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의 이야기

타지서 활동한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에도 관심 필요

“타지서 활동한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에도 관심 필요”

동산 김형기 선생 조카 김덕규 씨

  • 국제신문
  •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
  •  |  입력 : 2018-03-05 19:01:49
  •  |  본지 29면


- 3·1운동 주도·자금지원 등
- 중추 역할에도 지역 무관심
- 문중 재실 기념비가 전부

- 광복 후 끌려가 행방불명
- 억울한 죽음 함께 밝혀야

“내년 100주년 3·1절 때는 부산에서도 동산 김형기 선생을 기리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독립운동가 김형기 선생의 조카 김덕규 씨는 “동산이 독립운동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밝히는 것이 후손의 역할이자 사명이다”고 말했다. 서정빈 기자
김형기 선생의 조카인 김덕규(82) 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번 3·1절을 맞은 소회를 밝혔다. 부산 사상구 출신인 김형기 선생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됐다. 이후 부산에서 동산의원을 차려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등 지역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는 고향인 부산에서조차 소외당했다. 지난해부터 3·1절에 사상생활사박물관 소속 주민공동체 주민 10여 명이 문중 재실(사상구 모라동)에 있는 그의 기념비 앞에서 헌화한 것이 고작이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결과에 비춰보면 초라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김 씨는 말한다.

그는 “부산은 그동안 1919년 3월 1일을 즈음해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 인물에 초점을 맞춰 의미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주로 활동했던 동산은 늘 외면받았다”며 “그의 험난했던 인생사를 알고 있는 가족으로서 서운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동산 선생이 과소평가된 데는 해방 이후 집권한 친일정부의 영향도 있다고 주장한다. 김 선생의 행적과 업적은 가족들만 아는 비밀이었다. 서슬 퍼런 친일정부에서 김 선생은 소위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친구나 지인들은 물론 가족 내부에서도 ‘김형기’라는 단어는 금기어였다. 그는 “동산의 셋째 자형은 해방 후 동산이 좌편향적이라는 이유로 정부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돌아왔다”며 “이 때문에 훗날 동산의 기록을 찾기 위해 자형을 찾아갔을 때도 ‘동산을 또 거론해 집안을 망칠 일 있느냐’며 노발대발했다. 당시에 동산은 불필요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씨가 동산 선생의 공훈을 좇은 것은 그가 죄인이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1980년대 측량토목설계업을 하던 김 씨는 당시 독립유공자이던 한 설계 의뢰인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산 선생의 명예를 살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김 씨는 “당시 그 의뢰인이 동산의 얘길 듣고 화를 내며 ‘왜 그런 분을 가슴 속에만 묻으려 하느냐’며 독립유공자로 신청할 것을 권했다”며 “이후 동산이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를 하다 붙잡힌 뒤 재판받은 판결문을 구해 마침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뒤에는 집안에서 조금씩 김형기 선생의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로 인해 김녕 김씨 유두 문중에서 김형기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도 1998년 재실 안에 세울 수 있었다. 그는 “훈장을 받긴 했지만 집안분들 중에는 친일 부역자들도 있어 ‘기념비를 왜 세우려 하느냐’며 반발도 심했었다. 하지만 동산의 뜻을 우리라도 기억해야겠다 싶어 작게나마 세웠다”고 말했다.

김형기 선생은 해방 후 정부요원에 체포돼 끌려간 이후로 행방불명됐다. 유골조차 남아 있지 않다. 김 씨는 김 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지역사회와 학계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산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왜 끌려갔는지 등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독립운동을 한 것이 죄로 탄압받던 시절이었다”며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고 세상이 변했다. 동산이 독립운동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 그것이 후손들의 역할이자 사명이다”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100&key=20180306.22029001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