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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이야기

민화 '책거리'에 관한 기사 2건

 

 

민화 '책거리'에 관한 기사 2건

책거리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물질문화의 총화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러나는 정서, 감정, 미의식이 표출된 자랑스러운 문화이다.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도한 지난 2020년 5월 민화 '책거리'에 관한 기사 2건을 소개한다. 

 

"K아트 선두주자는 단연 民畵"

입력2020.05.21. 오후 3:45

 기사원문


민화가 같은 현대성, 타분야 접목 가능성 커
모란도,문자도 등 외국인도 이해할 기반있어
책가도는 보편성,특수성 겸비해 이해도 쉬워
민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손동현 작가의 ‘나이키’ /사진제공=호림박물관
 
[서울경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행했고, 한국에서도 잊히다시피 했던 민화에 대한 서구 미술관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MET), 로스앤젤리스(LA)의 라크마(LACMA),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 등 굵직한 기관들이 민화를 전시했고 소장품으로 수집했습니다. 민화가 갖는 시각적 특성이 여느 그림들과 다르게 그래픽아트 같은 현대성이 있어서 인테리어나 제품 디자인 등 다른 분야와 접목하면 더 큰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변경희 뉴욕 패션기술대학교(FIT) 교수는 한류를 이끌 K아트의 선두주자로 민화를 꼽았다. 올봄 뉴욕 FIT 내 미술관에서 개최할 민화전을 기획했으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시 개막을 연기한 변 교수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튤립과 민화의 모란은 매력적이고 큰 행운을 뜻하는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어 서양에서 공감의 기반을 확보하기 쉽다”면서 “로버트 인디애나의 유명한 작품 ‘사랑(LOVE)’나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가 제니 홀저를 비롯해 브루스 나우만, 에드 루샤 등의 문자(text)를 이용한 작품과 민화 ‘문자도’의 접점을 찾는다면 해외 미술계가 한층 가깝게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화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콘이 있어 관람객이 익숙한 유형을 확보하고 다른 작품을 감상할 배경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08 MET에서 책거리 전시를 기획한 이소영 큐레이터(현 하버드대학 프리어갤러리 관장)는 서구에서 책가도가 인기를 끄는 이유로 “책은 누구나 좋아한다”는 보편성과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가득하다”는 한국적 특수성을 언급했다. 민화전문가로서 최근 신간 ‘책거리’(다할미디어 펴냄)을 출간한 정병모 경주대 초빙교수는 민화를 그룹 방탄소년단(BTS) 못지 않은 한류의 선봉장이 될 것이라고까지 예상했다. 지난 2016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 전시기획에 관여한 정 교수는 이 전시가 클리블랜드미술관 등 현지 순회전으로 이어져 현지 언론과 학계의 호평을 얻어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들 전시를 통해 이전까지 존재감 없던 민화가 미술사가들에 의해 재발견됐고, 한국적 이미지로 재창조돼 동북아 문화사를 새롭게 보는 장을 열어줬다”면서 “미국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가 소장품 도록(2017)을 간행하면서 폴 세잔의 정물화와 ‘한국의 정물화’라고 소개한 민화 책거리를 나란히 소개한 것은 세계화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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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ccsi@sedaily.com  

 

세계를 담은 조선의 정물화 책거리

  •  조재근
  •  승인 2020.05.13 11:52

 

세계를 담은 조선의 정물화 책거리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300쪽

책거리는 단순한 조선시대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릴만한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 존재를 몰랐거나 과소평가했지만, 최근에는 여러 전시회를 통해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책거리에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는 드물게 세계를 향한 열린 사고가 담겨 있고, 구조적인 짜임과 현대적인 조형 등 예술적 성취가 빛난다. 저자는 우리만 모르는 우리의 보물인 한국의 정물화 ‘책거리’가 세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민화를 세계로”라는 프로젝트로 이 책을 집필했다.

 

정물화라면 으레 세잔, 고흐, 샤르댕 등 서양의 화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놀라운 정물화가 있었다. 바로 책거리다. 서양의 정물화처럼 일상적인 물건이나 꽃을 그린 것이 아니라, 책으로 특화된 정물화다. 세계 각국의 정물화 가운데 명칭에 ‘책’이란 키워드가 들어있는 것은 조선의 책거리가 유일하다. 서양의 정물화는 꽃, 과일, 음식, 가정용품, 가구 등을 그린 것이지만, 책거리에는 책을 비롯하여 도자기, 청동기, 꽃, 과일, 기물, 옷 등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책과 물건을 그린 정물화다. 조선에서는 네덜란드 정물화보다 한 세기 늦은 18세기 후반에 정물화가 성행했다. 20세기 전반까지 200년 남짓 왕부터 백성들까지 폭넓게 책거리를 향유했고, 그 예술세계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할 만큼 독특하고 다양하다.

 

조선후기는 한국회화사에서 전환의 시기다. 금강산도에서 비롯된 진경산수화, 서민의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화가 새롭게 등장했다. 진경산수화는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고, 풍속화는 우리의 평범한 삶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여기에 세번째 조선후기를 새롭게 장식한 장르가 책거리다. 이들 장르는 조선전기만 하더라도 거의 존재감이 없었지만, 조선후기에 급부상하여 시대를 이끌었다. 책거리에는 당시에 유행한 물질문화를 화폭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전하는 작품 수나 예술세계를 보건대, 책거리는 조선후기 회화를 대표하는 예술로 전혀 손색이 없다.

 

문치국가인 조선시대에 책은 특별한 존재였다. 선비들이 추구한 정신문화의 정화精華다. 세상을 배우고, 세상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다스리는 방편이 책이었다. 하지만 책이 아닌 물건에 대한 조선 선비들의 생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완물상지玩物喪志’, 즉 물건에 빠지면 고상한 뜻을 잃는다 하여 꺼렸던 대상이다. 검소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조선에서는 물건이 사치풍조를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한다고 여겼다. '검소는 덕의 공통된 것이고, 사치는 악의 큰 것이다'라는 기치 속에서, 물건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책거리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물질문화의 총화다. 궁중화 책거리에서는 당시 청나라로부터 수입한 화려한 도자기들과 자명종, 회중시계, 안경, 거울, 양금 등 서양의 물건까지 보인다. 이들 물건은 대항해시대의 무역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자기는 중국에서 아시아와 유럽에 수출했던 가장 중요한 품목이다. 중국에 전해진 대항해시대의 문물은 중국을 오고가는 사신들과 상인들을 통해서 조선에 전해졌다. 중국의 도자기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수입돼 유럽 왕족과 귀족들이 ‘도자기방’을 따로 만들 정도로 열풍을 일으켰던 시누아즈리chinoiserie의 대표적인 물건이다. 시누아즈리는 유럽뿐만 아니라 조선에까지 불어 닥친 중국 열풍이다.

 

자명종, 회중시계, 안경, 거울, 양금 등 서양물건은 대항해시대의 무역품이다. 처음 서양의 선교사나 무역업자들이 중국이나 일본 군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진상한 물건들이었다. 서양의 과학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류계층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도 확산됐다. 책거리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초상화를 보면 주인공의 주변을 꾸미는 장식에서 이런 서양물건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이 대항해시대 제국들의 직접적인 무역대상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조선의 책거리에 대항해시대의 무역품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대항해시대 동방의 가지 끄트머리에 화려하게 핀 아름다운 꽃이 책거리다. 그것에는 장엄한 역사가 있고 다채로운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책거리는 대항해시대와 조선후기의 역사가 담겨 있는, ‘세계를 담은 정물화’인 것이다.

 

민화 책거리에서는 점차 중국이나 서양의 물건에서 벗어나 조선의 물건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우리의 삶 속에서 우러나는 정서, 감정, 미의식이 표출됐다. 그런 점에서 민화 책거리는 한국적인 정물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적인 취향의 공간이 자리 잡았고, 우주적인 상상력이 펼쳐졌으며, 다른 장르와 조합이 자유롭게 이루어졌고, 파격과 상상력으로 이뤄진 모더니티가 빛났다. 또한 민화 책거리에서는 아얌, 반짇고리, 은장도, 비단신 등 여성의 물건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여인의 자의식을 표현한 그림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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