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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문화유적

백촌 김문기와 유헌 김영필의 관계

백촌 김문기와 유헌 김영필의 관계

 


모라산림공원 입구에 있는 김녕김씨 유두문중 재실

 

사상구 모라동 주공3단지 뒷편에 있는 유두문중의 재실은 입향조인 김영필(金永弼)공의 호를 따서 유헌재라고 한다.

 

김영필(金永弼)공은 백촌 김문기와 어떤 관계이며, 언제 부산으로 내려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목슴을 잃은 사륙신의 한사람인 백촌 김문기의 증손자인 고손관계다,

 

김문기(1399 ~1456, 세조 2년)는 김녕김씨의 후손이다. 초명은 효기(孝起), 호는 백촌(白村), 시호는 충의(忠義)다. 시조 김시흥의 9세손이며, 호조판서 김순의 손자, 영의정에 추증된 김관의 아들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에서 출생했다.

1426년(세종 8년)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한 김문기는 관찰사로 재직 중에 둔전법을 실시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단종 때는 형조참판을 거쳐 함길도 도절제사로 나갔다. 그 후 공조판서 겸 삼군도진무에 오른 김문기는 수양대군(세조)이 어린 단종을 내쫓고 임금이 되자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응부, 이개, 유성원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모의했다. 김문기는 거사에 필요한 병력 동원을 책임졌다. 그러나 단종 복위 거사는 모의에 참여했던 김질의 밀고로 무산되고 모의 가담자는 모진 고문 속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김문기 역시 세조의 모진 고문 끝에 순절한다. 그는 목숨이 끊어지면서도 단종과 동지에게 누가 미칠까봐 끝까지 입을 다물어 절의를 지키고, 아들 현석과 함께 순절했다.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김문기와 가까운 김녕김씨 집안에는 세찬 시련이 몰아친다. 유배를 당하고 김녕김씨라는 이유만으로 역적의 누명이 씌워진 사람들도 많아 산중 또는 섬으로 피하거나 본관을 숨기며 고난 속에 명맥을 이었다.

 

이에따라 孫子는 충청도 충주, 曾孫은 경남 영동을 거처 양산군 좌이면 유두리(오늘날 부산시 사상구 삼락동)에 정착하였으며, 玄孫(高孫)은 藥田(경상남도 포항시 남구)으로 옮겨 살았다.

 

영조 7년(1731년) 9대손 김정구의 호소로 관작이 복구된 김문기는 충의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조는 그의 충절을 널리 알리고 기리기 위해 불천위의 ‘부조지-전’에 제향하라는 왕명과 함께 정려의 명도 내렸다.

사육신에 무관인 유응부가 들어가 누락됐던 김문기가 국사편찬위원회의 판정으로 원래의 사육신에 속함이 확인돼, 서울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 가묘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당시 야당 거목 정치인 김영삼(대통령 역임)씨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씨(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로 사형당함)가 김녕김씨이다 보니 묘한 설이 나왔고, 유응부도 충신이니 함께 사칠신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김문기의 업적을 정리한 ‘백촌 김선생 유사’ 3책

 



하지만 김문기의 가문은 부자와 함께 孫子 충주, 曾孫 경남, 玄孫(高孫)은 藥田 등이 충과 효의 맥을 이어 전대미문의 오세충효 정문이 세워진 집안이다. 김문기와 동시대인으로 단종이 죽자 월악산에 들어가 3년간 복상, 세조의 좌의정 등용 제의도 고사한 김존, 김안국 문인으로 사마시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에만 전념한 김현 등도 김문기의 기개를 보여준 인물들이다.

 




김녕김씨 유두문중재실

 

김문기의 증손(曾孫) 인 김영필은 합천을 거쳐 당시 양산군 좌이면 유두리에 정착하게된다. 김녕김씨 유두(柳頭)문중의 입향조(入鄕祖)인 김영필 공은 어떤 인물일까? 유학자이고, 명종17년(1562년) 태생이며, 유도(삼락동) 출신이다. 자(字)는 운재(運載), 호(號)는 유헌(柳軒)이며 김녕김씨로 사육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으로 증손(曾孫)관계이다.

 

타고난 성품이 현명하고 문장과 학문이 뛰어나며 박학수행(博學修行)하여 경서(經書)와 역서(歷史)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단종의 복위가 실패하면서 백촌 김문기 부자(父子)가 참형을 당하자 일족들은 합천쪽으로 피신하였고 이 와중에 김영필은 낙동강 하류로 갈대가 우거진 유두리 강변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낙동강의 하중도인 유두리는 온통 갈대밭으로 숨어 살기로는 제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섬을 개간하여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 가는 동안 이어서 의춘방씨(宜春房氏), 안동권씨(安東權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김해김씨(金海金氏) 등이 살았다. 조선시대 유두지역을 대표했던 김녕김씨에 대해서 살펴보면 옛 낙동강 하구유역의 유도(柳島) 유두리(柳頭里, 오늘날 삼락동)에 김녕김씨 집안이 집성촌을 일찍부터 이루고 살았다.


1914년 이 섬이 양산군 좌이면(左耳面)에서 동래군 사상면 삼락리가 되고 뒤이어 1935년 낙동강 제방이 축조되어 섬이 육지가 되고 일부가 수몰되어 후손들은 양산, 구포, 모라,삼락, 괘법동 등지에 흩어지게 되고 후손들은 15대를 이어 오면서 20여년전에 모라동 뒷산(사상구 모라3동 산 115)에 입향조 호(號)를 따라 유헌재(柳軒齋)를 건립하여 입향조 이하 조상의 향제를 거행하고 있다.

 

 

김녕김씨 유두문중

 

 김녕김씨 유두문중의 재실에 대하여 알아본다.

 

김녕김씨 유두문중 재실입구

 

삼락동에는 옛날 삼각주의 유두(柳頭)시절 조선중엽 김녕김씨(金寧金氏)들이 이 섬을 개간하여 터전을 마련하고 살았다. 이어서 의춘방씨(宜春房氏), 안동권씨(安東權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김해김씨(金海金氏) 등이 살았다. 조선시대 유두지역을 대표했던 김녕김씨에 대해서 살펴보면 옛 낙동강 하구유역의 유도(柳島) 유두리(柳頭里, 오늘날 삼락동)에 김녕김씨 집안이 집성촌을 일찍부터 이루고 살았다.

 

 

김녕김씨 유두문중 재실

 

옛 양산군지(梁山郡誌)와 모라동 뒷산 기슭에 있는 김준옥(金俊玉) 공(公)의 묘비명에 의하면 조선조 중엽 김녕김씨 김영필(金永弼) 공(公)이 충청도 영동에서 낙동강 하구 유역의 유도로 옮겨와 정착하여 삼대를 내려오면서 이 섬을 개간하고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도록 이 섬을 개척한 집안이다. 파조(派祖)이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선생이 단종 병자년에 사육신(死六臣)으로 화(禍)를 당하고 영조 신해년에 복관(復官)되고 정조 무술년에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받았을 때에도 후손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김녕김씨 유두(柳頭)문중의 입향조(入鄕祖)인 김영필 공은 어떤 인물일까? 유학자이고, 명종17년(1562년) 태생이며, 유도(삼락동) 출신이다. 자(字)는 운재(運載), 호(號)는 유헌(柳軒)이며 김녕김씨로 사육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으로 고손(高孫)관계이다. 타고난 성품이 현명하고 문장과 학문이 뛰어나며 박학수행(博學修行)하여 경서(經書)와 역서(歷史)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단)의 복위가 실패하면서 백촌 김문기 부자(父子)가 참형을 당하자 일족들은 합천쪽으로 피신하였고 이 와중에 김영필은 낙동강 하류로 갈대가 우거진 유두리 강변에 정착하엿던 것이다.

 

1914년 이 섬이 양산군 좌이면(左耳面)에서 동래군 사상면 삼락리가 되고 뒤이어 낙동강 제방이 축조되어 섬이 육지가 되고 일부가 수몰되어 후손들은 양산, 구포, 모라,삼락, 괘법동 등지에 흩어지게 되고 후손들은 15대를 이어 오면서 20년전에 모라동 뒷산(사상구 모라3동 산 115)에 입향조 호(號)를 따라 유헌재(柳軒齋)를 건립하여 입향조 이하 조상의 향제를 거행하고 있다.



통정대부김준옥묘명

 

전 양산군수유인목(柳寅睦) 공(公)이 찬문한 김준옥(金峻玉) 공의 묘비명에 보면 유도(柳島)는 낙동강 하구강 가운데 있으면서 섬사람들은 해마다 홍수의 피해가 많아서 큰 걱정으로 여겼다. 공(公)은 섬 주위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이 정자나무 덕택으로 사람들이 이 나무를 활인정(活人亭), 활인수(活人樹)라 했다고 양산읍지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애국지사 동산김형기선생추모비

 

또한 김석량(金碩浪) 공이 무과에 급제하여 숙종조에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을 하였으며 또한 두 분의 효자(孝子)가 나와 김영우(金英禹) 공과 손자 김응권(金應權) 공이다.세인들이 이르기를 효자 밑에 효손이 있도다 하여 사림(士林)이 이를 밝히고 책을 만들고 이어 비각(碑閣)을 세워서 길이 전하였다. 이 가문에서 조선조 후기에 많은 선비를 배출하였고 근세에 독립유공자인 동산(東山) 김형기(金泂璣) 선생이 이 집안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