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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야기

지역의 역사·사회·기질 담긴 75가지 음식 … 그 자체가 부산

국제신문에서 지난 2016년 1월부터 부터 2017년 12월 까지 75가지의 부산 음식을 소개하고 전래과정과 변천, 지역에 따른 다양한 조리법을 탐색하는 '음식의 사회학' 프로젝트를 연재하였다. 시인이자 맛 칼럼니스트 동의대 최원준 교수의 안내로 사라져 가는 부산 토속음식과 자연마을 단위로 즐겨 먹는 향토음식을 발굴해 부산 음식의 지평을 넓혔던 기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6> 에필로그

지역의 역사·사회·기질 담긴 75가지 음식 … 그 자체가 부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2-26 18:44:16
  •  |   본지 24면
 
- 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과
- 전쟁 피란지라는 시대적 역사성
- 타 지역 음식문화 흡수·통합 거쳐
- 새로운 향토음식으로 ‘부산화’ 돼

- 부산음식의 인문학적 접근 의미
- 학문적성과 이룰수 있는 계기 되길

‘음식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그만큼 음식을 통한 시대적 통찰은 지대하다. 그 시대의 음식과 음식재료, 음식문화로 그 시대를 읽어낼 수 있고, 당시 ‘섭생의 사회학’ 또한 파악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음식은 시대를 담는 그릇

중국 청조의 ‘만한취엔시(滿漢全席)’는 사흘에 걸쳐 한족음식과 만족음식 180여 가지를 함께 맛보는 음식의 대향연이다. 그 이면에는 한족과 만주족의 대표 요리를 한 상에 올림으로써, 두 민족의 화합을 상징하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일본의 ‘와쇼쿠(和食)문화’는 지역공동체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음식을 차려내고 또 먹을 때의 예절과 만든 이와 먹는 이의 소통을 중시하는 등, 집단의 공동체문화를 음식을 매개로 결집해낸다. ‘음식문화’로 사회가 추구하는 관습과 도덕률, 가치관을 단련케 하는 것이다.

최근 ‘푸드 마일리지’를 통한 ‘로컬 푸드’를 즐기는 추세도, 생활의 여유와 건강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함께 ‘음식의 시대적 요청’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식, 즉 ‘향토음식’의 중요성 또한 고조되고 있기도 하다.

‘향토음식’은 지역의 ‘공동체문화’를 담음으로써, 음식으로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관습적 색채까지 이해할 수가 있다. ‘지역의 음식’이 그 지역의 ‘밥상머리 교육’이나 ‘가치관 정립’의 측면까지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의 역사와 함께한 부산음식
 


그러면 우리 부산의 음식에서, 부산이라는 지역의 사회상을 어떻게 읽을 수가 있을까? 그 것은 부산의 ‘지정학적 특성’과 ‘시대적 역사성’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지정학적으로는 한반도 남단의 해양을 국경으로 하고 있었기에 해양문화 수용이 자유로웠다는 점, 역사적으로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여러 경로를 통한 인위적이고 다양한 문화유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부산의 근현대사는 이주의 역사였다. 초량왜관 시절 왜인들의 이주와 함께 일본음식 또한 조선에 널리 보급되는데, 이때 보급된 음식이 ‘부산어묵’의 근간이 되는 ‘가마보코’였다. 일본 거류지역 요정의 대표적인 술안주로, 해방 전후에는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에서 귀환동포가,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유입되었고, 산업화시대에는 직업을 찾아 온 경남, 호남, 제주 사람들로 부산은 흘러넘쳤다. 이들과 함께 유입된 ‘이종의 문화’와 더불어 그들의 식문화 또한 ‘부산화(釜山化)’ 된다. 하여, 이들의 집단이주는 부산사람들의 정체성과 부산 향토음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부산사람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수용성’과 ‘개방성’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문화를 받아들여 부산의 문화로 만들고, 부산의 문화를 개방하여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부산사람이 가지는 ‘부산의 정체성’이다. 부산의 수용과 개방, 공동체 의식이 현재 부산의 향토음식의 근간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부산음식 속의 부산, 부산사람

 
 
 
‘부산’하면 떠오르는 부산의 대표음식들이 몇몇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부산시는 2009년 부산의 향토음식을 선정한바 있다. 생선회, 동래파전, 흑염소 불고기, 복어요리, 곰장어구이, 해물탕, 아구찜, 재첩국, 낙지볶음, 밀면, 돼지국밥, 붕어찜 등 13가지 음식이다.

‘향토음식’ 속에는 그 지역의 역사와 각 시대별 사회상이 녹아있다. 그래서 부산향토음식에 투영된 부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되짚어 보면,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 사회 전반의 현상을 재미있게 풀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부산음식을 살펴보면 부산의 역사가 보인다’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 일례를 들자면 돼지국밥이 있겠다. 돼지국밥은 원래 부산·경남 식은 살코기만으로 맑은 국물을 내고 무와 고춧가루 파 등으로 끓여낸 고깃국형태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이북 이주민들에 의해 돼지 대가리 등 부산물을 넣어 만든 돼지국밥의 원형이 탄생했고, 이후 부산의 산업화, 장터문화와 섞이면서 국밥에 여러 고명을 얹어 간소하게 허벅허벅 먹는 지금의 국밥형태로 발전을 한다.

일본과 제주의 사골육수문화가 뽀얀 국물의 육수를 탄생시켰고, 대구경북의 탕반문화가 따로국밥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여러 지역의 음식문화들이 시대를 달리하며 다양한 돼지국밥들로 편입, 변주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지역의 특색을 가진 섭생을 수용하면서도, 부산음식의 특색 속으로 잘 발현된 음식이 돼지국밥이다.

밀면의 원형도 한국전쟁 당시 이북 피란민들이 원조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로 냉면을 대신하여 먹었던 ‘대체음식’이었다. ‘망향의 음식’인 냉면과 대별하여, 밀면은 ‘밀가루 냉면’으로 불리며, 주머니 가벼운 이들에게 널리 제공되었다. 가격은 냉면의 반값 수준. 때문에 냉면 한 그릇 값으로 밀면 두 그릇을 ‘나누어’ 먹고, 같은 가격으로는 많은 양을 ‘함께 널리’ 먹였던 음식이 밀면이었다. 하여 부산밀면 탄생의 의미는 ‘공유’와 ‘배려’다. 밀가루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다함께 먹고 살자고 시작된 음식이자,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싼값으로 제공하던 음식이었기에 그렇다.

먹장어도 배고픈 시절 구황음식으로 짚불이나 연탄불에 구워 먹던 음식이었다. 부산의 꼼장어는 ‘부산 로컬 푸드의 상징’이다. 꼼장어는 먹장어의 주생산지였던 기장에서 동해남부선 철길을 타고 부산전역으로 유통됐다. ‘재첩국 아지매’들에 의해 부산 전역으로 퍼져나간 재첩국과 더불어 ‘꼼장어 로드’를 형성하며, 로컬 푸드의 영역확대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던 향토음식이라 할 수가 있겠다.


 

■부산을 읽는 텍스트, 부산음식

 
향토음식이라 함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재료로, 그 지역의 환경에 의해 오래도록 길들여진 입맛으로 먹되, 지역사회 전체가 향토음식으로 공유하는 ‘자연발생적인 음식’을 뜻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전통음식, 부산의 향토음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산향토음식은 외부환경과 타의에 의해 급조되고 재편된 음식들이다. 식재료의 절대적 결핍, 이주민의 음식문화 수용 등으로 부산고유의 음식은 자연스레 여타 지역 음식문화와 흡수, 통합의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형태의 향토음식이 된 것.

이처럼 부산의 음식은 급격한 사회 환경 속에서 ‘부산화’ 된다. 그래서 부산의 역사와 사회상, 부산사람들의 기질까지 투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산의 향토음식인 것이다. 때문에 ‘부산음식’은 ‘부산을 읽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부산음식의 역사문화’가 ‘부산의 역사문화’와 그 궤를 함께 한다는 말이다. ‘부산을 보려면 부산의 음식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음식의 문화인류학’ 본 연재가 추구하고자 했던 궁극의 목적이었다. ‘부산, 부산사람, 부산의 정체성’을 부산음식에서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결론적으로 부실하고 미흡한 연재였다. 하지만 부산음식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해보았다는 측면에서 조금의 위안을 삼고자 한다. 본 연재가 ‘부산음식의 학문적 성과’에 이를 때까지,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여 매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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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6> 에필로그 : 국제신문 (kookje.co.kr)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6>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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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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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6> 에필로그 [문화] 2017.12.26(화)
    - 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과 - 전쟁 피란지라는 시대적 역사성 - 타 지역 음식문화 흡수·통합 거쳐 - 새로운 향토음식으로 ‘부산화’ 돼 - 부산음식의 인문학적 접근 의미 - 학문적성과 이룰수 있는 계기 되길 ‘음식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그만큼 음식을 통한 시대적 통찰은 지대하다. 그 시대의 음식과 음식재료, 음식문화로 그 시대를 읽어낼 수 있고, 당시 ‘섭생의 사회학’ 또한 파악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음식은 시대를 담는 그릇 중국 청조의 ‘만한취엔시(滿漢全席)’는 사흘에 걸쳐 한족음식과 만족음식 180여 가지를 함께 맛보는 음식의 대향연이다. 그 이면에는 한족과 만주족의 대표 요리를 한 상에 올림으로써, 두 민족의 화합을 상징하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일본의 ‘와쇼쿠(和食)문화’는 지역공동체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음식을 차려내고 또 먹을 때의 예절과 만든 이와 먹는 이의 소통을 중시하는 등, 집단의 공동체문화를 음식을 매개로 결집해낸다. ‘음식문화’로 사회가 추구하는 관습과 도덕률, 가치관을 단련케 하는 것이다. 최근 ‘푸드 마일리지’를 통한 ‘로컬 푸드’를 즐기는 추세도, 생활의 여유와 건강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함께 ‘음식의 시대적 요청’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식, 즉 ‘향토음식’의 중요성 또한 고조되고 있기도 하다. ‘향토음식’은 지역의 ‘공동체문화’를 담음으로써, 음식으로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관습적 색채까지 이해할 수가 있다. ‘지역의 음식’이 그 지역의 ‘밥상머리 교육’이나 ‘가치관 정립’의 측면까지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의 역사와 함께한 부산음식 그러면 우리 부산의 음식에서, 부산이라는 지역의 사회상을 어떻게 읽을 수가 있을까? 그 것은 부산의 ‘지정학적 특성’과 ‘시대적 역사성’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지정학적으로는 한반도 남단의 해양을 국경으로 하고 있었기에 해양문화 수용이 자유로웠다는 점, 역사적으로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여러 경로를 통한 인위적이고 다양한 문화유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부산의 근현대사는 이주의 역사였다. 초량왜관 시절 왜인들의 이주와 함께 일본음식 또한 조선에 널리 보급되는데, 이때 보급된 음식이 ‘부산어묵’의 근간이 되는 ‘가마보코’였다. 일본 거류지역 요정의 대표적인 술안주로, 해방 전후에는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에서 귀환동포가,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유입되었고, 산업화시대에는 직업을 찾아 온 경남, 호남, 제주 사람들로 부산은 흘러넘쳤다. 이들과 함께 유입된 ‘이종의 문화’와 더불어 그들의 식문화 또한 ‘부산화(釜山化)’ 된다. 하여, 이들의 집단이주는 부산사람들의 정체성과 부산 향토음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부산사람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수용성’과 ‘개방성’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문화를 받아들여 부산의 문화로 만들고, 부산의 문화를 개방하여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부산사람이 가지는 ‘부산의 정체성’이다. 부산의 수용과 개방, 공동체 의식이 현재 부산의 향토음식의 근간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부산음식 속의 부산, 부산사람 ‘부산’하면 떠오르는 부산의 대표음식들이 몇몇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부산시는 2009년 부산의 향토음식을 선정한바 있다. 생선회, 동래파전, 흑염소 불고기, 복어요리, 곰장어구이, 해물탕, 아구찜, 재첩국, 낙지볶음, 밀면, 돼지국밥, 붕어찜 등 13가지 음식이다. ‘향토음식’ 속에는 그 지역의 역사와 각 시대별 사회상이 녹아있다. 그래서 부산향토음식에 투영된 부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되짚어 보면,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 사회 전반의 현상을 재미있게 풀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부산음식을 살펴보면 부산의 역사가 보인다’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 일례를 들자면 돼지국밥이 있겠다. 돼지국밥은 원래 부산·경남 식은 살코기만으로 맑은 국물을 내고 무와 고춧가루 파 등으로 끓여낸 고깃국형태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이북 이주민들에 의해 돼지 대가리 등 부산물을 넣어 만든 돼지국밥의 원형이 탄생했고, 이후 부산의 산업화, 장터문화와 섞이면서 국밥에 여러 고명을 얹어 간소하게 허벅허벅 먹는 지금의 국밥형태로 발전을 한다. 일본과 제주의 사골육수문화가 뽀얀 국물의 육수를 탄생시켰고, 대구경북의 탕반문화가 따로국밥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여러 지역의 음식문화들이 시대를 달리하며 다양한 돼지국밥들로 편입, 변주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지역의 특색을 가진 섭생을 수용하면서도, 부산음식의 특색 속으로 잘 발현된 음식이 돼지국밥이다. 밀면의 원형도 한국전쟁 당시 이북 피란민들이 원조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로 냉면을 대신하여 먹었던 ‘대체음식’이었다. ‘망향의 음식’인 냉면과 대별하여, 밀면은 ‘밀가루 냉면’으로 불리며, 주머니 가벼운 이들에게 널리 제공되었다. 가격은 냉면의 반값 수준. 때문에 냉면 한 그릇 값으로 밀면 두 그릇을 ‘나누어’ 먹고, 같은 가격으로는 많은 양을 ‘함께 널리’ 먹였던 음식이 밀면이었다. 하여 부산밀면 탄생의 의미는 ‘공유’와 ‘배려’다. 밀가루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다함께 먹고 살자고 시작된 음식이자,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싼값으로 제공하던 음식이었기에 그렇다. 먹장어도 배고픈 시절 구황음식으로 짚불이나 연탄불에 구워 먹던 음식이었다. 부산의 꼼장어는 ‘부산 로컬 푸드의 상징’이다. 꼼장어는 먹장어의 주생산지였던 기장에서 동해남부선 철길을 타고 부산전역으로 유통됐다. ‘재첩국 아지매’들에 의해 부산 전역으로 퍼져나간 재첩국과 더불어 ‘꼼장어 로드’를 형성하며, 로컬 푸드의 영역확대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던 향토음식이라 할 수가 있겠다. ■부산을 읽는 텍스트, 부산음식 향토음식이라 함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재료로, 그 지역의 환경에 의해 오래도록 길들여진 입맛으로 먹되, 지역사회 전체가 향토음식으로 공유하는 ‘자연발생적인 음식’을 뜻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전통음식, 부산의 향토음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산향토음식은 외부환경과 타의에 의해 급조되고 재편된 음식들이다. 식재료의 절대적 결핍, 이주민의 음식문화 수용 등으로 부산고유의 음식은 자연스레 여타 지역 음식문화와 흡수, 통합의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형태의 향토음식이 된 것. 이처럼 부산의 음식은 급격한 사회 환경 속에서 ‘부산화’ 된다. 그래서 부산의 역사와 사회상, 부산사람들의 기질까지 투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산의 향토음식인 것이다. 때문에 ‘부산음식’은 ‘부산을 읽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부산음식의 역사문화’가 ‘부산의 역사문화’와 그 궤를 함께 한다는 말이다. ‘부산을 보려면 부산의 음식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음식의 문화인류학’ 본 연재가 추구하고자 했던 궁극의 목적이었다. ‘부산, 부산사람, 부산의 정체성’을 부산음식에서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결론적으로 부실하고 미흡한 연재였다. 하지만 부산음식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해보았다는 측면에서 조금의 위안을 삼고자 한다. 본 연재가 ‘부산음식의 학문적 성과’에 이를 때까지,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여 매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끝-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5> 시래기와 시락국 [문화] 2017.12.19(화)
    - 시래기의 경상도말 ‘시락’ - 무청·배추 겉잎·얼갈이 배추 - 햇볕에 잘 말리고 물에 불려 - 겨우내 국·찌개·나물 재료로 - 주로 멸치육수에 된장 국물내나 - 장어·돼지고기·소고기 쓰기도 - 해안지역 영도는 곰피 활용 서민들에게는 친숙하면서 추억이 담뿍 담긴 음식, 시락국. 시락국은 비교적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으면서, 영양가 또한 담보되는 음식이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가난한 이들에게는 친구처럼 편안한 음식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시락국은 으레 시장의 허름한 백반집이나 시락국밥집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던 음식이었다. 시장에 지천으로 나뒹구는 배추 겉잎이나 값싼 얼갈이, 한때 내버리던 무청 등을 걷어다, 멸치 육수에 된장 묽게 풀고 미리 데친 시래기를 넣어 끓여내면 시락국이 되었다. 원래 ‘시락’은 시래기의 경상도 말. 이 시락국을 한 솥 끓여놓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국밥으로 말아주고, 새벽 상인들 뜨끈한 해장술국으로 내어주고, 시장을 찾는 서민들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에 맞는 백반의 토장국으로도 제공했던 것이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경상도 말 시래기는 가을 무청을 한 묶음씩 짚으로 묶어 말려놓았다가 겨우내 필요할 때마다 조리해 먹던 식재료로, 전국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하면서도 부담 없는 서민들의 식재료였다. 특별히 재료가 필요하지 않고, 조리하는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기에, 시래기로 밥을 지으면 시래기밥이 되고, 죽을 쑤면 시래기죽이 되었다. 이렇게 국과 찌개, 나물 등 시래기만 있으면 다양한 ‘시래기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가 있었다. 나물과 죽은 구수한 맛을, 국이나 찌개는 깊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시래기밥 또한 풍미가 좋아 요즘 별미의 건강음식으로 꼽히고 있다. 시래깃국은 지역마다 육수를 달리 하고 있어 특별하다. 부산경남의 해안지방은 멸치와 장어로 육수를 내고, 경상도 내륙지방은 돼지고기로 육수를 낸다. 중부지방에는 소고기로 육수를 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삶은 시래기를 된장에 버무려 냉동시켜 놓으면 언제라도 가정에서 쉽게 조리해 먹을 수도 있다. 부산에는 이 시래기의 식재료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무청과 배추 겉잎, 얼갈이배추 등이 그것이다. 특별하게 영도지역에는 시래기와 함께 해안가에 지천이던 곰피를 활용해 시락국을 끓이기도 했다. 원래는 말린 무청으로 끓여내던 시락국이, 무청이 비싸지면서 기존의 식재료 대신 쉬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대체해 활용하게 된 것. 이는 구하기 쉽고 싼 가격에 마련할 수 있는 ‘대체 식재료’를 활용하는 부산의 특별한 음식조리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 추측된다. 시래기 중 무청은 식이섬유가 많아 식감이 풍부하고 뒷맛이 진하고 깊다. 배추 겉잎은 적당한 식감에 적당히 고소하면서 시래기와 국물 맛이 서로 조화롭고 정제되어 있다. 얼갈이는 부드러운 식감에다 국물이 편안하고 깔끔해 뒷맛이 좋다. 때문에 지금은 각각의 특징들을 살린 다양한 시락국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무청, 배추 겉잎, 얼갈이배추 활용 육수는 멸치를 쓰기도 하고 장어 등을 고아서 쓰기도 한다. 들깨가루를 쓰는가 하면 산초를 듬뿍 뿌려먹기도 한다. 양념도 먹는 이의 입맛에 맞춰 다진 청양고추와 마늘, 소금, 고춧가루, 산초가루 등을 넣어 먹을 수 있는 것이 부산의 시락국이다. 이마저도 ‘이주민의 도시’ 부산이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정착한 사람들의 입맛을 모두 수렴하는, 부산만의 ‘식문화 풍속’에서 기인한다.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다양한 음식으로 변주되는 음식 또한 시락국이다. 국밥으로, 술국으로, 해장국으로, 산초 듬뿍 넣으면 추어탕식 음식이 됐다가, 된장을 많이 풀면 토장국이 되기도 하고, 장어로 육수를 내면 장어탕이,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으면 돼지찌개처럼 되기도 하는 것이 시락국이다. 시락국밥은 서민들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슬로우푸드’이자 ‘패스트푸드’이다. 시락국의 주재료인 시래기는 무청이나 배추 겉잎 등을 겨울바람과 햇볕에 천천히 말려야 그 맛이 웅숭깊어진다. 육수에 풀어 넣는 된장은 또 어떠한가? 오랜 세월 장독에서 숙성과 숙성을 거듭하며 길고 긴 발효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제 맛을 낸다. 가히 오랜 세월이 빚어야만 제대로 된 음식이 되는 음식이 시락국이다. 그러나 어느 시장 어느 식당에 가든 주문과 함께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 또한 시락국밥이다. 솥에서 한창 끓고 있는 시락국에 밥 한 덩이 척 말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찬도 소박하다. 깍두기나 김치 한 보시기면 된다. 그러하기에 가장 정성스런 음식이면서 가장 보편적인 음식이기도 하겠다. ■따뜻한 추억을 소환하는 부산음식 대학생 시절 시장 구석빼기에서 공짜 시락국에 막걸리 한 잔 들이키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늘 가난했고, 그런 우리를 시락국집 할매는 빈 시락국 그릇을 계속 채워 주는 것으로 우리를 이해했다. 민주주의니, 독재정권이니 하면서 울분을 토하던 시절, 막걸리 한 잔과 시락국 한 그릇에 시대의 정신이 형형하게 빛났던 것이다. 몇 년의 서울생활을 마치고 귀향하던 날, 추적추적 궂은비가 내렸다. 심신이 꿉꿉하던 차에 역전 작은 식당에서 낯익게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식당 문 앞에 큰 솥을 걸어놓았는데, 시락국이 슬슬 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부산에 도착했구나! 갑자기 울컥해지는 마음을 추스리느라, 한참을 시락국이 끓는 솥 앞에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시락국은 부산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하는 마음의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밥이 모자라면 어머니들은 시락국에 밥을 말아 국밥을 끓여주셨다. 그 국밥에 무김치 하나 입에 물면 그나마 감지덕지 했던 시절이었다. 겨우내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잘 말린 시래기에, 촌 된장으로 바글바글 끓여낸 시락국. 국물 한 술 뜨면 부드러우면서 구수한 국물이 참~ 소박하고 담박했다. 멸치장국으로 맛을 내 시원하고 깔끔함 또한 여느 국과 비할 바가 없었다. 국에 밥을 말아 한 술 뜨면, 부드러운 목 넘김에 세상의 갑갑함 또한 시원하게 풀렸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이면 입안은 입가심하듯 개운해지고, 뱃속은 편안하고 든든해지는 것이다. 시래기에는 항산화효과가 있는 비타민C와 뼈에 좋은 칼슘, 혈압 조절에 유효한 칼륨도 풍부하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를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몸 안의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러하기에 ‘시락국’은 한겨울 부족한 영양소를 충분히 보충해주고, 으슬으슬한 심신 또한 따끈하게 지져주는 음식이다. 뜨거운 시락국 한 모금으로 겨울의 아침이 환하게 밝아오고, 시락국 두 모금으로 온몸이 온통 따뜻하게 풀려나는, 우리 부산의 정겨운 겨울음식이기도 하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4> 자갈치시장 고래고기 [문화] 2017.12.12(화)
    ...시인 지망생이던 몇몇 지인들과 자주 들리던 자갈치시장의 고래고기 좌판. 그 시절만 해도 상업포경이 허용되던 때라 고래고기는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었다. 쇠고기처럼 한 근 두 근씩 팔았을 정도로 생산량이 많았기에,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라도 쉬 좌판에 앉을 수가 있었다. 좌판에 앉아 고래고래 노래도 부르고, 열띤 문학 토론과 시대적 불만의 표출로 서로 주먹질도 불사하던 시절. 단골에게는 고기도 듬뿍듬뿍 얹어주고, 외상도 스스럼없이 잘 해 주던 시절이었다. 자갈치시장에서 구입한 고래고기는 가난했던 서민들에게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몇 근씩 구입한 고래고기는 새끼 끈에 묶거나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가족들 저녁 찬거리로 활용되었다. 고래 붉은 살로는 무를 쓱쓱 베어 넣고 소고기국처럼 끓여 먹었고, 기름기 있는 부위로는 두루치기 하듯이 볶아 먹기도 했다. 가장들은 오랜만에 막걸리에 고래수육 한 점으로 술추렴을 하기도 했었다. 소금에 푹 찍어 먹으면, 그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돌고 돌았다. 이처럼 고래고기는 그 맛이 쇠고기와 비슷해, 소고기 대신 많은 음식들을 조리해 먹었다. 소고기육개장, 소고기국, 불고기전골, 두루치기 등 소고기 음식의 대체 식재료로 널리 쓰였던 것이다. 그만큼 고래는 한때 바다에서 나는 흔한 육류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12가지 맛을 내는 맛의 향연 고래고기. 각 부위별로 12가지의 맛을 낸다는 음식. 입에 익숙해지면 짙은 풍미로, 맛의 극치로 안내하는 미식가들의 일미(一味). 그러하기에 고래 한 점씩 입에 넣을 때마다 다양한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 점씩 씹을 때마다 서로 다른 맛을 내는 것이 신선하면서도 풍성하다. 풍부한 미감으로 입이 호사하는 음식이 고래고기인 것이다. 자갈치시장 고래고기는 모두 수육으로 내놓는데, 부위가 10여 가지로 일별된다. 지방의 풍부한 맛과 살살 녹는 부드러움이 좋은 뱃살(우네), 쫄깃쫄깃 오돌오돌 씹는 맛이 좋은 꼬리, 지느러미(오베기), 돼지 삼겹살처럼 지방과 껍데기, 살코기가 잘 배합된 등살(바가지), 짙은 체취를 내는 대창이나 콩팥, 허파 등 고래내장, 다 먹고 조금 모자랄 때 서비스용으로 더 얹어주는 고래살코기…. 부위마다 맛이 다르고 씹히는 차이가 확연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곁들여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여서 그 또한 재미지다. 고기의 참 맛을 보려면 소금에 찍어 먹고, 진한 맛을 좋아하면 오래 삭힌 멸치젓국이 좋겠다. 역한 냄새가 싫으면 묵은지에 싸서 먹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먹는 방법이 수백 가지나 된다는 고래고기. 콜레스테롤이 없는 불포화 지방산을 다량 함유해, 노화를 방지하고 피부를 부드럽게 하는 등 건강장수식품으로도 널리 알려진 음식이기도 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의하면 경어(鯨魚), 고래어(古來魚)로 불리며 우리 민족에게도 친숙했던 고래. 무분별한 남획으로 그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주요 미래해양자원 고래를, 향후 다양한 해양산업에 접목할 수 있도록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연구와 관리가 필요로 하겠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3> 다대포 방어 [문화] 2017.12.05(화)
    - 참치에 버금가는 겨울진객 - 제주 모슬포·마라도 외에 - 다대포 앞바다에도 어군 형성 - 10월~2월 채낚기로 어획 - 갈빗살 결대로 길게 썬 육회 - 밥 반찬으로 좋은 일식 조림 - 큼직하게 썬 등살로 지진 전… - 부산물까지 버릴 게 없어 식도락가들에게 겨울철 대표 생선회를 추천하라면 단연코 방어를 첫손꼽을 것이다. 겨울이 되면 방어의 배에 기름이 오를 대로 올라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언론에 겨울철 대표 생선회로 부각되면서 전국적으로도 그 수요가 급격하게 늘었다. 일본에서도 참치와 더불어 가장 선호하는 겨울 횟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방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지역의 특산품으로만 인식이 되고 있는데, 부산의 다대포도 방어 주산지 중의 한곳이라면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제주 남부 모슬포, 마라도 지역과 울산 방어진, 부산의 다대포 등이 겨울 방어 어군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다. ■국내 방어 주산지 중 한 곳, 다대포 방어는 농어목 전갱잇과에 속하는 등 푸른 생선이다. 난류를 타고 움직이는 온대성 어류로, 캄차카반도 해역에서 여름을 보낸 뒤 2∼6월 산란을 위해 대만 해역으로 회유한다. 부화 후 4년이면 길이 80cm 이상으로 자란다. 부산에도 다대포 지역의 형제섬 인근이 물골이 깊고 조류가 급해 양질의 방어가 어획되는 지역이다. 특히 2월 이후 산란철을 맞아 11~1월 즈음에 다대포 앞바다로 회유를 하는 방어는 최고로 맛이 좋을 시기이다. 특히 1m 급의 ‘대방어’는 참치와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맛이 뛰어나다. 다대포 방어는 10월부터 어군이 형성되어 2월까지 어획이 되는데, 12월이 어획량도 많고 씨알도 굵은 시기라 맛도 그 꼭짓점을 찍을 때이다. 이즈음 다대포 어시장에 가면 1㎏ 미만의 새끼 방어부터 4㎏이 넘어가는 대방어까지 다양한 방어를 맛볼 수 있는데, 10~15㎏의 대물 또한 심심찮게 만날 수도 있다. 다대포 방어는 주로 채낚기 어업으로 어획한다. 소형 어선은 원줄에 10여 개의 가짓줄을 달고, 그 끝에 낚싯바늘을 달아 수심 30∼50m까지 내린 후 손으로 직접 끌어올린다. 일명 훌치기 외줄낚시이다. 중형 이상의 어선은 배 양쪽에 긴 장대를 설치한 뒤 각각 낚싯줄을 연결하여 양망기로 끌어올려 잡는다. 모든 어종이 그렇듯이 방어도 큰놈들이 맛이 좋은데, 특히 특유의 깊은 감칠맛과 오돌오돌한 식감이 남다른 대방어 급을 선호한다. 무게에 따라 2㎏ 미만의 방어를 ‘소방어’, 2~4㎏급은 ‘중방어’, 4㎏ 이상은 ‘대방어’로 불리며, 가격과 맛 또한 그 크기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에서는 방어를 ‘출세어’라고 해서 성장 시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다. 60㎝ 미만을 ‘하마치(ハマチ)’로, 그 이상을 ‘부리(ぶり)’라 부른다. 그중 가장 맛이 든 대방어를 ‘오부리(おぶり)’라 부르며 귀히 여긴다. 다대포에서는 이 방어를 생선회와 더불어 구이, 매운탕, 육회, 찜 등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해 먹는다. 살이 부드럽고 고소하면서 감칠맛이 돌아 어느 것 한 가지도 빠지지 않는 맛의 구성이다. ■다대포서 맛보는 겨울 방어의 묘미 다대포 어시장에서 3㎏ 정도의 ‘중방어’를 잡아 인근 초장집에 맡긴다. 먼저 나온 ‘방어회’를 살펴본다. 전체적으로 살이 붉은색으로 선명하면서 지방이 밴 부위는 노란 빛을 띤다. 특히 껍질 바로 안쪽 등살은 짙은 팥죽 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숙성시킨 선어를 먹는 일본과 달리 활어 상태에서 바로 회를 쳐서 먹기에, 붉은 살인데도 탄탄한 식감이 남다르다. 등살 한 입 맛본다. 우선 차진 식감이 그럴듯하다. 쫀득쫀득하면서도 오돌오돌하다. 뒤이어 육즙이 입에 돌면서 고소하고 들큰하니 감칠맛이 혀에 착착 감긴다. 뱃살은 육질이 더욱 꼬들꼬들하고 고소한 맛이 더더욱 깊다. 씹으면 씹을수록 그 풍미와 감칠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머문다. 방어의 갈빗살은 ‘방어육회’가 되어 상에 올랐다. 가시를 제거한 갈빗살을 결대로 길게 썰어, 마늘, 땡초, 참기름에 버무린 후 통후추를 솔솔 뿌렸다.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고소함이 풍성하게 터져나온다. 식감도 입안에서 맴돌 정도로 탄탄하다. 참기름과 후추향이 코끝으로 기분 좋게 살짝 올라와 이마저도 흔쾌하다. 중방어를 잡았기에 남은 회와 미리 장만해둔 대가리, 뼈 등으로 ‘방어조림’과 ‘방어전’을 만들어 먹어본다. 생선전은 부산에서도 자주 해 먹는 음식이거니와 조림도 일식문화의 영향으로 인기 있는 메뉴로 정착한 지 오래다. 큼직하게 썬 방어 등살 회를 달걀 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지진다. 고명으로 색색의 고추를 올려 느끼한 맛을 잡았다. 따뜻할 때 한 점 맛본다. 참 부드럽다. 그리고 끝 간 데 없이 고소하다. 밥반찬으로나, 술안주로나 어느 것 하나 손색이 없겠다. ‘방어조림’은 손과 정성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우선 쌀뜨물에 큼직하게 썬 무를 넣고 뭉근하게 삶는다. 방어 대가리는 잔 비늘을 제거한 후 뼈와 함께 프라이팬에 덖으면서 익힌다. 이 둘을 합쳐 조림간장 육수에 맛이 밸 때까지 조린다. 이렇게 만든 방어조림은 회를 뜨고 남은 부산물로 조리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그 맛이 출중하다. 방어 살에 짭조름한 간장육수가 배어 전체적으로 깊고 그윽한 맛을 낸다. 함께 먹는 무 또한 주연급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간간함이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일본인들에게는 ‘부리다이콘(ぶり大 根)’이라 하여 회와 초밥과 함께 즐겨먹는 음식이다. 방어는 그 외에도 부위별로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되는데 대뱃살은 초밥으로, 선어는 소금에 절였다가 구이로, 대가리 등 부산물은 매운탕이나 맑은 국으로 만들어서 먹는다. 이처럼 방어는 참치와 더불어 버릴 것 하나 없이 모든 부위를 조리하여 먹는 ‘겨울의 진객’이다. 특히 다대포 방어는 12월이 그 맛이 최고조이기에, 이즈음의 방어회는 어느 지역의 방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인체에 유익한 영양소 또한 풍부하기에, 겨울철 건강에도 유효하므로 더 반가운 생선이다. 다대포 방어, 우리 부산의 겨울 대표 생선이라 더욱 정겨운 어족이기도 하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2> 부평깡통시장 [문화] 2017.11.28(화)
    - 일제때 일본인 생필품 시장이자 - 한국전쟁 후 밀수품 팔던 곳 - 고난·격동의 현대사 고스란히 - 문화관광형 야시장으로 유명 - 어묵·돼지국밥 등 향토음식부터 - 동남아·유럽 등 다문화 먹거리 - 최신 퓨전 아이템도 침샘 자극 부산은 ‘시장의 도시’이다. 수많은 이주민들이 지금의 부산을 형성했다면, 이들이 타지에서 생활의 근거를 찾아야 했던 곳이 시장이었다. 먹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팔아야 했고, 살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먹어야 했기에, 부산의 시장은 그만큼 절박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부평깡통시장’은 ‘한국 근현대사의 그늘’ 속에서 그 시작을 알린 대표적인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생필품시장으로 개설된 조선 최대의 공설시장이었고, 한국전쟁의 뒤안길 속에서는 군수물자 암거래시장이었던 ‘깡통시장’이 성업했던 곳이다. 지금은 부산 최대의 야시장이 부산의 밤을 밝히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부산의 부엌’이라 할 만큼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식도락의 중심지이면서, 부산을 상징하는 문화관광형 재래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부평시장은 1910년 제 2호 시장(20명 이상의 상인이 한 장소에서 장을 여는 시장)으로 개설되어, 당시 조선 최대의 공설시장으로 유명했다. 이 시장 모퉁이에 백풍가(白風街)라는 골목이 있었는데, 늘 이곳에는 흰 옷을 입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인 물품을 사기위해 서성였다. 당시 이국의 물품과 음식들이 신기하고 좋기도 했으리라. 부평시장을 일명 ‘깡통시장’이라고도 불렀다. 말 그대로 ‘깡통음식’을 팔던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이들이 먹던 깡통음식들이 음성적으로 대거 반출되는데, 이 물건들을 난전에서 사고팔았던 것이 깡통시장의 시작이다. 한때는 외국 밀수품 판매의 근거지이기도 했었다. ■부산 대표음식의 발상지 부평깡통시장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의 발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부산음식문화의 새로운 원형이 태동했다는 뜻으로, 특히 부산어묵과 부산돼지국밥의 발상지로서의 그 위상은 매우 크다 하겠다. ‘부산어묵’의 시작은 문헌상으로 부산 부평시장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부산어묵은 일본의 ‘가마보코(蒲모, かまぼこ)’라는 음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선살을 으깨고 반죽해서 튀기거나 찌거나 구운 생선묵 형태의 음식을 말한다. 1915년 부산부청 발간 ‘부평시장월보’에 따르면, 주요 거래 점포 중에 ‘가마보코’ 전문 점포 3곳을 최초로 기록하고 있다. 부산돼지국밥도 그 원형은 부평깡통시장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부평깡통시장에서 터를 잡은 이북 여인들이 돼지의 대가리와 부산물을 넣고 끓여낸 것이 오늘의 부산돼지국밥의 시작이라는 것. 이 때문에 지금도 부평시장은 전통의 부산어묵과 부산돼지국밥을 취급하는 곳이 여러 곳 영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부평깡통시장 죽 골목도 그 역사가 깊다. 국제시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부평깡통시장은, 한국전쟁 시절 미군부대 사람들이 먹다 남긴 잔반을 걷어서 죽을 만들어 팔았는데, 일명 ‘꿀꿀이죽’, ‘UN탕’이라고 불리던 음식이다. 당시 꿀꿀이죽은 육식을 위주로 하던 미군들의 잔반으로 끓여냈기에, 피난민들의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이렇듯 부평깡통시장의 ‘전쟁음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피란민들을 먹여 살렸던 부산 특유의 ‘공유와 배려’의 음식문화를 태동시키는 데 일조를 했다. 같은 값이면 양 많고 싼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나누는 음식이 부산음식의 특징이자 미덕이었다. 이 음식들로 지난했던 시절 굶주린 이들은, 가족과 더불어 하루의 끼니를 이어나갔던 것이다. ■음식의 새로운 트렌드 한눈에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로 새로운 트렌드의 지역음식이 전국적으로 부평시장을 대변하고 있다. 유부 속에 당면을 넣고 탕으로 끓여낸 ‘유부주머니 전골’과 구수하고 매콤한 맛에 씹는 맛까지 일품인 ‘비빔당면’, 부산어묵을 잔뜩 넣고 볶아낸 ‘어묵잡채’, 그 외에 ‘어묵꼬치’와 ‘떡볶이’ 등이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들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문화 관광형 시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덧붙여 ‘밤의 시장’인 ‘부평깡통야시장’이 개설되면서 부평시장은 더욱 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깡통시장’에 어둠이 들면 기존 부평깡통시장 100여 미터의 골목에 서른 여개의 상품진열대가 일렬로 속속 들어선다. 어둠이 내리는 무렵부터 자정 가까이까지 시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진열대마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음식들을 선보이고 있다. 늘어서 있는 진열대에는 부산의 향토 먹거리와 외국 다문화 음식, 색다른 유행의 퓨전 먹거리 아이템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천천히 걸으며 그 면면을 살펴본다. 문어와 모차렐라 치즈를 얹은 문어치즈바, 야채에 대패삼겹살을 말아낸 대패삼겹말이, 얇게 저민 소고기를 노릇하게 구운 소고기 육전, 가리비 위에 치즈를 올려 구운 가리비 치즈구이, 치즈를 튀겨낸 우유튀김, 즉석 소고기초밥, 칠게를 튀긴 베이비크랩, 소라구이와 문어구이 등 다양한 꼬치류, 소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소스를 듬뿍 올린 큐브스테이크, 다양한 소스로 볶아낸 돼지곱창과 돼지껍데기, 달달한 디저트 빵과 빵 속에 스프를 담아서 먹는 빠네, 컵에 각양각색의 전구를 반짝반짝 달고 눈으로 먹는 생과일주스 등등, 음식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면서도 제각각 나름의 퓨전적인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또 매대 몇몇 곳에는 일본, 중국, 동남아 등 다문화음식을 직접 조리해 판매를 하는데, 그 종류만 해도 넉넉하다. 베트남 튀김만두 ‘짜요’와 쌀국수, 인도네시아의 볶음국수 ‘미고랭’, 중국식 만두 딤섬, 문어를 넣고 구운 일본식 풀빵 ‘타코야끼’, 터키 아이스크림, 홍콩 에그 와플 등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음식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것도, 깡통야시장의 매력이라면 아주 큰 매력이 되겠다. 이렇듯 부평깡통시장은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부산 최초의 공설시장이면서 부산 최초의 야시장이다. 국제시장, 자갈치시장과 더불어 ‘해방공간과 한국동란’이라는 고난과 격동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떠안았던 시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더욱 애틋이 사랑받는 시장이다. 그러하기에 이곳에서 태동한 음식의 유래와 탄생배경, 시장의 역사와 시장의 명물 등을 콘텐츠화하여 방문객들에게 널리 알리고, 이를 관광문화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야시장 내 세계 각국의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다문화 음식문화가 꽃피는 ‘다문화 음식의 발상지화’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1> 가덕 대구 [문화] 2017.11.21(화)
    - 11월 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 북태평양서 회유한 진해만 대구 - 아미노산 많아 담백, 비린내 없어 - 철에만 맛 볼 수 있는 활어회 - 고소한 뱃살·간·정소도 별미 - 뼛속까지 시원한 뽀얀 대구탕 - 칼칼한 뽈찜·해장용 뽈국 - 두터운 대가리 살 먹는 재미도 - 일주일 꾸덕꾸덕 말린 대구포 - 알젓·아가미젓갈·창란젓까지 예부터 고급어종으로 귀하게 대접받던 대구는, 한때 최고의 몸값을 받는 생선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30여 년 전 금액으로 큰놈 한 마리에 20만~30만 원을 호가했고, 잘 끓인 대구탕 한 그릇에 1만 원을 훌쩍 뛰어넘던 ‘갑(甲)의 생선’이었다. 특히 바람 차고 몸이 으슬으슬 추운 겨울, 뜨끈한 대구탕 한 그릇이면 세상 음식 하나 안 부러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집안 어른의 전날 과음에도 ‘대구탕’처럼 시원하게 주독을 잘 풀어주는 해장국이 따로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대구. 입이 크다 해서 ‘대구(大口)’ 또는 ‘대구어(大口漁), 대두어(大頭魚)‘라 불리는 생선. 주로 우리나라 동해와 북태평양 오호츠크 해 등지에 분포하며, 수심 45~450m되는 깊은 바다에 무리지어 산다. 최대 1m까지 자라며 수명은 10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겨울 생선이다. 한자어로 ‘대구 설(鱈)’자는 ‘고기 어(魚)’변에 ‘눈 설(雪)’자가 조합된 것으로, 눈 오는 겨울철이 대구의 제철이자 가장 맛있는 시기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대구는 아미노산이 풍부해 영양 가치로도 훌륭하지만, 지방이 적고 비린 맛이 없어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어종이다. 특히 열량이 낮아 여성들의 다이어트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하여 노인들 겨울철 영양보양 식으로도 그저 그만이다. ‘대구 3마리면 집안 어른 감기 걱정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히 11월 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북태평양에서 회유한 진해만 대구를 ‘가덕 대구’라 하여 최고의 별미로 쳤다. 예부터 가덕도 앞바다는 ‘가덕 대구’의 산란지로 유명했다. 산란기인 이 시기에 가덕도 앞바다에서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하는 대구는, 살이 꽉꽉 차 영양가도 높고 맛 또한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때문에 겨울철 ‘가덕 대구’는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었다. 하여 겨울 가덕도는 겨울철만 되면 온 섬이 잔칫집이었다. 가덕도와 진해만을 끼고 있는 ‘가덕 수로’는 예부터도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지만, 겨울마다 떼를 지어 돌아오는 ‘가덕 대구’들 때문이다. 오래 전 명맥이 끊겼던 ‘가덕 대구’가 치어방류사업의 성공으로, 매년 겨울 가덕도 앞바다에 몰려드는 것이다. 한창 때인 12월이면 가덕도 횟집 어느 수족관에서도, 펄떡이는 가덕 대구를 쉽게 볼 수가 있다. 대부분이 ‘누릉이’라 불리는, 70~80㎝에 7~8㎏씩 되는 큰 몸집들이다. 때문에 집집마다 짭조름한 겨울 해풍에 대구 몇 마리씩은 꾸덕꾸덕 잘 마르고 있고, 다양한 대구 요리가 언제나 풍성한 밥상을 차려내곤 하는 것이다. 대구 철에는 활어 상태의 ‘대구회’와 ‘대구 맑은 탕’ ‘대구젓갈’ 등을 맛볼 수가 있다. 대구는 어떤 요리든 맛이 깔끔하고 품격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뼛속까지 시원한 맛을 내는 ‘대구 맑은 탕’이 최고로 미각을 자극한다. 대구는 맛이 담백하고 비린내가 없어 맑은 탕을 주로 먹는데, 잘 끓여놓으면 마치 곰국처럼 국물이 뽀얗다. 하얀 정소(곤이)가 넉넉하게 들어가 있고, 무와 대파를 숭덩숭덩 크게 썰어 궁극의 시원한 맛을 낸다. 한 숟가락 떠먹으면 국물이 입안으로 짜르르~ 뜨겁게 감기는데, 깔끔하고 후련한 맛이 거의 중독성을 띨 정도다. 곤이와 함께 먹으면 구수하면서도 입 안이 환하게 도는 감칠맛 또한 제대로다. 그러면서도 맛은 더욱 깊고 풍부해진다. 활어상태에서는 대구생선회도 별미 중에 별미로 꼽힌다. 대구회는 담담하면서 씹을수록 감칠맛과 함께 단맛이 돈다. 갓 잡은 활어로 회를 뜨기에 살이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쫀득하다. 많은 이들이 대구회를 맛보며 ‘살살 녹는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적은 지방과 부드러운 식감을 보완하기 위해 회로 내는 부위를 대구 뱃살과 간, 정소를 함께 다양화 시켰다. 살의 담담한 맛을 간과 정소의 고소한 맛이 받쳐주며 상호 보완해 내는 것이다. 대구 요리 중에는 얼큰한 ‘대구매운탕’도 빠질 수 없다. 몸에 한기가 오고 찌뿌드드할 때, 큰 사발의 ‘대구매운탕’을 한 그릇 훌훌 들이마시면, 몸에 열이 오르고 땀이 나면서, 개운하게 몸이 풀리는 것이다. 탕도 좋지만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대구포’도 일품이다. 잘 드는 칼로 대구포를 결대로 저미듯 썰어 고추장을 듬뿍 찍어 먹으면, 쫀득쫀득 차지고 담박한 풍미에 길고 긴 겨울밤 최고의 술안주가 된다. 오래전 양반가의 겨울 술상에 없어서는 안 될 안줏감이기도 했다. 처마 끝에 두세 마리의 대구를 걸어놓고 동지 한날 북풍서리 내릴 때 향기로운 술 한 잔에 쓱쓱 베어 먹으면 긴긴 겨울밤도 금방이었단다. 특히 임금께 진상하던 대구도 잘 말린 대구를 이용하였다. 바닷가에서 이틀 사흘 말린 후 다시 집에서 사나흘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일주일동안 꾸덕꾸덕 말려야, 비로소 임금께 진상을 하게 된다. 진상할 때는 필히 기름종이(油紙)에 싸서 운반을 한다. 일반 한지로 싸면 보름여 운송 기간 동안 마르고 굳어서 대구의 질이 떨어지기에 그렇다. 또한 대구는 대가리를 이용한 ‘대구뽈찜’과 ‘대구뽈국’도 유명한데, 대가리 부분에 붙어있는 살이 제법 두터워 발라먹는 맛이 쏠쏠하다. 뽈국 국물은 아주 담백하고 깔끔해 해장으로도 일품이다. 알과 아가미, 창자로는 대구알젓, 창란젓, 아가미젓갈 등을 담근다. 특히 동래 지역에서는 대구를 건조하거나 염장을 하여 다양한 조리법으로 사시사철 먹었다. 대구가 많이 잡히던 시절 동래반가에서는 잘 말린 대구로 대구포간국, 대구포찌개, 대구포구이, 곤이시래깃국, 대구살젓 등을 만들어 사계절 깊고 그윽한 대구의 맛을 즐겼다. 쌀뒤주에 넣고 말린 건대구를 쌀뜨물에 불려, 무 등을 숭덩숭덩 베어 함께 끓여내고 소금 등으로 간을 맞춘 대구간국, 무청시래기나 나물 등을 된장에 버무린 뒤 대구 정소를 풀어 끓여낸 ‘곤이시래깃국’, 생대구의 살을 소금에 염장했다가 마늘, 참기름, 깨소금 등속에 버무린 대구살젓 등으로 두고두고 상에 올려 먹던 음식이기도 했다. 이처럼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아 가족 영양식으로 안성맞춤이었던 가덕 대구. 예부터 이런저런 여러 가지 다양한 맛들이 사람 기분을 ‘들쑥날쑥, 들었다 놨다’ 하며 흡족하게 한 것이다. 이러하니 오래전 대구가 귀했던 시절, 어쩌다 생대구가 잡히면 곧바로 고급 일식집으로 귀하게 모셔졌던 시절도 있었던 터이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0> 홍합(담치) [문화] 2017.11.07(화)
    - 껍데기 붉은 색 띄어 ‘홍합’ - 참담치·진주담치로 분류 - 굴 양식장의 골칫거리 생물서 - 배고픈 시절 구황식품으로 - 다져서 넣으면 고소한 죽 - 시원하고 깊은 국물 으뜸 - 잘 말린 담치 넣은 ‘탕국’ - 부산·경남 제삿날엔 필수 홍합은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이면서, 싸고 영양가가 높아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던 식재료였다. 해안 여느 바위틈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홍합은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되던 찬거리이기도 했다. 때문에 보릿고개 시절을 어렵게 나던 그들에게는 고맙고도 기꺼운 식재료였다. ■담치, 열합, 합자, 섭 … 다양한 이름 홍합은 우리나라 전 연안에 다량 분포하는 조개류로 바닷가 암초 지대에 널리 서식하는데, 접착성이 강한 족사(足絲)를 이용해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군집을 이루고 산다. 껍질이 붉은색을 띠기에 ‘홍합’이라 하며 지방에 따라 열합, 합자, 강원도 쪽에서는 ‘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삶거나 쪄서 말린 것을 담채(淡菜)라고 하여 구한말에는 중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국으로 끓여 먹거나 찜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쪄서 말린 것은 제사상의 탕국이나 산적으로도 이용했다. 이외에도 밥이나 죽, 찜, 부침개, 포장마차 안주 등으로도 활용했던 ‘밥상 위의 팔방미인’이었다. 홍합은 크게 나누어 우리나라 토종인 ‘참담치(일명 오배기)’와 ‘진주담치’로 분류된다. 참담치는 주로 자연산을 채취하였으나, 남해 일부 지역에서 양식을 시작하여 최근에는 연간 5000t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외래종인 ‘진주담치’는 수하식 굴 양식장에서 번식하던 골치 아픈 해적생물이었는데, 이후 맛이 좋아 식용으로 이용되면서 현재는 굴 다음 가는 주요 양식 품종 중 하나가 되었다. 국물이 시원해 다양한 해물 요리에 활용되고 있다. ■배고픈 서민 달래준 식재료 이 홍합을 부산에서는 ‘담치’라 불렀는데, 어려웠던 시절 구황식품으로 활용되던 식재료였다. 없는 살림의 밥상에는 늘 담치 살 넉넉히 넣은 밥에 담치국 한 그릇이면 기꺼웠는데, 달큰한 감칠맛과 함께 향긋한 바다 냄새가 감도는 ‘담치 밥상’ 한 그릇이면 배도 불뚝 일어서고 반나절은 그저 든든했었다. 가족이 아플 때면 집안의 어머니들은 토종 담치인 ‘오배기’를 칼로 정성스레 다져 참기름에 노릇하게 볶다가 쌀을 넣고 담치죽을 만들어 주셨다. 고소한 맛에 한 그릇 ‘뚝딱’ 하고 나면 마음만은 금방이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만큼 깔깔한 입맛을 살려주는 짙은 해감 냄새가 풍성하던 음식이었다. 그뿐인가? 바다 마을의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바닷가에서 천둥벌거숭이로 뛰어놀다 출출하면 갯바위 주위에 흔히 있던 고둥이나 담치를 구워 먹거나 삶아 먹곤 했다. 바닷물에서 바로 구하여 먹었기에 짭짤하면서도 진하고 고소함이 남다른 추억의 별미였다. 호주머니 가볍던 청년 시절, 포장마차의 소주 안주에는 늘 담치국이었다. 포장마차 맨 중앙에 담치를 담은 큰 솥이 걸려 있었는데, 김이 슬슬 끓어오르는 ‘담치국물 한 사발에 소주 한 잔’이면 세상 부러운 것 하나 없었다. 부산·경남지역에서는 제례 행할 때 올리는 ‘탕국’에도 꼭 들어가야 하는 식재료였는데, 말린 담치를 넣고 끓인 탕국은 시원하면서도 맛이 진해 깊은 맛을 냈다. 그 때문에 담치를 넣은 탕국이 있어야 제삿밥도 맛있고, 음복에 가장 어울리는 술국으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부산에는 부침개에도 담치 살을 넣어 먹었다. 쪽파나 정구지 넣고 담치살 쫑쫑 다져 전으로 구우면 바다 향 그득한 부침개가 되었다. 콩나물을 삶아 양념하고 굴, 홍합 등을 푸짐하게 넣은 뒤, 전분 물에 슬슬 덖으면 얼큰하고 진한 ‘담치해물찜’을 맛볼 수도 있었다. 부산의 여느 해녀 촌에 가면 화목에 냄비를 걸고 담치를 삶아 담치국을 끓여준다. 해녀가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담치를 깨끗하게 손질하여 양파, 땡초를 넣고 한소끔 끓이면 통통하게 벌어진 담치국이 근사하게 상에 오르는 것이다. 특히 국물은 땡초의 알싸함 때문에 소주 안주로도 안성맞춤이다. 뽀얀 국물이 끝이 없을 정도로 시원한 담치국은, 또한 숙취를 풀어주는 대표적인 해장 요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뜨거운 국물 한 대접 훌훌 둘러 마시면, 진하면서도 아릿한 담치 특유의 국물이 사람 속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것이다. ■담치국 한 그릇에 소주 한 잔 담치는 맛도 맛이거니와 그 효능도 꽤 든든하다. 칼슘, 칼륨, 비타민, 철분, 단백질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몸속에 축적된 나트륨을 배출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해, 여성의 빈혈이나 노화 방지 효과가 뛰어나다. 또한, 숙취 해소에 좋은 타우린 성분과 고지혈증 등 성인병에 좋은 불포화지방을 함유하고 있어 중년 남성에게도 안성맞춤인 식재료이다. 담치는 조리법도 간단해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좋다. 담치를 껍데기째 잘 씻어 냄비에 넣고, 자작하게 물을 부은 후, 마늘, 양파, 고추 등 간단한 양념을 넣고 끓이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담치국이 되고, 담치 살을 다져 쌀과 함께 안치면 담치밥이, 죽을 끓일 때 넣으면 담치죽이 된다. 간단하면서도 고소하고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담치국으로 유명한 해녀 촌을 찾았다. 단골 해녀가 각종 해산물과 함께 시원하고 맵싸한 담치국 한 그릇을 내온다. 소주 한 잔에 담치 국물을 훌훌 불어 한 모금 들이켠다. 짜르르.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진한 바다 냄새가 물씬 난다. 짭짤하고 달큼한 국물이 시원하기조차 하여 그저 흔쾌하고 기껍기만 하다. 속 알맹이가 탱글탱글 오동통한 담치 살을 맛본다.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의 쫀득거림이 있고, 살살 녹으면서도 탱탱한 식감이 느껴진다. 아릿한 조갯살의 향도 좋고, 진한 감칠맛의 풍부함 또한 그저 그만이다. 이렇게 담치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온몸이 든든해진다. 겨울에 특히 잘 어울리는 음식이기에 ‘담치국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이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이다. 값이 싸기에 서민들에게는 가장 만만한 식재료인 담치. 이제 겨울 초입으로 접어든다. 겨울바람에 몸이 움츠러들 때 가장 따뜻한 친구와 가까운 포장마차에 들르시라. 그리고 입김 호호 불며 소주 한잔 기울일 때, 뜨끈한 담치국에 소주 한 잔 하시라. 부드럽고 알진 담치는 쓴 소주 뒤끝을 짭짤하고 달콤하게 가셔주고, 뜨끈한 국물은 겨울 날씨 속 언 몸을 뜨겁게 지져줄 것이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69> 기장 갈치 [문화] 2017.10.24(화)
    - 외해 보다 씨알 작은 기장갈치 - 붕장어·멸치와 일제 수탈 어종 - 김치에 덤벙 넣어둔 새끼 풀치 - 꼬득꼬득 말린 건갈치 별미 - ‘부산어묵’ 주원료로도 쓰여 - 호박잎과 막걸리로 비늘 벗겨 - 즉석에서 썰어먹는 갈치회 - 애호박 넣어 달큰한 갈칫국 - 구수하고 깊은 맛 속젓 일품 갈치. 오랫동안 우리의 식탁을 맛있고 풍요롭게 했던 국민 생선. 한 때 싸고 맛있고 영양가 높은 서민 생선으로 참 착한 음식이었다가, 지금은 어족 고갈로 귀족 음식이 된 지 오래다. 갈치회, 갈치조림, 갈치구이, 갈칫국, 갈치속젓, 갈치통젓…. 어떻게 해 먹어도 부드럽고, 고숩고, 짙은 감칠맛이 그저 그만인 음식, 갈치. 갈치는 가을에 가장 맛있는 생선이다. 가을 갈치는 지방분이 많아 고소하고 부드러워 남녀노소 모두의 입맛을 당기는 영양 가득한 음식이다. 왕소금 솔솔 뿌려 석쇠에 두툼하게 구운 갈치구이나 적당한 크기의 갈치를 애호박과 감자, 무, 양파 등을 숭덩숭덩 썰어 얼큰하고 짭짤하게 끓인 갈치찌개… . 갈치 산지인 기장 근처에는 갓 잡은 싱싱한 갈치를 호박잎과 막걸리를 이용해 비늘을 벗겨내고 즉석에서 썰어먹는 갈치회와 각종 야채와 함께 무쳐 먹는 갈치회무침 등도 유명한 식단이다. 그 외에도 애호박을 넣고 담담하게 끓여낸 갈칫국은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갈치속젓은 구수하고 깊은 맛 때문에 땡초 넣고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너무나 행복한 맛을 낸다. 각기 조리법은 달라도 모두들 밥도둑의 반열에 드는 근사한 음식들이다. ■도어(刀魚), 군대어(裙帶魚)라 불려 갈치는 옛 문헌에 칼처럼 생겼다고 도어(刀魚)라고 불렸다. 또는 ‘속치마를 묶는 띠 같이 생긴 생선’이라 하여 군대어(裙帶魚), 칡넝쿨처럼 생겼다고 갈치(葛侈)라고도 했다. 우리말로는 ‘기다란 칼’ 같다고 칼치, 갈치 등으로 불린다. 부산에서는 기장이 주산지로, 다른 지역보다 일찍이 갈치 조업이 이뤄졌고 매년 많은 양의 갈치를 어획하던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 전후로 일본인들에 의해 어장이 개발되어 멸치, 붕장어 등과 함께 일본인들의 어족 수탈 대상이 되었던 어종이기도 하다. 외해의 갈치보다 씨알은 작으나 다양한 쓰임새로 인기가 많았던 것이 기장 갈치였다. 기장사람들은 이 갈치로 가을 기장 무와 함께 갈치섞박지를 담아 겨우내 주요 밥반찬으로 활용했고, 갈치 새끼인 풀치를 덤벙덤벙 썰어 김장김치 속에 담가두었다가 맛이 들면 입 맛없는 봄날, 별미로 즐겨 먹기도 했다. 그 외에도 갓 잡은 갈치는 갈치회로 떠 포구 사람들의 막걸리 안주로 즐겨 올라오기도 했고, 저장성이 떨어지기에 갈치 어획 철에는 내장을 제거하고 넓적하게 펼쳐서 바닷바람에 꼬득꼬득 말려 두었다가 두고두고 건갈치조림으로도 먹었던 기장 별미음식의 식재료였다. 물론 한때 고등어와 함께 서민 생선으로 구이나 조림, 찌개로 올라와 든든한 밥상을 책임지기도 했던, 그리하여 우리 부산사람들 식단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어족이 기장 갈치였다. 또한 갈치는 비단 우리 식탁뿐 아니라 부산 특산음식인 ‘부산어묵’의 주원료로 널리 활용되기도 했다. 갈치의 새끼인 ‘풀치’를 조기새끼인 ‘깡치’와 함께 한데 넣고 갈아 기름에 노릇노릇 튀기면 우리가 즐겨먹던 어묵이 되었다. ■주요 낚시 대상어이기도 한 갈치 이렇게 우리 식탁에서 요긴한 식재료인 갈치는 주요 낚시 대상어이기도 하다. 한때 지인의 낚싯배를 타고 갈치낚시를 다녔던 때가 있었다. 갈치낚시는 수심 100m의 깊은 밤바다에서 집어등으로 불을 밝히고 한다. 10개의 낚싯바늘에 꽁치 미끼를 달고 1kg 내외의 추를 사용하여 낚는다. 갈치 떼를 만나면 낚싯배 전체가 연신 갈치를 올려낸다. 등지느러미를 물결치듯 움직일 때마다, 집어등 불빛에 갈치는 번뜩이는 긴 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만큼 그의 모습은 날렵하면서도 현란하다. 부나비 떼처럼 집어등으로 몰려드는 은갈치 덕분에, 밤새 낚시꾼들은 손맛을 단단히 보고, 갑판에 쌓이는 갈치들로 모두 신이 난다. 잘 잡힐 때는 10개 바늘 채비에 3~5마리씩 낚싯바늘을 물고 올라온다. 개중에는 5지(指)급 갈치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5지란 갈치 체고가 손가락 5개 정도의 너비를 말하는 낚시용어. 크기는 130~150㎝로 갈치 씨알로는 보기 드물게 큰놈이 올라오기도 한다. ■어떻게 조리해도 맛있는 생선 낚시를 해서 잡은 갈치는 우리 식탁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는 주요한 음식이 된다. 우선 갈치구이는 크고 살집 두터운 놈으로 노릇노릇 구워낸다. 적당히 간이 밴 구이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제대로 낸다. 따끈한 밥 한술에 한입 가득 갈치구이를 베어 먹으면, 입안에서 온통 구수한 맛이 돌면서 입안을 참 즐겁게 하는 것이다. 갈치조림은 냄비에 갈치와 무, 배추, 호박 등을 넣고 소금 간을 해서 국물을 자작하게 끓여 매콤 짭조름하게 먹는다. 싱싱할 때는 갈치회나 갈치회무침으로도 해먹는다. 갈치회무침은 야채의 상큼한 맛과 갈치의 쫄깃, 고소한 맛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작은놈들은 꾸덕꾸덕 잘 말렸다가 적당히 토막 내어 양념장을 묻힌 후 조려서 먹는데, 살이 꼬들꼬들하면서도 적당히 부드러워 뼈째 아작아작 씹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큼지막한 놈으로 갈치 한 토막을 집어 든다. 제법 두툼한 게 살집이 넉넉하다. 한 입 발라먹는다. 들큰하고 고소한 살이 부드럽게 혀를 감싼다. 바다가 한입 입안에서 푸들푸들 살아 오르는 것 같다. 갈치찌개의 국물도 맛본다. 맵싸하면서도 달큰하고, 짭짤하면서 시원하다. 갈치조림은 자작한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참으로 흔쾌하다. 한창 갈치가 맛있는 철이다. 요즘 갈치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해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적이고, 칼슘 성분 또한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에게나 노인들에게 아주 훌륭한 식품이다. 잔뼈가 많기에 가족끼리 서로 발라주며 오순도순 먹으면, 가족애가 소록소록 피어나는 음식이 갈치요리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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