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출토 선박 ‘가야시대’로 밝혀져 | ||
|
(아시아뉴스통신=이철우)
지난해 경남 김해시 봉황동 119-1번지 연립주택 신축부지 문화재발굴조사현장에서 출토된 선박부재의 보존처리 결과 가야의 배로 밝혀졌다. 9일 김해시에 따르면 발굴기관인 (재)동양문물연구원의 보존분석 의뢰를 받은 (재)영남문화재연구원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결과 봉황동 출토 선박부재의 연대는 A.D 3~4세기다. 이와 관련한 유물공개설명회를 오는 9일 오후 2시 영남문화재연구원 보존연구동에서 개최했다. 김해봉황동 119-1번지 유적은 선박 외에도 패총, 고상건물지, Y자형 목책시설, 토제방울 등이 출토돼 봉황동유적(사적 제2호)의 분포범위를 재확인한 유적으로 평가받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보존처리는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약 18개월에 걸쳐 진행됐으며 목재보존처리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PEG-진공동결건조법으로 처리했다.
대표적인 분석결과, 선박부재는 길이 390cm, 폭 32~60cm, 두께 2~3cm의 대형목재유물로서 앞면에는 일부 문양과 쐐기∙쐐기홈이 존재하고 한쪽 끝 부분은 다른 부재와 결합할 수 있도록 가공돼 있다. 뒷면에는 2곳의 결구부가 확인됐다. 선박의 선수(뱃머리) 측판 상단부에 해당되며 다른 부재와 결합할 수 있도록 가공돼 있어 최소 2∼3개 이상의 측판이 결합이 되는 것임을 추정할 때 선박의 전체길이는 최소 8∼15m 이상으로 판단된다. 수종분석 결과, 선박에 사용된 나무는 녹나무와 삼나무로 밝혀졌다. 녹나무는 난대성 수종으로 중국과 일본에 많이 자라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남해안 일부 지역과 제주도에서 생장하고 있다. 또한 삼나무는 일본 고유 수종으로 일본의 선박건조에 흔히 이용되는 수종으로 봉황동 출토 선박은 일본에서 건조됐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봉황동 출토 선박’은 신석기시대 ‘비봉리유적 출토 배’ 이후 국내에서 2번째로 오래된 배로 밝혀졌으며 해상왕국의 실체를 증명한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김해에서 출토되는 왜계유물의 유입과 운송의 매개체로 봉황동 유적이 가야의 무역항구 유적임을 밝히는데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관련기사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배'가 김해시 봉황동 유적에서 최초로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김해시와 재단법인 동양문물연구원은 시내 봉황동 119-1 일원에서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배 본체 일부인 '선박 부재(구조물의 재료)'를 발굴했다고 25일 밝혔다. 시는 "최근 진영 여래리 일원에서 배 모양 토기를 비롯한 여러 토기는 출토됐지만 가야시대의 선박이 일부라도 실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선박 부재는 전체 길이가 3m 40cm, 폭은 약 60cm로 구조선의 한쪽 격벽인 것으로 보고 있다. 선박 부재를 토대로 할 때 배 전체적인 규모는 대략 길이가 30m이며, 폭은 10m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번 선박 부재 발굴은 신석기 시대 비봉리 유적에서 배가 발견된 이후 국내 두 번째로 오래된 배로 추정된다. 시는 "이번 배 일부 구조물 발굴로 가야국이 우수한 선박제조 기술을 가졌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며 "가야국이 명실 공히 해상왕국이었음을 증명할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배 운항에 필요한 '노'와 닻으로 추정되는 돌도 각각 1점씩 출토됐으며, 패총과 고상건물지, Y자형 목책시설, 토제방울 등도 발견됐다. 시는 "지난 2000년 발굴된 봉황동 유적 서편 일대에서 가야시대 대규모 창고유적이 발굴된 점을 고려할 때 봉황동 일원이 가야의 주요 항구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이번 배 선체 일부를 발굴함으로써 봉황동 유적 북쪽 옛 봉황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야시대 선박 부재와 항구 시설 등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발굴에 나설 계획이다. 발굴한 선박 부재는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정밀 실측 등을 통해 선박 전체 규모와 구조를 복원할 예정이며, 앞으로 이를 토대로 봉황동 유적 남서쪽 일대를 가야시대 대규모 항구유적으로 정비 복원하기로 했다. 삼국유사와 가락국기에는 가야국 김수로왕비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타고 온 배의 사공이 15명이며, 총 탑승자는 35명 정도라고 기록돼 있다. 시 관계자는 "삼국유사와 가락국기 기록을 바탕으로 가야시대 배 복원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가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시대 고분·산성 유적 - 곳곳에 야철지…철기문화 꽃 피운 보물창고 (0) | 2014.05.29 |
---|---|
장수 삼봉리 가야고분군 (長水 三峰里 伽倻古墳群) (0) | 2014.05.29 |
[스크랩] 가야진사 옛 제당 추정 유구 발견 (0) | 2014.04.14 |
금관국 마지막 왕 (0) | 2013.12.08 |
중앙박물관,가야 신라 사료와 유물 (0) | 2013.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