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9호 부산영산재(釜山靈山齋)
종목 |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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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부산 사상구 모라2동 159-1 |
소재지 | 모라2동 |
지정일 | 1993.04.20 |
수량/면적 | . |
시대 | . |
소유자 | . |
관리자 | .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통도사와 범어사를 중심으로 전해 오는 영산재.
(사)부산영산재보존회가 지역주민들을 위한 영산재를 봉행했다(2015.11.20)
〔전승내력〕
통도사·범어사 두 절의 스님들을 중심하여 조직된 어산회는 백여 년의 전통이 있으며, 범패와 작법무(作法舞) 및 영산재의 의식절차를 익혀왔다. 1972년 10월에 부산의 금정산 국청사 주지 김용운(金龍雲)을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호 범패의 예능보유자로 인정한 바 있으나 이듬해 1월에 입적한 까닭에, 그간 그의 제자들이 범패와 작법무를 계속 연마하는 한편 영산재의 의식절차를 정비하여 1991년에 완성을 보았다.
1993년도의 지정 때 문영호(文瑛浩)는 도량장엄과 범패, 조병태(趙炳台)는 범패, 김영규(金英奎)는 나비춤, 신석갑(辛錫甲)은 바라춤의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내 용〕
부산영산재의 진행절차는 일반적으로 시연·대령(對靈)·관욕(灌浴)·신중작법(神衆作法)·상단권공(上壇勸供)·중단권공(中壇勸供)·봉청(奉請)·봉송(奉送)·시식(施食)·존시식(尊施食)·회향의례(回向儀禮)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 같은 작법을 행하기 위해 먼저 도량(道場)을 장엄(莊嚴:공덕으로 심신을 꾸밈)한다. 도량장엄은 법당 안팎의 장식으로 나누어진다. 당내에는 지장단에 십왕번을 건다. 영단에 칠여래번을 걸고, 지화(종이돈)로써 위패 좌우를 에워쌓아 연화대를 방불케 한다.
영단 밖에는 별도로 관욕단을 설치한다. 당외 도량에는 앞뜰에 횡렬로 줄을 치고 갖가지 번을 달며 각종 등롱과 괘, 십이지, 팔회강, 연, 깃발, 일산 등을 갖춘다.
작법진행에는 범패가 시종 따르며, 태징·꽹과리·북·바라·목탁·요령·쇄납에다 대사물(大四物)인 범종·법고·운판·목어를 곁들인다. 악기의 기본 타법은 ‘내림쇠’로서 끝에 3타(三打:불·법·승)하는데, 이를 ‘영남쇠’라 일컫는다.
음성공양은 범패가 주이며, 바깥차비인 영산재에는 화청(和請)과 회심곡이 삽입된다. 부산지역 범패에 관한 특별한 문헌자료는 없다. 다만 100여년 전 범어사의 안관회(安寬悔) 스님과 대산(大山) 스님의 맥을 용운 스님이 이은바를, 지금은 부산불교어산회에서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범패는 기호지방의 경산제(京山制)에 대해, 아랫녘소리인 대구 팔공산제(八公山制) 중 통·범소리로 분류된다. 통·범소리는 경산제에 비해 은은하면서도 담백하고 엄숙한 풍모가 있으며, 음폭이 크고, 기본 종목이 더 다양하며, 홑소리를 많이 부른다.
신업(身業)공양의 작법무에는 나비춤·타주(打柱)춤·바라춤·법고춤 등이 있으나, 경산제에 비해 빈약하여 이 영산재에서는 바라춤과 나비춤만 춘다. 이들은 불전공양을 위한 춤인 까닭에 춤사위가 흔히 자비·교화를 상징한다.
바라춤에는 1인이 추는 평바라, 2인의 겹바라, 4인의 쌍바라와 대중의 잡바라가 있지만, 여기서는 겹바라를 춘다. 부산 바라춤의 특색은 한손바라를 머리에 이고, 다른 한손바라는 수평으로 뻗치며 회전하고, 양손바라는 합쳐 수평으로 뻗치며 회전하기를 반복하는 점이다.
나비춤은 부처님의 가지(加持:부처님의 힘으로 중생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일)를 받아 법열에 도달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지닌다. 팔정도와 십선(十善)을 상징하는 팔회십전(八廻十轉)이 부산나비춤의 특징이다.
관음사 대웅전정면이 대웅전이고, 왼쪽이 부산영산재보존회가 있는 전수관 건물이다.
가까이서 뵌 큰스님 구암스님 <대한불교 법화종 종정>
文九菴t스님발자취 2011. 6. 13. 19:14
“성불이란 완벽한 인간되는 것”
마음 비울수록 대상과 일체가 되는 지혜 움솟아나요
‘너와 나 구별없이 다같이 성불하자’ 이것이 불교정신
일상에서 묻어나는 갑갑함을 다스려 줄 시원한 폭포수 같은 사자후가 아쉽고, 예전의 선지식들이 그러하셨듯 깨우친 스승을 찾아 깨달음을 구하고픈 간절함이 잦은 요즘이다. 이렇다 할 갈등도 없는 일상이건만 속절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장난에 속을 때마다 ‘너의 갑갑한 마음을 내어 놓아라’하는 일갈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안의 속진을 훌훌 털어버릴 대안을 찾고 싶어진다. 대한불교 법화종 종정이신 구암 스님을 뵈러 가는 심정이 그러했다. 한번 가 본 적이 있는 기억을 더듬어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관음사를 들어서자 길지 않은 몇 년 사이 전각들의 모습이 크게 변해서 마치 처음 와보는 듯한 생경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구암 노스님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곳에 계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인사를 여쭙자 “잘 삽니다”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스님의 근황을 너끈히 알아차리게 한다. “절에서는 염불하고 바깥에서는 법문하는 게 요즘 생활의 전부”라고 덧붙인 스님은 전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 미국의 테러 대참사사건을 화제로 삼으신다.
응징보다 수습에 온 정성
“세상일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아도 중요한 일들은 놓치지 않고 알게 됩니다. 뉴스에서 보니 미국이 테러를 당했다고 보복을 한다, 응징을 한다 떠들썩 하더군요. 사건이 더 위험한 사태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보면서 미국이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국제적인 인심을 얻지는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나 두루 두루 보살피는 덕을 베풀었으면 이런 일이 없을텐데 대국으로서 국제적인 인심을 잃은 것이나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무고한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어 매우 안타깝고 마음 아픕니다. 원한을 원한으로써 갚으면 더 큰 원한이 생기는 법입니다. 그러니 응징보다는 수습에 온 정성을 쏟는게 우선되어야 합니다.”스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경제력이 있거나 없거나, 국력이 세고 약한 것, 국토가 크고 작은 것 이런 모든 것에 상관없이 일체를 나와 동일시한 부처님의 세계관이야말로 세계의 평화를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조금 형편이 나아졌지만 내가 출가할 때만 해도 왜정시대라 아주 힘들고 어려웠어요. 먹는 게 늘 부족해 배를 곯아야 했고,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지요. 그러나 그러한 외부적인 어려움 때문에 수행정진을 못한다는 말은 맞지 않아요.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 했습니다. 오히려 외적인 여건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내면을 다지는 힘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요.”구암 스님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점령되어 있던 왜정시대에 출가했다. 스님의 말씀처럼 그 당시 우리 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형편이었지만 진리를 구하는 출가사문의 구도정신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점령당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처음 출가해서는 성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어. 도가 터진다고 하는데 도가 터지면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바뀌는가 하는 의심이 났지, 허허허. 지금은 남에게 포교를 하면서 지내고 있으니 발전이 많았다고 할 수 있겠지.” 이어 스님은 “성불이라는 말은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완벽한 인간이 되기가 쉽지 않으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 완벽한 인간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요? 잘 들어보세요.”
천지여아동근(天地輿我同根)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
처만변이여여부동(處萬變而如如不動)
윤호겁이완완상존(淪浩劫而宛宛常存)
게송을 읊고는 다시 자상하게 풀이해 주신다.
“태어나면 죽고, 가을 되면 곧 겨울이 오고 봄 되면 꽃이 피고,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 모든 물체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한번, 열번, 백번, 천번, 만번을 변하더라도 변치 않는 곳에 처함이 성불이요, 또 태어나고 죽고 시간적으로 아무리 윤회를 한다고 해도 맴돌지 않는데 거하는 것이 성불입니다. 그러니 생사를 초월한 것, 그것이 완성입니다. 우리는 지금 물체적으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처음에는 갓난 아이였던 사람도 몇 년이 지나면 자라나서 학교에 들어가고 또 시집 장가를 가고 장년이 되어서 모습이 자꾸 늙어서 결국 죽습니다. 아무리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눈에 보이고 생각나고 들리는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비단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어요. 이처럼 변해가는 세상에 함께 살더라도 변하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내가 찾는 자리이니 그것에 함께 할지니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는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을 개미가 물그릇 가를 맴돌 듯이 자꾸 윤회하더라도 그것을 좇아 윤회하지 않는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바로 완성입니다.”좋은 법문을 듣고 나면 늘 남는 과제가 있다. 그것은 법문의 내용을 내 생활 가운데 실천하는 일이고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법문의 뜻을 감지하는 것이다. 변하는 것 가운데 변하지 않는 자리, 윤회 하지 않는 그 자리를 체득한다는 것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처를 향해서 가는 길, 즉 완성된 인간을 향해 가는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직지인심하고 견성성불로 들어가는 수도 있지만 육바라밀의 보살행을 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인간이 육바라밀을 행한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존대받고 인간다운 표상이 되는 것이므로 보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육바라밀 중 첫째는 아름다운 마음과 행동을 보시하는 것입니다. 즉 베푸는 것으로 남을 위해 줄 것이 있으면 주고, 가르칠 게 있으면 가르쳐서 남을 위해 보시를 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보시를 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규율을 잘 지키면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계이지요. 남을 위한다고 해도 마음대로 해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 인간다움의 표상
그리고 매우 참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행할 때 고통스럽다고 참지 않으면 고비를 넘길 수가 없는 것이죠. 그 다음에는 선정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요즘 잘 쓰는 말로 마음을 비워 나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선정의 시간을 잠시 잠깐 동안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 지속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지혜가 움솟아 납니다. 이 모든 행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사상은 대자대비를 몸을 삼고 중생교화를 전체 생활로 삼는 것입니다. 대자대비는 모든 생명과 모든 형체는 나와 똑같다는 사상으로 저절로 나와 사물이 혼연 일체가 되는 것을 여실히 아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다른 존재를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경우도 빗나가는 자식을 향해 매를 들기도 하는 것처럼 경책을 통해 대비심을 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대자대비심을 발해 중생 교화를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안온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대자대비를 베풀었으면 중생을 구제해야지 중생을 구제하지 않으면 허탕입니다. 불교는 중생을 구제해서 다같이 성불하자는 정신입니다. ‘자타일시성불도’라는 가르침처럼 너와 나의 구별없이 다 같이 성불하고 완전한 인간이 되자는 것이 불교정신입니다.”“실천하기가 무척 힘들겠습니다”했더니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지.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니까 끝이 조금 보이지, 그전에는 모자라는 것이 많아서 자꾸 배울려고 하고 그랬지.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거지” 하신다. 또한 스님은 승속을 불문하고 완성된 인간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신다. “<법화경>에 모든 중생들은 다 성불한다는 부처님 사상이 설해져 있어요. 중생들로 하여금 무명을 파하고 참된 지혜를 열게 하며 미혹과 장애를 끊어서 참된 덕을 드러내고 진실된 실상을 깨닫게 하기 위해 부처님이 나투신 거예요. 그러니 우리 모두는 성불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 육바라밀을 해나가는 사람이 머리 깎은 사람에만 국한될 수가 없는 것이죠. 온 국민 가운데 육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해요. 그래서 나는 모든 국민이 다 함께 불법에 귀의해서 세계평화, 지상정토를 이룩하는 것이 부처님 제자된 도리라고 새기고 있어요.”그래서 스님은 법문을 통한 포교에 아주 열성적이다. 또한 평생을 한결같이 이어온 범음 범패 전수 활동도 스님의 수행이력 중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종정이라는 대한불교 법화종 의 최고 어른이 된 지금도 영남범음범패 보존회를 이끌고 범음 범패 불교의식 전문교육원을 열어 범음범패의 전승에 힘을 쏟고 있다.
“처음 범음 범패 배울 때 배운 걸 복습하느라 길을 가도 버스를 타도 늘 염불 뿐이었어요. 한번은 법문이 있어서 원동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같이 있던 스님이 합장게를 한번 해보라고 해서 창문에 대고 하고 있었지. 그런데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호통을 치는 거라. 우리는 그만 조용해졌지. 그러자 차장이 와서 가만히 계시는 스님들을 왜 그러냐고 두둔을 해주는데 마침, 원동에 도착이되어 얼른 내렸지. 어찌나 얼굴이 화끈 거리던지, 하하하! 그런데 젊을 때는 그처럼 연습에 몰두하면 옆의 상황이나 소리가 전혀 들리지를 않았어요. 그런 일이 허다했어. 길을 가다가도, 차를 타고 어디를 가다가도 연습에만 골몰해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를 않았거든. 한마디로 염불 삼매에 든 거지”스님은 50여년 동안 이어온 염불속에서 무수한 깨달음의 언어들을 만나고 범음의 소리 속에서 우주 생명의 근원과 부처님 세상을 만났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길을 인욕하며 이어온 스님은 이제 존경받는 사표가 되어 후학들에게 자취를 남기고 있다. 10년째 범음 범패를 전수받고 있는 수제자 대원스님(금불사)은 구암 스님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범음 범패에 앞서 수행자로서의 자세나 사람의 도리를 먼저 배웠다고 한다.
진흙탕속의 연꽃처럼
“이해심이 많고 인자하십니다. 염불하고 경 읽은 것에 앞서 계율, 예의가 먼저라고 항상 강조하시죠. 부처님과 스님들에 대한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범음이나 범패 의식 자체가 모두 부처님에 대한 예경에서 출발하기 때문일 겁니다. 범음을 수행방편으로 삼고 살아오신 스님이고 보면 부처님에 대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외유내강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구암 스님은 누구도 모방하기 어려운 독특한 목청과 마치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맑은 음색으로 영남 범음범패의 전통을 이어가며 후학들을 기르는, 가장 앞자리에 서 있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는 말이 있어요.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깨끗한 곳에서 살지 않아요.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진흙탕속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는 묻히지 않아요. 즉 물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세속에 처해 있는 불자들이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답고 완성된 인간이 되어가는 것과 같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을 성불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 부처님 자비이므로 세상 누구라도 보살도를 행하여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속진을 털어내려는 갑갑함으로 찾았던 길, 구암 스님의 법문을 새기며 오히려 속진속에서 내 아름다운 완성의 꽃을 피워올려야 함을 깨닫고 확 열려진 마음의 문을 따라 돌아왔다.
구암 스님은?
범음범패 전승 남다른 열정
틈틈이 서화…작품성 인정
구암 스님은 대한불교 법화종 제6대 종정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자리일 뿐”이라는 스님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 직함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세수 76세인 지금도 포교를 위한 원력과 실천은 오히려 젊은 사람을 앞지를 정도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도량석, 타종, 예불, 정근, 축원을 단 하루도 빠트리지 않는 구암 스님은 범음범패 전수를 위한 교육을 관음사에서 일주일에 두 번 진행한다. 또 용담포교원과 불교교양대학에 출강, 법문과 범음범패 교육에 여념이 없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자 청하는 사찰 법회나 단체에서 법문 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또 전국서화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을 만큼 스님의 서화 솜씨도 만만치 않다. 수준높은 기량과 그 속에 깃든 가르침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스님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즐겨 선물로 주시곤 한다. 1926년 경남 상북에서 태어난 스님은 건강이 좋지 않고 명이 짧다는 걱정을 들으며 11살에 출가를 했다. 인봉 스님을 은사로 수계한 스님은 49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72년에는 당시 범음범패 부문 부산시 무형문화재였던 용운 스님으로부터 범음범패 의식을 전수받았다. 93년에는 범음범패 부문 부산시 무형문화재 9호로 지정받았으며 96년에는 원형을 잃어가는 범음범패를 고스란히 보존하기 위해 영남범음범패집을 20개의 테이프로 집대성하기도 했다. 스님은 현재 영남범음범패 보존회 이사장을 맡아 범음범패의 맥을 잇는 도제 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천미희 기자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2005>
출처: https://pompae.tistory.com/category/文九菴t스님발자취 [범패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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