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농경문 청동기
농경문 청동기는 당시의 농경사회와 제정일치 사회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선사시대의 대표적 유물입니다.
선사시대의 경우 문자기록이 없기 때문에 땅 속에서 출토된 유물만을 가지고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히 그려내기란 매우 어렵다. 만약 당시 모습을 그려놓은 그림이라도 있다면 과거로의 여행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농경문 청동기는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당시 농경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모습과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인물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농경문 청동기의 독특한 문양
한국의 청동기는 크게 무기류, 공구류, 의기류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의 문양은 제사를 주관할 때 사용하였던 의기류에 새겨져 있다. 의기류에 그려진 문양은 선과 점을 이용하여 해, 별, 번개 등 경외의 대상이 되는 자연의 숭배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기하학적 문양이 주를 이룬다. 치밀하고 정교한 기하학적 구성과 장식을 통해 미적 감각을 표출함과 동시에 지배자의 권위를 높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반면 사실적인 문양이 새겨진 청동기는 사슴이나 손이 그려진 견갑형 동기, 검파형 동기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농경문 청동기의 존재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농경문 청동기는 폭이 12.8cm로 아랫부분은 결실되어 남아있지 않다. 몸체 가장 윗부분에는 작은 네모난 구멍 여섯 개가 배치되어 있는데 구멍이 조금씩 닳아있어 끈을 매달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쪽 면에는 정 가운데 세로 방향과 가장자리 윤곽을 따라 빗금, 선, 점선을 이용한 무늬 띠가 돌아가고 그 안쪽 빈 공간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한쪽 면 오른쪽에는 머리 위에 긴 깃털 같은 것을 꽂고 벌거벗은 채 따비로 밭을 일구는 남자와 괭이를 치켜든 인물이 있고 왼쪽에는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봄에 밭을 갈고 흙덩이를 부수는 장면과 가을에 수확한 곡물을 항아리에 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쪽 면에는 오른쪽과 왼쪽 모두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 끝에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새끼모양의 둥근 고리가 끼워져 있는 꼭지(鈕)가 한 개 달려있다. 새는 예로부터 곡식을 물어다 주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오고 하늘의 신과 땅의 주술자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자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선사, 고대의 무덤이나 제사유적에서는 새 모양을 본 딴 토기나 새가 새겨진 청동기 등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또한 마을의 안녕과 평화,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신앙 가운데 하나인 솟대와도 연관성을 보인다.
나무 가지 위에 앉아있는 새의 모습. 새는 예로부터 곡식을 물어다 주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오고 하늘의 신과 땅의 주술자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자로 인식되었다.
기원전 5~4세기의 주술 의식과 관련 있는 의기로 추정
이처럼 농경문 청동기는 사람, 농기구, 경작지 등 농사짓는 모습과 나뭇가지 위의 새가 의미하는 것을 통해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빌며 행했던 주술적 의식과 관련이 있는 의기로 추정되어 왔다. 그리고 발굴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어느 유적에서 출토된 것인지 구체적인 정황은 알 수 없지만 형태상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유적에서 출토된 방패형 청동기와 유사하여 기원전 5~4세기경에 해당하는 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기원전 5~4세기 무렵은 청천강 이남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국식 동검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특히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유적 등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 강력한 지배자의 출현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돌무지널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유적들에서는 청동 무기류, 공구류뿐만 아니라 검파형, 방패형, 원개형 청동기 등 다양한 종류의 의기가 새롭게 출토되었다.
청동기란 채취한 광석을 녹여 얻은 구리와 주석, 아연, 납 등을 섞어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데 까다로운 제작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권위의 상징물이나 의기로 일부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한 유물들이 하나의 무덤에서 다량 출토되었다는 것은 강력한 지배계층이 등장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유물의 성격을 통해 정치적 지배자가 제사를 주관했던 제정일치의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지역 최고의 지배자가 한 해의 풍년을 빌기 위해 몸에 걸치고 사용했을 농경문 청동기를 통해 농경이 당시 생업과 사회 유지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토기의 문양과 출토 되었던 지역의 밭의 모양이 유사
실제 유적에서 출토되는 자료들도 이를 뒷받침해줄까? 농경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는 농경도구로 추정되는 석기, 목기, 골각기, 논밭 유구, 식물유존체 등이 있다. 현재까지의 발굴성과를 통해보면 식물 재배는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 기장, 피 등의 곡물과 수확 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도구들이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농경은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달돌칼과 같이 청동기시대부터 농경도구로 사용된 많은 양의 석기가 출토될 뿐만 아니라 벼, 보리, 조, 수수, 콩, 팥, 밀, 기장 등 재배작물의 종류와 수가 많아지고 대규모의 논과 밭, 수리시설, 대단위의 마을유적 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저습지에서 나무로 만든 괭이나 절구공이도 출토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농경문 청동기에 그려진 밭의 모양이나 격자무늬가 베풀어진 듯하게 보이는 토기가 유적에서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밭이 발견된 대표적인 예가 진주 대평리 유적으로 고랑과 이랑으로 이루어져 농경문 청동기에 그려진 밭의 모양과 유사하다. 또한 진주 상촌리, 춘천 천전리, 가평 연하리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발견되는 대형 저장용 토기들에는 격자무늬의 흔적이 남아있어 운반 또는 고정 시 편의를 위해 끈으로 묶었음을 알 수 있다. 아가리가 좁고 몸통이 공처럼 부푼 토기 형태도 농경문 청동기에 나타난 토기와 유사한 점이다.
진주 대평리 유적 밭을 하늘에서 본 모습.
고랑과 이랑으로 이루어진 모습이 농경문 청동기에 그려진 밭의 모양과 유사하다.
풍년을 비는 제사장의 모습으로 추측
한편, 벌거벗은 채 밭을 가는 남자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왔다.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서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었던 현 이건무 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가 2004년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자료집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 편]을 검토하던 도중, 실마리를 찾아냈다. 조선시대 지식인 유희춘의 문집 [미암선생집] 3권에 ‘입춘 나경에 대한 논의’가 실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희춘은 이 글에서 함경도나 평안도 등 북쪽 지역에 행해지던 나경, 즉 벌거벗고 밭을 가는 세시 풍속을 소개하면서 이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지역 사람들은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사리에 어두워 괴이함에 미혹됨이 오래되었다. 그 중 가장 말할 것도 없이 해로운 것이 신년의 나경이다. 매년 입춘 아침에 토관(土官)에 모이게 하여 관문의 길 위에서 목우(木牛)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게 하여 심고 거두는 형태에 따라 해를 점치고, 곡식의 풍년을 기원한다. 이 때 밭을 가는 자와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옷을 벗게 하여 차가운 기운을 몸에 닿게 하니 이는 무슨 뜻인가? 그러므로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추위에 견디는 씩씩함을 보고 세난(歲暖)의 상서로움을 이룬다고 한다.”
물론 농경문 청동기가 제작된 시점과 유희춘이 서술한 시점 간에는 2000년 정도의 시간적인 격차가 있지만 조선시대의 풍속을 통해 농경문 청동기에 등장한 벌거벗은 남자가 실제로 농사짓는 모습이 아니라 한 해의 풍년을 비는 제의 시 농사짓는 모습을 흉내 냈던 제사장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볼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농경문 청동기는 청동기의 제작 수준과 사회 성격, 농경의 발달과 의례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이며 귀중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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