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낙동강 이야기

하단 재첩의 추억

하단 재첩의 추억

재첩이라는 조개는 강 하구에만 산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汽水域)이 재첩들의 고향이다. 이 놈들의 먹이는 모래나 뻘속의 유기물이나 플랑크톤, 조류(藻類) 따위다. 낙동강 하구의 모래톱은 육지의 영양물질과 해양의 무기염류가 골고루 섞여 재첩이 사는데 최적의 환경을 이룬다. 그 시절 낙동강에선 매일 싱싱한 재첩이 올라왔고, 부산의 새벽 골목길엔 '째찌국(재첩국) 사소~'하는 목소리가 넘치나곤 했다. 강이 막히기 전의 얘기다.

 

 


"재첩? 뭔 소리요. 저 위쪽 구포 엄궁에서 하단 명지 장림까지 재첩 천지였지. 모래밭에 손을 집어넣으면 한 주먹씩 잡혔어요. 그 걸로 자식 공부시키고 다 했지 뭐." 부산 사하구 하단어촌계장 이춘식(59) 씨의 회고다. 올해 20년째 어촌계 일을 보고 있는 이 씨는 '하구둑이 재첩을 삼켰다'고 말한다.

1987년 하구둑 완공 이후 낙동강 재첩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낙동강 재첩이 줄어들자 섬진강 재첩이 들어왔고 시장에선 중국산 재첩이 팔렸다. 그러나 낙동강 재첩이 완전 씨가 마른 것은 아니었다. 옛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몇년 전부터 을숙도 남단 갯벌 일대에 재첩이 되살아난다는 기별이 있다.

"하동 재첩 종패를 넣어 길러요. 그런데 낙동강 재첩은 확실히 달라. 삶아보면 뽀얀 우윳빛이 납니다. 중국 재첩은 거무죽죽하거든. 값 차이가 엄청 나요. 30㎏들이 한 포대에 중국산은 1만~2만 원인데, 낙동강 것은 10만~12만 원까지 합니다. 국내선 비싸서 못 먹고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지요."(이춘식 계장)

맛좋은 것은 일본에 팔고 우리는 질 떨어지는 중국 재첩을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하구둑 건설 이후 사라진 고기가 많으냐는 질문에 이 계장은 "많다뿐이겠소"라며 참게, 명태고시래기, 민물새우, 백새우, 황어 등을 열거했다. 그 사이, 하단어촌계 어민도 200여명에서 70명선으로 줄었다. 사하구청은 몇 년전부터 하구둑 갑문 아래에서 참게 방류사업을 하고 있으나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출처] 2008을숙도, 위기의 철새 낙원 <4> 고기 길(魚道)을 열어라/국제신문

박창희 이승렬 기자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