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인대학 (현 경남대학) 2년 수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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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사람·땅과 함께 숨쉬는 집”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서 멀지 않은 산 속. 망치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옥을 짓는 중이다. 건축 현장이지만 레미콘도 크레인도 없다. ‘한옥학교’ 간판이 걸린 너와집 마당에서 김창희(73) 대목장이 망치질 중이다. 30~40대로 보이는 학생 대여섯 명이 그의 손놀림을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그의 망치소리는 높고 낮음이 없다. 곁눈질 없이 한 평생을 한옥에 매달려온 그의 삶을 닮았다.
그는 6·25 전쟁 탓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군대에 다녀왔다. 1958년 우연히 합천 해인사에 들러 절을 고치는 모습을 보고 그 길로 목수가 됐다.
“나무를 다듬어 집을 짓는 일이 내 일이구나 싶었어. 지금도 후회 안 해.” 해인사에서 3~4년 동안 머물며 목수일을 배웠다. 50여년 동안 구례 화엄사, 경주 불국사, 김천 직지사,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등 전국의 유명한 절을 고치고 다듬었다. 한 절에서 1~2년씩 머무르며 작업을 했다. 대구에 있는 집에는 명절이나 제사 때 들르는 게 고작이었다. 4남매를 뒀지만 그래서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지난해 김 대목장은 충북 청주시의 대순진리교 사찰에 5층 목탑을 지었다. 그가 설계하고 전문 설계사들이 현대 건축 언어로 옮겨 설계도를 그렸다. 목탑이지만 5층까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목조 건축물에 대한 그의 자신감이다. 창덕궁 복원 공사에서는 도편수를 맡았다. 알 만한 사람은 그를 한국 최고의 목수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의 솜씨를 국가 차원에서 이어가려는 노력은 없다.
한옥학교 변숙현(44·밀양대 건축학과 교수) 교장과 인연이 닿아 지난해부터 한옥학교에서 예비 목수들을 길러내고 있다. 그의 목에는 늘 작은 녹음기가 매달려 있다. 디지털 카메라는 그의 손짓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챈다. 흉내낼 수 없는 대목장의 솜씨를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우리네 집은 사람과 집과 땅이 같이 숨을 쉬지. 무지막지하게 지어 올려 사람을 갉아먹는 콘크리트 덩어리와는 달라. 누구라도 제 손으로 어렵지 않게 우리네 집을 지어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소원이야.”
그는 한옥을 짓는 데 필요한 손맛을 전할 책 한 권을 남기는 일이 무형문화재로 이름을 남기는 일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청도/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2011년 10월 17일 돌아가신 해운 김창희 교수에 대한 추모의 글>>
'니가 나무의 五行을 아나?'
고 해운(海雲) 김창희 선생님은 후배 목수들 다그치면서 '니가 목수가?' 또는 '니가 나무의 오행(五行)을 아나?' 란 말을 자주 쓰셨다.
나무에 오행이 있을까? 있다면 뭐가 오행일까?
고인이 청주 사직동에 5층 목탑을 지으실 때 이런 일화가 있다. 2000년 초부터 직접 설계해 경북 칠곡의 한 제재소에서 치목, 청주 공설운동장 옆에 세웠는데, 고건축계에선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 중 대학교수 한 분이 조립하는 현장에 답사를 가게 됐는데,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아래위 층 기둥 촉이 의외로 짧게 치목된 걸 발견한다.
법주사 팔상전이나 진천 보탑사 목탑은 내부가 통층인데 반해 청주의 그것은 내부에 마루를 설치, 3층까지 사람이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 마루귀틀엔 상하층 기둥이 촉으로 맞춤되어 있고... 예를 들어 마루귀틀 춤(高, 높이)이 1자라면 상하층 기둥 촉 길이는 각각 5치 정도로 상식적으로 판단되지만, 그 때 김창희 선생님은 상하층 기둥 촉 사이를 7치 띄워놓고 시공하셨다. 이를 이해 못 한 그 분이 태클을 건 것이다. 그 때 김창희 선생님 왈, '니가 나무의 오행을 아나? 집에 가라~'
나중에 설명하시길 나무를 북미산 소나무인 '다글라스 퍼'로 시공했는데 나무가 아직 덜 말라 나중에 건조수축 할 것에 대비, 촉을 일부러 짧게 치목하셨단다. 미리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란 예측 아래 시공하셨단 얘기다.
이런 게 결국 노목수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인데... 물론 이것 외에도 나무의 상하, 등배, 수축, 할렬, 비틀림, 결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적재적소에 맞춰 쓰는 게 목수의 도리요 책무일 것이다. 난 이런 걸 뭉뚱그려 나무의 오행으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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