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seamuse.go.kr))는 수중에서 발굴조사한 난파선과 유물을 중심으로 수중문화재를 소개하는 해양유물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선정한 수중문화재 50선을 네티즌들에게 수중 문화재 한점마다 갖고있는 아름다움을 전하는 목적으로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수중문화재 50선
靑磁陰刻雲文甁
목이 긴 청자병으로, 전체 형태가 그대로 잘 남아 있다. 무게중심이 몸체 아래에 있으며, 둥근 몸통에서 자연스럽게 어깨와 목으로 이어진다. 목은 길고 가느다란 편이며, 입구는 벌어져 있으며 살짝 말려 있어 도톰한 편이다. 외면에는 음각기법으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몸통 중앙 네 곳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영지(靈芝) 형태의 커다란 구름(雲文)이 장식되어 있다. 어깨 부분에는 두 줄의 선을 돌리고 그 아래로 네 곳에 여의두如意頭 형태의 구름(雲文)을 아래로 늘어지게 표현하였다. 몸통 아래 부분에는 넝쿨무늬(唐草文)를 돌렸다. 태토는 정밀하게 잘 정제된 상태이다. 유약은 그릇 내면과 굽 부분까지 고르게 씌웠으며, 녹청색을 띤다. 외면에 부분적으로 가늘고 굵은 빙렬이 있으며, 광택이 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 안바닥면은 얕게 깎아 냈다. 굽 안바닥면 다섯 곳에는 규석을 받쳐 구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靑磁象嵌菊花文花形盞托
Celadon Flower-shapedCup stand with Inlaid Chrysanthemums Design
청자 잔탁으로, 끝 부분이 살짝 깨져있으나 거의 완형에 가깝다. 형태는 일정 간격으로 구획하여 꽃모양(花形)을 만들고 가장자리를 둥글게 깎아 내어 전과 다리를 꽃잎 형태가 되도록 하였다. 문양은 일정한 간격으로 음각기법을 사용하여 선을 그어 옆에서 볼 때 꽃잎 형태가 되도록 했다. 잔좌의 측면에는 양각기법으로 연판문이 장식되어 있다. 연판의 형태는 둥글고 끝을 뾰족하게 표현하였으며, 끝이 모두 아래를 향해있다. 꽃잎은 세 겹으로 표현하였으며, 연판문 안에 잎맥도 양각으로 빗금을 그어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연판문과 연판문 사이에는 세로의 양각선으로 구역을 나누었다. 잔좌의 상면 중앙에는 세 송이의 국화꽃이 백상감기법으로 간략하게 장식되어 있다. 전의 윗면은 세로로 음각선을 새겨 꽃잎 사이의 경계를 표현하고, 각 꽃잎에는 꽃과 봉오리, 줄기와 잎으로 구성된 두 송이의 국화꽃을 장식하였다. 꽃송이는 백상감으로 줄기와 잎 부분은 흑상감으로 나타냈다. 탁 괴임부에는 빗과 같은 도구로 여러 선을 동시에 반복적으로 새기는 식으로 넝쿨문양(唐草文)을 가득 장식하였다. 탁굽 외면 부분에도 꽃과 봉오리, 줄기와 잎으로 구성된 한 송이의 국화꽃이 백상감기법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마찬가지로 꽃은 백색으로 줄기와 잎은 흑색으로 상감하였다. 회색의 태토는 작은 공기구멍을 포함하고 있으나 비교적 입자가 고르고 치밀한 편이다. 유약은 그릇의 내·외면에 고르게 씌워져 있으며 녹청색을 띠나, 약간 탁하다. 굽 접지면 부분은 태토와 유약이 완전히 흡착되지 못하여 푸석푸석하다. 굽다리는 바깥으로 벌어진 ‘八’ 자 형태로 높이가 매우 높으며, 안쪽이 비어 있다. 다리와 전의 경계부분 세 곳에는 규석을 받쳐 구웠던 자국이 남아 있다.
청자 기린장식 향로뚜껑
靑磁麒麟形香爐蓋
Celadon Incense Burner with Girin-shaped Lid
등록명칭 청자기린형향로뚜껑
국적/시대 한국 /고려
출토지 전라남도 진도군
분류 사회생활 -의례생활 -제례 -향로
재질 도자기 -청자
크기 전체높이 10.8cm, 뚜껑높이 2.2cm, 뚜껑지름 9.8cm, 구멍지름 3cm
번호 해양유물16963
전시위치 목포해양유물전시관 제1전시실(한국 해양교류실)
기린 모양의 청자향로뚜껑으로, 머리 위에 달린 뿔의 끝 부분이 살짝 깨져 있으나 전체형태가 그대로 잘 남아 있다. 뚜껑의 중앙부 가운데를 둥글게 파내어 뚫었고, 그 위에 기린을 올려 장식하였다. 기린 속은 비어있다. 뚜껑의 윗면은 편평하며, 가장자리에서 꺾인다. 장식은 기린이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음각으로 파도(波濤文)가 표현되어 있다. 몸통 옆면에는 큼지막하게 회(回)자 형태의 번개무늬(雷文)가 띠를 이루며 음각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기린은 앞다리와 뒷다리를 모으고 웅크리고 앉아 있으며,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입을 벌린 상태로 위를 바라보고 있다. 반쯤 벌린 입 사이로는 이빨과 살짝 내민 뾰족한 혀가 보인다. 기린의 머리 위 하나의 뿔은 목까지 길게 이어진다. 턱 아래쪽과 양쪽 입가에는 수염을 붙였다. 목과 앞발의 겨드랑이에는 갈기와 털로 장식하였다. 목 뒤 부분과 꼬리 부분은 갈기를 소용돌이 형태로 동그랗게 말아 곱슬곱슬하게 음각으로 표현하였다. 꼬리 끝 부분은 위로 말아 올려 있으며, 꼬리털은 엉덩이에서 등에 걸쳐 붙어 있다. 네 개의 발톱은 날카롭게 표현되었다. 눈은 음각으로 새긴 뒤 눈동자는 검은색 안료를 사용해 철화점을 찍었다. 태토는 잘 정제된 상태이며, 유약은 기린 장식의 내면을 포함한 전면에 고르게 씌웠으며 녹청색을 띤다. 뚜껑 안쪽 천정 부분에는 빙렬이 퍼져 있다. 뚜껑 안쪽 중앙은 원형으로 뚫려 있다. 뚜껑 안쪽 천정면 가장자리 다섯 곳에는 규석을 받쳐 구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靑磁鴨形香爐蓋 Celadon Duck-shaped Incense Burner Lid
오리모양의 청자향로뚜껑으로, 오리 부리가 일부 깨져 있으나 거의 완형에 가깝다. 뚜껑의 중앙부 가운데를 꽃모양(花形)으로 파내어 뚫었고, 그 위에 오리를 올려 장식하였다. 오리 속은 비어있다. 뚜껑의 윗면은 편평하며 가장자리에서 한 번 꺾였다. 오리 몸통 아래에는 양각기법으로 물갈퀴가 표현되어 있다. 윗면에 오리가 있는 부분을 제외한 곳에는 음각기법으로 파도(波濤文)가 빼곡하게 장식되어 있다. 몸통 옆면에는 넝쿨무늬(唐草文)가 띠를 이루며 장식되어 있다. 오리는 입을 벌리고 있으며 혀를 길게 내밀고 있다. 눈은 음각으로 새긴 뒤 눈동자는 검은색 안료를 사용해 철화점을 찍었다. 오리 입 주변과 몸통의 깃털과 비늘은 음각의 가는 세선으로 정밀하게 표현하였다. 회색의 태토는 정밀하게 잘 정제된 상태이다. 유약은 오리모양 장식 안쪽까지 고르게 씌웠으며, 녹청색을 띤다. 오리형 기물을 포함한 뚜껑 전면에 빙렬이 퍼져 있으며, 광택이 있다. 뚜껑 안쪽 천정면 네 곳에는 규석을 받쳐 구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靑磁透刻唐草文連峰形筆架 Celadon Lotus Bud – Shaped Brush Holder Scroll Design with Openwork
청자붓꽂이로, 현재 몸통의 1/2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전체 형태는 사각형으로 양쪽 끝 부분에는 연봉오리 형태의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연봉오리 장식에는 음각과 양각기법을 사용하여 줄기와 잎 형태를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외면은 넝쿨무늬(唐草文)로 투각하였다. 윗면에는 붓을 꽂을 수 있는 세 개의 구멍을 뚫고, 그 둘레에는 둥근 꽃잎을 음각으로 장식하였다. 회색의 태토에는 작은 공기구멍이 포함되어 있으나, 정밀하게 잘 정제된 상태이다. 유약은 필가 안쪽 까지 전면에 고르게 씌웠으며, 녹청색을 띤다. 필가 전체에 빙렬이 퍼져 있으며, 광택이 돈다. 다리는 풍혈(風穴)과 유사한 받침대 형태로, 받침대의 앞면과 측면은 안상眼象 모양으로 투각되어 있다. 바닥에는 여덟 곳에 규석을 받쳐 구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小小勝字銃筒 Sososeungja chongtong Gun
길이 57.8cm의 청동으로 만든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總統)이다. 완형으로 출토되어 통신(筒身), 약실(藥室), 병부(柄部) 모두 남아 있으며, 약실 후면에 약선혈(藥線穴)이 배치되어 있다. 병부 후면에는 횡방향으로 4~5글자가 6면으로 적혀 있으며 총 23자의 글자가 쓰여 있다. 萬曆戊子 四月日左營 造小勝字 重三斤九 兩 匠尹德永으로 명문을 해석하면 '만력 무자년 4월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이다. 무게는 세근 아홉냥이며 만든 사람은 장인 윤덕영이다.' 라고 쓰여 있으며, 이를 통해 절대연대 및 제작자, 중량 등을 알 수 있다.
小小勝字銃筒 Sososeungja chongtong Gun
진도 명량대첩로 해저에서 발굴된 길이 57.6cm의 청동으로 만든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이다. 완형으로 출토되어 통신(筒身), 약실(藥室), 병부(柄部) 모두 남아 있으며, 약실 후면에 약선혈(藥線穴)이 배치되어 있다. 병부 후면에는 횡방향으로 4~5글자가 5면으로 적혀 있으며 총 23자의 글자가 쓰여 있다. 萬曆戊 子五月日左 營造小勝字重三斤七兩 匠尹德永으로 명문을 해석하면 '만력 무자년 5월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이다. 무게는 세근 일곱냥이며 만든 사람은 장인 윤덕영이다.' 라고 쓰여 있으며, 이를 통해 절대연대 및 제작자, 중량 등을 알 수 있다.
小小勝字銃筒 Sososeungja chongtong Gun
길이 57.5cm의 청동으로 만든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이다. 완형으로 출토되어 통신(筒身), 약실(藥室), 병부(柄部) 모두 남아 있으며, 약실 후면에 약선혈(藥線穴)이 배치되어 있다. 병부 후면에는 횡방향으로 4~5글자가 5면으로 적혀 있으며 총 23자의 글자가 쓰여 있다. ‘萬曆戊子 三月日左營 造小勝字 重三斤五兩 匠尹德永’으로 명문을 해석하면 ‘만력 무자년 3월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이다. 무게는 세근 다섯냥이며 만든 사람은 장인 윤덕영이다.’라고 쓰여 있으며, 이를 통해 절대연대 및 제작자, 중량 등을 알 수 있다.
靑磁象嵌牡丹蓮花文瓢形注子
Celadon Gourd-shaped Ewer with Inlaid Peony and Lotus Flower Design
크고 작은 타원형의 윗 동체와 아랫 동체로 구성된 표주박모양의 주자로 주구 일부는 파손되었다. 꼬인 넝쿨모양의 손잡이와 살짝 바깥쪽으로 휘어진 주구는 동체의 양쪽 면에 붙어 있다. 주구는 여섯 면으로 각을 주고 수직에 가깝게 곧추선 형태로 부착되었다. 아래 동체에 모란절지문과 연화절지문을 상감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주구와 손잡이가 동체에 부착된 부분에 팔능형의 화창을 흑상감과 백상감을 사용하여 2겹으로 장식하였다. 주 문양인 모란과 연꽃 주변에 음각기법으로으로 운문을 두어 주구는 그 안에 음각기법으로으로 능형 화엽문을 2단으로 장식하였다. 유색은 녹색과 황녹색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잘 발렸다. 굽은 평저로, 굽 안바닥을 얕게 파내고 굽 주변은 내화토모래빚음을 여섯 곳에 받쳐 구웠다.
木簡 Wooden Tag
판독:
戊辰二月十九日□□□□□□崔光□宅上□□□□□各田出粟拾石木麥 參石未醬貳石各入拾伍斗印 □□竹山縣□□尹 押
목간 위쪽의 '> <' 모양의 홈을 경계로 하여 머리와 몸통으로 구분된다. 앞뒤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글이 적힌 앞면은 좌우를 비스듬하게 더 깎아 내었다. 이로 인해 몇 글자는 옆면으로 삐져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靑磁象嵌菊花牡丹柳蘆竹文梅甁
Celadon Prunus Vase with Inlaid Peony, Chrysanthemum and Willow Tree Design
참기름을 담았던 청자 매병이다. 매병의 입구는 작은 대야[小盤]처럼 꺾여 벌어지며 그 아래로 짧은 어깨가 이어진다. 어깨는 옆으로 벌어진 후 둥글게 내려와 몸통과 만난다. 몸통은 점점 폭을 좁히면서 내려가다가 끝에서 다시 벌어진다. 굽은 안쪽면을 파낸 안굽이다. 무늬는 모두 표면에 조각칼로 모양을 새긴 후 색이 다른 흙을 메워서 만드는 상감기법을 이용하였다. 무늬는 우선 입구 주변에는 번개 무늬, 목 부분에는 불교 의식(儀式) 도구인 여의의 머리 모양[如意頭紋] 무늬를 새겼다. 몸통에는 흑백상감으로 국화 ‧ 모란 ‧ 버드나무 ‧ 갈대 ‧대나무 등을 표현하였는데 각각의 꽃과 나무는 몸통에 골을 파서 6등분 한 후 꽃모양의 창(窓)을 그리고, 그 속에 새겼다. 매병의 아랫쪽에는 번개 무늬와 연꽃잎 무늬를 새겼다. 녹청색의 유약을 매병 전체에 발랐으나 바닥에 닿는 부분의 유약은 닦아내었다. 바닥면에 높은 온도에도 견딜 수 있는 모래가 섞인 황색의 내화토를 열 군데 붙여서 구웠다. 잔금과 이물질이 붙어 있지 않고, 그릇이 깨끗한 편이나 그릇 밑쪽은 유약이 밀려서 속살이 군데군데 드러났다. 이 매병은 죽찰을 목에 단 채 발굴되었는데, 죽찰에는 매병에 참기름을 담았다는 내용과 이 매병을 받는 사람의 이름 등이 적혀 있어 고려시대 매병의 용도를 알려주고 있다.
* 죽찰(마도1287)과 함께 보물로 지정
- 청자 연꽃줄기 무늬 매병
- 靑磁陰刻蓮花折枝文梅甁
Celadon Prunus Vase with Incised Lotus Flower and Branch Design
꿀을 담았던 청자매병이다. 매병의 입구는 작은 대야[小盤]처럼 꺾여 벌어지며 그 아래로 짧은 어깨가 이어진다. 어깨는 옆으로 벌어진 후 둥글게 내려와 몸통과 만난다. 몸통은 점점 폭을 좁히면서 내려가다가 끝에서 다시 벌어진다. 굽은 안쪽면을 파낸 폭이 넓은 안굽이다. 무늬는 모두 음각기법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먼저 목 부분에는 불교 의식 도구인 여의의 머리 모양[如意頭紋] 무늬를 새겼다. 몸통의 아랫부분에는 번개 무늬와 여의의 머리 모양 무늬가 표현되었는데, 여의두에는 꼬리가 달려있다. 매병의 주요 무늬는 연꽃줄기 무늬(蓮花折枝)인데, 몸통의 네 면에 새겼다. 연꽃 무늬의 테두리는 깊게 새기고, 안쪽의 세부 잎은 얕은 선으로 새겨 입체감이 살아있다. 연꽃줄기의 밑둥은 그릇 위에서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점을 찍는 방식으로 표현하여 사실감을 주었다. 녹청색의 유약을 매병 전체에 발랐으나 바닥에 닿는 부분의 유약은 닦아내었다. 바닥면에 높은 온도에도 견딜 수 있는 모래가 섞인 황색의 내화토 받침을 붙여서 구웠다. 그릇 위로 잔금이 보이며 일부 유약이 흐르거나 황갈색 빛을 띠는 곳도 있다. 이 매병은 죽찰을 목에 단채 발굴되었는데, 죽찰에는 매병에 꿀을 담았다는 내용과 이 매병을 받는 사람의 이름 등이 적혀 있어 고려시대 매병의 용도를 알려주고 있다.
*죽찰(마도1291)과 함께 보물로 지정
白磁陰刻線文大楪 White Porcelain Bowl with Incised Linear Design
입구가 부분적으로 약간 깨졌다. 외면이 완만한 사선을 이루며 올라가고 입구가 벌어지는 백자대접이다. 외면의 몸체에는 음각으로 곡선문을 돌아가면서 장식하였다. 내면은 입구 아래에 음각으로 선이 한 줄 돌아가고 안바닥에 원이 있다. 유색은 백색을 띤다. 유약은 내면 전면을 바르고, 외면은 굽을 제외한 저부까지만 발랐다. 굽은 높으며 모아지는데 지름이 넓고, 접지면이 좁은 편이다. 굽 안바닥에 양강(楊綱)이라는 묵서가 적혀 있다.(보고서 상에서는 백자음각선문완으로 기재된 것을 명칭 수정함)
陶器壺 Stoneware Jar
- 한국 / 고려
- 도자기 > 기타
- 제3칸의 우현쪽에서 똑바로 세워진 채 노출되었다. 내외면 진갈회색, 속심 적황색이며, 석립이 소량 혼입된 정선된 태토이다. 외면의 아래쪽과 어깨 위쪽으로 격자 타날 흔적이 약하게 남아있다. 내면에는 정면과정에서 물레의 회전력을 이용, 아래부터 위쪽으로 손을 대어 올리면서 형성된 횡선이 얇게 남아있으나 누른 압력이 크지 않아 외면에 요철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횡선이 생기기 전의 중원문 내박자 흔적이 아래쪽에 남아있다. 호 내부에서는 나무뚜껑(마도3-177)이 들어가 있었고, 소량의 곡물류와 씨앗류, 그리고 유그릇질들이 수습되었다.
竹札 Bamboo Tag (Replica)
<앞면>右三番別抄都上
<뒷면>乾䗊壹石
해석:
<앞면>우삼번별초 도에 올림.
<뒷면>말린 홍합 한 섬.
> < 모양의 홈을 경계로 머리와 몸통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머리는 특별히 모양을 다듬지는 않았으며, 몸통은 긴 직사각형이다. 묵서는 앞, 뒷면 모두 있다. 앞면은 총 7자, 뒷면은 4자다
竹札 Bamboo Tag
Wooden Comb (Replica)
- 한국 / 고려
- 나무 > 기타
- 제3칸 우현 중앙에서 출수된 목제빗으로 재질은 조록나무과 조록나무속이다. 각형으로 빗살이 양쪽에 있으며 한 쪽면은 굵고 성글고 다른 면은 촘촘하게 나 있는 형태로 얼레빗과 참빗의 역할을 동시에 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성근면의 빗살은 1mm 간격으로 두께 1mm, 길이 2.6cm로 제작되었으며, 촘촘한 면의 빗살은 다.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으며, 빗살은 20여 개가 남아있다. 0.5mm 간격으로 두께 0.6mm, 길이 1.4cm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빗살이 온전히 남아 있으나, 촘촘한 빗살의 끝부분이 일부 소실되었다.
石製將棋 Stone Korean Chess Piece
- 한국 / 고려
- 넓이에 비해 길이가 긴 직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다. 자연석을 이용했으며, 인위적인 가공 흔적은 없다. 앞면과 뒷면 모두 ‘車’자가 아주 뚜렷하게 적혀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車자 아래, 장기돌 하단에 모두 ‘○’의 묵서가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적은 글자인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가능성은 제기할 수 있다. 즉 현재 장기알은 漢과 楚 상대방의 글자체를 달리해서 서로 구별하고 있는 것처럼, 같은 車가 적혀 있는 장기알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편임을 표시하기 위해 그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같은 곳에서 발견된 마도3-209 돌 장기알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粉靑沙器印花菊花文「內贍」銘楪匙
Buncheong Ware Dish with Stamped Chrysanthemum Design and Inscription of 「Naeseom」
- 한국 / 조선
- 도자기 > 분청
- 분청사기인화국화문「내섬內贍」명접시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안바닥은 편평하며, 측면은 바닥부터 곡선을 이루며 올라가 입구에서 직립하는 형태이다. 안바닥 중앙에 ‘내섬’이라는 명문이 있다. 내면에는 음각기법으로 선을 돌려 2단으로 구획대를 만들어 중심 문양으로 국화꽃을 4단으로 인화하였다. 입구에는 국화꽃을 2단으로 인화하였다. 외면에는 위아래로 구획대를 두고 중앙에 승석문을 장식하였다. 태토는 비교적 정선되었다. 유색은 녹청색을 띠며, 굽과 그 주변을 제외하고 발랐다. 굽은 죽절굽으로 마무리가 다소 깔끔하지 못하고, 굽 접지면의 너비는 일정하지 않다. 그릇 안바닥과 굽에서 번조받침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木簡 Wooden Tag
靑瓷象嵌牡丹文枕
Celadon Pillow with Inlaid Peony and Chrysanthemum Design
- 한국 / 고려
- 도자기 > 청자
- 청자 베개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장방형長方形의 몸체에 머리를 베는 부분은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좁아져 있고 양 옆면에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외면에 정면 문양은 상감象嵌으로, 가장자리는 연주문대를 돌리고 몸체에는 국화꽃을 장식하였다. 측면에도 가장자리에 연주문대를 돌리고, 중앙의 둥근 구멍에 선을 그리고 정면과 같이 모서리에 4개의 국화꽃을 장식하였다. 유색은 담청색으로 전면에 발랐고 빙렬이 확인된다. 태토는 회색을 띠며, 비교적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한 쪽 측면에는 유약이 녹지 않아 회백색을 띠며, 모서리 4곳에 굵은 규석받침을 받쳐 구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白磁燭臺 White Porcelain Candle Stick
十二東波島船 Sibidongpado Shipwreck
- 한국 / 고려
- 나무
- 십이동파도선은 고려 11~12세기경 고군산군도 해역을 항해했던 청자 운반선으로 2003년 수중조사로 발굴되었다. 십이동파도선(十二東波島船)이라는 배 이름은 발굴조사 후 섬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최대 길이 14~15m, 너비 5.5m 규모의 평저형 목재 범선으로 추정되지만, 남아 있는 선체는 길이 7m, 너비 2.5m에 불과하다. 배에쓰인 나무는 소나무, 느티나무, 굴피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다. 저판은 소나무, 만곡종통재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선체 연결용 못은 굴피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사용하였다. 선체는 외판을 비롯한 상부 구조물은 사라지고, 갯벌에 묻힌 저판 3열과 우현 만곡종통재 2단, 외판 1단, 가룡 3편, 선수(이물비우판), 호롱 1편, 닻돌 1점 등만 출수되었다. 중앙 저판에 돛대 받침용 구멍이 있는 것으로볼 때, 돛은 1개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십이동파도선에는 청자와 도기, 선상생활용 도구(철제솥 2점·도기시루 1점·돌판 1점·청동숟가락 1점), 도자기 포장재료, 밧줄, 닻돌 등 모두 8,743점이 실려 있었다. 이 가운데 청자가 8,122점으로, 이 배가 청자 운반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 특히, 당시 고려 최대의 청자 생산지였던 해남(海南)산으로 밝혀짐에 따라 십이동파도선의 출항지는 전라도 해남지역의 어느 항구였을 것이다
완도선은 고려 11~12세기경 서남해지역을 항해했던 청자 운반선으로, 1984년 바닷속에서 키조개를 잡던 어부가 청자 4점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완도선은 길이 9m, 너비 3.5m, 깊이 1.7m 규모의 평저형 목재 범선이다. 그러나 9백여년 만에 발견된 선체는 길이 7.3m, 너비 3.4m, 깊이 1.6m 정도로 도자기와 함께 갯벌에 묻힌 부분만 남아 있었다. 선수와 선미 구조물은 사라지고, 저판 5열과 좌현, 우현의 만곡종통재(彎曲縱通材) 각 1조, 외판은 우현 5단과 좌현 4단, 가룡 1점 등이 확인되었다. 저판과 외판은 나무못[長槊]으로 연결되었다. 중앙 저판의 중심에서 돛대 구멍이 확인되어 돛1개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에 쓰인 나무는 소나무와 비자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굴피나무, 졸참나무 등 매우 다양하다. 외판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쓰였고, 저판에는 소나무와 비자나무가 쓰였다. 화물창고를 구분하는 가룡과 선체연결용 못에는 상수리나무와 소나무를 사용하였다. 이외에 배에서 확인된 나무망치 등 목제품은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 동백나무 등으로 만들어졌다. 완도선에는 청자, 도기, 선상생활용 도구(철제솥, 도기시루, 청동대접, 접시, 숟가락, 숫돌, 나무망치, 나무함지) 등 모두 30,701점의 유물 등이 실려 있었다. 이 가운데 청자가 30,646점으로, 당시 고려 최대의 청자 생산지였던 해남(海南)산으로 밝혀졌다.
新安船 Shinan Shipwreck
- 중국 / 원
- 나무
- 우리나라 수중 발굴조사의 첫 걸음을 열게 한 배가 바로 신안선(新安船)이다. 지난 1975년 8월 어부의 그물에 중국 청자화병 등 6점의 유물이 건져 올려지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76~1984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이 해군 해난구조대의 지원을 받아 본격 조사를 실시했다.
유적이 있던 자리는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해역이다. 이곳에서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던 추정 길이 34m의 260톤급 목제 무역선(현재 크기 너비 6.6mㆍ길이 28.4mㆍ깊이 3.66m)과 중국 도자를 비롯한 수 만점의 무역품이 인양됐다.
많은 중국 도자와 함께 일본 세토(瀨戶)에서 만든 2점의 유약 바른 도기도 인양됐다. 출토 목패(木牌)와 저울추에 새겨진 글씨로 미뤄 신안선이 1323년(至治 三年) 중국 절강성 경원항(慶元港ㆍ현 영파 寧波)을 출발, 일본 후쿠오카(福岡)로 항해하던 중 침몰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유물 중 뜻밖에도 고려청자 7점이 발견되면서 세인의 관심과 연구대상이 됐다.
靑磁瓜形注子 Celadon Melon-shaped Ewer
靑磁獅子香爐蓋 Celadon Lion-shaped Incense Burner
- 한국 / 고려
- 도자기 > 청자
- 사자모양의 향로 뚜껑이다. 사자는 입을 벌리고 웅크리고 앉아 뒷다리 위에 보주를 올리고 앞다리로 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삼각형의 높은 코, 고리 모양으로 붙인 귀와 그 사이의 'V' 형태의 머리털에 음각선을 장식하고, 등에서부터 입 주변까지 갈기를 음각하였다. 가슴에도 두줄의 음각선을 돌리고, 그 아래에 둥근 형태의 방울을 붙였다. 꼬리는 유실되어 유약이 발라지지 않은 부분과 꼬리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원형의 뚜껑은 중심에서 수평으로 벌어지다 수직으로 꺾여 입구로 이어진다. 사자의 몸체는 원형의 뚜껑 뒷쪽에 얹혀 있는데 가장 자리와 옆면에는 음각선을 새겼다. 목과 가슴 주변, 뒷다리는 구울 때 터진 것으로 보인다. 사자 장식 바닥에는 구멍이 있어 연기가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뚜껑 안쪽 여섯 군데에 고온에도 견딜 수 있는 내화토를 붙여 구웠다.
靑磁鐵畵堆花文蟾形硯
Celadon Toad-shaped Inkstone with Paste-on-paste Design
- 한국 /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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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비 모양의 벼루이다. 두꺼비가 고개를 위로 들고 손과 발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점토를 빚어 모양을 만들고 두꺼비의 속은 조각칼로 파냈다. 흰색 흙(백토)과 철 성분이 들어있는 물감(철화)을 사용하여 두꺼비의 피부와 눈동자 등을 표현하였다. 두꺼비의 눈과 입, 다리의 주름 등은 음각선을 새겨 표현하였다. 먹을 가는 부분인 벼루의 연당(硯堂)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약간의 경사가 있도록 만들었다. 연당의 가장자리에는 반원을 음각으로 켜켜이 새겼다. 유약은 연당과 바닥에 닿는 면을 제외하고 벼루 전체에 고르고 두텁게 발라져 있는데, 유약이 흘러내려 아랫쪽에 두껍게 뭉쳐있다. 유약의 색깔은 황갈색이며, 잔금(빙렬)이 있다. 바닥 부분에 높은 온도에도 견딜 수 있는 내화토로 만든 받침을 붙여 구웠다. 고려시대 청자 벼루 중 두꺼비 모양으로 만든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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