운항한다. 날씨가 안 좋으면 운항을 취소한다. 요금은 코스 따라 나이 따라 사는 형편 따라 다르다. 5천원, 7천원, 1만원.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 가장 긴 강 언저리에는 우리나라 인구 4분의 1이 터 잡고 산다. 무릇 강폭이 가장 넓은 곳은 하류. 하류는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낙동강 하류에 터전을 둔 부산은 그래서 받아들이는 품이 대단히 넓은 도시다. 부산의 품이 얼마나 너른지는 낙동강 생태탐방선을 타 보면 금방 안다.
글 동길산 시인
출처; I♡BUSAN - I♥Busan / 부산 나들이 / 낙동강 생태탐방선→ 목록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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