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통문화 이야기

고구려·신라·백제·고려인 인물상 무더기로 확인

 

고구려·신라·백제·고려인 인물상 무더기로 확인

동양 고대 문화의 보고(寶庫)인 중국 둔황 석굴에서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고대 한국인의 복식과 의관(衣冠), 생활상을 보여주는 인물상이 무더기로 확인됐다.

 


	깃털 네 개 조우관 쓴 고구려인, 말을 탄 신라 사신, 사신 따르는 고려 짐꾼… 둔황 석굴에서 확인된 고대 한국인 인물상. 왼쪽은 막고굴 제138굴의‘유마힐경변’에 들어 있는 고구려인으로 깃털을 네 개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썼다. 가운데는 막고굴 제61굴의‘오대산도’의 부분 그림인‘신라송공사’에서 말을 탄 사신이다. 오른쪽은 역시‘오대산도’의 일부인‘고려왕사’에서 사신을 따르는 짐꾼이다

 깃털 네 개 조우관 쓴 고구려인, 말을 탄 신라 사신, 사신 따르는 고려 짐꾼… 둔황 석굴에서 확인된 고대 한국인 인물상. 왼쪽은 막고굴 제138굴의‘유마힐경변’에 들어 있는 고구려인으로 깃털을 네 개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썼다. 가운데는 막고굴 제61굴의‘오대산도’의 부분 그림인‘신라송공사’에서 말을 탄 사신이다. 오른쪽은 역시‘오대산도’의 일부인‘고려왕사’에서 사신을 따르는 짐꾼이다. /동국대경주캠퍼스박물관 제공

 

둔황연구원 리신(李新) 연구원은 5일 경주시 우양미술관에서 경상북도 주최, 동국대경주캠퍼스박물관 주관으로 열린 '제2회 경주 실크로드 국제 학술회의' 발표를 통해 "막고굴·유림굴·서(西)천불동 등 둔황 석굴군(群)의 석굴 중 40개에서 고구려·백제·신라·고려인이 그려진 그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리 연구원은 "주로 불경(佛經)을 소재로 한 둔황 석굴 벽화에는 인접 각국의 왕과 사신, 불교 신자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관모(冠帽)와 복식·외모 등으로 판단할 때 '열반경' 벽화 7개, '유마힐경' 벽화 29개, '범망경' 벽화 3개에서 고대 한국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둔황 석굴군에서도 가장 큰 벽화인 막고굴 제61굴의 '오대산도(五臺山圖)' 안에서 확인된 '신라왕탑(新羅王塔)' '신라송공사(新羅送供使)' '고려왕사(高麗王使)' '보리지암(菩提之庵)' 등 고대 한국과 관련 있는 그림 4점은 역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둔황 석굴에서는 그동안 고대 한반도의 특징적 모자인 조우관(鳥羽冠)을 쓴 인물상과 장구를 치는 모습 등 고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간헐적으로 발견됐지만 전체적인 실태가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돈황석굴 

 

 

 

 


 

 

그림을 클맄하시면..큰그림 나오며 아래 해당호굴을 누루시면.. 해당호굴의 설명이 나옴니다.                            top

제16굴 만당 장경동을 이실로 가진 굴:                 제17굴 만당 20세기 최대의 발견 장경동             텍스트 설명보기

제61굴 세계최고 최대의 형상지도 ‘오대산도         제96굴 초당 북대불과 막고굴의 상징 9층누각

제148굴 성당 거대한 열반경변상도                     제156굴 (특별굴)만당 돈황 벽화의 걸작 장의조출행도

제237굴 중당 신라왕자 벽화   제259굴 북위 동양의 모나리자 선정불   제427굴 수대 ‘삼존입상’소상    제428굴 북주 벽화 비천상

96호 구층루 북대불-세계4대불

17호굴 장경동 홍빈상
-혜초 왕오천축국전

61호 오대산도
-최고최대 형상도

130호굴 남대불

96구층루북대불.jpg

17굴장경동홍변.jpg

61굴오대산도.jpg

130남대불.jpg

156특굴장의조출행도.jpg

427탑묘굴05.jpg

428비천도02.jpg

428역사벽화03.jpg

428본생도01.jpg

156호굴 장의조 출행도

427탑묘굴

428호 비천도

428호 역사도

428호 본생도

일반굴설명   16,17    96 130  148 259, 427,428,  특굴설명: 61 335 156 220
 
http://www.chinatravel.co.kr/tourinfo/tour_place/xia-lanju_silkroad/dnh1.htm ....dyn_cave.htm

  돈황(敦煌) 막고굴(莫高掘)
  일반굴

참조: 1, 돈황막고굴 일반굴:  2002 4월10일 자료

(1)      16굴, 17굴-장경동(당나라때 건조), 

(2)      96굴, 130굴-대불(당나라때 건조 북대불-세계에서 4번째 큰 불상-石胎泥塑/ 남대불),

(3)      148굴(와불-잠자는 부처-열반경변상도), 237굴-일반굴(당나라때 건조~신라왕자??)

(4)      427굴(수나라때 건조 ~비천)

(5)      428굴(북조때 건조 벽화 본생도 비천 역사)

(6)      259굴(북위때 건조~선정불) 등

이상 막고굴 일반굴중 공식적으로 보는 일반굴줄  장경동, 대불, 와불 등 8~9개 석굴보면 정상적으로 다 본걸로 인정합니다. 돈황막고굴 측에서 여러코스 개척했고 그중 한코스만 보게 되고, 현지상황에 따라 막고굴측에서 지정된 석굴 관람하게 되며, 특굴 요청시는 추가비용 지불하고 보면 됩니다.

 일반굴

항상 투어비에 포함- 이중에 8개 코스 중 하나 잡고 장경동 대불 와불 등 8개굴 봄..

9,16,17,12,23,46,55,,79,94,100,103,130,146,148,152,172,196,202,209,231,244,246,249.251,256,257,259,320,323,

328,329,332,334,365,390,401,419,420,427,428,445,454.

  특별굴

:57, 61 156,158,159,217,254(굴하나의 입장료가 14$/인->22$ 인상됨)   
 
220,285(굴하나의 입장료가 200원/인)        275(굴하나의 입장료가 120원/인)   67$/굴(465굴)

 특굴설명

156굴: 당나라 말기 건조  장의조가 병사를 통솔하여 출발하는 출행도(장의조 통군 출행도),
    송나라 하내군부인 출행
-정괸회와 무용 장면 송국부인 출행도 중의 일부 만당--돈황 막고굴(문을출판사)138면 하단

465굴: 원나라 시기 건조        밀종(불교 종파)내용 (67$/굴(465굴)

220호굴- 머리에 조우관을 쓰고 있는 한국인 사절. 초당기

61호굴

4.돈황 막고굴 61호-간희(竿戱,솟대타기),오대(五代) 솟대를 세우고 두 명의 어린이가 올라가 재주를 부리고 있다. 좌측과 앞은 악사이고 ,우측은 설화인(說話人)이다-돈황 민속화권49면의 33번 사진

5.돈황 막고굴 61호 벽화-역기 거중 코끼리들기와 큰종 들기 오대(五代) -중국 고대체육 문물도록 85면의 15번 사진
6.오대산도 947~951년 조성함 세계 最古 最大 形相 地圖  
  오대산천 지형 도로 교량 사찰 순례자 봉공행렬 농경행렬 풍속 그림.

 

  참조1

 237호굴유마힐경변도신라왕자.jpg참조1.돈황 335호 석굴-주실(主室) 북벽 벽화(686년)인 유마힐경변. 오른쪽 하단에 머리에 조우관을 쓰고 있는 한국인 사절이 보인다- 「돈황석굴예술 막고굴제321굴」(??미술출판사)의 208면 상단 그림(184번 그림)
 237특굴...신라사절단 신라왕자 있음...동벽 유마힐 경변도 남측아래 청문하는 토번왕 과 각국 왕자 그림속에... 당 중기 토번 지배하 때 조성함    

크게보기..그림 클맄하세요..

  참조2

 굴설명
 16,17    96 130  148 259, 427,428,
 
최영도 변호사의 세계문화유산기행문에서..인용...  

9,,12,23,46,55,,79,94,100,103,146,148,152,172,196,202,209,231,244,246,249.251,256,257,320,323,                                     top      

328,329,332,334,335,365,390,401,419,420,445,454.

 

     

 

참조1

막고굴 추가 정보...  *막고굴 莫高窟(모가오쿠)    막고굴 굴별로상세 보기

둔황에서 남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곳, 명사산 동쪽 절벽에 남북 약1.8㎞에 걸쳐 조성된 석굴군이다.

 막고굴은 천불동(千佛洞) 이라고도 불린다. 굴은 1000개 이상 있는데 발굴되어 있는 것은 492굴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총면저 4만 5000㎡에 달하는 벽화와 2000체가 넘는 채색 소상(塑像)이 있으니, 정녕 사막 속의 천연 화랑이다.

 이들 굴이 최초로 조성된 것은 4세기 동진(東晋)시대이다. 366년 승려 낙준(樂 )이 석양에 비치어 금빛으로 빛나는 삼위산(三危山)에서 천불(千佛)의 위엄을 느끼고 맞은편 명사산 벽에 석굴을 조성하여 수도의 장소를 삼은 것이 시초이다. 이후 14세기의 원(元)대가지 약1000년에 걸쳐 조성작업이 이어졌다.

 492굴을 시대별로 나누면 수(隋) 이전 120, 수(隋)대 140, 당(唐)대 111, 오대(五代) 7, 송(宋)ㆍ원(元)대가 35굴이다.

 

참조2

 벽화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다. 초기에는 민간 신화가 많은데, 이는 후한(後漢)시대에 전해진 불교가 중국 고래의 신불사상과 결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도, 석가의 선행을 주제로 한 이른바 본생담(本生譚)은 인도의 쿠샨, 카니슈카 왕조 시대에 서역으로 전해진 불교 예술의 영향이 강하다.
수대에 구마라십(鳩摩羅什)이 산 스크리트 어 불전을 다수 한역(漢譯)한 다음의 벽화에는 유마독경변(維摩讀經變)이나 법화경변(法華經變)등 불교 고사가 등장한다. 당대는 벽화의 황금시대로 ,그 내용도 서방정토의 극락세계를 구하는 다채로운 것으로 바뀐다.
제 45굴의 칠존상(七尊像)은 당 전성기 소상의 걸작이며 둔황 소상 예술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어느 미술서에나 등장한다. 제57굴 벽화의 보살은 당 초기의 작품이다. 제158굴의 열반상은 당 중기의 작품이고 벽화도 훌륭하다. 제156굴의 장의조출행도(張議潮出行圖:당 말기),제172굴의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당 전성기), 제249굴 수렵도(狩獵圖: 서위).제257굴의 녹왕본생(鹿王本生:북위)
,제428굴 살타태자사신사호(薩 太子捨身飼虎: 북주)의 벽화는 빠뜨려서는 안될 작품이다. 제285굴에 그려진 비천(飛天)은 서위(西魏)의 걸작이며,
제427굴의 소상과 천불은 수대 작품이다. 제17굴은 장경동(藏經洞)이라 불리며 송대까지의 경전이나 문서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서하가 지배했을 무렵에 봉쇄되었다가 1900년에 도사원록(道士圓錄)이 발견되어 전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제16굴 만당 장경동을 이실로 가진 굴:

복두형 천장의 중심수미단식 대형 굴이다. 개굴開窟은 만당기에 했지만, 벽화는 서하 때의 것이 많다. 단상에 청대에 중수된 아홉구의 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보전상태가 좋지 않다. 이 굴은 이실 耳室로 장경동인 제17굴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굴의 입구 좌측에 왕원록 도사의 제자들이 세운 주수공덕비가 있는데 왕도사가 장경동에서 나온 돈황문서를 팔아서 챙긴 돈으로 이굴을 개수하고 3층 누각으로 된 전실(前室)을 건축한 공덕을 기리는 것이라고 하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제17굴 만당 20세기 최대의 발견 장경동

제16굴의 용도(用道) 북벽에 높이 184cm, 넓이 92cm 의 직사각형 문이 하나 뚫려 있는데, 그 안에 있는 작은 굴이 제 17굴이며, 1900년 왕원록이 돈황문서를 발견한 유명한 장경동이다.

이 굴은 원래 862년에 입적한 하서도승통 홍변스님의 소상을 모시는 어영당이다. 그래서 제365굴에 있는 홍변상을 이굴로 다시 옮겨놓았다. 익술은 김이 2.5m, 폭 2.7m 높이 3m 의 작은 복두형 천장의 방굴로, 서벽에 대중5년(851)의 기년(紀年)이 있는 혼변고신비가 세겨져 있다. 그러므로 제16,17굴은 851년에서 862년까지 사이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 17굴의 북벽 홍변상의 배후에는 ‘쌍수와 2시자상’ 이 그려져 있다. 물병이 걸린 우측나무옆에 부채를 든 시자와 가방이 좌측 나무 옆에 지팡이와 수건을 들고 있는 시녀가 마치 홍변스님을 협시하는 듯이 서 있다. 그녀는 고승을 시봉하는 우바이로서, 당대에 선호하던 아름답고 풍만한 얼굴에 만당기의 부녀자들에게 유행하던 남장을 하고 있다.
 

제61굴 세계최고 최대의 형상지도 ‘오대산도

조의금의 셋째아들 조원충이 947년~951년 사이에 아내 적씨를 위해 조성한 아주 큰 굴이다. 이굴은 중앙의 중심주를 사방으로 둘러싼 구조를 취하고 있는 데, 일명 ‘문수당’이라고도 한다. 중심주의 동향면에 있던 문수상등의 소상은 모두 파괴되어 없어지고, 사자꼬리 하나만 벽에 붙어 남아 있다. 굴 천장의 네 귀퉁이에 고부조의 큰 사천왕 소상이 하나씩 붙어 있다. 서벽의 ‘오대산도’는 문수보살의 도량으로 북위때부터 불교의 성지로 된 산서성의 오대산을 그린 폭 13.45m 높이 3.42m 의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오대산 수백리의 산천지형, 도로, 교량, 67개의 사찰과 고사, 순례자의여행, 각지에서 보내는 송고행렬, 농경 풍경과 서민생활의 풍속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존하는 고대의 지지명승형상도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것이며 진귀한 역사지리 자료다. 1937년 어떤 유명한 건축가가 이 그림을 보고 오대산에 가서 잊혀진 불교유지를 새로 찾아낸 일도 있었다고 한다.

동벽 좌우, 남벽 전반, 북벽 전반에 걸쳐 대형의 ‘여공양인상’ 53체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는 특히, 회흘(위구르)공주, 우전공주, 우전국 황후(한족인 조의금의딸) 등의 귀부인들이 멋진 관을 쓰고 당시에 유행에 따른 화장과 복식을 하고 있는데 매우 아름답다. 이들은 모두 그 당시 돈황을 지배하던 조씨네와 그와 통혼한 가문의 여인들이다.                                                                top   


제96굴 초당 북대불과 막고굴의 상징 9층누각

이굴에는 측천무후가 여황제로 등극한 후 자신의 권력에 대한 합리성을 부여하려고 발원하여, 695년 영은 선사와 음조거사가 석테니소(바위를 초벌 조각한 후 진흙을 덮어 형체를 완성하고 채색을 한 소상)로 조성한 높이 34.5m , 폭 12.5 m 의 미륵대불이 있다. 이 불상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크고 - 중국사천성의 낙산대불(71m),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동대불(55m),바이얀 서대불(38m) 에 이어 세계 제 4위의 대불이다- 돈황에서는 가장 큰 불상으로 통칭 ‘북대불’ 이라 한다.

미인이었던 측천무후를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얼굴이 전혀 예쁘지 않고 위압적이며, 가사대신에 황제의 곤룡포를 입고 있다. 1935년 이 대불위에 높이 43m 의 9층 목조 누각과 전실을 건축하여 덮어 씌었다. 이 대불전은 지금 막고굴의 상징이 되었다.


제148굴 성당 거대한 열반경변상도

776년에 조성된 폭17m 깊이7m 높이 6m 의 큰 굴이다. 주실은 궁형천장인데 서벽에 길이 16.4m , 폭 3.5m의 거대한 석태니소의 석가 열반상이 안치되어 있어 ‘열반굴’ 이라 불린다. 열반상뒤에는 비탄에 잠긴 표정을 짓고 거애하는 제자, 보살, 나한, 천인, 각국 왕자등 72구의 소상이 있다. 남벽에 아미타불, 북벽에 미륵불 소상이 각기 안치되어 있어, 이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로 구성되어 있다.

소상 배후에 남,서,북벽에 걸쳐 높이 6m 폭 23m의 화면에 60 테마,500여인물들이 그려진 열반경변상도가 펼쳐져 있다. 동벽 북측의 약사경변, 동벽 남측의 관무량수경변은 막고굴의 최대 경변화로서, 인물이 많고, 내용이 풍부하며, 제궁구중의 궁전과 대형사원등 건축의 조형이 다양하고 장관이어서 성당기 경변회화의 융성을 상징한다.

전실의 천장화는 10년전에는 색채가 영롱했었는데 지금은 먼지 모래 습기등으로 인하여 퇴색되어 현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돈황석굴 벽화의 보존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top     

 

제156굴 (특별굴)만당 돈황 벽화의 걸작 장의조출행도

제156굴, 제158굴, 제159굴 등 세 개의 특별굴은 남대불전 위 석벽내부의 미로같은 층계를 올라가, 4층의 전망 좋고 호전한 곳에 나란히 숨어 있는 듯 위치해 있다. 제156굴은 865년 장회심이 조영한 복두형 천장의 방굴로서, 만당기에 조영된 굴중에서 가장 중요한 굴이다. 남벽 하부의 귀의군절도사 장의 조통군출행도와 북벽 하부의 숭국하나군부인 송씨출행도는 모두 길이 8.55m , 높이 1.2m 의 긴 두루마리 형식의 장려한 일품으로 , 돈황을 지배 했던 귀의군절도사의 권위와 호사한 당대 귀족생활의 일단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장의조출행도는 대폭의 화면에 100명이 넘는 사람과 말이 등장하여 화려한 행렬을 펼친다. 우측의 행렬 선두에 군악대, 이어서 의장대가 나아가고, 소형 악대의 반주에 맞추어 무인들이 춤을 추는 데, 옷소매가 길고 어깨춤을 추는 춤사위가 한국 무용과 아주 비슷하다. 돈황연구원에서도 처음에는 티베트 춤 같다고 하다가 최근에는 한국 춤 같다고 인정했다 한다. 그 뒤로는 절도사의 신분을 나타내는 정기를 받든 두 명의 기병이 달리고, 2열의 의장병이 도보로 따라간다. 행렬 중간에 주인공인 장의조가 홍포를 입고 백마에 올라앉아 다리를 건너가는데 앞뒤에서 장사들이 호위하고, 그 뒤에 자제군이라고 이름 붙인 장의조의 근시일족과 지절군장이 위풍당당하게 따른다. 맨 뒤에 치중대와 기마대의 수렵장면이 이어진다. 이 그림은 말의 생동감있는 여러 가지 자세, 사냥하며 활쏘는 모습, 참모와 전령의 바쁜 상황등 사실적인 행태묘사가 아주 뛰어나며 실존 인물을 그린 역사화로 돈황의 벽화중 걸작으로 꼽힌다.

 

송국부인출행도에는 좌측의 행렬 선두에서 긴장대위에서 곡예를 하는 광대와 무악대가 티베트의 풍속을 반영하고, 행렬 중간에서 두루마리를 뒤쪽으로 전달하는 기마전령의 모습이 분주하다. 부인의 팔인교와 수행원의 연, 여, 마차등은 앞서 나아가고, 주인공인 송국부인은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가마에서 내려 뒤에 따라가는 모습으로 남벽의 남편과 마주보는 위치에 그려져 있는데, 시종들이 앞에서 인도하고 뒤에서 호위한다. 행렬 후반에 대규모의 치중차량과 사냥 장면이 있다. 이 그림은 봉건시대의 귀부인 의 호화스러운 외출방면으로 당시 사회생활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존불 위의 감실 천장에는 천수천안관음변 등 티벳 밀교의 탱화가 그려져 있다.

이 굴은 1921년 소련의 적군에 쫓겨온 백러시아군이 주둔하면서, 취사 난방등으로 불을 피워 북동측 모서리등이  그슬렸는데, 그것을 떼어내면 벽화가 훼손되기에 어쩔 수 없이 방치되고 있다. 용도에 당풍의 장의조출행도 와 송국부인도 가 그려져 있는데 모두 긁어서 파내고, 심하게 낙서를 하여 훼손되었다. 전실의 천장 북측에는 보은경변 가운데 유모차가 그려져 있는데, 네 바퀴가 달리고 차양과 손잡이까지 있는 모양이 현대의 유모차와 똑같다. 중구에서 가장 오래된 유모차 그림이라고 한다.                                               top         


제237굴 중당 신라왕자 발견에 대한 시비

당의 중기 토번 통치하에서 조성된 굴이다. 서벽 중앙에 관세음보살, 좌측에 보현보살, 우측에 문수보살, 남측에 유마힐을 그리고, 그 아래 논쟁을 청문하는 토번 왕과 각국 왕자들 중에는 조우관을 쓴 앳된 얼굴의 신라 왕자도 있다. 그러나, 유마힐변상도는 도상학상으로 문수보살 아래첩이나 모본을 보고 다양한 인종과 복식의 각국의 왕자를 묘사하므로, 조우관을 쓴 신라 왕자도 많이 그려 넣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화가가 신라 왕자를 그린 것은 정말로 신라왕자가 이곳에 왔기 때문이 아니고, 그 그림을 그리던 시절 하나의 유행이고 도상학상의 약속일 뿐이다. 그래서 신라 왕자가 그려져 있다 하여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일은 못 된다. 남벽에 반탄비파상이 그려져 있다. 이굴 조정에 수미상접한 토끼 세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토끼들이 모두 한쪽 귀를 옆의 도끼와 공유하여 귀가 모두 3개밖에 그려져 있지 않다.            top     


제259 북위 동양의 모나리자 선정불

북위 조기의 동굴이다. 전부는 인자파 천장, 서벽 중앙부는 반중앙 탑주형으로 만들고, 서벽의 아치형 감실 내에 석가불과 다보불이 나란히 않아 설법하는 ‘이불병좌 설법상’이 있다.

이 것은 법화경의 견보탑품에 있는 것으로 석가가 기사굴산에서 설법을 할 때의 일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 땅속에서 보탑이 솟아올라 공중에 멈추더니, 그 탑 가운데서 다보불이 나타나 석가를 청하여 탑에 나란히 앉아 같이 설법 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높은 육계, 어깨가 넓은 당당한 체구, 깊은 옷주름 등이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북위 초기의 운강 석불과 공통된 특징이 있다.

북벽을 상하2층으로 나누어 감을 조성하고, 한층에 3구씩 도합 6구의 불소상이 있는데, 상층 중앙과 좌측과 교각미륵보살2구는 초기의 불상 양식이다. 하층 우측제3감실에 있는 높이 92cm 의 선정불은 장방형 수미좌에 결가부좌하고, 두 손은 배 앞에 가지런히 포개어 선정인을 짓고 있는데 조형이 소탈하고 엄정하다. 크게 올려 그린 가늘고 긴 눈썹아래 두 눈을 살짝 내리뜨고, 반월형의 작은 입술에 깨달음에서 오는 희열로 영혼의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엷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 불상은 형신 겸비한 북위의 대표적 걸작으로 ‘동양의 모나리자’ 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top               


제 427 수대 수대의 전형적인 ‘삼존입상’소상

전실과 주실로 나누어 수대에 조성된 가장 큰 규모의 탑묘굴이다. 전실은 송대에 지은 목조가구굴이다. 전실의 남북벽에 높이 3.6m 의 천왕이 각 2구씩 사천왕, 서벽 굴문 양측에 높이 2.5m 이상의 금강역사 2구의 거상이 있는 데 , 모두 돈황 채소의 대표작이다. 동목에 귀의군절도사 조원충이 쓴 건덕8년(970)의 묵서명이 있다.

주실은 장방형이고 앞쪽에 인자파, 뒤쪽에 평천장, 중심에 방주를 세웠다. 방주 동향면의 벽에 높이6m 의 크고 당당한 석가모니불과 5m의 좌우협시불 ‘삼존입상’ 주벽인 남벽에 비로자나불과 2보살, 북벽에 노자나불과 2보살을 배치하여, 이 굴은 석가의 응신, 법신 , 보신의 ‘삼신불’의 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머리가 크고 가슴이 두터운 데 비하여, 하반신은 짧고 직립하여 균형을 잃고 있지만 소박하고 웅장하여 수대 불상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나타낸 대표작이다. 북벽의 삼존상은 특히 보존상태가 좋고, 양협시보살의 화려한 장식 문양은 수대의 기술적 수준을 엿 볼수 있게 한다. 이굴의 불상들에는 두껍게 금을 입혔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21년 백러시아 병사들이 1년간 이굴에 살면서 금을 깎아갔다고 하는데, 여기저기 여러 곳에 깎아낸 흔적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4벽 상연에 굴을 한바퀴 돌아가며 공후 , 비파, 횡적, 수금 등 각종 악기를 손에 들고 비상하는 108체의 비천상이 그려져 있는데 수대 비천의 대표작이다. 용도의 남벽에 송대의 조원충, 북벽에 부인의 ‘고양인상’이 그려져 있다.                      top                   


 제428굴 북주 현란한 벽화로 가득찬 굴

막고굴 초기에 조성된 폭10.8m , 깊이 13.75m  의 최대 규모의 중심 탑주식 탑묘굴이다. 중심 탑주 4면에 감실을 한개씩 열고, 1불, 2제자, 감밖에 2보살을 배치했는데, 이 소상들은 상반신이 큰 것이 특징이다. 감밖에 좌우에 보리수를 엮어 붙여 수하설법을 나타내고 있다. 남벽의 ‘설법도’ 가운데 보살, 비천등 인물들은 모두 굵고 검은선으로 윤곽이 그려져 있고, 눈과 코는 흰색으로 두껍게 묘사되어, 마치 조르주 루오의 야수파 회화를 보는 듯한 야성적이다. 그래서 한때 중국에서는 이미 천수백년전에 야수파 회화를 그렸다고 떠들썩했으나 돈황연구원에서 연구한 결과, 원래 인물의 윤곽은 담홍색으로 우아하게 그린 것이나, 담홍색을 만들기 위해 조합제로 사용한 은주와 연분이 공기와 접촉하자  산화되어 커피색, 회색 또는 흑색으로 변한 것으로 밝혀졌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