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근대를 걷다] ① 공공시설
2012-01-05 [15:41:00] | 수정시간: 2012-01-12 [09:55:10] | 33면

▲ 위에서 본 창고 건물. 이재찬 기자 chan@
도시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한다. 속도와 변화를 추구하다 보니 있는 공간마저 헐어버리고 새롭게 짓는 작업에 몰두한다. 추억이라고는, 역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 돼 버렸다. 근대의 공간도 예외 없이 사라지고 있다. 근대 건축은 불행하게도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본 식민지 지배의 어두운 그림자라는 인식이 더해져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다. 여기에 개발 압력이 가세해 근대 건축에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있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도시와 장소가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나 속 깊은 애절함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힘들게 남아 있던 것들마저 제 모습을 잃고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 근대의 흔적들은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가교다. 이 지면을 통해 우리 삶에 스며 있는 근대 역사·문화의 참모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소중한 기억이 더는 사라지는 것을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산지방기상청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옛 백제병원…
허름한 창고마저 오늘의 '보물'
주변 시설들 한데 묶어
문화·관광시설 활용가치 충분
■ 근대식 미국 사무실 빌딩의 흔적
부산은 흔적을 잃어가는 도시지만 그래도 곳곳엔 잊고 지냈던 근대 건축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중 공공시설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견디며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지탱하는 '밀알'이 되고 있다.
옛 충무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부산 서구청에서 직선으로 200m가량 떨어진 곳에 한국전력 중부산지점(부산 서구 토성동)이 있다. 겉모습만 보면,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깨끗하고 세련된 건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애초 국내 전력산업의 중추를 담당하던 ㈜남선전기의 사옥으로 1930년대 지어졌으니 80년을 견뎌온 거다. 처음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였지만, 1970년대 들어 5층 강당을 증축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건물 내부를 보니, 다른 건물보다 층고가 훨씬 높다. 주요 서류나 전차표를 보관하던 대형 벽면 철제 금고도 눈길을 끈다. 철문의 두께만 해도 30㎝가량.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안에 또 다른 철문이 있는 2중 문 구조다.
당시 오피스 빌딩 가운데 부산에서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이었다. 그때 만들어졌던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 장식 하나에도 정성이 엿보인다. 건물 내부 계단 난간대와 난간대 사이의 배 모양을 본뜬 원 모양 창이 대리석 마감재와 조화를 이뤄 건물을 한층 세련된 분위기로 이끈다. 회의실에 보존된 내부 장식도 그랬다.
건물 외벽을 보면 2층까지는 깔끔하고 세련돼 보이는 화강석을 사용해 마감했고, 그 위론 타일로 처리했다. 처마 아래는 인조석 조각재를 붙여 장식했다. 전통 기와에 모양을 낸 것 같다. 동행한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움을 보이면서도 지나친 기교나 장식을 배제한, 전형적인 근대식(1930년대) 미국 사무실 빌딩의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외벽이 3단으로 나눠 디자인되어 있는데 이 또한 그러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당시 사무용 건축물로서는 원형에 가장 가깝게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이라 했다. 이 건물은 엘리베이터 시설 일부와 기계 시설, 내부장식 등이 보존되어 있어 2007년 7월 등록문화재 제329호로 등록됐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 파일로 해수에 장기간 침전 후 건조한 소나무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지점 본관 건물 옆에는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4~5개의 창고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일부 건물을 제외하곤 이 역시 193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고들은 현재 구내식당, 주차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중 현재 비어 있는 창고 하나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바닥은 나무 마루. 세월의 더께에 밟으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창고는 복층식 구조로 되어 있다. 계단도, 지지대도, 벽면도, 천장도, 바닥도 모두 나무다. 내부는 제법 잘 보존돼 있다. 창고 외벽 곳곳에 아치 장식의 창호가 보인다. 비록 창고의 창문이지만 그 모양이 여간 멋스러운 게 아니다. 겉은 허름한 창고에 불과하지만 부산의 기억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 또한 소중한 보물임을 실감한다.
■ 살아 숨 쉬는 공공건축물
역사의 흔적을 기억하며 남아 있는 공간이 어디 이곳뿐이랴. 가까이에는 부산지방기상청(부산 중구 대청동)도 있다. 건립연도도 1934년으로 한전 중부산 지점과 엇비슷하다. 건물 내외부가 거의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 1939년 국립중앙기상대 부산측우소로 개칭했다가 1992년 부산지방기상청으로 승격해 현재 부산, 경남 지역과 남해안 일부의 기상 관측을 담당하고 있다.
역사로 본다면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부산 중구 대청동)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지방기상청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다. 대청로 부산근대역사관 맞은편, 얼키설키 복잡한 상가 골목을 몇 차례나 드나들어야 겨우 찾을 수 있을 만큼 가려져 있다. 그래도 골목길을 따라 성당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본떠 만든 성당은 붉은 벽돌로 쌓아 올렸다. 돔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도 그대로 남아 있다. 종탑 안을 보지 않고는 이 건물을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외부의 강철 재질과 달리 안쪽은 촘촘히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테 같은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느껴진다. 성당 형태는 우측 회랑 부분을 제외하곤 건립 당시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옛 백제병원 또한 굴곡진 부산 근대사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건물이다. 현재 부산역 맞은편 부산 동구 초량동 화교거리에 있는 이 병원은 1920~30년께 지어졌다. 한국인이 세운 부산 최초의 종합병원이기도 하다. 당시 부산부립병원, 철도병원과 함께 부산의 3대 병원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부산대학교 인문관, 부경고 건물 등이 공공시설물로 기억해야 할 흔적들이다.
■ 발상의 전환, 그리고 연계
한국전력 중부산지점 본관 건물에 대해 김 교수는 "이 건물이 일제강점기 지어진 건물인지 대부분 모른다. 이런 우리의 근대 유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창고 4개 동을 구내식당이나 주차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에 못내 아쉬워했다. "부산시에서 사들일 수 있다면, 이곳에다 전기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나 도서관, 창작 공간이 어우러진 문화 공간을 건립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근대건축물은 대부분 공공시설에 의한 제한적인 활용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피아트 링코트 공장, 일본 샷포프 팩토리 프로젝트 등에서 보듯 외국에서는 죽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낙후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지역의 역사적 상징과 함께 문화적 이벤트를 위한 시설로 대접받는 거다.
부산시나 시민이 손 놓고 있으면, 이곳 역시 부산 하야리아 내 건물들처럼 어느 순간 하나둘 우리 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새것만 좋아하고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만 숙달돼 있기에 이 건물 또한 우리가 외면하면,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곱게 늙어가는 것, 숙성된 것에는 도무지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지역과 연계한 문화 테마 공간으로의 활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지자체들이 새롭게 지은 청사 건물을 자랑할 때 리모델링을 통해 구청사의 모범을 보여준 서구청을 비롯해 인근의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부산지방기상청 등을 활용·연계한다면, 좋은 문화 관광 상품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부산일보, 동아대 건축학과 역사이론연구실, 도시건축재생연구소 '건전지' 공동기획


- [부산의 근대를 걷다] 4. 군집시설 2012-02-02 [08:04:33]
- 일찍부터 일본인 거류지가 있었던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일제 관련 건축물이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군사시설은 특성상 군집을 이루며 특정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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