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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고무신


고무신




영어의미역 : Rubber Shoes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생활·민속/생활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 부산광역시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 정희완  


[정의]
부산 지역에서 고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신발.


[개설]
개항과 함께 부산 지역에 새로운 물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는데 고무신 역시 당시 유입된 물품 중 하나였다. 고무신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용하던 가장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신발은 바로 짚신이었다. 그러나 짚신은 빨리 닳는데다 비오는 날에는 하얀 버선이 젖어버리는 반면, 고무신은 내구성과 착용감이 뛰어나고 방수가 잘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며, 고가품으로 인식되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검정 고무신은 광복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콘이 되었다. 당시 열풍은 요즘 유행하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그 이상이었다. 대표적인 검정 고무신 상표들은 대부분 부산 지역에서 생산되었으며, 국제화학·태화고무·삼화고무·동양고무 등은 한국 신발 산업의 선봉이자 중심이었다. 이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의 신발 업계가 저임금과 풍부한 노동력 활용이 가능한 부산을 생산 기지로 삼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변천 및 현황]
부산 지역의 신발 산업은 1923년 8월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688번지에 일영고무공업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일영고무공업사는 당시 연간 19만 2000족의 고무신을 생산하였다. 1925년 21곳이었던 신발 공장이 1933년 72곳으로 급증하자 정부가 13곳의 신발 공장을 합병하였다. 이에 따라 1934년 9월 18일 동구 범일동에 삼화호모(三和護謨)가 설립되었다. 당시 연간 1000만 족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으며, 1937년 중일 전쟁 당시에는 군수 공장 역할을 담당하였다.

광복 이후 부산의 신발 업체들은 삼화고무[1952년 설립, 삼화호모 불하]·보생고무[1936년 설립]·조선고무 등의 적산 공장과 경성고무·사상고무·천일고무·신흥고무·신라고무 등의 토착 자본, 국제화학[1949년 설립]·태화고무[1945년 설립]·동양고무[1953년 설립] 등의 신흥 자본이 삼파전(三巴戰)을 띠면서 성장하였다.

1950~1960년대 대표적인 고무신 상표로는 경성고무의 만월표, 국제화학의 왕자표, 태화고무의 말표, 삼화고무의 범표, 동양고무의 기차표, 진양고무의 진양 등이 있었다. 고무신 공장은 현재의 부산진구 범천동, 동구 범일동 등 동천(東川) 주변에 밀집하였다. 동천에서는 산업 용수를 공급받고, 인근에 몰린 피란민들로 노동력도 쉽게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태화고무, 삼화고무, 동양고무, 진양고무, 보생고무, 대양고무 등이 이 동천 일대에서 고무신을 생산하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신발 제조 기술이 들어와 포화(布靴)[헝겊 신, canvas shoes], 케미화[인조 가죽, 화학 섬유 이용, chemi shoes] 생산이 증가하였다. 1970년대 이후로는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신발 주력 제품이 고무신에서 운동화로 바뀌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