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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문화영화의 제도변천 문화영화의 제도변천 1950년대 문화영화의 제작과 상영 광복 직후는 물론이고 남한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한동안 문화영화에 관련된 법적 규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1949년 「대한영화사 관리규정」 1조에는 국책에 순응한 영화의 제작을 공보처가 관리한다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때 ‘국책에 순응한 영화’의 범주 안에는 관제 문화영화가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대한영화사는 일제 말기 친일 군국주의 영화를 제작했던 조선영화주식회사를 1949년 총리령으로 국가에 귀속시키면서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이 조항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영화사는 국책에 순응한 관제영화를 만드는 것을 주요한 임무로 하였다. 대한영화사 관리규정, 1949 총무처 , BA0200315(1-2) 대한영화사 관리규정, 1949 총무처 , BA0.. 더보기
문화영화의 기원 문화영화의 기원 시작은 독일에서, 적용은 일본에서 문화영화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영화를 활용한 선전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최초의 전쟁이었다. 선전영화의 놀라운 영향력을 눈여겨 보았던 독일 정부는 패전 이후 재빨리 영화 통제를 단행하였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영화 제작을 장려하였다. 1917년 독일의 군소 영화제작사들은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우파(UFA / Universum Film Aktien Gesellschaft)라는 영화사를 설립하였다. 우파는 처음엔 회사 재정의 3분의 1을 정부에서 지원받았으나 1921년에 민영화되었으며, 2,500명의 직원이 1년에 600여편의 영화를 만드는 독일 최대의 영화사가 되었다. 우파는 독일 국민.. 더보기
문화영화의 개념 ‘문화영화로 보는 대한민국’은 1950년부터 1990년대까지 50년에 걸쳐 생산된 영상자료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 모습을 전달하는 국가기록원에서 만든 콘텐츠입니다. 문화영화에 대한 개념이해와 시대별 변화과정을 관심있는 네티즌들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문화영화, 시대별 특징 등의 순으로 싣습니다. 문화영화의 개념 시대 반영물로서의 문화영화 한국의 문화영화는 영화의 수용과 정착, 활기와 변화, 쇠퇴와 소멸의 단계적 과정이 거대한 역사적 흐름과 결부되어 있고, 그 내용적·형식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개별 작품 속에 시대적 양상이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담겨져 있다. 비교적 적은 비용이 투입되고 짧은 길이로 이루어진 다수의 문화영화가 국가의 주도로 기획, 제작, 배급, 상영되었다는 점이 커다란 요.. 더보기
캄차카로 보내진 북한 노무자, 남한의 가족을 만나다 (KBS 20110205 방송) https://youtu.be/31Iw-yGXwhk?si=IdEgD54H11HasyjN 캄차카로 보내진 북한 노무자, 남한의 가족을 만나다 (KBS 20110205 방송) 한인 디아스포라 KBS 151K subscribers Premiered Aug 9, 2022 ■ 러시아 혹한의 땅 캄차카 반도에는 1945년 해방 직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이 노무자들을 모집, 3만명이 보내졌습니다. 수천명이 남겨져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사람들 이중에는 고향이 남한이지만, 3.8선 때문에 남으로 가지 못하고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국적이 북한이라 한국에 가지 못한 손진택 할아버지는 한국의 가족과 영상으로 만났습니다. 2011년 2월 5일 방송된 캄차카 한의 노래 입니다 상기 영상을 보고 쓴 댓글 몇 편을 소개.. 더보기
한국 최초의 디젤전기기관차 역사의 진실은 [손길신의 철길 따라28화 ] 한국 최초의 디젤전기기관차 역사의 진실은 편집국 / 기사승인 : 2021-03-15 11:22:16 [하비엔=편집국] 한국에 디젤전기기관차가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차 대전 후 일본의 모든 철도를 관리하던 미군 제3군사철도수송지원대(3TMRS : Tran-sportation Military Railway Service)는 1950년 8월 철도수송운영대대와 철도정비대대를 이끌고 부산으로 이동하여 1951년 SW-8형 디젤전기기관차 35대를 반입하여 부산항으로 반입되는 물자의 열차수송과 디젤전기기관차의 운전 및 정비를 담당하였으며,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으로 운용 중이던 디젤전기기관차를 1954년 4월 반출하면서 그중 4대를 ICA원조계.. 더보기
전보(電報) [참성단] 전보(電報) 입력 2023-11-16 20:03 대학 시절 지방 출신 학우들이 간혹 종이쪽지 받아들고 허둥지둥 고향으로 내려가는 풍경이 있었다. 전화가 흔했던 80년대 초입인데, 드물게 고향에서 날아 온 전보는 황망한 가정사로 귀향을 독촉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풍경도 곧 사라졌다. 통신 혁명으로 축전 외에 전보를 쓸 일이 없었다. KT의 서비스 종료로 다음 달 15일 전보가 13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단다. 전보를 잊은 지 오랜데도, 뭔가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도둑 맞은 느낌이니 야릇하다. 전보는 배달에 시간이 걸리는 편지의 불편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19세기의 혁신적인 통신수단으로, 국내에선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서울~인천 간 첫 전보를 발신하면서 시작됐다. 1965년 삼양라면.. 더보기
중동 문제에 해법이 있을까? 중동 문제에 해법이 있을까?[임용한의 전쟁사]〈285〉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3-10-16 23:45업데이트 2023-10-17 02:44 읽기모드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하마스의 습격이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스라엘은 복수 작전을 시행 중이다. 지난 며칠간 세계 여론은 하마스의 야만적인 행동과 학살을 규탄했지만,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유린하면 여론의 방향이 또 바뀔지도 모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좀 더 나아가 중동 문제의 고민은 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목할 수 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유엔이 이 문제를 좀 더 현명하게 처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을 돌이킬 수도,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지울.. 더보기
오드리 헵번의 사진 44장 오드리 헵번의 사진 44장 브뤄셀의 익셀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을 벨기에, 영국 및 네델란란드에서 보냈다. 암스테르담에서 소니아 가스켈과 발레를 공부한 후 1948년 런던으로 건너가 마리 렘버트와 발레 수업을 계속했다. 그후 웨스트 엔드(West End) 뮤지컬 극장에서 코러스 걸로 활동했다. 몇몇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후, 프랑스의 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주목을 받았다. 1945년에 발표된 콜레트의 소설 지지(Gigi)를 원작으로 한 1951년의 브로드웨이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후 《로마의 휴일》(1953)에서 주연(앤 공주 역)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아카데미상, 골든 글로브상 및 BAFTA상을 수상한 첫 번째 배우였다. 같은 해 헵번은 장 지로두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