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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이야기

세계 문화유산 지정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더 깊은 여행을 위한 버킷리스트-세계 문화유산 지정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 입력 : 2018.07.26 09:48:15

불자가 아닌데도 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가 마음이 편해서,라는 대답을 한다. 그들은 절도 좋아하지만 그 절을 품고 있는 산과 숲을 더 사랑한다. 풍수지리적으로 안정되고 풍경이 아름다운 사찰의 공통점은 자연과의 물아일체를 이룬 승가람마들의 배치 구조이다. 자연과 종교와 전통과 사람이 하나의 점으로 보이는 그 ‘산지승원’ 일곱 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계기가 산지승원들이 더욱 자연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시간의 출발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가로서는 색다른 시선으로 찾아갈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기회이기도 하다. ▶‘산지승원’이란?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을 사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한국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한 곳이라는 점이다.
둘째,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인 ‘산지승원’으로 등재된 명찰들이다.
셋째, 삼국 시대에 창건되었지만 조선 시대 때 중창되면서 가람 배치가 비슷비슷하게 정형화 된 모습을 하고 있다.
산중 사찰에 자주 가 본 사람들은 이 ‘정형화’의 의미가 그림으로 떠오를 것이다. 사하촌을 지나 절의 입구에 다다르면 절의 출입문 격인 ‘일주문’이 등장하고, 그 문을 지나 이어진 길을 조금 더 걸으면 ‘천왕문이’, 그곳을 지나 더 들어가면 탑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어 몇 곳의 가람이 더 배치되어 있고, 너른 마당 계단 위에는 대웅전이 위치하는 게 보통이다. 대웅전 뒤쪽이나 근처에는 삼신각이나 명부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조계종에서 정한 ‘산지가람’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산지가람은 산세, 배경이 되는 봉우리와 지형적 특징을 잘 활용하여 불교교리를 건물 배치와 외부공간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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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부분의 절들은 산턱을 깎아 건축을 하되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 했다. 해서 사찰 정상 지점에 올라가 내려다 보면 가람들의 지붕만 눈에 보인다. 더 위에서 내려다 보면 숲 한 가운데에 가마솥 뚜껑 하나가 놓여있는 형상이라고나 할까? 그 솥뚜껑 안에서는 수천 년, 수백 년 동안 세상의 번뇌와 인연을 끊으려는 수행의 몸짓이 벌어지고 있다. 때로는 중생의 야단법석이 벌어지기도 한다. 명문 사찰이 산으로 들어간 이유는 이미 알려진 바 그대로이다. 조선이 숭유억불 정책을 펴자 탄압을 피하기 위해 도시에 있던 절들이 산으로 은거하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 조선 왕조는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억압함으로써 대중의 ‘우주에 대한 개념을 바꾸려’ 시도했다. 대신 유교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다. 오랜 세월 불교에 익숙했던 백성들에게 갑자기 등장한 공자 사상은 낯설고 무서웠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조선 왕조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억불 정책을 쓰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든 사찰까지 핍박하지는 않았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유구한 역사와 이야기를 지닌 산중 명찰 일곱 곳을 ‘산지승원’으로 지정, ‘세계유네스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최근에 최종 결정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미 가 본 사찰들이 달리 보이고, 또 가게 된다면 놓치지 말고 관찰해야 할 특정 볼거리들이 생긴 게 사실이다. 이로써 세계유산에 오른 한국의 산지승원 일곱 곳은 많은 사람들의 여행 미션에 올라갔을 게 확실하다. 나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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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통도사

양산시 영축산에 위치한 고찰이다. 산의 이름이 영축산이 된 것은 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설법한 인도의 영축산과 닮았기 때문이란다. ‘통도사’라는 이름도 ‘양산의 영축산과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승려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이곳의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과 모든 진리를 통달해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통도사를 만든 스님은 자장율사. 그는 당나라에 가서 불사리, 금란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가져왔는데, 이것들을 봉안하기 위해 통도사를 창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유물을 모시기 위해 만든 절을 ‘불보사찰’이라고 한다. 불보사찰은 대웅전에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고 별도의 계단戒壇을 만들어 부처님의 법신을 상징하는 진신사리를 모시곤 한다. 자장율사는 절이 들어선 자리에 있던 커다란 연못을 메우고 그곳에 계단을 세우는 것으로 창건의 출발을 알렸다고 한다. 통도사에 갔을 때 금강계단과 불상 없는 대웅전을 확인해야 할 이유가 그것이다.

통도사를 둘러싼 대표적인 풍광으로는 영축산문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진입로의 소나무 군락지, 안양암에서 바라보는 통도사의 일출 경관, 비로암 폭포, 자장암 일대의 계곡과 산세, 영축산의 경관을 담은 극락암, 백운암의 큰 북소리, 영축산 정상 단조성의 저녁노을, 취운암의 저녁 범종소리 등을 꼽을 수 있다. 통도사에는 산내 암자가 많이 있다. 관음암, 극락암, 금수암, 반야암, 백련암, 백운암, 보타암, 비로암, 사명암, 서운암, 서축암, 수도암, 안양암, 옥련암, 자장암, 축서암, 취운암 등이 그곳들이다.

Info 위치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 문화유산

-기록유산: 사바교주계단원류강요록·통도사사적약록·사바교주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불종찰략사

-유형유산: 통도사대웅전 및 금강계단·통도사영산전·통도사국장생석표·통도사봉발탑·통도사삼층석탑·통도사은제도금아미타여래삼존상및복장유물·통도사영산전팔상도·통도사대광명전삼신불도·통도사석가여래괘불탱·통도사괘불탱·통도사화엄탱·통도사영산회상탱·통도사아미타래설법도·통도사영산전법화·사인비구제작동종-통도사동종·통도사청동은입사향완·양산통도사금동천문도

-무형유산: 개산대재·동안거·백중기도·포살법회·도량석-조석예불·발우공양·화엄산림법회

▶태백산 부석사

신라 의상대사가 676년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와 지은 절이다. 의상대사는 화엄종의 시조인데 한반도에 10곳의 화엄 사찰, 이른바 ‘화엄 10찰’의 창건을 주도했다. 사찰의 이름은 무량수전 서쪽의 큰 바위가 아래에 있는 바위와 붙어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 돌’ 즉, 부석사가 되었다. 사찰을 이루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절 이름으로 삼은, 흔치 않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부석사는 화엄종의 본사로 의상대사 본인도 창건 후 입적할 때까지 부석사를 떠나지 않았다. 오직 수행과 설법에만 전념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부석사의 전통으로 자리잡아 의상대사의 법을 이은 후대 승려들 또한 그리했다고 전해진다.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무량수전’으로 유명해졌고,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찰 자체와 함께 건축물로 더 많은 관심을 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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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부석사는 한국 전통건축의 모범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전각이 다 잘 갖추어져 있는데, 각종 전각과 석탑, 석등이 높이를 달리하고 있어서 신앙과 수행의 도량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공간 배치를 이루고 있다. 부석사 풍광의 으뜸은 역시 부석사 경내 자체라 할 수 있다. 보통의 절들이 입구에서 절의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기 쉽지 않은 것에 비해, 부석사는 아래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가람들이 마치 날개를 편 갈매기처럼 활짝 펼친 모습으로 보인다. 거기에 낙조가 보내주는 붉은 기운이 들어가고 새들이 날아가는 찰나와 마주친다면 여행자 마음은 더없이 평화로워진다.

Info 위치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부석사 문화유산

-기록유산: 부석사원융국사비·부석사안양루중창기·무량수전미타존상개금기·태백산부석사무량수전급제각중수기

-유형유산: 무량수전·조사당·무량수전앞석등·층석탑·당간지주·소조여래좌상·북지리석조여래좌상·석조석가여래좌상·조사당벽화·오불회괘불탱·고려목판

-무형유산: 부석사의상대재

▶천등산 봉정사

불자들에게만 주로 사랑받던 안동의 봉정사가 속세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한국 방문 때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한 일정 가운데 안동하회마을이 있었는데, 방문 전 봉정사에 들려 한국의 불교 문화를 살피는 장면이 모든 미디어에 보도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봉정사가 창건된 것은 신라 문무왕 12년, 서기 672년 무렵(정확하지 않다)의 일이다. 창건 스님은 능인대사이다. 그는 의상대사의 제자였다.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은 당시 대망산이라 불렸었다.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이곳 대망산 바위굴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의 선녀가 능인대사의 도력에 감복, 바위굴에 등불을 보내주었고, 하늘의 뜻을 알아차린 능인대사가 이 산의 이름을 천등산이라 하고 자신이 도를 닦던 굴의 이름을 천등굴로 명명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하늘의 도움으로 공력이 더욱 높아진 능인대사는 이곳에 절을 짓기로 결심했는데, 절 터를 찾는 일을 자신이 직접 접어 만든 ‘봉황’에게 의지했다. 즉, 종이 봉황을 하늘에 날린 것인데, 그 종이 봉황이 공중을 날아 처음 안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봉정사가 있는 그곳이라는 것. 그래서 이름도 ‘봉황이 머문 곳’, 봉정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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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를 감싸고 있는 천등산은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고즈넉한 곳이다. 해발 574m로 적당히 장중하고 적당히 안온하다. 특히 봉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에 우거진 소나무 숲길을 걸을 때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그 길 끝 무렵에 다다르면 언덕 너머 봉정사 가람 기와 지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 신비로운 느낌마저 자아내게 된다. 산내 암자로 영산암, 지조암, 중암 등이 있다.

Info 위치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 문화유산

-기록유산: 양법당중수기·경상좌도안동서령천등산봉정사대장경루판부수급인출체례규모기·봉정사극락전중수기

-유형유산: 봉정사극락전·대웅전·화엄강당·고금당·목조관음보살좌상·영산회상벽화·영산회괘불도·아미타설법도

-무형유산: 봉정사초하루법회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 하면 저절로 연상되는 이름이 속리산과 정이품송이다. 속리산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14년, 서기 553년에 의신조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의신조사는 인도 구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 이곳에 절을 세웠고, ‘부처님 법이 머무는 절’이라는 뜻의 ‘법주사’라고 명명했다. 또는 속세를 떠난다는 뜻이 담긴 ‘속리산’에 위치한다 해서 속리사라 불리기도 했고 ‘길상사’로 불렸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법주사는 금동미륵대불로 유명한 미륵신앙의 요람으로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속리산 법주사 일원 또한 명승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주사가 대중의 마음 속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사찰 자체의 법력이 대단했던 것에, 속리산의 빼어난 풍광도 한몫 했다. 법주사를 중심으로 해발 1057m로 최고봉인 천왕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 등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봉우리들과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 등 명소들이 있다. 이 중에서 수정봉과 관음봉은 각각 법주사의 용화보전(미륵신앙)과 대웅보전(화엄신앙)의 배경이 되어 법주사 특유의 가람 배치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절과 봉우리가 한 폭이 그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지승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해도 마땅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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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일대는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로도 사랑받고 있다. 사내리마을에서 법주사까지 이르는 길은 그 길이가 5리(약 2㎞)라서 ‘오리숲’이라 불리는데, 오래된 전통 숲으로서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경치가 일품이다. 오리숲길은 소나무와 느티나무, 참나무,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등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시원한 그늘길이다. 특히 일주문에서 금강문에 이르는 구간은 사찰의 보호 하에 수령 100년 이상의 소나무와 전나무가 가득, 그저 걷기만 해도 세상의 번뇌가 사라져버리는 축복의 길이다.

법주사와 속리산, 소나무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정이품송’이다.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초입 길 한가운데에 있는 이 소나무는 수령 600년이 넘은, 한마디로 ‘우월한 자태의 소나무’이다. 조선 시대 세조가 어느날 법주사를 향해 행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가가 이 소나무 가지에 걸릴 것 같아 걱정하던 찰라 소나무 가지가 저절로 올라가 어가가 무사히 통과했고, 그것을 본 세조가 나무에게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정이품 벼슬을 받은 소나무가 그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Info 위치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법주사 문화유산

-기록유산: 속리산법주사사적기·고려국속리산법주사자정국존비·벽암대사비

-유형유산: 팔상전·대웅보전·원통보전·쌍사자석등·석련지·사천왕석등·마애여래의좌상·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목조관음보상과상·석조희견보살입상·괘불탱·신법천문도병풍·철솥·동종

-무형유산: 미륵전철야기도·백미백락축제

▶태화산 마곡사

마곡사에 갔을 때 처음 떠오른 단어는 ‘그림’이었다. 정말 그림 같은 사찰이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감나무는 고목임에도 불구하고 가지의 힘이 어찌나 강하던지 겨울이 와도 감 열매를 떨어트리지 않을 정도이다. 간혹 스님이 나와 터지기 일보 직전의 감을 따 방문자에게 주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이 감나무가 겨울까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이유가 ‘산새들 굶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감나무와 썩 어울리는 가람들의 모습에서 누구나 풍경화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마곡사는 그림 그리는 스님 즉, 화승의 독보적 계보를 지닌 사찰이기도 하다. 금호 - 보응 - 일섭으로 이어지는 화승들이 그 근거이다. 또한 우리나라 불화의 거장인 송광사의 석정 스님도 마곡사의 화승 ‘일섭’에게 불화를 배웠다고 한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죄로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탈옥했는데, 그 후 마곡사에서 숨어 지내다가 ‘하은당’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이라 하기도 했었다. 대광보전 앞에는 김구가 광복 후에 마곡사 시절을 회상하며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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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단지 여러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 무염대사가 자신의 스승인 보철화상의 법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마곡사를 품고 있는 태화산은 북쪽의 국사봉(해발 591m), 서쪽의 옥녀봉(해발 362m), 동쪽의 무성산(해발 614m)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정상에 오르면 무성산, 계룡산과 공주시를 조망할 수 있고, 멀리 칠갑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한 눈에 담을 수도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상원폭포와 활인봉 부근의 약수도 유명해서 등산객들의 발길도 일 년 내내 이어진다.

Info 위치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길 966

마곡사 문화유산

-기록유산: 태화산마곡사대광보전중창기·심건당중건기·나한전중건기

-유형유산: 영산전·대웅보전·대광보전·오층석탑·석가모니불괘불탱

-무형유산: 불모비림다례·사천왕재·자비도량참법

▶조계산 선암사

어여쁘도다! 이런 찬사는 선암사 명물인 ‘선암매’가 피었을 때 절정에 이른다. 선암사는 그러나 매화가 없어도 예쁜 절이다. 전국 사찰의 생김생김이 비슷비슷하고, 그래서 신도가 아닌 이상 여행 삼아 찾았던 절을 또 가는 일이 흔치는 않다. 하지만 봄이 오면 생각나고 또 가고 싶어지는 절이 선암사이다. 선암사는 고요하고 단순한 절이다. 심지어 대부분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사천왕문, 대웅전 협시보살상, 대웅전 어간문도 없다.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이 절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에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만들지 않았고, 대웅전 석가모니불상의 수인인 항마촉지인이 ‘(나쁜 편인) 마군에게 항복을 받던 그 순간’을 나타냈기 때문에 협시보살상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대웅전 어간문은 깨달은 사람만이 통과할 수 있는 중앙문인데, 인간세계에서 깨달음을 얻을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겸손함으로 굳이 만들지 않았다.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또 다시 예뻐지는 선암사! 대체 이런 생각은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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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창건은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신라 진흥왕 3년, 529년에 아도화상이 청량산 해천사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는 것. 또 하나는 헌강왕 1년, 875년에 도선국사가 비보사찰로 창건하여 선암사라 명명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사찰의 위엄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로 알려져 있다. 고려조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크게 중창된 선암사는 대찰로 자리 잡았고, 이후 여러 번 불타버렸던 것을 조선 영조 35년, 1759년에 다시 중창하면서 ‘다시는 불 타지 마시라’는 의미의 ‘청량산 해천사’로 불리다가 오늘의 선암사가 되었다고 한다. ’해천사’라는 이름은 일주문 뒤편 편액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전각 곳곳에 물 수水자나 바다 海자를 새겨놓은 것으로도 근원을 확인할 수 있다.

선암매라는 이름의 선암사 매화는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보호수이다. 매화가 활짝 피는 봄이 오면 스님들도, 불자들도, 여행자들도 모두 곱단한 마음이 되어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선암사는 봄철 꽃매화뿐 아니라 사계절 아름다운 꽃으로 물들어 있어서 ‘꽃절’, ‘화훼사찰’로도 불린다. 또한 조계산 일대의 활엽수림, 편백숲, 야생차밭 등은 선암사를 찾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살아있는 풍광이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태어난 곳이 이곳 선암사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Info 위치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선암사 문화유산

-기록유산: 조계산선암사중수비·순천부조계산선암사제육창건기·계산선암사대각국사중창건도기·선암사사적비

-유형유산: 선암사대웅전·선암사동서삼층석탑·승선교·북승탑·동승탑·석가모니불괘불탱및부속유물·대각국사의천진영·선각국사도선진영·33조사도·삼층석탑사리장엄구·선암사동종

-무형유산: 선암사홍매화축제

▶두륜산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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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국토최남단 지점으로 사랑받는 기록의 도시 해남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시대 때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대흥사는 조선조 때 전국적인 명찰로 이름을 알렸는데, 서산대사가 대흥사를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이라 하며 자신의 의발(스님들의 가사와 바리때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이곳에 보관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선승과 교학승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했다. 대흥사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차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초의선사는 차뿐 아니라 유학, 도교 등을 통달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기도 했다. 또한 시, 문장, 서예에도 능한 인물이었다. 그를 만나 다도와 지식을 공유한 사람들로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이 있다. 김정희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 이곳에 들려 당대 명필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글씨를 자신이 새로 써 걸게 했는데, 귀양살이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려 자신의 것을 내리고 다시 이광사의 것으로 걸게 했다. ‘무량수각’ 편액은 김정희가 쓴 것이다. 초의선사는 일지암을 짓고 그곳에 은거하면서 수행과 다도문화에 전념하다 8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대흥사는 풍수적으로 완벽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단 두륜산이 그렇다. 대흥사 해탈문에서 두륜산을 바라보면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특히 고계봉과 가련봉의 형상이 비로자나불의 대표적인 수인인 지권인을 닮았다. 또한 대흥사는 북쪽의 월출산, 남쪽의 달마산, 동쪽의 천관산, 서쪽의 선은산 등이 사방을 호위하는 완벽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찰을 지켜주는 사천왕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Info 위치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대흥사 문화유산

-기록유산: 대둔사지·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건사사적비 ·해남현대흥사허대사비

-유형유산: 대흥사 천불전·대흥사 북미륵암·대흥사 삼층석탑·대흥사 서산대사탑·대흥사 금동관음보살과상·대흥사 영산회괘불탱·대흥사 탐산사면·동종·대흥사 서산대사 유물·대흥사 불미륵암·마애여래좌상

-무형유산: 해맞이 템플스테이·대흥사서산대제·대흥사 초의문화제·대흥사 불복장 점안의식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이영근, 대한불교조계종, 문화재청, 픽사베이, 박명화(해남사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38호 (18.07.3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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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영주 부석사 3부 부석사에는 거대한 석룡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