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경 동아대
- 승인 2006.06.17 00:00
고려후기 수월관음도는 현재 40여점이 알려져 있다. 대개 이미지는 암굴을 배경으로 암좌에 앉은 관음상을 現前性이 강하게 화면 전체에 클로즈업해 배치하고, 관음의 발언저리 수면 건너편에 관음을 경배하는 선재동자를 배치한 구성이 패턴화 돼있다. 이처럼 정형화된 것 외에 이례적인 도상이 첨가된 작품이 존재한다. 일본 大德寺 소장으로, 228×125.8㎝ 크기의 비단바탕에 주색·녹청·군청·백색·금분 등을 베푼 화격이 높은 그림이다.
이처럼 대덕사 작품에서 보이는 공양인물군상의 행렬은 전형적인 고려 수월관음도(암좌에 앉은 관음상과 이에 대응하는 선재동자를 묘사)와는 구분되는 이색적 도상으로,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과 더불어 2점만 존재한다.
공양인물군상에 대해 기존에는 ‘삼국유사’의 낙산성굴설화에 의거해 용왕과 권속들을 표현한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실체와 상징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선두에 다소 크게 묘사된 남성인물상(①)은 손에 병향로를 쥐고 머리에 흰 뿔장식이 있는 冠을 착용했다. 금색 당초운문이 장식된 大袖衣의 紅袍를 걸치고, 턱수염이 정돈된 모습은 제왕을 연상시키는데, 이 인물은 해중에서 해수면 위로 출현한 海龍王임에 틀림없다. 관 양쪽에 솟아오른 뿔장식이 海龍의 두부에 뻗어나온 뿔을 가리키는 모티브로, 俗人의 모습을 한 용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용왕 뒤를 따라오는 여성상(②)은 高?형식의 머리장식을 하고, 치전장식이 있는 大袖衣 위에 어깨로부터 雲肩을 걸쳤으며, 양손에 산호와 보화가 담긴 盤을 들었다. 이 여성을 기존엔 용녀로 봤다. 그러나 법화경과 다라니경 변상도에 의해 알려진 용녀 이미지는 양손에 摩尼珠가 담긴 盤을 들고 있으며 소녀이미지를 띤다. 그런데 이 여성은 보화가 담긴 반을 들고 있고 성숙된 여인상이란 점에서 구별돼 용녀라고 단정짓기 어려우며, 오히려 용왕부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용왕과 용왕부인이 등장하는 고려불화로 일본 親王院藏 미륵하생경변상도(1350), 知恩院藏 미륵하생경변상도(14세기) 등을 참조할 수 있다.
용왕부인 뒤를 잇는 홀을 든 남성 1인(③)과 공양물을 든 여성 2인(④⑤)은 앞선 인물들의 권속으로 볼 수 있다. 이어 뒤쪽에 남자아이를 업고 있는 인물상(⑥)을 주목하자. 이 인물은 사람같지만 부릅뜬 눈과 앞으로 돌출된 코와 입모양이 鬼形에 가깝다. 등에 업힌 아이(⑦)는 오른손을 관음을 향해 내밀고 있다. 두 인물은 독특한데 여태껏 주목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도상을 산서성 청룡사 원대 벽화 및 명대 귀자모상 경판화와 수륙화에서 볼 수 있다. 인물 ⑥은 鬼子母 권속도상이다. 귀자모는 법화경 陀羅尼品에 등장하는데, 子安·安産과 어린아이의 수호여신으로 중국 송원명대에 널리 확산 보급된 도상이다. 즉 인물 ⑥은 귀자모 도상의 권속이 고려 수월관음 도상에 습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은 여러 권의 두루마리를 허리에 끼고 ?頭와 官服 차림의 건장한 인물(⑧)을 보자. 부릅뜬 눈, 뭉툭하면서 큰 코 등으로 봐 야성적 인상을 준다. 이와 극히 유사한 도상은 돈황 安西地區 東千佛洞 第2窟의 통로 南·北壁에 그려진 수월관음도(西夏時代)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인물은 鍾규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규는 보통 당대 북송의 도화견문지에 따르면 귀신을 쫓는 벽사적 의미로 읽히지만, 송원명대의 도상을 참조하면 벽사신의 한계를 넘어 권능이 확대된 것으로 해석된다. 대덕사 소장의 공양인물군상에 종규도상이 포함됐던 건 그 기능과 역할을 더욱 필요로 했기 때문이 아닐까. 즉, 善惡功過를 검찰하고 악을 징계하는 판관의 기능에서 나아가 惡으로부터 어린이를 지켜주는 역할로 수월관음도에 습합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양인물군상 가운데 半裸狀의 鬼頭·獸頭形 도상들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幡의 깃대를 쥔 半人半獸의 인물(⑨)에 이어 3명의 무리가 뒤따르고 있다. 셋 가운데, 앞쪽의 鬼頭形 도상(⑩)은 보화가 가득 담긴 大壺를 등에 졌으며, 옆의 獸頭人身形 인물(⑪)은 벌거벗은 상반신 어깨에 표면이 거칠고 울퉁불퉁한 공양물을 짊어지고 있다. 이어 바다동물 형상의 녹청색 도상(⑫)이 바다진주가 담긴 조가비를 머리에 짊어지고, 왼손엔 대형 홍산호를 허리에 끼고 따르고 있다. 이들은 용왕일행을 따르는 권속으로 공양물을 관음에게 바치기 위해 운반하는 무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인물 ⑪이 짊어진 공양물은 과연 뭘까. 적갈색의 표면은 마치 고목에 보이는 옹이처럼 작고 둥근 형태들이 불규칙하게 묘사돼있으며, 가장자리는 돌기된 상태다. 즉 이 공양물은 양감과 중량감 있는 목재일 가능성이 크며, 공양물이라면 불교에서 중시하는 香木이 아닐까싶다. 실제 불상의 복장유물로 沈香, 丁香 등이 사용된 예가 많은데, 침향목의 연기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이를 통해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고 해 14~15세기에 성행했다. 이로 미뤄 이 그림의 공양물도 침향목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처럼 대덕사 수월관음도는 고려시대 ‘관음과 선재’로 이뤄진 전형성에서 일탈해 해저에서 해수면 위로 등장하는 군상들을 설정, 상승효과를 시각적으로 연출했을 뿐 아니라, 설화성 짚은 장면으로 고려 수월관음도의 변화를 보인 대표작이다. 곧 공양인물군상의 상징성은 법화경과 화엄경의 융합이자, 도불습합의 도상으로서 의미가 크며, 수월관음도가 지니는 의미를 가장 풍부하게 만들어낸 선두격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박은경 / 동아대·미술사
필자는 일본 九州大에서 ‘조선전기불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범어사성보문화재 해설집’ 등을 저술했다.
출처: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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