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하구와 지속가능한 부산
부산에 있어서 낙동강 하구의 존재는 무엇이며, 지구적 차원에서 본다면 지구생태계와 어떤 연관을 가지는가. 그래서 낙동강하구는 대한민국 부산에 있어 어떤 공간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부산사람들은 낙동강 하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더불어 사는 공간이되 관점은 천차만별이다. 먼저 생태적 관점에서 철새를 비롯한 생물의 땅으로 인식하고 보전 중심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는 환경우위 집단과 산업용지와 주거개발의 가용지로 여기는 상공인 중심의 개발우위 집단과 함께 이 둘의 바램을 섞어 새로운 기회창출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관점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현재 낙동강하구는 여전히 개발로부터 노출되어 있다. 특히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대두된 한반도 대운하사업은 낙동강 전체를 상전벽해로 만드는 일로서 단군이래 하구를 포함한 낙동강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었고, 그 위기는 변형된 형태로 끊임없이 도모되고 있거나 또는 가시화되고 있다. 그것은 낙동강 하구둑의 건설로부터 야기된 교란과 장애를 능가하는 핵폭탄급 개발사업이기에 국민적 반대 또한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하구둑 수문의 상시개방이 도모되고 있다는 희망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적잖은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하구둑의 수문상시 개방은 하구의 지속성을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하구의 지속가능성은 새로운 부산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개발오류에 대한 전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하구의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안개 속에 있다.
낙동강하류와 하구
낙동강하구를 연상하는 표현으로 열에 아홉은 ‘을숙도’(乙淑島 )를 지칭한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를 수식어로 붙인다. 그렇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가고픈 곳으로 언제나 1순위 였던 곳 역시 을숙도로 대변되는 낙동강 하구였다. 그 낙동강 하구에는 새와 사람이 더불어 살았다. 사람들은 낙동강과 하나의 운명공동체였다. 달리 도피할 수 있는 대피공간이 없는 자연적 조건은 차라리 의지의 유일한 대상이었다. 모든 것이 낙동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들은 낙동강에서 물을 퍼다 먹었고, 낙동강에서 고기를 잡고, 강물이 실어다 준 검은 유기물로 농사를 지었다. 만남과 교환이 낙동강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낙동강은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그 조차도 생활의 일부였다.
그 강에서는 일어섰던 최초의 왕국은 신라, 백제와 더불어 용호상박했던 사국시대의 주역인 가야인들이다. 오늘날 많은 수의 지역 토박이들은 그들의 후손이다. 그러나 가야사에 대한 서술공간은 극히 제한된 수준으로 구체적 뒷받침이 빈약한 신화의 세계만으로 이해되어 왔다. 가야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면서 당시의 문화를 복원하고 있지만 대부분 고고학적 접근이 많아 구체적 삶의 추적은 빈약한 편이다. 수억년 공룡시대의 생활사 전모가 밝혀내고 있는 마당에 수천년 남짓의 한 지역 문화의 발화지에 대한 자료가 박물관 소장품 몇 조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공룡 발톱 하나를 가지고 거대한 골격을 말하는 안타까움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다시말해 거대한 문화의 뿌리를 조개무지( 貝塚)정도로 취급하는 저급한 사고가 팽배하다 보니 고래로부터 살아온 사람의 터조차 개발의 걸림돌로 취급되는 것이다.
낙동강하구는 그 형성의 과정은 복잡할 뿐 아니라 변화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지형이다. 그것은 낙동강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구의 삼각주는 수천년 홍수가 만든 땅이다. 원래 고 김해는 만(灣)이었다. 가야사의 한 축인 허황옥의 도래가 신화를 넘어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위치’를 획득하는 이유도 당시 고 김해의 지형형성에 기초한다.
연구에 따르면 낙동강 하구에 삼각주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약 2만년 전으로 매우 추운 시기(뷔름빙기)였다고 한다. 지층구조를 보면 현재의 김해평야에 자갈층이 먼저 퇴적하였고, 이어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모래자갈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바다의 높이(해수면)는 지금보다 110~140m 정도 낮았으며, 하구역은 일본의 대마도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이같은 지형이 해수면 상승(上昇)에 따라 하곡과 만입(灣入)을 메우면서 완신세의 두꺼운 충적층으로 변했다고 한다. 당시 발견된 패총인 김해 농소리, 회현리, 예안리 패총을 연결하면 김해 내만의 해안선이 형성된다. 김해가 가야의 항구였다는 사실은 김해 봉황동 발굴조사에서 굴립주(掘立柱) 건물지가 발견됨으로써 명확히 확인된 바 있으며, 김해시 장유면 수가리 가동마을 패총의 단면이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해발고도 6~7m의 산 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수가리 패총은 여러시대의 패총이 섞여있다. 이중 제 5구 패총은 지금으로부터 1,900년~1,7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패총은 4가지 층위를 보이는데 제일 위층은 조개껍질만 쌓여있는 순패층으로 80cm 정도의 폭으로 탄소동위원소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도출된 시간이 1,700년 전 임을 감안한다면 일대가 바다에 잠겨있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낙동강하구 삼각주는 양산, 구포, 다대포, 김해, 가덕도로 둘러싸인 하구의 거대한 만입(灣入)을 중심으로 발달한 충적지형이다. 낙동강 삼각주는 대저수문에서부터 동서로 구분되는 한편 바다쪽으로 길게 성장하고 있으며, 규모는 남북 26km, 동서 6km에 달한다. 소규모 구릉으로 여겨지는 칠선대, 초선대, 오봉산, 덕도산 등은 과거 김해만 내에 산지로 위치하고 있으며, 만입내 퇴적량이 증가함에 따라 구릉으로 남아있다 개발이 증가함에 따라 사라지거나 변형되었다.
삼각주 전면에는 연안사주지형이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데, 현재의 대마등, 장자도, 신자도, 진우도, 백합등 등이 그것이다. 이들 연안사주는 수면 아래서부터 퇴적물이 계속 쌓이면서 수면상으로 성장하는데 대체로 1900년을 전후하고 있다. 대동여지도(1861)는 당시 대저도와 부근의 작은 하중도를 표기하고 있는데, 명지도(명호도)는 염전으로 이용되었고, 섬의 남단을 백사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1934년 일제에 의해 서낙동강의 하류부 녹산에 수문이 생기고부터 서낙동강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잃었다. 그리고 1987년 을숙도를 잇는 하구둑이 들어서고부터 낙동강 하구역은 동서로 물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상태가 되었다. 녹산수문이 들어서기 전인 1917년 김해평야 일원의 지도는 지형적 배치로 보아 천혜의 습지지역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강서구와 북구, 사상구 일원에 막힘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물길은 일대의 생태적 건강성을 담보하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당시 시각으로서 김해 녹산지역을 관통하고 있는 서낙동강과 갈래지 나간 평간천, 조만강 맥도강에서 지금의 사상구와 북구의 다양한 낙동강 지류들은 사상팔경에서 노래한 원포귀범(遠浦歸帆: 멀리 포구에 돌아오는 돛단배), 평사낙안(平沙落雁: 하늘 날다 모래펄에 내려앉은 기러기), 칠월해화(七月解火: 칠월의 갈대밭에 게를 잡기 위해 밝힌 햇불), 팔월노화(八月蘆花: 팔월의 강변에 피는 갈대꽃) 등의 경관이 실재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만약 이런 풍경을 오늘에 재현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것이나 시간의 흐름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매몰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 그나마 남아있는 지대마저도 권력과 자본의 이해로 조각나 버렸고 특단의 대책이 아니고서는 머잖아 그야말로 전설이 되어 박물관 귀퉁이에서나 볼 처지가 되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낙동강하구 일대의 생태적 교란과 함께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일시에 와해된 사건이 하구둑의 건설이다. 하구둑의 건설은 1974년 물금취수장 해수유입을 막아보자는 차원에서 추진됐다. 여기에 큰돈을 들여 둑을 쌓을 바에야 사업효과를 확대하자는 뜻에서 용수확보와 간석지 매립 교량겸용계획가지 구상하게 되었다. 이 계획은 1980년대 후반 확정하려고 하였으나 1976년 안동댐 완공이후 물금 취수장의 해수유입을 위해 쓸데없이 몇 천만톤의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낭비라 판단하고 1978년 확정. 발표되었다. 총연장 2.4km의 하구둑은 당시 부산시민의 80%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의 폭압적 국토개발의 일환으로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하구둑이 건설되고 을숙도를 포함한 주변은 원형을 상실했다. 낙동강을 오르내리던 수많은 어족들이 길을 잃었다. 십리등으로 이름난 긴 긴 사주는 뱃길과 물길을 위해 동강나 버렸고, 섬은 졸지에 짤린섬(맹금머리 혹은 명금머리)이란 고약한 별칭을 얻었다. 요산 김정한의 ‘모래톱이야기’의 무대였던 일웅도는 을숙도와 통합되었고 터잡아 살던 원주민은 서푼 보상으로 쫒겨났다. 쫒겨나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신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섰고 쓰레기들이 을숙도의 배속에 들어앉아 기약없는 분해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한때는 국민이 가보고 싶은 곳 1순위로서의 을숙도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행정과 개발론자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버려졌다 최근 재생의 길을 걷고 있다. 문제는 을숙도를 제외한 하구 전지역이 개발에 따른 성형수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거나 말거나 나라는 이곳이 중요하다하여 문화재보호구역을 비롯하여 자연생태계보전지구며 습지보전지역 등 보전을 위한 다양한 지위를 부여했다. 동일한 공간에 이렇듯 많은 법적 보호장치로 울타리 친곳도 드문 일이긴 하지만 정작 실효성을 발휘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세월 새들은 어미새가 일러 준대로 상처투성이 을숙도를 찾았다. 달리 쉬어 갈 때도 없기도 하거니와 한겨울 나기에는 먹이와 휴식조건이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니와 기러기류들이 즐겨 찾는다. 오리류들은 더 많다. 현재 이곳은 종다양성 면에 있어 여전히 전국 수위를 차지 할 만큼 다양한 새들이 깃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러한 새들을 찾아서 습지를 보전하기 위한 시민적 관점의 환경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국내외의 교류가 빈번해지고, 낙동강 하구를 찾은 외국인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유감스럽게도 같은 시기 낙동강 하구는 보다 넒은 영역에서 하구의 곳곳이 매립되거나 개발되기 시작했다. 명지주거단지며, 녹산국가공단, 신호공단, 나이가 부산의 북항의 기능을 대체하면서 확장시키는 차원에서의 대규모 신항만 건설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구습지의 또 많은 영역이 사라진 것이다. 그동안 개발을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조직적 저항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간의 개발로부터 소외 받았던 지역민들과 그들의 심리에 편승해 개발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집단과의 지루한 논쟁이 명지대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0년의 논란 끝에 명지대교 문제를 문화재청과 환경부가 용인했고, 법원이 최종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명지대교는 지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개발과 보전, 또는 두 개념의 수용을 통한 적정선 찾기 등이 제기되었다. 결과적으로 개발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보전우위의 하구정책을 수립하는 우회화가 결정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또한 지켜지지 못했다. 부산시는 스스로가 인정한 세계적 철새도래지로서 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낙동강하구일원에 대한 보전원칙과 책무, 보전에 필요한 관리사항을 규정하고 조례화 하는 동시에 그 업무를 다루는 하구관리민관협의회를 두었지만 2007년 11월16일 민간위원 총괄사퇴로 스스로의 약속을 파기하는 결과를 자초했다. 그것은 부족하나마 형성되었던 거버넌스에 대한 좌절이다.
원인제공의 책임은 부산시의 솔직하지 못한 일방적 하구보전 정책이다. 2002년 1회 개최를 시작으로 2007년 11월까지 총18회의 협의회가 개최되었지만 습지보호지역 확대, 고수부지정비사업며, 녹산산업단지 해안방재, 명지경제자유구역, 문화재보호구역 조정 등 민간위원의 제언과 요청은 무시되거나 방기되었고, 그같은 태도는 협의회 무용론을 심화시키며 부산시의 하구행정과 정책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최근의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한 부산권 사업과 강서 그린벨트 해제의 문제는 새로운 대립과 갈등을 노정하고 있다.
강서 그린벨트 해제와 4대강 정비사업
2008년 강서 일원에 대한 그린벨트 해제가 전격 발표되었다. 부산시와 정부는 일대를 국제제산업물류도시로 개발하고자 한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부산개항에 버금가는 도시발달사의 분수령이 될 것이나 그 계획의 면면은 이 지역이 내장한 생태환경적 토대가 고려되지 못한 계획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환경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이 내뱉는 한숨이 땅이 꺼질 정도다.
그린벨트 해제지역 대부분을 관통하는 서낙동강과 맥도강, 평강천 일대의 수환경은 생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민감한 지역임에도 그 중요성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엄밀히 본다면 이 공간은 국제적 주목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구둑을 경계로 사주가 펼쳐진 하구만 보전하면 된다고 여기지만 새들을 비롯한 생물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활동 역역을 가진다. 서낙동강 축은 그들 생존의 또다른 축이다. 실제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 일대는 새들의 비행으로 어둠이 빛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무시되고 있다.
시대적 여파로 그린벨트 천만평이 해제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회의 땅으로 부여되었다면 그에 맞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 중심에 서는 것이 생태환경과 미래지향적 공동체의 가치이며 그것은 이제 도시계획의 기본이 되었다. 현재 국내에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신도시의 대부분이 경쟁적으로 공원녹지율을 증대시키며 없던 물길을 일부러 만들어 내고 있다. 십년 전 일산, 동탄이 25% 수준이었다면, 김포, 판교, 광교 신도시는 30~40% 이며, 세종 신도시의 경우 무려 절반 이상을 공원녹지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곳에 살고 싶어하고 기업주는 그런 조건을 갖춘 도시에서 기업활동을 희망한다. LG필립스가 파주가 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근 부산시가 발표한 ‘낙동강 살리기 기본구상’은 도시계획의 세계적 추세와 시민적 기대는 반영되지 않았다. 부산시는 수질개선과 홍수예방을 위해 준설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이를 위해 수심 6~8m, 2,500톤 유람선 운항과 23개의 선착장 4개의 마리나 설치를 기본방향으로 제시했다. 나아가 총연장 76.6㎞에 걸쳐 에코벨트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은 서낙동강과 맥도강, 평강천 일대의 생태적 연결지대에 대한 훼손을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인공적 시설이 들어서는 대부분의 지역이 조류서식지와 겹쳐지는 곳이며, 에코벨트 대부분이 수변부의 개조를 수반한 자전거, 탐방로이기 때문이다.
과연 서낙동강 일원에 선착장이 23개나 필요한지 따져 물을 수밖에 없으며, 한강유람선도 300톤에 불과한 마당에 2,500톤 유람선이 운행이 의미하는 바는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지는 ‘낙동강 살리기 기본구상’의 실체가 대운하 연계사업임을 밀어붙이기로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4대강 정비는 제10차 창원 람사회의 결의안 중의 하나인 ‘논습지’의 보전과도 배치된다. 그동안 부산시는 생태우위의 둔치정비를 통해 염막 등에 대한 지역농민, 환경단체, 부산시의 상호 보전협력을 체결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숲과 수변이 살아 있는 땅은 사람이전에 생명이 깃드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 부산의 강서개발 구상은 창고와 공장, 그리고 고층빌딩 중심의 조경화된 수로가 중심이 된 구시대의 재현이며, 이는 부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물음표를 제기한다. 나아가 이같은 개발일변의 기조는 국토환경에 대한 비젼의 부재를 뜻한다. 2005년 환경부가 수립한 ‘국가환경종합계획’의 큰 축은 백두대간과 한강과 낙동강 수계 그리고 동서남해안의 보전이었다. 이에 따라 하구역 통합관리방안이 도출되기도 하였지만 그 방안들은 지금 명함을 내밀지 못한 채 버려진 카드로 전락하고 있다.
남아있는 자원을 통해서 본 하구의 가치
습지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땅이며, 이미 수천년 동안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왔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개발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의 모습일수 있는 곳이다. 오래된 미래를 오늘의 가치로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하구를 포함한 낙동강 하류에 대한 특징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하구는 담수와 해수 2개의 다른 수계가 만나는 전이역 (transition Zone)으로 주변해역의 동식물에게 주요 영양물질 공급하고 하구역에만 특수한 생물종 서식, 해양동물의 산란지나 유생기를 보내는 서식지 제공함을 통해 지구 생태계 중 가장 왕성한 생명활동이 이루어는 곳이다. 하구역 연안습지의 생산성과 관련 Costanza 외(1997)가 자연과학의 가장 저명한 국제적 학술지인 Nature에 개발과 관련 없이 자연환경의 순수한 가치만을 비교하여 발표한 바 있다. Costanza 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환경 중에서 하구환경이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고를 하고 있는데 경작지에 비해서는 무려 250배의 가치가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한편 2004년 부산발전연구원이 ‘낙동강하구역의 생태.경제학적 가치평가와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 2004년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낙동강하구는 1ha 당 연간 2억 9200만원의 가치를 가진다고 한 바 있다. 이는 섬진강 하구의 10배와 강화갯벌의 15배를 훨씬 웃도는 가치로서 실로 엄청난 잠재력을 말하는 것이다. 하구 132㎢ 해역 전체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 총 4조4876억원이다. 이 가치는 아시아태평양 플라이 웨이를 통해 지구생태계의 한축으로서 기여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조류서식지로서의 기능이 아닌 낙동강하구 생태계가 순환함으로서 이루어지는 시스템적 해석이다. 그런데 이같은 평가가 제대로 존중된 사례는 없었다. 현장은 있되 적용은 배제되거나 무시되기 때문이다.
생태계 (Biome) |
면적 (106ha) |
ha당 연간 총가치($) |
지구적 총가치 ($yr-1*109) | |||||
식 량 생 산 |
수자원공 급 |
폐기물 정화 |
영양염 순 환 |
기 타 |
계 | |||
◎ 해양 (Marine) |
36,302 |
|
|
|
|
|
557 |
20,949 |
- 대양 (Open oceans) |
33,200 |
15 |
|
|
118 |
119 |
252 |
8,381 |
- 해안 (Coastal) |
3,102 |
93 |
|
|
3,677 |
282 |
4,052 |
12,568 |
∙염하구 (Estuaries) |
180 |
521 |
|
|
21,100 |
1,211 |
22,832 |
4,110 |
∙해조대(Seagrass/ algae beds) |
200 |
|
|
|
19,002 |
2 |
19,004 |
3,801 |
∙산호초 (Coral reefs) |
62 |
220 |
|
58 |
|
5,797 |
6,075 |
375 |
∙대륙붕 (Shelf) |
2,660 |
68 |
|
|
1,431 |
111 |
1,610 |
4,283 |
|
|
|
|
|
|
|
|
|
◎ 육상 (Terrestrial) |
15,323 |
|
|
|
|
|
804 |
12,319 |
- 산림 (Forest) |
4,855 |
43 |
3 |
87 |
361 |
475 |
969 |
4,706 |
∙열대림 (Tropical) |
1,900 |
32 |
8 |
87 |
922 |
958 |
2,007 |
3,813 |
∙온대림 (Temperate/boreal) |
2,955 |
50 |
|
87 |
|
165 |
302 |
894 |
- 초지 (Grass/rangelands) |
3,898 |
67 |
|
87 |
|
78 |
232 |
906 |
- 습지 (Wetlands) |
330 |
256 |
3,800 |
4,177 |
|
6,552 |
14,785 |
4,879 |
∙연안습지 (Tidal marsh/ mangroves) |
165 |
466 |
|
6,552 |
|
2,828 |
9,990 |
1,648 |
∙내륙습지 (Swamps) |
165 |
47 |
7,600 |
1,659 |
|
10,724 |
19,580 |
3,231 |
- 호수/하천 (Lakes/rivers) |
200 |
41 |
2,117 |
665 |
|
5,675 |
8,498 |
1,700 |
- 사막 (Desert) |
1,925 |
|
|
|
|
|
|
|
- 툰드라 (Tundra) |
743 |
|
|
|
|
|
|
|
- 빙하/암석 (Ice/rock) |
1,640 |
|
|
|
|
|
|
|
- 경작지 (Cropland) |
1,400 |
54 |
|
|
|
38 |
92 |
128 |
- 도시 (Urban) |
332 |
|
|
|
|
|
|
|
합계(Total) |
51,625 |
1,386 |
1,692 |
2,277 |
17,075 |
10,836 |
|
33,268 |
낙동강 하류는 생명의 땅이다. 그 생명세계는 장차 부산을 부산답게 만드는 키워드다. 따라서 지금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조급한 성장 중심의 개발이 아닌 지속가능한 개발을 통해 지역의 비젼이 지구환경에 기여하고 지역이 살찌는 방식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은 백지상태에서 하구의 자연이 먼저 그려지고, 사람이 그려지고, 미래적 삶의 방식이 덧입혀지는 방식을 통해 무엇이 이 일대에 대한 최선의 답인지를 지루하게, 그런나 공동의 미래에 대해 목표를 찾는 작업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급히 만들어지고 있는 각종의 개발과 진행중인 개발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원칙은 첫째, 하구둑을 경계로 상하부가 별개의 성격이 아닌 하나의 벨트로서 규정지어져야 한다. 따라서 4대강 정비며 그린벨트의 해제 속에 이루어지는 계획에 대해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둘째, 선계획과 후개발의 원칙에 입각한 하구역관리법(가칭) 재정과 하구의 특성에 맞는 낙동강하구역관리종합계획이 수립됨을 통해 체계적인 관리와 보전이 도모되어야 한다. 세째, 낙동강하구의 람사등록과 하께 추가적 하구개발에 대한 동결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하구습지의 기능에 위험이 되거나 장애가 되는 요인에 대한 제거나 개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부산시는 명지대교 보다 더 큰 문제를 내장하고 있는 강서 물류산업도시나 신공항건설을 가덕도 동북해상으로 규정지으려 하지만 분명히 재고되어야 한다. 네째, 하구습지가 부산의 주요한 관광자원으로서 ‘외화획득’의 주요창구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개발로부터 소외받아온 원주민이 피해의식을 딛고 보전의 주체가 되는 일인 동시에 가장 적극적 하구보전의 포석이자 부산의 대외적 이미지 재고에 도움되는 길이다. 다섯째, 대시민 교육과 홍보의 확대를 통해 습지의 이해와 중요성을 강화 시키는 일이다. 그리하여 낙동강 하구습지에 대한 시민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낙동강하구와 지속가능한 부산
지구상 생태계 중 가장 큰 생산력을 가진 하구습지의 가치는 1ha당 2만2천 달러지만, 9천5백ha 규모의 낙동강 하구습지는 지금 그 100분의 1도 실현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낙동강하구는 하구다움을 간지할 때 온전하게 하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그 가치를 발현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낙동강 하구는 끊임없이 개발의 휴유증으로 시달려 왔고 그에 비례하여 명성과 가치를 소실해왔다. 낙동강하구가 중요하다고 먼저 금 긋고 보전구역을 설정한 것은 정부다. 그럼에도 주지하다시피 정부는 그 어떤 방패역할을 하지 못했다. 시대가 변했다. 발전과 성장의 개념 또한 변했다. 하구의 현명한 이용과 보전이 개발 중심의 시각에서 해석되어지는 오류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한번 지워지면 재생불가능한 땅이 하구의 존재다. 그것은 부산의 지속가능성이다. 하구가 있음으로 해서 다른 어떤 도시보다 경쟁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부산은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출처: http://blog.daum.net/dkfemsea/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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