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령수
강선대의 당제를 지낼 때 축문 독축할 차례에 독축을 하지 않고 그 대신 소지를 올리며 이령수를 왼다. 할배 제당의 경우 상제사와 하제사 이령수는 같고, 걸제사 이령수는 다르다. 상제사 이령수의 한 예는 “당산 신령님께 알리나이다. 이 소지는 제주 ???의 일 년 열두 달 아무 탈 없기를 소지합니다.” 그리고, 걸제사 이령수는 “아이 노소 철철이 다 무고함을 비나이다. 나무에 떨어져 죽은 목살 귀신, 물에 빠져 죽은 수살 귀신, 총각 몽당 귀신, 이 음식 먹고 속거천리하소서.”라 한다.
위의 내용에서 강선대의 당제를 지낼 때 "이령수"란 단어가 나온다.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 알아 본다.
손을 비비면서 신불에게 뭔가를 기원하는 것을 <비손>이라고 하는데, 보통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녘에 촛불 두 자루를 켜 놓고 정화수를 떠다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는 것으로 이미지가 고착되어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시간과 제물과 형식을 지킬 필요는 없어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으로든 <손을 비비며> 기원을 올리면 모두 비손이다. 양보다 질, 뚝배기보다 장 맛이라고, 비손은 무당 같은 전문가(?)가 아니라 완전히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신불 앞에 비는 것이기 때문에, 굿처럼 겉보기에도 대단한 뭔가를 차리고 요란한 춤과 음악으로 신을 즐겁게 하거나 귀신을 대접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 눈에는 궁상스러워 보일 정도의 간절함과 애절함이 더 요구된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에 돌아왔을 때, 춘향 어머니 월매가 정화수를 떠다 놓고 사위인 이도령의 장원급제를 비손하는 모습을 보고 <내 급제가 조상 덕인 줄만 알았더니 춘향 어미 정성이 절반은 되겠구나, 가긍하여 못 보겠다>라고 감탄하는데, 이런 것이 바로 모범적인 비손이다.
비손의 필수요소가 손 비비기인 것처럼, 기원하는 무엇인가 ― 소원 성취나 치병 등 ― 를 입으로 소리나게 읊조리는 것도 비손의 필수요소이다. <이령수>라고 한다. 일종의 언령(言靈) 개념이어서, 비손할 때는 기원하는 말소리가 입술 밖 3㎝를 못 벗어나도록 작아도 상관없지만 아예 입술을 닫고 마음속으로만 뇌는 것은 안 된다. 염불과 비슷하다. 염불이야 어디서 무엇을 배워서든 정해진 문구만 외면 ― 욀 만한 염불을 하나도 모르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외어도 된다 ― 되지만, 비손은 그 비손을 받는 신불의 이름과 비손을 바치는 자신의 소원을 고루고루 제대로 설명해야 하니 ― <향화도 올릴 데 올려야 아들 낳고 딸 낳고>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더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렇다. 그렇다면 말주변 없는 사람은 비손도 올리지 못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들어올 것 같은데, 도입부에서 말했다. 비손은 근본적으로 양보다 질이다.
방영웅의 『분례기』에서, 용팔과 병춘 부부는 호롱골의 <병신 부부>로 알려져 있다. 용팔에 대해서는 엉덩이 앞의 그것이 불완전하거나 아예 없는 고자라는 소문이 오래 전부터 퍼져 있고, 전처는 1년도 못 살고 도망쳐 버린 반면 병춘은 계속 그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병춘도 똑같이 성불구라는 소문이 퍼져 있다. 실제로 이 부부는 둘다 그곳이 멀쩡한데다 금실도 아주 좋은데, 다만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병춘은 남편의 그것에 대해 <저렇게 좋은 물건을 두고 씨를 못 받다니, 그래서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당 한구석에 칠성단을 만들어 매일 밤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잉태시켜 달라고 빌지만, 그렇게 빌려고 할 때마다 병춘은 <말이 뱃속으로 쏙 들어가고> 만다. "칠성님 말주변이 없어서유, 뭐라고 빌어야 할지 모르겠슈"로 운을 떼고는 그저 손바닥만 열심히 비비면서 <이도령버덤 못생겨두 좋구유, 심청이버덤 효성이 없어두 좋아유, 그저 하나만 낳게 해주슈, 아무것도 없으니께 적적해 죽것슈> 하고 빌다가 더 빌 말이 없어지자 손바닥만 비비다가, <나두 유문이(무당)처럼 배워서 빌 테니께유, 부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어유> 하고 마무리한다.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정도면 대단히 정성스럽게 잘 빈 비손이다. 매일 밤 이렇게 비는 병춘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콩조지가 감동을 받고, 그래서 업둥이가 들어오게 된다. 콩조지가 감동받은 것이 업둥이 들어온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분례기』를 읽어 보면 안다
'사상의 문화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9호 부산영산재(釜山靈山齋) (0) | 2016.03.28 |
---|---|
사상근린공원에 이색 테마정원 (0) | 2016.03.02 |
밀성박씨 기적비와 사적비 (0) | 2015.02.02 |
설립자 김용수부인의 장례식 (0) | 2014.11.21 |
굴법당 성불정사 (0) | 2014.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