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블부블-부산 블로그] 운수골 따라 운수사 가는 길
손대서 아름다운 자연은
없느니 …
2013-07-13 [07:48:44] | 수정시간: 2013-07-15 [07:57:28] | 4면
부산일보
▲ 운수사에서 바라 본 백양산의 구름. |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은 매화, 동백,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죽단화, 조팝나무의 꽃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고지고, 이제는 향기가 강한 외래 종의 라일락과 아카시아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땅을 뚫고 올라오는 식물들도 어김없이 그 모습을 내밀고, 그중에 우리 민들레는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노란색의 서양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도심 속 수려한 경관의 골짜기
울타리·보·돌담·돌계단 만들어지고
아담한 절집도 거대한 누각에 묻혀 버려
천연 그대로의 멋 사라지는 씁쓸한 현실
이에 질세라 뽀리뱅이나 고들빼기가 보도블록 사이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백양산 터널 위 길을 통해 만나는 곳이 바로 운수 골(운수천)이다. 그 골짜기의 끝에 천년 고찰이 자리하고 있다. 절집의 이름은 '운수사'다. 사람의 운세를 말하는 그런 운수, 또는 여객이나 화물을 이동시키는 그런 운수가 아니고 자연에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현상의 구름과 물(雲水)을 뜻하는 것이다.
운수사를 이야기할 때 운수 골을 떼어 놓고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주문이 따로 없는 이 작은 절집의 문은 바로 운수사로 오르는 운수 골이 일주문이고 산문이기 때문이다. 이 산문은 기대어 서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소리나 산새 소리를 들으며 걸어 올라가야만 하는 그런 문이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에서 한 발짝만 비켜나면 거대한 천연암반층으로 이루어진 경관이 수려한 골짜기가 도심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자연의 혜택이다. 그런데 생각이 짧은 사람들의 머리로 시민의 세금을 쏟아 부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던 운수사 골짜기의 가장자리는 OK 목장처럼 울타리를 만들었고, 외부에서 반입한 바위들이 골짜기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군대의 병사들이 불편하지만 2열 종대로 반듯하게 늘어서 있는 것 같다.
그것도 모자라 중간 중간마다 10개 이상의 보를 만들어 놓았다. 장마철이면 굵은 모래가 흘러와 메워버린다. 지금은 작년 가을에 흩날리며 떨어진 낙엽들이 쌓이고 쌓여 썩어가고 있다. 또 일부러 돌담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고, 심지어는 굳이 계단이 필요 없는 곳을 돌계단으로 만들어 놓았다. 손대서 아름다운 자연은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내가 사는 강변에 피어난 갈대나 억새를 보면서 굽이 돌아가는 에움길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지금은 모두 반듯하게 다듬어져 정이 가지 않는다. 사실이다. 하나의 길도 울퉁불퉁하든 구불구불하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 깊이가 있고 좋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내하지 못하는 편리성의 타성에 젖어 반듯하게 펴버린다. 달리 사물을 보는 눈이 게으른 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아무튼, 반듯하게 만들어버린 골짜기를 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욕을 안 한 적이 없다. 결국, 듣는 이 없는 욕은 내가 나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있는데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아녀자 서너 명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은 "운수사 골짜기 진짜로 잘해 놨다 아이가, 그쟈" 그러니 "맞다, 맞다"하며 한 여자가 맞장구를 친다. 나는 든 게 없으니 보이는 것만 보이나 보구나 하며 쯧쯧 혀를 찬다.
그러면서 오름의 목적지 운수사에 도착했다. 천년 고찰이라는 아담한 절집에서 중창 불사를 하는지 '아담한'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기존에 곱게 늙은 대웅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무슨 집인지 편액도 없는 거대한 집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위압적으로 버티고 있다. 그 앞에는 2층의 누(樓)를 건축하고 있다.
하지만 크고 반듯한 집보다 원래부터 운수사라는 이름 하면 떠오르는 맞배지붕에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대웅전은 그대로 있다. 풍경소리와 향 내음 짙은 절집의 분위기를 그대 간직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은 멋부림이 전혀 없어 대웅전과는 둘이 아닌 하나같은 느낌이고, 뒤편 산신각 옆에는 단아하고 길게 놓여있는 장독대가 가지런하고 절과 산의 경계엔 산죽 밭이 있어 새들의 안식처가 되어 준다. 또 철 따라 피는 상사화가 아름답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해 서로 그리워한다지만, 이 절집에 특이한 나무가 있다. 나는 이 나무를 윤회목이라 부른다. 그 윤회를 말하는 나무 한 그루는 바로 다름 아닌 죽은 나무. 즉, 그루터기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다. 그 나무는 밑뿌리가 땅에 남은 채 잘린 그루터기가 아니다. 그냥 잘린 나무를 세워놓은 것인데 그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약수터 부근에 사람들이 마시고 남은 물을 버리는 곳이기에 수분을 유지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자연(自然)이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달리 개발 탓에 훼손되지 않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하는데 사람들도 자연의 소중함이나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개발의 눈먼 이익, 달리 사욕을 챙기고 싶은 욕심 앞에 진정한 자기 가치를 상실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은 자기 가치의 상실이 정상이 된 세상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미용성형을 감추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도 햇볕도 따뜻한 아침, 우리 마을에 있는 운수사 골짜기로 운수사에 갔다가 곱게 늙어야 할 절집은 절의 규모가 커져야 신도들이 많아지는지 하루가 다르게 새 모습으로 변해가고, 운수사의 산문 격인 운수골짜기도 부자연스럽게 다리미로 빳빳하게 펴 놓은 것 같아 안타까워하면서 동백림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붙들려간 천상병 시인이 고문을 받고 쓴 시에서 자신을 아이론 밑 와이셔츠처럼 빳빳하게 펴졌다고 비유했는데, 운수골짜기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렇게 빳빳하여졌을까?
씁쓸한 생각을 하며 하산 했다. 그래도 맑고 고운 휘파람새 소리와 함께 골짜기의 물은 흐르고 온산에 흐드러진 봄꽃은 화사하기만 했다.
김채석(바람)
을숙도에서 부는 바람의 노래
그리움을 뚫고 세상 보기
http://blog.daum.net/kcs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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