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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이야기

세계가 주목하는 조선 세계지도 '강리도', 우리도 눈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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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국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주요 지명을, 1402년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다는 세계지도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유라시아 대륙 서단의 지명을 그 옛날에 갓 쓰고 도포 입은 조선의 선비들이 세계 지도에 기록했다고? 말도 안 돼! 그러나 판단은 잠시 후로 미루기로 하자.

    먼저 강리도에서 서역 부분을 보자.

    강리도의 서역 부분 1910년 교토대에서 강리도를 모사한 지도 중 일부
    ▲ 강리도의 서역 부분 1910년 교토대에서 강리도를 모사한 지도 중 일부
    ⓒ <대지의 초상 大地の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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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바다는 대서양이다. 가운데에 네모로 표시된 큰 섬이 보인다. 그 오른쪽이 이베리아 반도다. 지중해는 바다 색깔이 누락돼 있지만 식별할 수 있다. 맨 오른쪽 약간 위를 보자. 붉은 원이 하나 있다. '別失八里'(별실팔리, 터키어 '비슈발리크'에서 유래)라고 쓰여 있다. 오늘날 중국 신장 자치구의 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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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서쪽 지역이 예로부터 '서역(西域)'이라고 불렸던 땅이다(붉은 선의 以西지역). 수많은 지명이 한자로 적혀 있다. 이것들은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 맨 처음 지명 해독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학자는 일본 교토대학의 스기야마 마사아키(衫山正明) 교수로, 그는 224개 지명 해독(안)을 제시한 바 있다(<대지의 초상 大地の肖像>, 2007).

    최근에 스기야마 교수의 해독(안)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킨 학자가 등장했다. 중앙아시아의 심장이라는 카자흐스탄의 눌란 박사(Nurlan Kenzheakhmet, 북경대에서 박사학위)다. 그는 훔볼트 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결과를 <Silk Road 14호>(2016)를 통해 발표했다(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눌란 박사는 이슬람, 페르시아, 중국의 지리 역사 문헌을 발본색원적으로 고찰했음을 밝히면서 총 171개의 서역 지명 해독(안)을 새로 제시했다.

     눌란 박사가 해석한 강리도 서역 지명
     눌란 박사가 해석한 강리도 서역 지명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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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카탈루냐 일대에 한해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 현대 지도를 보자.

     카탈루냐 일대 지도
     카탈루냐 일대 지도
    ⓒ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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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탈루냐 및 그 주변에서 바르셀로나(Barcelona), 타라고나(Tarragona), 우에스카(Huesca), 팜플로나(Pamplona) 등의 지명이 보인다. 눌란 박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놀랍게도 이 지명들과 모나코 등이 강리도에 나온다.

    이 부분에 대한 눌란 박사의 설명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강리도 상의 지중해 해안선을 보면, 카탈루냐의 데니아(Denia, 아랍어로는 Deniya)로부터 바르셀로나(아랍어 Barsluna), 그리고 프랑스의 남해안을 따라 이탈리아의 제노아로 뻗어 있다.

    麻里昔里那(Malixilina)는 마르세유(Marseille, 스기야마 해석)거나 바르셀로나(Barcelona)겠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 북쪽에 汲里若(Jiliruo)가 있는데 스기야마에 의하면 헤로나(Jirona)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Moliku의 오자일 수 있으며 그렇다면 沒尼苦(Moniku)의 변이일 것이다. 강리도 혼묘지(本妙寺)본과 덴리대(天理大)본에는 沒尼苦(Moniku)라 표기돼 있다. 이는 프랑스와 이태리 사이에 위치한 도시 국가 모나고(Monaco)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중해 해안 쪽으로 동쪽의 他喇苦那(Tarakuna)는 아랍어 지명 Talakuna를 가리킨다.  즉 오늘날의 타라고나(Tarragona)다.  그 오른쪽 麻里昔里那(Malixilina)는 위치로 보아 마르세유(스기야마 해석)라기 보다는 바르셀로나(Barcelona, 아랍어 Barsluna)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강리도에 첫 자가 B 또는 M으로 시작하는 지명이 여럿 나오는데 M은 B로 B는 M으로 환치하여 놓으면 해독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랍어 Barsluna를 가리키는 Malixilina(M을 B로 환치하면 Balixilina)도 그와 같은 경우다."

    한편, 지명 해독(안) 일람표에 의하면, 拜不那(Baibuna)는 팜플로나(아랍어 어원:banbaluna), 八思八哈(Fasibaha)는 우에스카(아랍어 지명Wasqah)다.

    이제 강리도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강리도는 원본(1402)은 사라지고 없지만 역시 조선에서 만들어진 모사본이 현재 일본 교토의 류코쿠(龍谷) 대학 서장고에 보존돼 있다. 정식 명칭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다. 세로 171㎝, 가로 164㎝의 대형지도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져 있는 이 고색창연한 보물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색상이 살아 있고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한다.

     류코쿠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강리도
     류코쿠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강리도
    ⓒ <大地の肖像>(대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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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코쿠본 이외에도 모사 시기가 각기 다른 세 개의 버전이 일본 각처에 보존돼 있다. 총 4개의 버전(조선에서 15~16세기에 제작)이 모두 일본에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1910년 교토대에서 류코쿠본을 모사해 만든 것이 또 있다. 이 지도는 매우 선명해 연구 자료로 활용가치가 높다(이 글의 맨 처음 지도).

    여러 모사본 중에서 류코쿠본의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르고(1480년대 초로 추정 -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보존 상태가 양호해 우리는 이를 통해 1402년 원본 지도를 본다. 통상 '1402 강리도 kangnido'라고 하면 류코쿠본을 가리키는 까닭이다.

    강리도 실물이 최초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것은 1991년 말~1992년 초 워싱턴에서였다.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워싱턴의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특별전에 출품된 것. 여기에서 강리도가 세인의 주목과 찬탄을 받았다.

     <Circa 1492>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 기념 전시회 도록
     <Circa 1492>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 기념 전시회 도록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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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 5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품된 강리도
     콜럼버스 5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품된 강리도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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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강리도는 미국에서 발간된 지도역사의 대전인 <지도학의 역사(History of Cartography)>시리즈 중 아시아편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지도학의 역사 History of Cartography>. 강리도가 표지 지도로 선정 등재됨
     <지도학의 역사 History of Cartography>. 강리도가 표지 지도로 선정 등재됨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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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리도는 주유천하를 한다. 2002년에는 저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고지도 전시회에 영인본이 출품돼 다시금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아래 사진에 만델라가 보인다. 왼쪽 벽에 강리도 혼코지(本光寺)본이 걸려 있다. 우리는 만델라가 자신의 나라를 서양인보다 수십 년 먼저 조선인들이 그렸다는 것을 알고 놀라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아마 자신이 오랫동안 수형 생활을 했던 로벤 섬 해역을 강리도에서 찾아봤을지도 모른다. 15세기 아득히 먼 극동의 조선에서 그려진 세계지도에서 말이다.

     2002년 11월 남아공 국회의사당 지도 전시회
     2002년 11월 남아공 국회의사당 지도 전시회
    ⓒ 남아공 천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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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리도와 지리 역사서
     강리도와 지리 역사서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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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리도는 기존의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는 기념비적 준거로 인식되고 있다. 서양의 역사 지리서, 세계사 저작, 백과사전, 대학 강의 등에서 강리도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미국에서 소개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미국 고등학교 Lake Norman High School 홈페이지에 언급된 강리도
     미국 고등학교 Lake Norman High School 홈페이지에 언급된 강리도
    ⓒ Lake Norman High School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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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공립학교인 Norman Lake High School(학생 수 약 1800명) 홈페이지에는 강리도가 세계사 과제물로 올라와 있다.

    강리도: 한국인의 새로운 세계관

    미 대륙이 유럽인들에게 알려지기 이전에 가장 주목할 만한 세계지도가 한국에서 출현한다. 이름하여 혼일강리역대지도(Map of Integrated Regions and Terrains and of Historical Countries and Capitals). 일반적으로 Kangnido라 불리는 이 지도는 조선왕조시대(1310~1910) 초기인 1402년에 제작됐다. 그들이 창제한 이 걸작(masterpiece)은 아프로- 유라시아Afro-Eurasia(아프리카 및 유라시아 대륙)를 그리고 있는데, 이는 당시로써는 세계 전체였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이 지도는 괴상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높은 수준의 정확성에 아연실색하고(astounded) 말 것이다. 물론 결함이 있다. (중략)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럽이 지도에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일리노이 대학 부설 평생 교육원에서 개설한 한 강좌에는 강리도가 맨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일리노이 대학 평생 교육원에서 가르치는 강리도
     일리노이 대학 평생 교육원에서 가르치는 강리도
    ⓒ 엘리노이대학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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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지도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미국의 국회 도서관과 비르가(Virga)라는 작가가 공저로 펴낸 역작 <Cartographia(지도학)>는 강리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 서양지도는 이 1402년 한국의 지도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당시의 어떤 서양 지도도 이 지도가 포괄하고 있는 전체 세계상에 근접하지 못한다. 세종이 창제해 1446년 반포한 놀라운 한글처럼 이 지도의 구성은 어떤 형식과 틀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이 지도와 한글은 새로운 한국을 창조하였다…" 

     <Cartographia>
     <Cartographia>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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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지리학 교양서인 <Introduction to Geography(지리학개론)>(2015)는 강리도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한, 서양의 지리상의 대발견 이전에 나온 가장 위대한 지도는 1402년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강리도는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의 지식을 결합해 그린 것인데, 거기에는 당시 중국에 알려진 이슬람 지리학이 또한 내포돼 있다. 그 결과 이 지도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인도, 이슬람권,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에 이르기까지의 영역을 담았다. 그들이 당시 유럽인들보다 훨씬 광범위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이 지도를 통해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버드대 교수 발레리 한센(Valerie Hansen)이 펴낸 역저 <Voyages in World History, Volume 1 to 1600>(2013)는 강리도를 세계사 연표에 뚜렷이 부각하고 있다.

     세계사 연표 속의 강리도
     세계사 연표 속의 강리도
    ⓒ Voyages in World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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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몇 가지 사례만 봐도 강리도가 세계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터다. 우리 조상들이 남기고 간 문화유산 중에서 이처럼 세계사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유일한 한국사 사전인 <새 국사사전>(교학사,  2013)에서 우리는 '강리도' 혹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 문화상과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으로 빛나는 책인데 말이다.

    한편, 국사편찬위원회가 낸 <한국사> 시리즈가 있다. 여기에서는 강리도가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핵심을 놓치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읽어봐도 강리도의 세계사적 가치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단 한 줄 정도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인도·아프리카·유럽·조선·일본 등을 포함하는 舊世界 전체를 포괄하는 지도다." 

    이 문장만 봐서는 강리도의 독보적 가치를 알 수 없다. 강리도가 세계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은, 당시 동서양의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지도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서양 중심의 기존의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사 편차위원회의 <한국사>에서는 이에 대한 통찰을 찾아보기 힘들다. 진수를 놓친 것이다. 이는 눈동자 없는 용, 미소가 빠진 모나리자 그림에 비유할 수 있을 터다. 수정·보완이 절실한 이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강리도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류코쿠대학 측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며 강리도 가치의 핵심을 짚고 있다.

    "이 지도는 1402년 조선에서 제작한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다. (중략) 주목해야 할 것은 서방에 있다. 유럽에는 지중해가 그려져 있고, 아프리카가 바다로 둘러싸인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중략) 포르투갈인 바루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한 것이 1488년의 일이다. 그때의 발견보다 무려 80년 이전에 이 지도에는 그 모습이 확실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중략) 이처럼 이 지도에는 역사를 새롭게 바꾸는 대발견이 다수 숨겨져 있다. 이 지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정보가 담긴, 실로 거대한 역사문헌이라 할 수 있다."

    강리도의 세계사적 가치는 동서를 물론하고 학계에서 확립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정작 모국에서는 무관심과 몰이해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문화재를 외국에서는 찬탄하는데 정작 우리는 눈을 감고 있는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의 개탄처럼, 우리가 지적 태만에 빠져 있거나 세계사의 맥락을 잃어버린 탓일까(관련 칼럼).

     강리도 류코쿠본 사진
     강리도 류코쿠본 사진
    ⓒ 류코쿠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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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가 던지는 의문과 메시지는 여러모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강리도는 우리가 앞으로 불러와야 할 미래가 아닌가 싶다. 이런 관점에서 강리도를 다시 봤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네이버 포스트 '김선흥의 <고지도 천일야화>' 시리즈에 관련 내용이 연재 되고 있습니다(http://naver.me/FO3cEpQ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