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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이야기

한국 석탑, 조형예술의 백미(1)

 

한국 석탑, 조형예술의 백미(1)

 

              

                                                                   <미륵사지 석탑> 

석탑은 석불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으로 조형 예술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견 단조롭게 보이는 석탑에도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 그 시대의 예술적 틀을 보여준다.석판 또는 돌기둥으로 조립한 것이 있는가 하면,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서 쌓아 올린 것도 있으며, 석판에다 부처나 천인상(天人像), 십이지상(十二支像), 금강역사상(金剛力士) 등을 새겨 아름답게 장식한 것도 있다.
 석탑은 절과 언제나 있었다. 그런데 사찰이 폐허화되고 불타버려 석탑만이 남아 고고(孤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려조에서는 몽고의 침략으로,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왜군들의 침공으로 인해 불타 버린 사찰의 석탑들이 지금도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다
 그렇다면 석탑을 처음 세운 이유는. 불법은 눅눅 하지않다(만만하지 않다는 말이다), 불법을 알고자 하면 최선을 다해라, 눈을 뜨면 눈으로 보고 상기하여 목표를 섭렵하라, 즉 터득하라 하여 석탑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국사 다보탑>
 한국 석탑의 특징은 첫째, 재질에 있어 견고한 건축물이요, 둘째, 신앙의 소산이요, 예배의 대상이요, 셋째, 조탑의 전통과 기술의 우수함에서 삼국 이래 천수 백년에 이르는 역대의 유산이 현존하고 있다.
 한국 석탑의 발생 연대는 서기 약 600년 무렵으로, 그 양식의 원류는 목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시원 석탑의 발생지는 백제다. 백제는 해상무역을 통하여 일찍부터 중국 남북조와 교류를 활발히 하였고 내륙에서는 고구려 문물까지 널리 접하였다. 그래서 백제는 6세기에 불교의 중흥기에 이르렀다.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말엽까지 약 200년 간은 목탑의 건립 시기였고, 오랜 목탑의 건조에서 쌓여진 기술과 전통의 연마가 드디어 석탑을 발생케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양식은 당시에 유행하던 톡탑을 본뜬 것이었다. 석탑이 백제에서 시발된 것은 몇 가지 이유로 추정이 가능하다.
 백제는 당시 삼국중에서 가장 건축술이 발달한 나라였다. 또 신라의 황룡사 9층목탑을 건립할 때 백제의 아비지가 초빙되어 거역(巨役)을 담당한 사실, 일본의 초기 사원 창립에  백제의 사공(寺工) 또는, 기와박사(瓦博士) 등이 건너간 사실 등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어쨌든 백제에서는 7세기 초반에 이르러 복재로 목탑을 모방하여 탑파를 건립함으로써 석탑을 처음으로 건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백제시대의 석탑으로 현재까지 보존된 것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충남 부여 정림사지 석탑뿐이다.

 

 

 

                                                               <부여 정립사지 5층 석탑>
 신라는 고구려, 백제보다 불교 공인이 늦었지만 통일 후, 고구려 백제와 융화되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냈다. 신라는 당대의 유행과 방식에 따라서 목탑을 건립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황룡사 9층목탑이다.
 황룡사의 북방에 선덕여왕초에 거찰을 낙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분황사이다. 분황사에 이르러 신라는 마침내 새로운 형태의 석탑을 만들어 냈는데, 분황사석탑이 바로 현존하는 신라의 석탑중 가장 오래고, 규모 또한 최대이다. 이 탑은 형식이 특이하여 전탑 양식을 모델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탑이 아닌 석탑으로 신라에서 발생한 석탑의 특이한 양식과 그 계열이 추정된다.

 

 

                                                                        <분황사 전탑>
 분황사탑은 전탑을 모방한 모전탑으로 넓직한 1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모서리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배치되어 있다. 모전탑은 선만긋는 방식과 직접 쌓아올린 방식 두가지가 있는데, 이 탑은 회흑색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 쌓아올린 방식이다.

 1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는 현저히 작아진 탑신을 볼 수 있고 지붕돌은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3층 지붕돌만은 윗면이 네 모서리에서 위쪽으로 둥글게 솟은 모양이다. 이 석탑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미륵사지 석탑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석탑 발생 사정의 차이에 불교 문화 발달과 그 전래 경위의 차별상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많다.

 

 

                                                                    <불국사 3층 석탑>
 신라의 석탑은 삼국통일과 함께 백제와 고신라의 각기 다른 양식을 종합, 새로운 양식을 갖추게 된다. 새로운 계기를 맞아 집약 정돈된 형식으로 건조된 석탑 중 가장 원시적인 양식의 표본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감은사지 동서 3층 석탑과 고선사지 3층 석탑이다. 이 두 탑은 모두 새로운 통일국가의 서울인 경주에 세워졌다.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은 우선 건립이 전대에 비래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된 점을 들 수 있으며, 왕실불교적 입장에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중화된 결과로 조탑의 국가적 경영도 각 지방의 토착 세력이 건탑(建塔)에 관여하게 돼 일률적인 규범보다는 각기 제나름대로의 특징이 반영돼, 곧 다양성 있는 건탑 양상을 보이게 된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의 규모가 좁아지면서 주위 환경과의 조화가 고려되어 석탑도 규모가 작아지는 감이 있으며, 세부적 장엄 장식이 공에적 기교를 통해 화려하게 발전하는 감이 없지 않다.

 

 

                                                    <원각사지 10층 석탑> 

출처; http://blog.daum.net/culturelive/15948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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