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동물전문가 최현명ㆍ최태영 공저 <야생동물 흔적도감>이 국내 최초로 출간 된바 있다. 당시 이를 소개한 <월간산>의 기사를 아래와 같이 소개코자한다.
한국 최초의 <야생동물 흔적도감> 펴낸 동물 전문가 최현명ㆍ최태영씨
마운틴뉴스월간산
- 입력 2007.05.15 09:46
- 수정 2007.05.15 09:58
“산에서 야호! 정말 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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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명씨(44)는 10년 가까이 오로지 야생동물의 흔적을 좇아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닌 동물 전문가다. 이제 한국 땅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특히 포유류는 그것이 야생이건 가축이건 발자국 하나만으로 그 동물의 종류와 대강의 크기까지도 점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때문에 적잖은 사람들이 ‘한국내 야생동물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라고 그를 말한다. 그런 최현명씨와, 그 못지않게 야생동물 생태연구에 몰입해온 최태영씨(34)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야생동물 흔적도감>을 펴냈다.
최태영씨는 한국 소장파 동물학자들의 리더로 인정받고 있는 동물 전문가다. 그의 동물 전문사이트 야소모(yasomo.net)는 여러 젊은 동물 연구가들이 활발히 참여, 동물 관련 논문 등의 진실 여부를 검증하는 장치로서도 톡톡히 기능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가진 지식을 모아 넣은 <야생동물 흔적도감>에 필적할 만한 동물 관련서는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이 책은 한반도에 서식하는 여러 동물들의 배설물, 털, 발자국 등 흔적 사진과 실제 동물의 사진, 그리고 최현명씨가 정성들여 그린 그림과 최태영씨가 집필한 자세한 해설로 책을 꾸몄다. 이태 전 아동용으로 흔적도감이 나온 적은 있지만 야외에서 응용할 수 있을 정도는 못되었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흔적도감으로는 한국에서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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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은 그 동물의 모든 것 드러내는 홀로그램
두 사람은 7년여 전 처음 만났다. 최태영씨가 야생동물 화가, 그리고 다 죽어가던 늑대를 살려낸 것으로 이미 동물애호가들 사이에선 유명해진 최현명씨를 찾아가 만났다. 당시 최현명씨 집이 신림동이었고, 최태영씨는 설악산 산양에 대한 석사 논문 준비로 서울대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기에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형제처럼 친밀해지는 한편 동물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게 되며 흔적도감의 공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동물의 흔적이란 발자국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배설물, 먹다 남긴 먹이, 나무줄기에 낸 영역표시까지도 모두 그 동물의 면면을 드러내는 일종의 홀로그램이다. “그 동물의 흔적을 좇다보면 어느 순간 실제로 그 동물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최현명씨는 그 매력에 빠져 조경업이라는 괜찮은 분야의 직업도 내던지고 산야를 고생스레 헤매야 하는, 그리고 현실적 소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동물 전문가의 길로,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가 이제는 되돌아설 수 없을 만큼 깊게 접어들었다.
경주 태생으로 어릴 적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조경에도 취미가 있어 동국대 조경학과에 입학했으나 ‘동물학과를 갔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와 더불어 학창시절을 마쳤다. 결국 97년 대전동물원 설계를 끝으로 조경 일을 접고 ‘대책 없이’ 동물들을 직접 찾아나서는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딱 3년만에 동물도감 끝내자’고 결심한 일은 그러나 늘어지고 깊어져서 10년 세월이 훌쩍 지난 것. 실제로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비록 다쳤을망정 생생한 야생동물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던 동물구조협회 이사로 몇 해 일하다가 그 일마저 그만두고 산과 들로만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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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영씨는 주로 학문적으로 접근, <설악산 국립공원의 산양 보호구역 설정기법에 관한 연구(2005)>, <지리산의 멧돼지 행동권(2006)>, <농촌지역의 너구리 행동권(2006)>, <도로횡단 구조물 상의 눈 위 발자국 조사를 이용한 야생동물의 도로횡단 특성 분석(2006)> 등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물론 철저한 현장 조사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논문들이라, 그 또한 배낭을 메고 홀로 산속에서 자며 길도 없는 산비탈을 누비는 고생을 무수히 감내해야 했다.최태영씨가 논문 때문에 주로 설악산과 지리산을 훑은 반면 최현명씨는 강원도 고성~경북 북부 백두대간~낙동정맥 줄기로 이어지는 산맥을 주로 훑어왔다. 역시 이 지역에 희귀종 동물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은 물론 다른 지방에는 좀체 없는 동물들도 이곳에서는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지역적으로도 각각 다른 두 사람의 체험이 합쳐지면서 흔적도감은 한결 풍부해질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설악동 모텔의 호랑이 발자국은 개 발자국”한국에 포유류는 현재 얼마나 될까. 두 사람은 고양이과의 삵, 개과의 너구리, 족제비과의 담비, 그리고 수달, 오소리, 족제비, 산양, 노루, 고라니, 멧돼지, 멧토끼, 청설모 등을 꼽는다. 그럼 호랑이는? 최현명씨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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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담을 모두 인정하면 호랑이가 아마도 사오백 마리는 될 겁니다. 하지만 대개는 노인들의 몇 십 년 전 목격담이죠. 만약 호랑이가 살아 있다면 반경 10km 안에서 발자국은 물론이거니와 배설물, 먹다 남긴 먹이 같은 흔적이 무수히 나와야 합니다.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 마리가 산다는 연해주의 표범 보호구를 답사한 적이 있는데, 지리산 면적 3분의 1쯤 되는 180㎢ 보호구에서 20여 일 새에 표범 똥을 9개나 보았고, 먹다 남긴 사슴 사체도 보았습니다. 한국 내 호랑이 목격지에서는 목격담 외 그런 흔적이 발견된 것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호랑이는 멸종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설악산 설악동의 어느 모텔에서 유리커버까지 씌워 보존하고 있는 호랑이 발자국은 얼마나 큰 개체의 것이냐고 묻자 두 사람은 “보는 순간 개 발자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며 함께 웃었다.
곰도 순수한 야생 곰은 지리산이나 향로봉 일대에 고작 몇 마리 살아 있을 것으로 두 사람은 추측한다. 이렇듯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동물은 이제는 거의 없다는 확신을 가진 두 사람은 두려움 없이 깊은 산중에서 며칠씩 홀로 비박하며 헤매는 현장 답사를 거듭해왔다. 지겹지 않았을까. 최현명씨는 “그 반대였다”며 이렇게 말한다.
“한 달에 현지답사 일수를 열흘로 스스로 정하고 그걸 지키려 무진 애를 쓰지만, 잘 안됩니다. 답사에 몰두하다 보면 열흘을 훌쩍 넘기기 일쑤거든요.”
그렇게 탐닉하듯 현장을 누비며 동물 생태를 익혀왔기에 학위도, 별다른 논문도 없는 그이지만 야생동물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 누구보다 믿을 만한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동물 발자국 관찰은 아무래도 적설기가 제격이지 않을까. 두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눈이 쌓인 겨울철도 흔적이 많이 남지만, 발자국 모양이 쉽게 변하고, 무엇보다 해가 너무 짧아요. 포유류를 추적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여름 장맛비가 내린 이후 쨍 하고 맑았을 때죠. 비가 내리는 동안 굶주린 탓에 활동을 많이 하지요. 때문에 발자국이나 사냥 흔적, 배설물 등도 풍부하게 남습니다. 강변 흙바닥 같은 데 찍힌 발자국은 눈 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오래 가기도 하고….”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어두었고, 또 곳곳에 만들고 있는 동물이동통로의 효용에 대해 궁금해 하자 두 사람은 “우리는 동물을 의인화시켜서 다루려는 게 무엇보다 문제”라며 “대국민 계몽용이라면 모를까, 실제 동물들에겐 거의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동물의 흔적은 임도를 따라 탐색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이 그렇듯 동물들도 임도가 걷기 편하기 때문인지 통로로 애용한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양양 미천골 임도에서는 한꺼번에 삵의 똥 10개를 발견한 적도 있다.
동물을 직접 보았으면 하고 기대할 때는 전혀 못 만나고, 꼭 딴 생각할 때 느닷없이 마주치게 되는 이유가 두 사람은 아직 궁금하다. 사념(思念)의 파장을 동물들은 느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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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일출 무렵의 산중 함성, 산양에 특히 악영향
최현명씨는 현재 한반도에서 고양이과 동물 중엔 가장 큰 동물인 삵을 특히 자주 만났다. 이 삵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그러나 백두대간이 아니라 서산간척지라고 한다. 그 외 멧돼지, 너구리, 수달 등등 여러 동물들을 야생 상태에서 만나 보았지만 그가 가장 사랑하는 동물은 늑대다.
“제가 개를 좋아했는데, 그 개의 조상이 늑대죠. 동물구조협회 이사로 있을 때 엘지그룹 후원으로 늑대 여섯 마리를 몽골에서 사들여온 적이 있습니다. 그 놈들을 돌보면서, 그리고 몽골 늑대 서식지에서 장기간 현장답사도 하면서 늑대에 대해 깊이 알게 되니 정이 더 가더군요.”
그는 아파트에서 4년간 늑대 ‘하나’를 키우다가 눈물로 과천동물원에 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늑대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말 듣는 게 두렵습니다. 질문 받으면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요.”
늑대는 67년 영주에서 생포된 것이 공식적으로는 최후의 개체라고 한다. 일제 말기만 해도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약 2,000마리 있었다지만, 일제의 모진 사냥과 6.25를 거치며 멸종되었다. 일제 말 600여 마리 살았다는 표범도 69년 가야산에서 포획되어 맞아죽은 개체를 끝으로 멸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늑대도, 그리고 680종 식육목의 동물 중 가장 적응력이 뛰어나 아일랜드에서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섬나라인 일본에서조차 너무 많아 인위적으로 솎아낸다는 여우도 유독 한반도에서는 멸종 단계다. 역시 전쟁, 그리고 무엇보다 밀렵 탓이라며 최현명씨는 말한다.
“도로가 잘 나 있다는 게 문제지요. 밀렵꾼들 접근이 아주 쉬워진 겁니다. 지금 밀렵되고 있는 동물 중에는 멸종위기종도 여럿 있어요.”
최태영씨는 설악산 산양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리산 반달곰 관리팀에서 근무한 만큼 산양과 반달곰에 관해서는 훤하다. 그에게 설악산에 산양이 몇 마리나 되느냐고 물었다.
“아마 한 100마리쯤 될 겁니다. 하지만 숫자 자체보다는 유전적으로 안정적인 100마리냐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10여 마리까지 줄었다가 그 10마리가 근친교배하여 100마리가 됐다면 장차 멸종될 위험성이 높다고 할 수 있죠. 설악산 산양이 어떠한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산양 서식조건은 외설악이 내설악보다 훨씬 좋은데, 산양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케이블카나 등산객들이 내는 소음의 영향이 가장 크다”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산양도 물론이고, 모든 동물은 고함소리에 가장 민감합니다. 고함을 지르면서 관계가 친숙해지기란 사람 간에도 어렵잖습니까? 동물들은 고함을 경고나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야생 사슴이 사람 바로 앞까지 다가오는 외국 공원에서의 꿈같은 광경을 우리 것으로 하려면 고함을 지르면 안 됩니다.”
산양의 먹이 활동은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인 가을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주로 일출이나 일몰 때 먹이를 취한다. 그런데 설악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릴 때가 가을이며, 사람들이 가장 고함을 많이 지르는 때가 일출 무렵이다. 그것도 한두 사람의 “야호-”만이 아니라 “전원 1분간 함성!” 또한 부지기수다. “산에서 고함은 쓰레기 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자연훼손 행위”라고 최태영씨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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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달곰 복원 시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최태영씨는 이렇게 말한다.“우리 국토가 아직 이렇게 큼직한 포유동물도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을 가졌다는 상징적 의미가 가장 큰 것 아닐까요? 지리산에 100마리 정도는 생존 가능합니다. 다만 우리가 반달곰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이냐가 우선 문제입니다.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 예로, 지리산 서부지역에서 반달곰이 살 수 있으려면 성삼재 도로는 폐쇄해야 합니다. 그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호랑이를 복원한다는 것은 곧 우리 국토의 상태를 70~80년 전의 상태로 되돌려놓는 일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얘기가 깊어지며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두워져갔다. 두 사람은 말했다.“어느 산을 가든 그저 뱀만 조심하면 된다는 게 서글프지요. 이렇게도 동물종이 빈약하다는 게 말이죠.”흔적과 증거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냉철한 두 사람이지만, 한편 막연히 품고 있는 꿈 아닌 꿈이 있다. 자신들이 공개적으로는 “이젠 멸종됐어”라고 단정지은 그 동물들-여우나 늑대, 표범, 혹은 사향노루를 산중 어딘가에서 극적으로 맞닥뜨리는 일이다.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날 거야’ 하는 두 사람의 바램은 오래고 오래 묵어, 이제는 하나의 간절한 기도가 되어가고 있다./ 안중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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