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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우리의 밤이 안녕하지 못했던 그때

역사 속 오늘

우리의 밤이
안녕하지 못했던 그때

야간 통행금지 시절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확산되며 미국과 호주, 프랑스, 태국 등 몇몇 나라에서는
일시적으로 야간통행금지령을 시행했다. 요즘 세대에는 낯설겠지만 ‘통금(통행금지)’이라는 축약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땐 그랬지”를 외치며 과거를 떠올릴 테다. 밤에 거리를 활보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그때 그 시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자.

  • ⓒ 연합뉴스

별이 빛나는 밤과 섞이지 못했던 때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매일 밤 10시가 되면 라디오에서 귀가 종용 방송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막차 버스나 택시를 타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12시가 되면 바리케이드를 설치했고 방범대원들은 단속을 시작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야간 통행금지’ 시절 풍경이다.
한때 우리는 밤과 섞이지 못했다. 야간 통행금지 제도는 전근대사회 여러 나라에서 실시했으며 조선시대에도 치안상의 이유로 시행했다. 정확한 시작점은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실록』 1401년(태종 1) 5월에 “초경3점(오후 8시) 이후 5경3점(오전 4시) 이전에 행순을 범하는 자는 모두 체포할 것”이라 기록된 걸 보면 이전부터 시행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대 들어서는 1945년 9월 8일 미군정청의 「미군정 포고령 1호」에 따라 ‘치안 및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정의 편의를 위해 설정된 야간 통행금지 제도는 6·25 전쟁을 거치며 고착화됐고 1982년 1월까지 약 37년간 지속됐다. 통행금지 시간은 시기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대체로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였다. 통행금지를 위반해 방범대원에게 적발되면 인근 파출소나 임시수용소에 끌려갔고, 새벽 4시경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즉결심판을 받고 벌금을 낸 후 풀려났다.
1960년대에는 국가 경제의 성장을 위해 일부 지역에서 야간 통행금지가 완화되기도 했다. 제주도는 1964년 1월 18일, 해안선을 접하지 않은 충청북도는 1965년 3월 1일에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타 지역에 비해 범죄 발생이 극히 낮고 치안상의 문제가 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밖에 1966년 3월에는 증산·건설·수출과 관련된 생산업체의 중요 원료 운반 차량과 일부 화물 운반차량 역시 통행금지가 해제됐고, 같은 해 5월에는 경기도와 충청남도에 소속된 도서지방을 제외한 몇몇 관광 지구도 해제 대상이 됐다. 전체적으로는 대통령 취임식이나 성탄절, 12월 31일 등 특수한 날에도 일시적으로 해제됐다.
치안을 안정화하고 ‘생활 질서’를 규율하고자 마련된 이 제도에는 몇몇 논란이 따르기도 했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제도 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1964년 한 신문에 실린 “통금을 폐지시켜도 치안유지를 할 수 있는 정부라야 비로소 그 정부가 책임행정을 할 수 있고 강력정권이라 할 수 있지요”(「文公委에도 熱風 일기 시작」, 『경향신문』, 1964.1.17.)라는 글을 들여다보면 당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 ⓒ 연합뉴스

야간 통행금지 해제 이후 벌어진 일

37년간 지속되던 야간 통행금지는 일부 지역(전방 접적지역 중 일부)을 제외하고 1982년 1월 5일 24시를 기해 해제됐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1981년 바덴바덴에서 결정된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분석한다. 통행금지 제도를 유지한다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올림픽 등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원활히 치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라는 것이다. 1982년 해제 때 제외된 지역들도 1986년과 1989년에 추가로 해제되며 우리는 야간 통행금지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버스와 지하철은 자정 이후까지 운행을 연장했고 철야 영업을 내세우는 가게들도 생겨났다. 특히 경제적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서비스 분야의 고용이 늘었고 소비 심리가 살아났다. 비행기 이·착륙 시간이 늘어나며 관광객 입국이 증가했으며, 1989년에는 국내 최초로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섰다. 이에 힘입어 우리 경제는 1982년 7.2%, 1983년 10.7%라는 초고속 성장을 이루어내며 경제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각에서 야간 통행금지 해제 이후 음주 소란 및 폭력 사태 등의 증가를 우려한 탓에 첫날에는 특별비상경계에 들어갔으나 큰 사건이나 사고는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습관 때문인지 자정을 전후로 귀가했다고 알려진다.
1982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밤을 되찾았고 우리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의 ‘이동의 자유’를 국가에게 빼앗겼던 사람들은 지난 시간을 급속도로 지우고 새로운 밤의 시간을 만들어나갔다. 타국과 달리 치안이 매우 안정돼 있는 우리나라의 밤은 시간이 지날수록 뜨겁게 타올랐다. 후대 전문가들은 야간 통행금지 해제 조치를 국민의 기본권과 자율성 회복의 상징적인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참고자료심연수, 「야간통행금지제도와 밤 시간의식 형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2011.이행선, 「1945~1982년 야간통행금지, 안전과 자유 그리고 재난」, 『민주주의와 인권』 제18권 1호, 2018.남애리, 「야간 통행금지와 해제」, 국가기록원 누리집

이달의 근현대사

월별 주요 일정월날짜내용1월2월
1 미국 정부,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적으로 승인1949
가족관계등록부 도입2008
3 독도에 우편번호 부여2003
4 두발 자율화 발표1982
5 야간 통행금지 전면 해제1982
8 이봉창,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지다1932
10 한국 탐험대, 남극점 정복1994
13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1962
15 김만철 일가 탈북1987
20 포니 자동차, 첫 대미 수출1986
27 조선 정부, 태극기를 공식 국기로 제정 및 반포1883
30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발족1954
1 최초의 문예 동인지 『창조』 창간1919
5 금강산 육로 관광 50년 만에 재개2003
8 도쿄 유학생들, 조선독립청년단 명의로 2·8독립선언서 발표1919
10 조선어연구회, 동인지 『한글』 창간호 발간1927
14 중앙정보부,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 발표1969
19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남북한 공동 선언 발효1992
21 단재 신채호, 뤼순 형무소에서 복역 중 사망1936
25 헌법재판소, 사형제 합헌 결정2010
28 2·28민주운동 기념일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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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소식지

https://www.much.go.kr/webzine/vol38/sub/sub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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