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다른 표기 언어 神堂 동의어 당, 당산, 신사
유형 | 개념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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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종교·철학/민간신앙 |
요약 민간에서 신을 모시기 위해 사당 형태로 지은 종교건축물. 당·당산·신사
내용
당집 혹은 당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굿당이라고 하는 것으로 서울시내의 할미당이나 국사당(國師堂)이 그 예이다.
인가가 밀집되어 있는 도회지에서는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가 어려워서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국사당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무당 집안의 별채나 방에 만들어놓은 것으로 무신도(巫神圖)·무구(巫具)·무복(巫服)·무악기들을 모셔두는 곳이다.
강신무의 경우에 뚜렷하게 나타나며, 세습무의 경우에도 동해안의 화랭이패들과 같이 신당을 모시지 않는 예외를 제외하면 제주도 심방[巫覡]들에게까지도 다 나타나는 관습이다. 이것도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노무편(老巫篇)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전국의 약수터나 영천(靈泉)이라는 곳에 세워져 있는 용신당(龍神堂)이다. 이 당 안에는 용신할머니·용궁부인·용궁애기씨 등의 무신들이 모셔져 있는데, 이러한 용녀신(龍女神)의 관념은 신라시조 신화인 「알영(閼英)부인신화」와 많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경주의 알영부인 탄생기념 비각 바로 옆에는 지금도 화강암 판석으로 덮여 있는 우물이 있다.
넷째, 산신각(山神閣)으로 불리고 있는 것으로 그 안에는 대개 산신도가 모셔져 있다. 서울 평창동의 보현산신각(普賢山神閣)이나 대관령의 산신당이 그 예이다. 다섯째, 촌락공동체의 수호신당인 동제당(洞祭堂)으로 전국에 산재하여 있고 수효도 제일 많다. 위의 네 가지 신당들에 비하여 이것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신당이라고 하면 흔히 이 경우를 일컫고 있다.
전통적 농어촌사회에서 많은 영향력이 있었던 이런 동제당들은 지방마다 다양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그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명칭에 있어서 경기도·충청도지방에서는 산신당·산제당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이고 서낭당[城隍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하는 산악지대나 동해안일대에서는 서낭당이라는 이름이 제일 많이 쓰인다.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에서는 당산이라는 이름이 지배적이다. 서울에도 수십 개소가 있는데 한강변 마을에서는 부군당(府君堂)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시대적으로 보면 촌락공동체의 수호신당을 일제강점기에는 부락제당(部落祭堂)이라고 불렀고 광복 후에는 동제당으로 통칭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이런 동제당이 훨씬 다양해져서 전통적 민간신앙의 원형과 그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대표적인 종류는 본향당(本鄕堂)으로 대개 마을마다 하나씩 있고 마을 공동의 수호신당 구실을 한다. 여러 가지 질병을 다스리는 신을 모시는 일렛당[七日堂]은 마을에 따라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특히 동남부일대는 사신(蛇神)을 모시는 여드렛당(八日堂)이 분포되어 있다.
한편, 해안지방에서는 개당[浦]·돈지당·해신당(海神堂)이 많이 존재하는데, 개당은 포구(浦口)를 지켜주는 수호신당이고, 돈지당은 선창에 모셔진 당이며, 해신당은 마을사람들이 바다에 관한 일을 기원하는 당이다. 종류 상으로 이렇게 3종의 구분이 있고, 실제로 마을사람들은 그것을 구분하여 다닌다.
그러나 외부 사람으로서는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이는 신당들이 우툴두툴한 해변 바위 위에 거의 자연 상태 그대로 있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개당과 돈지당에는 선주를 비롯하여 배를 다루는 사람들이 다니고, 해신당에는 해녀는 물론, 일반 선원이나 어부, 또는 군인 가는 사람, 육지나 타국에 나가는 사람들, 바다 밖을 다니는 사람들도 다닌다.
이들 중에는 돌담을 잘 두른 것도 있고, 이런 당들이 없는 마을도 있는데, 없으면 없는 대로 해변 아무 데서나 치성을 드린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 사회의 해신신앙이 강한 것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또 제주도에는 여성의 접근은 엄금하고, 남성 제관들만으로 유교식 동제를 지내는 포제단(酺祭壇)도 있다.
동제당의 형태는 전국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것이 신목(神木)만 있는 자연 상태의 것이다. 나무의 종류는 소나무나 느티나무·팽나무들이 많고 그것은 대개 거목들이다. 이 나무 밑에는 돌로 제단이 소박하게 마련된 경우들도 있고, 더러는 그 신목 옆에 조그마한 사당 건물이 지어진 예들도 있다.
그 당집이 큰 건물로 된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신목이 있는 경우도 있고, 신목이 아주 없는 경우도 있다. 큰 당집이 생기면 그 안에 흔히 신상(神像) 그림이 모셔지거나, 아니면 나무로 만든 위패들이 모셔진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좀 고형(古型)의 예로서는 당집 안에 신체(神體)의 상징으로 방울이나 서낭대·신기(神旗)들이 모셔지는 경우들도 있었다.
또, 가끔 흙으로 굽거나, 쇠로 만든 작은 말 형태들을 모신 경우를 지금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당의 형태들 중에서 주목을 끄는 것에 굴당(窟堂) 형태가 있다. 이것은 본토에도 충청북도나 강원도에 실례가 있고, 경상북도 울진군의 구리재서낭[窟峙城隍]은 성류굴에서 나왔다 하여 성류굴 숭배가 대단하다. 그리고 고형인 굴당이 많이 보이는 곳은 역시 제주도이다.
제주도에는 크고 작은 굴이 많은데 지금도 마을 근처의 굴은 대개 본향당이나 일렛당으로 모셔지며 그 수가 매우 많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큰 굴당인 궤내귀당[궤네깃당, 窟內鬼堂]은 고고학의 발굴 결과 최하층은 기원(紀元) 전후의 주거지였으나, 중간층은 조선시대의 신당이었고, 돌제단도 남아있었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당을 흔히 할망당으로 불러서 역시 여신 숭배성을 아울러서 보여주고 있다. 당의 신격(神格)은 이상과 같이 여신 숭배성이 강하고 그것이 한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내용은 다양하며 보통 거대한 신목들에는 신이 내재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베거나 해치면 동티(動土가: 지신이 성을 내어 받게 되는 재앙)가 난다던지, 축을 맞는 등 사고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신목을 다치는 데 대한 금기령이 내려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신격들은 인격화되고 신화적인 설화 형성의 소지도 마련한다. 위 궤내귀당의 주신 ‘궤내귀또’는 해중무용담을 전개하는 영웅서사시성까지 그 당신본풀이에서 보여주어 문학사적으로도 주목을 받은 바가 있다. 경상도일대, 옛 신라 영역에 전승하는 골맥이동제신이라는 것도 그 한 예다.
골맥이란 ‘골(洞·邑·郡의 訓)’과 ‘막(防禦)’과 ‘이(名詞形 語尾)’의 합성어이다. 각 마을은 골맥이 김씨할배 또는 이씨할배를 그 마을의 낙향시조(落鄕始祖)로 여기고, 그 마을을 처음 이룩한 창건신 및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며 이 골맥이할배(祖上神)가 신목에 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렇게 집단의 시조신이고 창건신이고 수호신이라는 뜻에서는 박혁거세(朴赫居世)도 박씨골맥이할배일 수 있고, 김알지(金閼智)도 김씨골맥이할배일 수가 있다. 또한, 이러한 골맥이동제는 정월 15일인 경우가 압도적인데, 『삼국사기』도 박혁거세 즉위 일을 정월 15일이라고 적고 있다. 또 김알지는 계림(鷄林)의 나뭇가지에 걸린 금궤에서 조상신으로 뚜렷이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계림도 민간신앙의 신목이 왕궁제의(王宮祭儀)로 승격한 궁성내의 조상숭배와 집단수호의 제의처였던 것으로 짐작해볼 수가 있다. 그러나 고금이 다 그렇게 같이 부합되지는 않는다. 옛 신라 시조신들은 동자신(童子神)으로 탄생하는데 오늘날의 골맥이들은 할배·할매들로 불리고, 또 할배보다는 할매인 여신이 더 많다.
1968년 질문지 조사에서, 경상남북도와 강원도 일부에서 골맥이로 신명이 기입된 740여건 중 남신 93, 여신 226, 성미상 421이라는 집계를 얻은 일이 있다. 여신이 남신의 두 배를 넘는 주류성을 보였는데, 이것도 옛스러운 유구한 농경사회의 지모신 숭배의 잔존으로 풀이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도 보았지만 이렇게 각 도마다 통계를 낸 결과는 여신이 남신의 두 배 또는 세 배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당신은 남신만인 경우도 있고, 여신만인 경우도 있고, 또 부부신인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역사상의 이름 있는 영웅 위인들이 그 연고지역의 당신으로 모셔지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의 단종, 서해안의 임경업(林慶業)장군, 중부지방에서 전국적으로까지 산재하는 최영(崔瑩)장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 경우는 원사령(寃死靈)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이상을 종합하여 당의 역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그것은 여신숭배를 주로 하고, 정월대보름 만월일에 대지의 풍요를 비는 만월-여신-대지의 원초적인 풍요원리를 지니는 신앙체였다. 고구려 동맹의 굴당 속의 여신숭배, 또는 옛 신라의 시조신화들과도 연결되는 당 형태와 당신들의 유사성은 당의 유구한 역사성을 증명해주는 자료들이다.
그 뒤로 불교·유교·기독교 등 새로운 종교문화들이 들어오면, 그 흐름에 따라서 당 신앙도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면서 오늘날도 한국 기층문화의 중요한 흐름으로 잔존한다. 이러한 당의 제의도 유교적인 정숙형, 이 정숙형에 무당굿이 곁들여지는 경우, 다시 제주도의 당굿들같이 애초부터 무당굿으로 일관되는 유형 등 지방차가 많다.
그것들은 따로 동제로서 그 내용들이 풀이되며, 여기에는 지방에 따라서 다시 농악이나 줄다리기 등까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이 가지는 전통문화면의 의의나, 농어촌에 있어서의 사회적인 기능들에도 또한 주목할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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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김녕리궤내기동굴 유적발굴조사보고서』(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1996)
- ・ 「동제」(장주근, 『한국민속학개설』, 民衆書館, 1974)
- ・ 「영웅의 일생 그 문학사적 전개」(조동일, 『동아문화』 10, 1971)
- ・ 「한국의 신당형태고」(장주근, 『민족문화연구』 1, 1964)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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