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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토박이

전통한옥에 빛나는 주례사(周禮祀)

전통한옥에 빛나는 주례사(周禮祀)

-여산송씨 주례문중재실[礪山宋氏周禮門中齋室]

 

 

위성지도로 본 주례사-주감초등학교와 청구아파트 사이

 

여산송씨의 시조는 고려 肅宗年間(숙종년간1096~1105)進士(진사)를 지내시고 나라에 공을 세워 銀靑光祿大夫 (은청광록대부)로서 樞密院府使(추밀원부사)에 봉작 되였으며, 시조공의 묘소는 전라도(전라도) 여산부(여산부)의 동쪽 10리 쯤에 있는 天壺山(천호산) 자락 아래 문수동의 서북쪽 중봉에 위치해있으며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소재하고 있다(조선시대 역대 왕비 가운데 조선초 端宗(단종)()가 바로 定順王后(정순왕후) 가 송씨였는데 당시 礪浪府院君(여랑부원군) 宋玹壽(송현수)의 딸이였고 어머니는 여흥 ()씨였다.)동래입향조인 송극명(宋克明)공은 조선조 단종비 정순왕후의 숙부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단양을 거쳐 동래에 낙향 정착한 집안이다. 동래에서 유일한 생원(生員) 한 분을 배출하고 또한 동래 원향(原鄕)5향집 가운데 한 집으로 6충신을 충렬사에 배향한 집안이다.

 

조선 후기에 향반사회에서 위세가 당당 하였는데 그의 후손인 처사 송계방(宋啓邦) 공이 임진왜란 이후 이고 주례동에 이거 정착하여 사상 향안(鄕案)16명이 기록되어 있는 집안이다. 후손들은 1990년 주례동 산 103번지에 전통한옥 건물인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지붕구조의 주례사(周禮詞)를 건립하였다. 재실은 대지 총 1138평에, 재실 건물 33평이 대지 중앙에 남향으로 배치를 하였고, 입구에 솟을 지붕구조로 4평의 일주문을 그리고 재실 오른쪽편에 18평의 관리동을 두었다. 재실 왼쪽 뒷편으로 계단을 오르면 파조 송계방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들어갈 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다는 뜻의 국궁문

 

재실의 정면 -오른쪽 마당에 주례사창건비가 세워져 있다.

재싫 내부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공간- 미닫이 문으로 열고 닿는다.

 

201311월초 현재 재실의 중앙 단 위에는 여산송씨 14세 입향조 부부를 비롯하여 25세까지 위패 41, 83위의 조상을 모시고 있다 (위패수 41). 위패는 평소에 검게 칠한 나무 케이스로 닫혀진 구조로 되어있다. 그 아래에는 음식을 차릴 공간이 2단으로 되어있다.

 

재실은 마루를 중심으로 앞면은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우로 밀면 구석으로 들어가 위패가 보이도록한 미닫이문을 만들어 놓고 있다. 우측에는 남자용 (유건, 제복 등), 좌측에는 여자용 방이 각각 배치해 놓고 그 안에는 향제에 필요한 도구도 함께 보관하고 있다. 마루 앞문은 흐린 유리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도록 하여 자연 조명을 최대한 높혔다. 위패는 평소에 검은 칠은한 나무 케이스로 닫혀져 있다.

 

조상의 향제는 매년 10(음력) 둘째 일요일에 지내고 있으며 이 때 정해진 순서에 따라 6명의 부녀자들이 향제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는데 주방공간은 관리동에 있다.

 

자손들은 대대로 주례동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재실 건물은 1990년 당시 청도 한옥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창희  교수(상대목이자 도편수) 손에 이뤄졌다. 김창희 교수는 상대목(도편수)으로 한옥전문가로 창덕궁 복원의 도편수(집을 지을 때 책임을 지고 일을 지휘하는 우두머리 목수)로 참여했으며, 부석사, 무량수전, 해인사 대웅전 등 수많은 문화재 증축 및 보수에 참여한 우리나라 한옥 건축의 거장이다. 전국에그의 손을 거쳐간 전통한옥들이 여럿 채 있으며 한옥사랑 정신이 남달라 청도 한옥학교에서 젊은이들을 지도하였다. 그리고 2010년에 돌아가셨다. 한옥학교 재임 시 1년에 한 번씩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자신이 지은 건물을 순회, 설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한옥 건물의 특징인 못을 사용하지 않고 끼워맞춤 방식을 채용한 우리의 전통한옥미를 한껏 살려 놓은 데다 재실의 기능인 조상 숭배하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구성해 놓았다.내부는 전부 목재로 되어있으므로 4년에 한번 씩 독일산 특수도료를 칠한다고 한다. 니스로 칠할 경우 도막이 일어나 나무를 상하게 하므로 비싸 관리비가 들지만 재실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감수한다고 한다. 동래 회동동에 있는 종중재실에는 여산송씨 출신으로 임란공신 6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 제에 사용할 음식은 문중에서 제공하지만 제사는 부산지역 향교에서 사람들이 나와 지내준다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총무님께서는 전통 한옥으로 잘 지어놓은 재실의 활용에 대하여 관내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예절과 충효사상등을 교육하는 공간으로 제공하겠다고 얼마전 시사를 앞두고 사상구 송숙희 구청장에게 건의하였다는 말에 참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요즘같이 인성교육을 필요로 하는 때에 지리산등 멀리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방학이라든가 주말을 이용하여 재실을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며 실속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산송씨 주례문중을 이뤄 온 입향조를 비롯 여러 조상들이 얼마나 기뻐 할 일이랴!

 

주례사 : 1990년 건립

건평 : 1000

위패수 : 14세손부터 25세손까지 41개의 위패에서 83위를 모시고 있음

상대목 : 김창희 한옥학교 교수

시제일 : 10(음력) 둘째 일요일

종문 회장 : 송낙연 (010-2855-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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